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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28. 월요일

펜더 






 





'언론'의 무서움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보도를 할 때의 파괴력 때문이다. 그 '의도'가 불편부당함을 전제로 한 공정한 보도라면, 사회적 공의(公議)를 위한 행동이라면 수긍할 수 있겠지만, 개인의 이득 혹은 특정 세력의 이득을 위한 일이라면 어떠할까? 


우리는 조중동을 비롯한 거대매체를 통해 언론의 폐해를 익히 겪어왔다. 거악(巨惡)의 존재 앞에서 우리는 그 아래의 작은 악들을 외면하고(혹은 관행이란 이름으로) 삼켜왔다.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생명체에게(그게 법인이 됐든 개인이 됐든) '생존'은 존재의 절대가치이다. 그렇기에 생존을 둘러싼 '소소한 주변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나 버렸다. 그런데 그 '부차적인 문제'가 타인에게 있어서는 생존의 문제 혹은 생존에 위협이 되는 문제가 된다면 어떨까? '글'이 타인을 위협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하는 기분은 더럽다. 



1. 매체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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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매체의 수가 너무 많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르네상스라고 하니까) 시절에 수많은 영화 매체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영화매체'들이 언론으로서의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는 등장 다시부터 의문이었다. 영화잡지의 광고주 중 상당수는 영화 제작사나 동종업종 관계자일 것이다. 취재처와 광고주가 같은 상황에서 제대로 된 '매체'의 기능을 할 수 있을까? 다 떠나서 한국 영화계 시장은 한정적인데, 매체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광고는 한정적이고, 나눠먹을 입은 많은 상황. 결국 영화 매체들은 정리가 됐다. 


그래도 '영화판'의 경우는 양심적이다. 아니, 양심적일 수밖에 없다. 관객이란 '객관적'인 평가자들이 있기에 (예술성이든 나발이든 직접 돈을 내고 보는 관객의 평가가 절대적이니 말이다.) 그들의 평가를 무시할 수는 없기에 말이다. 


매체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기본 요건'은 무엇일까? 


- 취재와 비평


이다. 취재는 언론의 기본이며, 또한 매체가 여타의 다른 '기사 글'과 다른 확실한 차이가 바로 '취재'이다. 취재가 없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모니터 앞에서 독후감을 쓰는 사람들을 기자라 부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에 더해 '비평'이 있다. 독창적인 시선과 면밀한 분석이 결합한 비평이나 논평은 매체의 품격을 높여준다. 문제는 이 비평이란 장르는 인터넷의 발달과 재야의 숨은 실력자들이 물밑에서 올라오면서 비평은 언론이나 매체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아니, 오히려 블로그나 트위터의 글을 긁어다가 쓰는 언론들이 등장할 정도가 됐다. (덕분에 글값은 똥값이 됐지만)


이 최소한의 기본 요건이 흔들리는 상황이 지금의 대한민국 매체의 현실이다. 


이제 더 이상 '글'에 돈을 제공하는 것이 어렵게 된 상황이다. 인터넷을 보면, 어지간한 정보는 다 나와 있다. 구글번역기를 활용하면, 어지간한 외신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반나절 정도 지나면 주요한 정보는 다 번역돼 나온다. (주식이나 경제관련 정보는 딱 반나절이면 번역본이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장벽이 무너졌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적자생존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고, 약자는 죽는 것이다. 자연도태를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생존'이 걸려있다. 결국 이들은 생존을 위한 비상수단을 선택하게 된다. 



2. 인터넷


몇 년 전 일이다. 네이버 뉴스가 '언론'인지 아닌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정치권에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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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치권에서는 네이버 메인의 '뉴스 노출' 자체가 '편집권'이라고 주장했다. 네이버 측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아니, 억울해했다. (당시 관계자의 말로는)


"우리는 뉴스가 주력이 아니고, 경영 차원에서 별 도움도 안 된다니까! 아예 없애버릴 수도 없고..."


네이버는 뉴스가 계륵 같은 존재였다. 아니, 계륵도 아니었다. 버릴 수만 있으면 버리고자 했다. (당시 관계자의 말이 엄살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네이버는 이용자가 뉴스를 선택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소위 말하는 '포털 권력'의 등장이다. 


네이버의 폐해에 대해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콘텐츠를 빨아먹는 블랙홀과 같은 존재. 한국적인 현실이다. 구글의 경우는 사용자가 자신이 찾는 정보를 직접 찾아가는 것이지만, 네이버는 그냥 '보여준'다.' 메인화면에 정보를 노출 사용자가 독립적인 검색이나 콘텐츠 생산을 하는 걸 방해한다. 사지선다형에 길들여진 나라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 주관식에는 약한 나라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 한다. 



