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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22. 화요일

독일특파원 타데우스













지난 몇 주간 개인적인 사정으로 정신이 반쯤은 나가 있었다. 약속한 날짜에 글도 못 올리고 날도 덥고 술도 많이 마시고 그런 하루하루가 지났다. 이제 정신이 제자리를 찾아 들어오고 보니 그간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사태는 날이 갈수록 심각성이 더해지고, 세계 각국에서 목숨 걸고 탈출하여 외국으로 향하는 난민의 숫자가 기록을 경신하고 있으며, 일본은 자위권인지 뭔지를 해보겠다며 극우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점점 더 퍼져가고 있고, 우크라이나에선 민항기를 격추해 무고한 승객의 모든 목숨을 희생시키는 등등, 이러다 지구는 곧 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한국은 이 모든 사안에서 한편으로 비켜서 자국 내 싸움에 정신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다행인 건가? 세계화 시대에 저런 재앙적 사안에 한국이 깊숙이 연루되지 않은 것은? 이러다 3차대전이라도 터지면 우리는 다행히 비껴갈 수 있을까? 자국 내 상황이 저들의 상황에 비해서 좋기는 한 걸까? 외교는 5개국어 완벽 마스터했다는 ㅂㄱㅎ 대통령을 믿으면 되는 걸까?


그럴 리 없겠지…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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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에 글을 쓴 바가 있다. 그들의 역사와 그 안에 있는 인종, 종교 간의 갈등은 풀기 힘든 숙제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현재 유대인의 힘이 강하여 마치 최홍만이 유치원생을 두들겨 패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지만 반대로 아랍인들의 힘이 월등하다면 그 지역에 평화가 찾아올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재 이와 비슷하게 소수 민족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고 있는 아랍국가들이 실제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 어떠한 역사적 종교적 이유를 들어서라도 괴롭히려 맘만 먹는다면 인간은, 잔인한 인간들은 누구든 괴롭힐 수 있는 게 이 세상 아니었는가.


이번 사건도 정도의 차이가 심할 뿐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매일 업데이트 되는 사상자 숫자나 공습의 강도는 실시간 속보로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니 굳이 아까운 딴지 지면에서 다루진 않겠다. 오히려 그 안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 들여다 볼 수 있는 이스라엘 유대인들 사이에 사는 한 팔레스타인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해 볼까 한다.


뉴스에서 나오는 국제관계 등의 거시적 시각을 참작해서 미시적으로 한 가족의 일상을 들여다본다면 사태를 보는 시각이 조금은 다양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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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있어라~ 이스라엘.. >


곧 나는 이곳을 떠난다. 며칠 내로 우리는 예루살렘을 떠난다. 이 나라를 떠난다. 어제 우리는 아이들의 짐을 싸기 위해 조그만 캐리어 몇 개를 구매했다. 아이들의 옷가지 중 몇몇만 챙겨야 할 것 같다. 겨울옷들은 그대로 두고 갈 것이다. 미국 일리노이주의 겨울이 충분히 따뜻하지는 않겠지만 짐을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옷은 최소한으로 챙겨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한 몇 권의 책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아랍어책 두세 권, 히브리어책 몇 권을 통해 아이들이 모국어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면 욕심일까? 하지만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난 그리고 증오하는 동시에 사랑하는 자신들의 나라에 대한 어떤 감정을 아이들에게 심어줘야 할지.


원래는 일 년이나 그보다 조금 짧게 안식년을 가지고 외국으로 피신해 있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주 우리가 이 나라에 더 이상은 살 수가 없으리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여행사의 여직원에게 찾아가 최대한 빨리 이 나라를 떠날 수 있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왕복이 아닌 편도 티켓만 끊어달라고 당부했다. 이제 며칠 내로 우리는 시카고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도착해 어디에 묵을지 그리고 어떤 곳에서 살게 될지 그 어떤 것 하나 준비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건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14살짜리 딸과 9살, 3살짜리 아들을 둔 아빠다. 우리는 예루살렘의 서쪽에 살고 있고, 6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지금까지 우리 가족은 이 지역의 유일한 아랍인 가족이다.


