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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 추천6 비추천0

2014. 08. 05. 화요일

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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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사라진 문명에 대한 어떤 종류의 아련함 혹은 희석되지 않는 로망이 있다면, 

나의 경우 그것은 온전히 마추픽추와 나스카 유적에 귀속된다.


'니가 잉카에 대해 뭘 알아?' 라고 묻는다면 사실 아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하긴 하지만,

지식의 농담(濃淡)에 관계없는, 어떤 본원적인 그리움의 영역이라는 것도 분명 존재하는 법이다.


나에게 잉카는 그런 애잔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것이 ‘태양소년 에스테반’에서 비롯된 것인지, ‘가이아 환상기’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언제부턴가 잉카라는 이름만 들어도 막연하게 가슴이 설레곤 했다.


때문에 '족히 수천 년의 전설을 품고 있을 듯한 마추픽추가 실제로는 15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이고, 이는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요, 유럽이라면 그 찬란했던 르네상스인데, 몇 백 년 지나지 않은 산 속의 석조 건축 따위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니냐'라고 누군가 지적한다면...


'아! 그래도 그건 아니지' 하며 별다른 근거도 없이 괜히 잉카의 편에 서고 싶은 마음이 되는 것이다.




2.


그런 관계로 마추픽추에는 너무 쉬운 방법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쿠스코에서 버스나 기차를 타면 마추픽추 턱밑까지 몇 시간 만에 갈 수 있지만, 그보다는 오랫동안 품어 왔던 순간인 만큼 천천히 음미하고 시간을 들여 즐기고 싶었다.


처음에는 잉카의 길(Camino Inca)를 따라 3박4일 내내 걷는, 고전적인 잉카 트레일을 하고 싶었다.다만 내가 가진 체력의 그릇이 로망의 크기에 미치지 못하는 관계로, 잉카 트레일에 바이크, 집라인Zipline 등 아웃도어 레포츠가 혼합된 잉카 정글 트레일을 하기로 했다. 론리플래닛에 소개된 바로는 이 또한 ‘Heart-stopping Adventure’로써, 심장이 멎을 법한 모험이라 했다.


고소공포와 미끄럼공포가 있는 아내 단에게는 가혹한 선택이었겠지만 고맙게도 군말 없이 지지해주었다. 비록 이 때는 짐작하지 못한 후회의 순간이 몇 번이나 찾아 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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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은 매우 간결한 일정이었다. 페루의 심장 쿠스코Cuzco에서 출발한 버스는 안데스 음악을 틀고 신나게 달리다가 4,000미터 산 정상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눈을 껌뻑이며 주위를 둘러보니, 까마득한 절벽을 따라 구절양장 산길이 펼쳐져 있었다. 가이드는 어느새 지붕의 자전거를 내리고 원하는 것을 고르라 했다. 볼리비아의 데스로드(Death road)에 비견할 만한 4,000미터 다운힐 코스다. 다만 1년에 한두 명 이상은 꼭 사고를 겪는다는 데스로드보다는 훨씬 안전한 편으로, 포장도 잘 되어 있고 길 폭도 그리 좁지 않은 편이라 그저 안데스의 바람을 느끼며 실컷 내달릴 수 있는 길이다.


