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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17. 목요일

논설우원 파토









<파토의 쿡찍어 푸욱>은 


시급한 현안에서부터 해묵은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사회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코너임다.


과학 잡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와 교대하면서 격주로 연재되니


 많은 사랑 주시던가.




지난 기사


<파토의 쿡찍어 푸욱> 1. 공포의 마스터플랜

<파토의 쿡찍어 푸욱> 2. 그들은 왜 변절했을까

<파토의 쿡찍어 푸욱> 3. 지금 우리에게 놓인 투쟁의 현실

<파토의 쿡찍어 푸욱> 4. 시대와 진보에 대한 단상

<파토의 쿡찍어 푸욱> 5. 사회의 품격(1)

<파토의 쿡찍어 푸욱> 6. 박정희, 이승만, 일제 그리고 개드립

<파토의 쿡찍어 푸욱> 7. 사회의 품격(2)

<파토의 쿡찍어 푸욱> 8. 하는 김에 하는 교통 이야기

<파토의 쿡찍어 푸욱> 9. 우리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인가

<파토의 쿡찍어 푸욱> 10. 비극으로 모자라서 이렇듯 철저하게 패배할 겁니까

<파토의 쿡찍어 푸욱> 11. 내가 수퍼맨이라면

<파토의 쿡찍어 푸욱> 12. 위선이라도 떨어라

<파토의 쿡찍어 푸욱> 13. 혁명의 상상

<파토의 쿡찍어 푸욱> 14. 줏대이야기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위는 1960년에 시인 김수영이 쓴 시다. 4.19와 5.16 사이 잠깐 동안의 민주적 토양에서긴 했지만 한국전쟁이 끝난 지 불과 7년 밖에 안 지난 때니 그야말로 무시무시하게 급진적인 내용이었다.

 

당근, 이 시는 김일성을 찬양하기 위해 쓰여진 게 아니다. ‘김일성 만세’라는 표현은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는 진짜 언론 자유를 말하기 위해 가장 극단적인 예를 찾아서 든 것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당시 나름 진보적 언론이었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 당연히 - 빠꾸를 맞았고, 최근인 2008년 김수영 사망 40주기의 학술 대회에서야 새로 발굴돼 세상에 알려질 만큼 묻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54년이나 지난 2014년 현재도 그런 수준의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갖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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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시사하는 점과 최근의 종북몰이 세태를 동시에 바라보면 미묘하게 다른 두 가지 입장을 동시에 갖게 된다.

 

하나는 그야말로 김일성 만세를 외칠 자유를 위한, 즉 볼테르 말마따나 ‘당신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자각이다. 또 다른 하나는 조금만 생각이 다르면 종북으로 몰아세우면서 그 핑계로 사람을 핍박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나는 종북이 아니다’고 말하는 것, 즉 사실의 천명이다.

 

문제는, 요 두 개가 중요한 지점에서 어긋나 있어서 동시에 추구하기에 곤란해 보인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자. 양심과 언론의 자유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만큼 누가 종북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자체가 비민주적이라는 관점을 견지하다 보면 민주/진보/야권/리버럴 전체가 도매금으로 종북 낙인이 찍히고, 그 결과 비민주/수구/여권/전체주의자들에 의해 호도되고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잘 알다시피 바로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덕택에 우원과 이 글을 읽는 니들 대부분에게 어처구니 없는 종북딱지가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내가 종북이 아님을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나의 ‘무죄’를 강력히 천명하다 보면 저들이 만들어 놓은 친공/반공 프레임 속에 매몰돼서 사상과 언론 자유의 원칙에 본의 아니게 눈을 감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진중권 같은 이들이 토론 등에서 좀 그런 모습을 보였는데, 그의 비판의 논리는 소위 종북성향의 정치인, 지식인들이 그런 사상을 갖는 것 자체는 자유지만 마치 아닌 것처럼 국민을 속이는 것은 잘못됐다는 거다.

 

우원은 누가 종북인지는 모르고 주변에 그런 사람도 없지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지적 자체는 틀린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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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시 좀 더 생각해 보면, 김수영의 시가 통하지 않는 이 나라 현실에서 그 사상을 솔직히 드러내는 건 자살행위란 점에서 진중권의 주장도 실은 공허한 슬로건에 바탕해 있다. 만약 진중권 자신이 볼테르 말처럼 목숨걸고 나서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닐 것 같다.