“아들~, 네가 좋아하는 장난감 딱 두 개만 고르렴.”


3살 난 막내아들에게 히브리어로 이야기했다. 아들은 방구석에 놓인 장난감 통 앞에 서서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들을 꼭 안으며 얘기했다. 


“미국에 가면 네가 원하는 장난감, 이 아빠가 다 사 줄게.”


방으로 돌아온 나는 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책 두 권 정도는 가져가도 괜찮겠지.” 서재의 책장 앞에 서서 나 자신에게 얘기했다. 마무드 다르비시(Mahmud Darwish)의 시집 모음과 카릴 기브란(Khalil Gibran)의 역사책 모음집을 제외하면 모든 책이 히브리어다.


내가 14살이 되던 해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도서관을 보았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작은마을 티라(Tira)에서 나에게 수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 우리 부모님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곧 유대인들이 영재학교를 예루살렘에 만든다고 합니다.” 


그는 우리 아버지에게 강한 어조로 얘기했다. 


“아드님을 이 학교 입학시험에 참가하도록 하십시오, 그곳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이야기는 이게 전부다. 이후 나는 입학시험에 합격했고 면접에서 수많은 질문을 받아야 했다. 이후 한 뭉치의 추천서를 들고 나는 내 고향 티라를 떠나 유대인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그때가 꼭 지금 내 큰딸의 나이인 14살 때였다.


당시의 기억은 끔찍하고 우울했다. 지금도 학교 앞에서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안아 주었을 때 내가 얼마나 심하게 울었는지가 기억난다. 모든 것이 내가 살던 티라와 달랐다. 언젠가 나는 예루살렘에서의 첫 주가 내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때라고 쓴 기억이 난다. 그들과 나는 달랐다. 나는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말을 했다. 과학, 문학, 종교 등의 수업시간은 전부 히브리어로 진행되었다. 난 자리만 차지할 뿐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입을 열면 반 친구들은 비웃었다. 난 집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친구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랍어를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난 아버지에게 울면서 전화통을 붙잡고 사정했다. 나 좀 데려가 달라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위로하며 말했다.


“처음 몇 주가 힘들 뿐이다. 몇 달만 지나면 너의 히브리어는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뛰어날 거다.”


입학 첫째 주 문학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우리에게 J.D.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 오라고 했다. 티라에서는 문학 수업이 없었다. 당연히 도서관도 없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도서관은 없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내가 읽어본 첫 번째 소설이자 히브리어로 읽은 첫 번째 책이었다. 책을 읽는 데 몇 주가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내 인생을 바꾼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첫째는 내가 히브리어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내가 문학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시간이 지나며 어느새 나는 자연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고 문학에 눈을 뜨게 되었다. 매일같이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히브리어책들 밖에 없었던 도서관에서 나는 수많은 이스라엘 작가들의 글을 읽었다. 사무엘 아그논 (Samuel Agnon), 메이어 샬레브 (Meir Shalev), 아모스 오즈 (Amos Oz)등을 읽으며 시오니즘, 유대교, 유대인의 위인들,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전쟁에 대해서 읽었다. 어느새 나는 히브리어를 완벽하게 할 수 있었으며 수많은 책을 통해 글이 가진 힘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나의 역사와 정체성을 확립해갔다. 그때부터 나는 특별한 계획 없이 예루살렘에 사는 아랍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에 사는, 서구사회에 사는, 유대인들 속에 사는 아랍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다. 나는 글을 통해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곳의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써 나갔다. 할머니에게 들어왔던 유대인과 같지만 다른 역사에 대해서 써 나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1948년 티라에서 전쟁에 참전해 돌아가신 이야기, 할머니가 어떻게 나라를 잃어버렸는지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고아가 된 우리 아버지를 혼자 키우셨는지에 대한 이야기, 할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수확기만 되면 유대인의 농장에서 일했던 이야기, 아버지가 정치적 이유로 재판도 없이 몇 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어야 했던 이야기 등을 말이다.