처음에는 페달을 힘껏 밟지 못했다. 오랜만에 타본 자전거이기도 하고, 뒤에서 아내 단이 조심스레 따라오고 있어서 속도를 맞춰야만 했다. 그러나 잠시 후 커다란 트럭들이 양 옆을 스쳐가자 지레 겁이 난 아내 단은 버스로 돌아가고, 나는 그제서야 내 마음대로 실컷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귓가에 이는 바람소리가 기분 좋은 음악 같았다. 말할 수 없이 유쾌했다. 짜릿한 해방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새삼스레 회사를 그만 두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 와중에도 회사 생각이 난다는 것이 참 미묘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두세 시간쯤 달렸을까, 무리의 끝에서 선두까지 나아갔을 즈음, 목적지인 산타마리아(Santa Maria)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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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관계로 잠시 낮잠을 즐기고 있었는데, 문 열린 창으로 들어온 고양이 한 마리가 침대에 올라오더니 곧 내 배 위에서 고롱고롱 잠이 들었다. '아 행복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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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일정은 새벽 6시부터 시작되었다.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독하디 독한 잉카 데낄라를 조금씩 돌려 마시며 마추픽추로 향하는 자의 예를 갖추었다. 수백 년의 시간을 머금은 오래된 마을에 따뜻한 아침 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가이드는 나무열매를 몇 개 따더니 즙을 내어 일행의 얼굴에 발라주었다. 다들 다소 기괴한 몰골로 마추픽추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먼지가 조금 날리긴 했지만 걷기 힘든 길은 아니었다. 적당한 오르막과 평지의 반복. 중간중간 코카밭이 많았다. 이곳에서는 파인애플과 코카를 주로 키운다고 한다. 짐 캐리를 닮은 영국 청년은 코카잎을 보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트레킹 내내 만성 배고픔에 시달리던 이 청년은 식당에 갈 때마다 "Mas Pan(=More Bread)"을 외치곤 했는데, 결국 사흘 후 우리 그룹은 ‘Mas Pan’으로 명명되어 서로 마주칠 때마다 "마쓰 빵~"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길이 좁아지며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오르막은 점점 가팔라지더니, 결국에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길이 이어졌다. 본격적인 카미노 잉카(Camino Inca)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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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잉카는 단어 그대로 '잉카의 길'이다. 잉카 시대에 만들어진 길로, 북으로는 에콰도르부터 남으로는 칠레까지 주요 거점들이 모두 이어져 있다고 한다. 당시의 숙련된 파발은 에콰도르부터 쿠스코까지 약 5일이면 당도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숙련된 자의 이야기일 뿐, 이 아찔한 길은 단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길 바로 옆으로는 천길 낭떠러지가 이어진다. 몸을 지지할 로프는 커녕 추락을 막는 안전 시설도 전무하다. 그저 내가 디딜 발밑을 매 걸음마다 신중히 살피며 천천히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데스의 경치는 도저히 시선을 발 밑에만 고정시킬 수 없게 만든다. 가이드는 사진 촬영은 위험하니 자제하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도저히 다음 걸음을 옮길 수 없는 장엄한 풍광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수백 년 전 그 길을 그 때의 마음으로 걷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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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와중의 급경사 내리막은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아내단은 거의 초 단위로 비명을 질렀다. 가끔씩은 절벽 위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심정이었다. 문득 머털도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머털아~ 길 옆이 절벽이 아니라 꽃밭이라고 생각하거라'


어느덧 시간은 오후 4시를 넘기고 있었다. 원래 일정은 8시간 정도였지만 이미 10시간을 훌쩍 넘긴 고된 행군이 슬슬 본격적인 피로를 불러오고 있었다.


긴 오르막을 지나고 다시 긴 내리막을 지나 계곡 깊숙한 곳을 걸었다. 가이드는 곧 케이블카를 타니 기운 내라고 말했다. '이 산중에 케이블카라니?' 당연히 남산의 그것을 상상하며 들떴던 나는 이내 경악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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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녕 내가 이 조잡한 구조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단 말인가'

 

탑승객의 안전 따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케이블카라는 이름의 그것은, 말 그대로 케이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나무상자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절벽 양 끝에서 사람이 줄을 당겨 조작하는, 100% 근력에 기반한 구동계로 작동하고 있었다. 한 팀을 태워서 이쪽에서 힘껏 밀어내면 건너편에서 열심히 당긴 후, 빈 차를 다시 돌려보내는 방식이다. 심지어 유료다. 한 사람에 3솔(약 1,300원)로 싸지도 않다. 선택은 불가능했다. 이걸 타지 않으려면 저 세찬 물살을 헤엄쳐 건너야 한다. 론리플래닛이 말한 ‘심장이 멎을 듯한 모험’의 참 뜻에 아내 단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분노를 터트렸다.


1평방미터쯤 되는 크기에 무려 3인승이었다. 앞에 앉는 사람은 등을 기댈 곳도 없이 적당히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일행이던 페루의 쌍둥이 아저씨들은 머뭇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당당히 나아가더니 비겁하게 뒷 자리에 먼저 앉아 부들부들 떨며 서로의 손을 꼭 마주잡았다. 반쯤 울면서 건넌 형제가 건너편에 당도해서 처음 꺼낸 말은 우린 페루 사람이니 요금을 깎아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거절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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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겁이 많은 편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이 상황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아내 단의 표정에 솔직한 심정을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잔뜩 들뜬 마음으로 내 순서를 기다렸다. 당당히 앞자리에 앉아 눈을 부릅뜨고 환호하며 손을 흔들며 건넜다. 그게 얄미웠던 아내 단에게 등짝을 후려 맞긴 했지만 그래도 내게는 이 순간이 마추픽추로 향하는 여정의 하이라이트처럼 느껴졌다.


