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7. 25. 금요일
좌린
2014년 7월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째
집에서 아이들을 봐 줘야 하는 날이었지만
그냥 아이들을 데리고 국회의사당역으로 왔다.
첫째 아이에게 국회의사당을 설명해주기 위해 말을 꺼냈다.
"너희 학교에서도 여럿이 회의해서 정해야 할 일이 있으면 어딘가 모여서 회의 할 공간이 필요하잖아."
"우리는 그냥 체육관이나 시청각실에서 하는데..."
"아, 체육관.. 그래 국회도 그거 비슷한 거야"
O답 없는 국회
어제 안산에서 도보행진을 시작한 유가족 행진단이 국회-서울역 구간 행진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래저래 욕을 얻어먹긴 해도 종교인들은 어떤 포스, 후광같은 게 느껴진다.
행진 시작.
대열 맨 뒤를 따라가려고 기다리는 동안 잔디밭의 종이배들을 구경했다.
연두색 반 티셔츠를 입은 유가족 어머님께서 미소 띤 얼굴로
"그게 우리 아이 이름이란다"라고 알려주고 가셨다.
"큰 리본이다"
첫째 아이가 자기도 뭔가를 장식하고싶었나보다.
노란색 색종이가 없어서 주황색 무늬 색종이로 꽃을 접기 시작한다.
비에 젖어 풀어져 가는 종위배 위애 새로 피어난 종이꽃
화장실을 다녀오고 편의점을 갔다 오고 이러느라 대열에서 한참을 처졌다.
불평을 해 봤자 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아이들도 열심히 뛰어서 대열 후미를 따라잡았다.
마포대교
사진기자들이 어제 폭우 속 행진에서 고생을 좀 했는지,
둘째가 찍고 있는 방수 똑딱이 카메라를 보고 적절한 장비 선택이라고 칭찬해주었다.
애 둘 지켜보랴 사진 찍으랴 트위터에 사진 올리랴,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놀이할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노란 우산
한 때 동양 최고
아빠 잘못 만나 고생이 많다.
아이들과 힘들어도 '한강은 걸어서 건너기'로 약속했다.
마포역에서 지하철로 서울역까지 이동
서울역
많은 사람들이 도보행진에 합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비와 더위에 지친 행진단이 한 시간쯤 늦게 서울역 근처까지 오고 있다는 소식
기다림
행진단이 서울역에 도착했다.
안산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온 영정들
세월호 특별법 촉구 유가족 행진
비옷과 수건
기다리던 시민들이 환영의 박수를 보낸다
선두로 먼저 도착한 유가족들은 주저앉지 않고
계속해서 뒤따라 들어오고 있는 행진단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오늘도 아스팔트 위 식사를 하고 난 유가족들
저녁 도시락을 먹고 쉬는 시간에 영정 사진이 예쁘게 인쇄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오래 이어져야 할 기억.
200명 가량의 유가족들이 반별로 모였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서울역 결의대회
아이들과 나는 먼저 서울역을 나와 시청으로 걸어왔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보내고 시청 도서관 옥상으로 올라왔다.
서울역에서 남대문을 거쳐 시청으로 행진해 오는 유가족 도보행진 대열
시청으로 합류
사람들이 일어서서 유가족 행진단을 맞이한다.
교통사고에 죽은 자식을 빌미로
의사자 지정을 받고 수억의 보상금을 챙기려는 이들이라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문득 이 사회의 맨 밑바닥인 것처럼 느껴졌다.
사진기자들
플라자 호텔
김장훈과 故이보미 양의 듀엣, 거위의 꿈이 서울 광장에 울려퍼지고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낭송
"아직도 팽목항에서는 열 분의 실종자 가족들이 비통한 마음으로 남아 계십니다"
유가족 대표가 처음으로 집회 참가자들에게 구호 제창을 부탁했다. 제창할 구호는 "깨어나라"
"분위기에 맞지 않게 들썩들썩한 노래를 들려드릴 건데요."
"오래 잊지 않기 위해서는 밥 맛있게 먹고 지치지 않는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행사를 마치고 유가족들은 광화문까지 마지막 도보행진을 시작했고
시민들도 대부분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대규모 행진이라니 택도 없는 소리,
'순수 유가족'에 일반 시민이 섞여 있으면 절대 보내줄 수 없다는 경찰.
순수 유가족만 이 토끼굴을 통과해 가라는 얘기.
한 발 한 발 뗄 때마다 실랑이가 벌어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채증
밀었다 물렀다 하는 과정에서 실신하는 유가족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단식과 도보행진이 아니더라도 이미 백 번은 더 실신했을 백 일이 아닌가.
빗방울은 거세지기만 한다.
폭우
인도와 차도를 완벽히 분리해낸 차벽
병력을 넣었다 뺐다, 차벽을 막았다 열었다 하며
마치 체로 돌을 거르듯
유가족 대열과 시민 대열을 차례차례 분리해 내고 있다.
채증은 언제나 성실히
그렇게 걸러진 유가족 행진 대열
하지만 벽 뒤에는 더 큰 벽이 기다리고 있을 뿐
이 선을 넘지 말라고?
이건 심리전이다.
길 위에서 비를 맞으며 차벽을 두드리고 대표단이 들어가 한참을 얘기하고 나서야
슬금슬금 벽을 열어준다.
교보사거리에서 광화문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다시 막히고 해산명령이 쩌렁쩌렁 떨어진다.
"주요 도로를 점거하여 시민 불편을 야기하고 있으니 즉시 해산하세요.
3차 명령까지 나가면 해산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니 경찰 여러분은 주동자를 잘 봐 놓기 바랍니다."
'주동자' 소리까지 나오자 유가족 대표의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온다.
"너네들이 인도로 못 가게 죄다 막아놓고선 뭐, 주동자?"
간간이 천둥번개까지 동반한 폭우는
자꾸 더 거세지기만 한다.
그렇게
유가족 의견을 우선으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은
차가운 여름 비에 흠뻑 젖어만 가고 있었다.
경찰이 병력을 물리고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으로 올라갔다.
비는 자꾸만 거세졌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던
세월호 침몰 101일차 새벽의 기록.
좌린
트위터 : @zwarin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