나는 히브리어로 글을 썼다. 아니 정확히는 히브리어로 이 이야기들을 하길 원했다. 나는 유대인들에게 또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나의 글을 통해서 그들이 이해해 주길 바랐다. 그리고 변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 침략이, 점령이, 끝나기를 바랐다. 그리고 내 가족이, 민족이 게토에서 자유롭게 풀려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작가가 되는 것뿐이었다.

 

몇 개의 글만 더 쓰면 내 삶도 안전해 질 거라 믿었다. 책 한 권만 더, 영화 한 편만 더, 신문에 칼럼 하나만 더, 티비에 한 번만 더 나온다면 내 아이들의 삶도 조금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으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글을 통해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유대인과 똑같은 시민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살게 될 것이라고 꿈꿨다. 


그렇게 나는 25년간 쉼 없이 글을 썼다. 하지만 지금 바뀐 것은 전혀 없었다. 25년간 그렇게 조그마한 희망에 매달려 살았고, 인간이 그렇게 눈뜬 봉사일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별로 특별한 이유도 없이 25년간 그렇게 나는 긍정적인 시선으로 살아왔고, 언젠가 유대인과 아랍인이 서로가 인정하는 한 권의 역사책을 공유하며 살아갈 것이라 굳게 믿어왔다.


유대인들도 언젠가는 팔레스타인 민족에 대한 나크바와 무력 점령을 그만둘 것이라 믿었고, 팔레스타인인들도 용서를 구하고 서로 함께 도시를 만들고 평화롭게 그곳에서 함께 살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해피엔드로 막을 내릴 것으로 생각했다.


글을 써온 25년간 나는 양쪽의 사람들로부터 무수한 비난을 들어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주 마침내 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소년들이 “아랍인들을 죽이자!”라고 소리 지르는 것을 본 순간, 단지 아랍인이라는 사실만으로 군인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을 본 순간, 내 마음속에 있던 모든 것들은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글로써 사람들을 바꿔보고자 했던 나의 전쟁은 완벽히 패배로 끝났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명확하게 핏줄에 따라 또 지역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 짓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나라 안에 힘이 있는 사람들은 티비에 나와 핏대를 세워가며 이야기했다. “우리는 아랍인들보다 더 우월한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철석같이 믿고 있다. 내가 참여했던 토론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들은 내 앞에서도 스스로 더 뛰어나고 가치가 있는 민족이라고 소리높여 주장했다. 결정적으로 그들 중 다수가 이 나라에서 아랍인들이 살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최근에 쓴 글에 달린 몇몇 댓글을 읽었다. 


“널 가자 지구로 쫓아내겠어!”

“지나가는 네 놈 다리를 부러뜨려 버릴 거야!”

“네놈 딸도 납치해 줄게!”


나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다. 정말 좋은 이웃들과 존경할 만한 작가들과 기자들을 친구로도 두고 있다. 하지만 난 내 아이들을 더는 유대인 친구들과 밖에 나가 놀라고 얘기할 수 없다. 큰 아이가 화가 잔뜩 나서 나에게 이야기했다. “제가 완벽한 히브리어를 하니까 그 누구도 저를 아랍인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구요!” 하지만 나는 아이의 의견에 전혀 동의해 주지 않았다. 아이는 방문을 잠그고 들어가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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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예트 카슈아씨와 그의 딸



곧 나는 이곳을 떠난다. 지금 나는 책장 앞에서 14살 때 읽었던 히브리어로 쓰인 <호밀밭의 파수꾼>을 손에 들고 있다. 그리고 책은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나는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한다. 이 나이에 그게 얼마나 힘들지는 물론 잘 안다.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다면 글을 쓸 다른 언어를 찾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도 남은 평생을 사용할 모국어를 배워야 한다.


“들어오지 마요!”