케이블카를 건넌 후로도 꽤 오랜 시간을 걸었다. 모처럼의 강행군에 다리가 비명을 질러댔다. 해가 진 이후에야 우리는 두 번째 거점인 산타 테레사Santa Teresa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몇 년 전 케이블카에서 추락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전 장치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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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킹 3일차.


드디어 마추픽추가 보이기 시작한다! 저 멀리 보이는 마추픽추 산, 그 능선 중간 즈음에 내가 그리던 그것이 좁쌀만하게 놓여 있었다.


어제보다는 훨씬 평이한 길이었다. 기찻길을 따라 산책하듯 걸었다. 휘파람을 불며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걷다가 봄볕 같은 햇살 아래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손을 흔들었다. 선로 위에 동전을 올려두고 기차 바퀴에 납작해진 동전을 보며 다 함께 깔깔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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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산책이었다. 물론 이 산책이 여섯 시간이나 이어질 줄 몰랐을 때까지다.

 

모두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 저녁 무렵에서야 마지막 마을 아구아스 칼리엔떼스(Aguas Calientes)에 도착했다. '뜨거운 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마을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내일은 드디어 마추픽추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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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새벽 6시, 갓 떠오른 태양빛을 받은 마추픽추는 눈부시게 빛났다.

 

내 인생에 가장 황홀한 순간이 언제였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순간을 말할 수 있다. 매표소를 지나 모퉁이를 도는 순간, 수십 수백 번을 상상했던 그 풍경이 바로 내 눈 앞에 펼쳐졌다. 마추픽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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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Machu Picchu)! 케추아어로 '오래된 봉우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20세기 초 발견 당시에 붙여진 이름일 뿐, 실제의 이름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케추아어는 구어로 전승되어 문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무상함, 잉카의 흔적에서는 전해지는 그 아련함에 몸을 기대고 한참 동안 마추픽추를 바라보았다. 이 공간이 기적처럼 느껴졌고, 이 공간에 서 있는 내가 또 다른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리운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 풍경을 함께 느끼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해가 질 때까지 오래도록 마추픽추에 머물렀다. 세상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낮잠을 청하기도 하고, 눈 밭의 강아지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니기도 했다. 오후에는 마추픽추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앉아 몇 시간이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똑같은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는지 모른다. 태양이 모습을 보일 때마다, 구름에 가릴 때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혹은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마추픽추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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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우연히 ‘들국화’의 최성원씨와 술자리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잔뜩 들뜬 남편 두가 내 귀에 속삭였다. “아, 좋다. 꼭 마추픽추에 있는 것 같아”


마추픽추에 있는 것 같아. 마추픽추에 있는 것 같아. 나는 그만 울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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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의 오랜 팬인 그는 최성원 씨를 만난 감격적인 순간에 마추픽추를 떠올렸다. 최성원씨의 기타 연주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도 마추픽추에서의 한나절을 떠올렸다. 점심으로 미리 싸간 샌드위치를 나눠 먹고 잔디밭에 드러누워 짧은 낮잠을 잤던 오후. 눈을 뜨면 마추픽추를 둘러싼 웅장한 산들이 펼쳐져 있고 눈을 감으면 눈두덩이에 깨끗한 빛이 가득 머금어지던 시간.

 

 

그리고 그곳까지 가던 길.




2.


마추픽추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페루 쿠스코에 가야 한다. 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쿠스코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일단 바로 마추픽추로.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은 고민스럽게도 여러 가지가 있다. 기차를 타고 가는 법, 버스를 타고 가는 법, 걸어가는 법. 걸어가는 법에도 또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잉카의 오래된 길을 따라 걷고 먹고 자고 또 걷는 고전적인 ‘잉카 트레일’이 있고, '잉카 정글 트레일'이라고 걷다가 차를 타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가 좁은 산길도 걷고 기찻길 옆도 걷고 등산도 하고 케이블카도 타고 집라인도 타고 하며 3박 4일에 걸쳐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이 있다. 잠은 숙소에서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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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은 당연히 '기차 타고 우아하게!' 가는 것이지만, 남편 두의 취향은 걸어가는 것. 남편 두는 고생 끝에 감동이 두 배가 되는 사람이지만, 나는 몸이 고생스러우면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다. 남편 두는 가끔 산다람쥐라는 이야기도 듣지만, 나는 산을 잘 못 타서 내리막길을 걸을 때면 남편 두의 어깨를 잡고서 한 걸음 한 걸음 살금살금 걸어 내려오는 사람이다.