 

암튼, 그래서 우원도 이게 고민이었다. 양날의 칼이라고 할 이 예민한 문제를 어떻게 해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원칙도 견지하고 동시에 나의 정체성도 확실히 하면서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순을 해결할 방법은 뭘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 이 미묘한 건을 한꺼번에 관통할 E=엠씨스퀘어 같은 방정식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문장으로 ‘사상의 자유가 중요하니 내가 종북이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건 좀 그런데 한편으로 내가 종북 아닌 거는 맞고 또 김정은한테 개새끼라고도 안 할래’ 하고 말하려 들면 결국 나 자신도 남도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대신 이 고민을 그것 자체로 받아들이고 최대한 솔직하게 생각하고 말하면 되는 거다. 요컨대, 볼테르가 한 소리를 이 나라 현실에 맞게 좀 풀어 정리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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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헤어 좀. 제발(눈썹도)

 

 

일단 우원 개인의 정체성부터 이야기하자. 열분들 대부분도 그렇겠지만 우원, 종북 아니다. 친북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굵은 글자로 명확하게 북한에 대한 우원의 관점을 열거해 본다.

 

 

- 북한은 이름과 달리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일종의 왕국이다

 

- 북한의 독재와 세습은 부당하며 반민주적이다.

 

- 북한은 근대적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부재한 전체주의 봉건 사회다

 

- 북한 체제는 사회주의조차 아니다

 

- 북한 주민들 중 상당수가 경제적,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본다

 

- 남한이 북한 체제와 비슷한 모습을 따라가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래서, 혹시 수구꼴통들이 우원을 붙잡아 종북 딱지를 붙이고 북한에 보낼려고 한다면 캐나다나 태국, 아니 에콰도르나 수단으로라도 탈출할 생각이다.

 

하지만 우원의 ‘종북 아님’의 입장에는 아래와 같은 점들이 함께 전제된다.

 

 

- 북한에서 시행하는 것과 비슷한 정책을 지지한다고 종북 아니다

   : 많은 서방 국가에서 시행 중인 무상의료, 무상급식, 부자증세 등과 종북은 무관

 

- 북한과 평화적으로 지내자고 한다고 종북 아니다

   : 정책적, 실용적 관점의 차이일 뿐 저쪽으로 흡수되자는 소리가 아니라고

 

-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종북 아니다

   : 합리적인 의심일 뿐이니 상대가 북한 아니라 미국, 중국이라도 마찬가지

 

- 무엇보다, 북한 체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감옥에 처넣으라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종북 아니다

   : 앞의 볼테르 이야기를 기억하자

 

 

자, 우리들 대부분은 요 바로 위의 파란 글자들에 해당돼서 억울하게도 종북딱지가 붙어 있다. 하지만 이제 이 정도로 명확하게 말씀을 드렸으니 변희재던 정미홍이던 우원 - 과 여러분 대부분 - 을 더 이상 종북으로 몰아세우지는 못하지 않을까?

 

글쎄다. 일단 매카시즘이 눈에 쓰인 사람들은 종교적 광신도나 음모론자 비슷해져서, 그런 식의 합리적인 태도를 기대하기 어렵다. 예컨대 전원책이라면 이걸로 모자라 우원에게 김정일, 김정은을 개새끼라고 부를 걸 요구할 거다. 다들 알겠지만 그 냥반은 지난 2012년 5월 KBS 심야토론에 등장해서 그런 소리를 실제로 한 적이 있다.

 

우원한테 시킨다면 당근 안 한다. 왜.

 

일단은 개인적인 태도의 문제 때문이다. 우원은 누구한테든 그런 욕할 생각이 없다. 김정은 김정일 등 뿐 아니라 박정희, 전두환이나 최근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죽이고 있는 이스라엘 네타냐후에게도 마찬가지다. 걍 우원의 원칙과 맞지 않는다.

 

두 번째, 욕설 같은 걸로 내 양심을 증명하라고 떠민다면 그런 강요 따위는 받아들일 맘이 전혀 없는 거다. 정치 성향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인간사회에는 지켜야 할 격이 있고 또 사람한테는 나름의 명예심이란 게 있다. 저런 욕을 하지 않으면 니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 인격에 대한 천박한 모욕인 거고, 그렇게 욕을 증거로 삼겠다는 전원책 같은 자는 그야말로 너절한 광신도다.