내가 방문을 두드렸을 때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딸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딸의 만류에도 나는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침대에 가서 아이의 옆에 앉았다. 딸은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들어봐~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25년 전 아버지가 나에게 그 으리으리한 최고의 학교 입구에서 마지막으로 해주었던 말을 들려주었다. 


“기억하렴. 네가 앞으로 무얼 하던, 그들에게 너는 영원히, 정말로 영원히 아랍인으로 기억될 거야. 이해하겠니?”


“네, 이해해요”


딸아이가 말했다. 나는 아이를 꼭 끌어 앉았다.


“아빠, 사실은 저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곧 이곳을 떠나자꾸나.”

 

안겨있는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도 곧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거야.”


나는 아이에게 <호밀밭의 파수꾼>을 건네주었다.  



히브리어로 작성된 글을 슈피겔지에서 번역한 것을 또 번역한 것임! 원출처는 안얄랴줌! 나도 모름!



위 글을 쓴 팔레스타인인인 사예트 카슈아 Sayed Kashua (38세)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히브리어로 글을 쓰며 예루살렘 서쪽에 살고 있다. 아니 이제는 살았었다고 얘기해야 정확할지 모르겠다. 그의 자전적 소설 <춤추는 아랍인>은 이스라엘에 사는 아랍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었다. 그런 그는 이제 더는 예루살렘에 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는 팔레스타인인들 중에 교육도 잘 받았고 재력도 있는 아주 아주 상황이 좋은 사람임은 틀림없다. 글로서 자신의 상태를 외부세계에 전달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기구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저 땅에 얼마나 많을지는 짐작하기도 쉽지 않다. 그가 만약 돌봐야 할 가족이 없다면 그 역시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다 더욱 비참한 상황에 빠졌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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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하마스의 상태는 완벽하게 코너에 몰려있다고 볼 수 있다. 하마스 스스로는 이 사건의 발단이 된 이스라엘 아이들 납치와 살인에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은 그들과 대화나 협상에 전혀 나서지 않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지금까지와 같이 거의 대놓고 팔레스타인을 무시하고 있으며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간간이 아주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기는 하지만 사태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그동안 우호적으로 때로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편에 섰던 아랍의 우방 국가들이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는 상태라고 한다. 특히 그동안 많은 지원을 하던 이집트의 원조가 이번엔 없어지면서, 하마스는 지금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심정으로 얼마 남지 않은 미사일들을 이스라엘로 드문드문 쏘아대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 기회에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점령하여 이 싸움의 종지부를 찍으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그리고 그 사이 나오는 피해자들은 어쩔 것인가에 대한 특별한 생각은 없어 보인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잉여 잉여하게 유튜브를 둘러보던 중 하나의 영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단식하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와중에 그곳을 난입한 '엄마부대'인지 뭐시긴지 아줌마 아자씨들의 어이가 없는 행동.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저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소시오패스라 부른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다고... 자신의 손톱 밑에 조그마한 가시 하나 박혀도 죽을 것처럼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대지만, 이웃의 팔이 잘려나가 피를 철철 흘려도 엄살 부리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얘기하는 사람들. 예루살렘 언덕에 올라 폭격을 바라보며 시시덕거리는 유대인들이나 저런 사람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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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의 행위를 보며 전 세계는 또 다른 악마를 본 듯이 그들을 비난하고 있다. 뉴스의 댓글들만 읽어봐도 홀로코스트 이야기까지 꺼내 가며 유대인을 벌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넘쳐난다. 골드문트님의 글에 있는 링크를 따라 들어가 봤더니 정말 가관인 댓글들이 추천 수를 몇백 아니 몇천씩 받아가며 마치 이게 여론인 듯 게시판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제 한국에도 슬슬 네오나치 추종자들이 나올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최근 아시아에서 일본, 말레이시아, 몽골 등지에서 네오나치가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몇 번 보았다. 정확한 수치를 말할 수는 없지만,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극우들이 점점 더 힘을 얻어가는 것들도 사실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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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그리 좋아?

2차대전에서 히틀러가 이겼으면 아마 히틀러는 너희도 인종청소라는 명목으로 죽였을 꺼라고!!!