둘이 다니는 여행에서는 트래킹 등 다소 어려운 과제가 주어질 경우 수준 조율이 필요하다. 대개는 나의 수준에 맞춰서 남편 두가 하고 싶은 걸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엔 내가 남편 두의 수준에 맞춰야 할 것 같았다. 마추픽추는 남편 두가 남미 여행을 꿈 꾸게 된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니까.


남편 두의 간절한 눈빛.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발꿈치를 들어 남편 두의 수준에 맞추기로 했다. 나로선 엄청난 결단.


'잉카 정통 트래킹'은 페루 정부에 미리 예약해야 가능하다. 우리처럼 일정이 확실하지 않은 장기 배낭 여행객에게는 아무래도 쉽지 않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우리는 '잉카 정글 트래킹'을 통해 마추픽추에 가기로 했다. 결정을 하고 예약을 하고 나서도 출발하는 날 아침까지 나는 긴장이 되어서 내내 예민했고, 남편 두는 설레서 들떴다. 예민한 여자와 들뜬 남자가 쿠스코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걸었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 쿠스코부터 마추픽추까지 트래킹이 시작되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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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 천장에 자전거를 잔뜩 올려 묶은 승합차를 타고 마추픽추를 향해 출발했다. 일단 해발 4천미터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차로 한참 오르막 도로를 오르더니 길 옆 작은 공터에 내리라고 한다. 그때부터 아래 마을까지 두 시간 줄곧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을 달리는 것이 오늘의 일정. 열명 남짓이 한 팀이었는데 다들 하나같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 내려갔다.


하지만 나에겐 쉽지 않은 일. 차가 다니는 일차선 도로를 따라 이십 분쯤 자전거를 타고 엉금엉금 내려가다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들의 경적 소리에 심장이 쪼그라들어 "나는 그만 타겠다" 포기를 선언하고, 나 같은 사람을 구해주기 위해 따라오던 차에 올라탔다. 첫 번째 포기. 일행들보다 먼저 마을에 도착해서는 마을의 구멍가게 고양이랑 놀았다.


둘째 날은 13시간쯤 등산을 했다. 가는 길 중간에 한 시간쯤, '카미노 잉카(Camino Inca)’를 걸어야 했는데, 그 길은 폭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벼랑길. 잘못 발을 헛디디면 천길 벼랑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예약을 하면서 여행사 직원에게 "이 길을 걷다 죽은 사람은 없냐?"고 여러 번 확인했는데, 아직 사망자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길에 발을 딛는 순간 그건 새빨간 거짓말일 거라고 확신했다. 어떻게 여기서 아무도 안 죽었을 수가 있지. 말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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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는 싫어서 현지인 가이드 레네 손을 꽉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힘을 주어 걸었다. 레네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 그 벼랑길에 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챙겨간 기념품을 '생명의 은인' 레네 손에 왕창 쥐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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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오전에는 집라인을 타고, 오후에는 마추픽추 길목 마을, 아구아스깔리엔떼스(Aguas calientes)까지 기찻길을 따라 걸었다.


이쪽 벼랑에서 저쪽 벼랑까지 집라인을 여러 번 타고 이동한다. 하지만 나는 한 번 타고서는 "재미도 없고 스트레스만 받는다"며 그만 두고 혼자 흙먼지가 날리는 길을 걸어서 마을로 돌아왔다. 사실은 무서워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두 번째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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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드디어 마추픽추. 자부심이 가득한 페루인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마추픽추를 꼼꼼히 둘러보고, 이제 뒷산 '마추픽추 몬타냐'에 오를 차례.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서둘러야 한다.


걸어 올라가다 돌아보고 걸어 올라가다 돌아봤다. 돌아 볼 때마다 마추픽추는 다른 모습과 다른 크기로 그곳에 있었다. 삼분의 이쯤 오르다가 벼랑길을 만났다. 잠깐 중심을 잃으면 아찔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길. 이 길을 어떻게 겨우겨우 오른다고 치더라도 이 길을 따라 다시 내려올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혼자 갔다 와. 여기서 기다릴게" 한국에서부터 챙겨간 등산 스틱을 남편 두에게 들려 보냈다. 세 번째 포기. 그 자리에서 가만 기다리려다, 내려가는 길에 또 남편 두를 고생시킬 것 같아서 천천히 혼자 내려왔다. 가파르게 이어진 계단에 가끔은 엉덩이로 내려와야 했지만.


마지막 날은 아구아스 깔리엔떼스부터 오얀따이땀보까지 기차를 탔다. 여기서 다시 승합차로 쿠스코로 이동하는 코스. 기차를 타고 도착한 오얀따이땀보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천천히 마을 구경을 했다. 나흘간의 트래킹을 무사히 마치고 하는 산책이라 그런지, 몸은 피곤했지만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마을은 아름다웠고.