① 현재 네이버에서 이용자가 가장 많은 서비스는 웹툰이다.


② 웹툰을 보는 이용자의 경로 중 80%는 모바일이다 (타블렛 + 스마트폰)


③ 인기 있는 웹툰의 종류를 보면, 글씨가 많거나 스토리가 난해한 작품보다는 그림에 여백이 있고, 각 회별로 끝나는 에피소드 형태의 작품이다. (네이버 웹툰의 산증인 조석을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추론해 볼 수 있는 게 몇 개 있다. 



① 10~20대의 경우는 PC보다는 모바일 환경을 더 선호한다. 부팅하는 그 짧은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귀찮다는 것이다. (그들이 독자적으로 PC를 사고, 활용할 수 있는 공간과 비용을 염출할 수 없다는 것도 장애요인이겠지만)


② 사람들이 추구하는 문화로서의 '재미'는 이제 짧은 시간 안에 '소모'하는 것으로 옮아가고 있다. (이는 출판계에서도 뚜렷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1천 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써가면, 출판사에서 난색을 표명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책이 두꺼우면 안 읽는 것이다.)


③ 모바일의 경우는 PC의 경우와 달리 능동적인 생산보다는 소비자로서의 역할에 더 적합하다. 즉, 생산이 아니라 공급되는 대로 소비하기만 한다는 의미다. 



모바일 환경의 등장으로 우리가 '기사'라 부르던 것들이 사라지고, 독후감의 시대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더 무서운 건 이 '인터넷' 덕분에 우리가 '기레기'라 부르는 사람들이 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첨언하자면, 문화의 소비행태가 변해가는 것에 대해 의견은 제시할 수 있지만, 어떤 게 좋다, 나쁘다, 라고 가치판단을 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과거의 잣대로 오늘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문화 자체의 토대가 다른 것이다. 시대상황에 맞게 선호하는 것들이 달라지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모바일이며, 단속적으로 소모하는 것을 즐기는 시대인 것이다.)



3. 기레기의 글... 그들의 밥벌이


얼마 전 영상으로 밥벌이를 하는 독립 PD를 만난 적이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SBS와 JTBC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SBS가 언제부터인가 MBC를 능가하는 진보성을 보이게 됐고, JTBC는 종편의 탈을 쓰고 정론보도를 하는 매체가 됐는가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PD는 시크하게 결론을 내렸다. 


"자본주의니까. 돈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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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을 할 수 없었다. 


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SBS는 민영이다. JTBC는 중앙일보라는 어찌 보면 언론사 중에서 가장 친자본주의라 할 수 있는 언론사다. 이들은 ‘돈의 냄새’를 너무도 잘 맡는다. KBS와 MBC가 여당 성향으로 돌아서 보수화되는 동안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할 만한 방송매체는 종적을 감췄다. 그 틈새시장에 뛰어든 것이... 아니, 자연스럽게 그쪽 방향으로 흘러가다 보니 오늘의 SBS와 JTBC가 됐다는 것이다.


독립 PD의 말은 이어졌다.


"독후감을 쓰는 기레기들을 가지고 뭐라 하지 마. 그걸 보는 사람이 있으니 독후감이 계속 나오는 거 아니겠어? 그럼 그 시장은 이미 형성된 거야. 일종의 하위문화라 생각해 버려."


그렇다. 이제 이런 시대가 됐다. 소설에서 언제부터인가 '묘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라져 갔고, 좋은 기사에서 보여주던 찰진 비유와 언어의 향연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췄다. 그 빈자리를 메꾸는 건 독후감과 유가 기사들이다. 물론,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고, 개중에는 여전히 좋은 기사를 내놓은 매체들이 있다. 문제는 인터넷의 '힘'을 믿고... 아니, 악용한 매체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론고시'를 옹호하는 것도 기자들에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나 학벌을 기반으로 한 카스트제도와도 같은 굳어버린 시스템을 말하는 건 아니다. 최소한의 '기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간단히 상황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발품을 팔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매체들이 꽤 있다. 이 매체들은 도대체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 실태 파악조차 못하는 곳이 있다. 대부분은 정부광고로 먹고 사는데, 이조차도 '경제적 논리'가 아니다. 그저 '귀찮아서' 혹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기에 이들은 업체의 '삥'을 뜯기 시작한다. 지방지의 경우는 예전부터 이런 게 '관례'가 됐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인터넷이 나오면서부터 이런 '관례'는 하나의 산업이 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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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실제 업체가 아니라 단순한 예시를 든 것뿐이다.)