세월호 반대집회를 한다며 희생자 유족들에게 차마 못 할 말을 하는 '엄마부대'인지 뭐시기나 이스라엘 사태 관련 기사에 달린 유대인 말살 정책을 언급하는 댓글들이나 결국 자신의 증오를 표출할 뿐 그 어떠한 이성적 판단을 찾아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고 그렇게 세상은 점점 더 지옥으로 변해갈 뿐 바뀌는 것은 없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본다면 이 사태는 비록 하마스가 천사는 아니지만 이스라엘이 ㄱㄱㄲ임이 너무나 분명하다. 이 시선에 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 본다. 


언론에서는 자극적인 이스라엘의 사진들을 퍼 나르고 인터넷에서는 그에 대한 비난이 응축된다. 이는 분명히 범 국가적 시선이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내가 저 곳에 저 나라의 국민이라고 생각해 보면 '과연 이러한 현상이 사태를 해결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서로를 자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의 극우주의자들, 전쟁광들은 나날이 늘어가고 그들의 힘이 강해지고 있으며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점점 더 힘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전 세계의 외신과 여론은 마치 증오를 더 키워 전쟁을 더 하라고 부추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며 상대팀을 야유하듯... 혹은 옆집 부부싸움을 구경하며 자극적인 장면을 기다리는 듯한 그러한 불편한 시선들이 느껴진다.


언론과 여론이 현지에 있는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어떻게 하면 이 싸움을 멈출지를 고민하는 방향으로 흘러야 이 사태도 외교적으로 또는 여러나라의 도움을 얻어 해결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미국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은 일일지라도 말이다. 물론 미국은 절대로 그럴 맘이 없어보인다는 게 절망적이긴 하다. 이런 뒌장 미국!!!)


그렇기에 개개인의 입장에서 자극적인 기사들에 휘말려 이스라엘을 증오의 재물로 삼는 것보다는, 매일매일 희생자의 숫자가 늘어가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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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배설, 증오!

 


물론 필자의 주장이 그냥 허황된 이상주의자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것은 본인도 잘 안다. 하지만 반대로 이스라엘을 증오의 배출구로 삼는 것 역시 사태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허황된 뜬구름 잡기와 다를 바 없다.


* 이스라엘의 로니 에드리 씨가 반전을 외치며 매일 매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지의 상황을 업데이트 하고 있다.


올해는 1차대전이 일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증오를 증오로 받아친 결과는 어떠했는지 그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도 이 세계는 아직 충분히 배우지 못한 것인가 하는 부정적 생각도 든다.


하지만 우리는 남북한 관계에서도 증오를 증오로 맞받아치던 지난 수십 년간의 역사를 뒤로하고 용서와 평화로 해법을 찾았던 10년 간의 좋은 시절을 경험했다. 그리고 다시 모든 정책이 "증오 더하기 증오"로 바뀌었을 때 우리 사회에 몰아닥친 종북논쟁과 이념 갈등은 그전보다 더 공고해지고 지저분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 중에도 선하고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있다. 그들의 목소리가 지금은 조금 작게 들릴지라도 결국 여론이 그들에게 몰린다면 그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태는 조금 긍정적인 방향으로 출구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일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한 나라 혹은 한 민족이 없어지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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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지금 행위에 대해선 강력하게 비난해야 한다! 하지만 선을 넘지는 말자. 그를 통해 자신의 증오를 표출하지도 말자. 그들이 그냥 평화롭기만을 바라자.


사예트 카슈아는 스스로 자신이 25년간 했던 싸움에서 졌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 상황을 보자면 그는 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으며 서로가 잘 살기 위한 "평화 플러스 평화" 여론이 더욱 더 퍼져 나간다면 그의 낙천주의적인 희망도 언젠간 현실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그 길이 너무 멀고 험난해 지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다음 세대들을 생각하면 포기하면 안 되는 싸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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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포기하지 말고 싸워 이기시라들...







타데우스

트위터 :  @tadeusinde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