어쨌든 나는 살아서 다시 아름다운 쿠스코에 왔다.


3박 4일을 걷는 동안 여러 번 포기했고, 여러 번 좌절했다. 다른 사람들은 즐겁기만 한데 나는 왜 이리 힘든 건지 자책도 여러 번. 눈물이 날 뻔한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중간중간 적당히 포기했기 때문에 완주할 수 있었던 거라고 위안한다.


그리고 포기하던 순간마다 나를 위로한 내 안의 목소리는 바로 ‘내가 포기하면 남편 두가 즐길 수 있다.’였다. 같은 그룹 일본인 여자애들이 “네 남편은 정말 다정해” 라고 감탄할 정도로, 남편 두는 트래킹 내내 나를 챙겼다. 가파른 내리막길에선 어깨를 빌려주고 좁은 벼랑길에선 등 뒤를 지켰다. 느려터진 내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그러는 내내 나는 '포기'의 기로에 서곤 했다.


내가 포기하고 난 뒤에야 남편 두는 자전거 속력을 높여 속도를 즐길 수 있었고, 하늘을 날 듯 가볍게 집라인을 탈 수 있었다. 마추픽추 몬타냐 정상에 올라 멀리 마추픽추와 그 주위를 둘러싼 산들을 벅차게 바라보는 일도 내가 포기했기에 가능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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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추픽추에 간다 하더라도, 나는 걸어서 갈 것이다. 그때도 중간중간 적당히 포기하고 타협하면서. 그렇게 어렵게 가야지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나로선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런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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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는 교과서에서 보던 사진과 똑같았지만, 정말이지 좋았다. 아마 기차를 타고 혹은 차를 타고 단숨에 마추픽추에 도착했다면, 마추픽추만 보였을 것이고 그랬다면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사진과 똑같다'며 실망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쿠스코부터 마추픽추까지 나흘을 걷고 오르고 타고 달렸다. 그러는 내내 페루의, 잉카의, 산과 개울과 하늘과 길을 눈으로 귀로 코로 발바닥으로... 온몸으로 만났다.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내내 '장엄하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한 산이 우리를 따라왔다.


그리고 나서 본 마추픽추는, 그 산 속에 들어앉은 '요새'였다. 우리가 걷고, 넘어지고, 달렸던 그 벅찼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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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잘 들던 마추픽추 어느 잔디밭에서 우리는 샌드위치를 나눠먹고 그 자리에 드러누워 우리가 걸어온, 혹은 바라본 산과 개울과 하늘과 마주했다. 사흘을 거쳐 만난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쿠스코부터 마추픽추까지 기차로 직행하지 않고, 페루의 산을 넘은 건 참 잘한 일이었구나. 아픈 무릎을 만지작 거리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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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로 돌아온 우리는 계단 하나를 내려갈 때도 온 몸의 뼈마디 박자를 맞추며 춤을 추듯 내려가야 했다. "에구구 에구구" 입에서 절로 신음 소리가 났다. 하지만 좋았다. 오히려 "어이쿠 어이쿠" 더 큰소리로 아파하며 마추픽추에 걸어서 다녀왔음을 과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근육통이 점점 사라지는 게 어쩐지 아쉽기까지 했다.


무릎관절염이 있고 고소공포증이 있다. 오래 걸으면 무릎이 아프고 높은 곳에 올라가면 다리가 떨린다. 그런 내가 '잉카 정글 트래킹'을 하는 동안 높은 곳을 오래 걸어야 했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저 아픈 무릎과 떨리는 다리를 끌고 마추픽추를 향해 꾸역꾸역 걷는 수 밖에.


그러니 마추픽추를 걸어서 다녀왔다는 거, 누군가에겐 그저 3박 4일 간의 추억이고, 재미있었던 트래킹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거의 여행을 건 도전이었다. 큰 산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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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다 깨달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카미노 잉카' 그 벼랑길에서 온 몸을 낮추고 두 다리를 후들거리던 순간 마저 그립다. 그러니 지금 당장 그 아찔한 순간으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외칠 것이다.


"씨 Si!!! " (넵!!!) 

"뽀르 빠보르 Por Favor!!!" (제발 부탁입니다!!!)








[편집부 주]



이 글은 딴지일보의 무규칙 이종매거진 

<더딴지> 17호에 실린 글의 전문입니다.


단&두의 여행 글은 지금까지 쭈~욱 

<더딴지>에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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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 @nadaun


편집 :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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