A라는 업체가 있다고 치자. 이 업체는 외국계 기업으로 기저귀나 아기용품을 판매하는 업체이다. 나름 건실해서 업계 1~2위를 다투는 업체이다. 


B라는 매체가 있다. 이 매체는 아기용품을 평가하는 마이너한 매체이다. 시장성이 전혀 없다. (예를 들면 말이다.) 그러나 이쪽 업계에서 몸담다가 할 일이 없어진 이들이 모여서 매체를 만들게 된다. 처음에는 육아와 교육을 담당하는 정부 관계 부처의 '광고'로 먹고살지만, 갈수록 살림살이가 어려워졌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네이버나 포털에 언론사로 등록 돼 뉴스를 내보낼 수 있게 됐다는 정도? 이들은 이걸 희망으로 삼았다. 


A라는 업체에 대한 매도 기사가 뜨기 시작한다.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세무조사 혹은 관례로 진행되는 안전 점검에 대한 '의혹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B 매체였다. A 업체는 외국계 기업이기 때문에 미디어 케어 비용에 대해서는 아예 개념 자체가 없다. 알고 있어도 이를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홍보대행사에 말해 정정보도를 말할 뿐이다. 그러나 B 매체의 악의적인 의혹 기사들은 연달아 나오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기획기사로 묶어 연타로 터져 나오기까지 한다. 증삼살인(曾參殺人)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라고 말해도 계속해서 의혹을 제기하니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관계 부처에서도 정밀 조사를 언급할 정도가 된다. 이때 기사를 쓴 매체의 기자가 연락이 온다. 만나자고...


"저한테 말하지 마시고 (명함 내밀며) 이쪽으로 한 번 연락해 보세요. 참고로... 앞으로 기사가 10개는 더 준비 돼 있습니다. 잘 판단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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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모르는 매체이고, 매체 파워는 없다고 보는 게 맞을 정도로 마이너한 신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포털에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단 인터넷에 떠돌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른다. 게다가 이 매체는 자신들의 밥줄인 '정부기관'과 함께 하고 있다. 함께 한다? 계속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의 알 권리'와 '기자정신', '언론으로서의 사명'이다. 국민 건강, 아이들의 생명을 위해 그들은 분연히 일어난 것이다. (그들이 주장은 늘 그렇다. 어떤 매체든 말이다.) 결국 A 업체 관계자는 B 매체의 이사를 만나게 된다. 앉은 자리에서, 


"3장만 주시죠."


결국 A업체는 3천만 원에 이들의 기사를 사 버린다. 


이 사건 이후 A 매체는 고민하게 된다. 한국에서 말하는 그 '미디어 케어'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홍보대행사를 옆에 끼고 있지만, 이들은 브랜드를 홍보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런 식의 '장부 외 거래'를 기민하게 대처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결국 A 업체는 갑론을박 끝에 적절한 타협점을 생각하게 된다. 비슷한 성격의 매체 몇 개를 잡아다가 '유가 기사'를 주는 것이다. 


유가 기사... 간단하다. 광고도 아니고, 기사도 아닌 정체모를 글이다. 


한마디로 돈 주고 기사를 쓰는 것이다. 


옛날이야기 같은 가? 2014년 현재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매체가 인터넷에 서비스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기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들이 쓰는 기사가 과연 기사라 할 수 있을까?


(이들이 어떤 매체인지, 기자가 누구인지, 어디를 뜯어먹었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업체들은 이런 경우 100% 쉬쉬하고 넘어가려 한다. 그들도 돈을 벌어야 하니 말이다. 그들도 알고 있다. 그렇게 싸워 이길 순 있어도 결국은 피로스의 승리가 될 거란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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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뉴스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언론사 이름을 보면, 


"씨바, 우리나라에 언론사가 이렇게 많아?"


이런 생각이 든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생각이 멈추지만, 한 발만 더 나아가면 과연 이들은 뭘로 먹고 사는지 의구심이 든다. 광고시장은 한정적이고, 뉴스란 것도 한정적이기에 그걸 돈 내고 보는 사람도 한정적이다. 이들은 이렇게 먹고사는 것이다. 


매체가 너무 많다. 자연적으로 정리하길 기다리기엔 인터넷의 힘이 너무 강하다. 이들은 오늘도 업체를 뜯어먹을 '꺼리'를 찾고, 이걸 가지고 협박성 기사를 쓴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글이 돈이 되는 기적을 연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펜더


편집 :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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