 

세 번째, 이건 우원보다는 주류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에게 더 해당되는 이유지 싶은데, 우리 중 누구라도 나중에 언젠가 북한과 대화해야 할 일이 있을 수 있다. ㅂㄱㄴ 도 그런 적이 있듯이 종북이라서가 아니라 여러가지 정치적인 상황들, 정책적인 이유들로 그들과 이야기할 일은 얼마든지 생긴다. 이때 대놓고 저쪽 정치지도자를 개새끼라고 말한 사람하고 북한이 대화를 하러 들겠냐는 거다.

 

사실 비슷한 이유에서 ㅂㄱㄴ나 전임 가카는 물론 그 옛날 이승만이나 박정희 조차도, 아무리 북이 밉다 한들 그런 표현은 안 썼다. 근데 왜 우리는 꼭 그래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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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음악은 사탄의 음악이다. 그런 음악을 들으면 자기도 모르는 새

마귀의 포로가 되고 만다. 회개하라, 아멘.”

한 때 이런 개소리가 진지하게 돌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주장했던 넘들이 지금 이 소리하는 넘들하고

비슷한 부류일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암튼, 이렇게 우원이 김정은 개새끼는 안해도 종북은 아니라는 점은 말했으니 이제 사상과 언론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겠다. 그리고 이 부분은 우원이 어쩌면 이 사회에 일부 존재할지도 모를 진짜 종북들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이들이 정말 있다면 참 한심한 일이다. 백번 양보해도 북한은 철두철미한 1인독재 체제고, 다양한 정치 활동의 자유는 물론 언론과 사상의 자유도 분명히 없다. 그럼에도 만약 이 땅의 누군가 그런 사회를 추종하고 있다면 딱한 노릇이고, 그러면서 남한의 정치적 자유를 비판한다면 가소로운 일이다. 솔직히 그런 사람들에 대한 우원의 반대 입장은 웬만한 이 땅의 보수우익들 못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런 보수우익과 우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우원의 반대는 개인으로서의 입장인 거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실제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혀 마녀 사냥을 당하거나 공권력에 의해 탄압받고 감옥에 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반공이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어왔지만, 이 나라의 반공은 그냥 공산주의나 북한 체제를 말 그대로 ‘반대’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국가가 초헌법적으로 전국민을 상대로 특정 사상을 금지하고 탄압하며 벌을 내리려 드는, 즉 ‘보편적 멸공’의 개념이다. 그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마저 숱하게 도매금으로 넘어가 맞고 감옥가고 나아가 죽기까지 한 게 이 나라 근대사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현실이건 지랄이건 이건 그냥 잘못된 거고, 보수우익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심각하게 위배되는 자학개그다. 자유와 민주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고 나아가 방임하는 태도 하에서 가능하다는 기본 원칙도 모르는, 자유민주주의와 우익전체주의를 혼동하는 자들이 이 나라에서 보수연하는 대다수의 정체라는 이 현실.

 

실은 그게 극소수 종북주의자들의 존재보다 훨씬 심각하고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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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아무 이유도 없이 일어나는 게 아니듯,

공산주의나 종북주의도 사회적 개연성 없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권력자와 기득권자들이, 있어봤자 한줌 뿐일 종북주의자들을 그리도 무서워하는 이유는

그들 자신도 실은 이 나라가 뭔가 크게 잘못돼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원이 종북이 아니고 나아가 북한을 싫어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종북주의자들을 그들의 생각 자체만을 이유로 탄압하려 드는 우익 전체주의 사상은 그 이상으로 잘못된 거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정말로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면 그들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된다. 물론 싫으면 반대하고 비판해도 된다. 하지만 감옥에 보내거나 때리거나 죽이면 안 된다.

 

확실한 건, 폭력 등 구체적인 반사회적 행위가 동반되지 않는 한 공권력은 스탈린주의자든 종북주의자든 왕당파든 뭐든 간에 국민의 사상과 양심을 재단하고 징벌할 권리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는 순간 이 사회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그린 비뚤어진 세상이 된다. 어떤 권위도, 윤리도, 입장도 그런 짓을 할 자격은 없고, 따라서 그걸 시도하는 자가 바로 악이다.

 

그래서 우원은 시험삼아 이렇게 함 소리쳐 볼란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지만 가짜 민주주의는 더 싫어요.

 

 

 

자, 지금 이 나라에서 누군가 내 입을 찢으려 든다면 과연 어느 쪽일까?

 

...그 힘을 가진 쪽이 정말 위험한 자다.

 

 




 

파토

트위터 : @patoworld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