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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20. 수요일

에너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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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마피아계의 대부들(godfathers) <1>

원전 마피아계의 대부들(godfathers) <2>

원전 마피아계의 대부들(godfathers) <3>







 변방에서 피어난 들꽃, 한국


울나라 사람들에게 원자력은 어떤 이미지일까?


국제원자력기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울나라 사람들의 원자력 지지도는 단연 세계 최고래. 게다가 정몽즙이 핵무장 하자고 그럴 때쯤 여론조사에서는 울나라의 핵무장 지지율이 3분의 2 정도 나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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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원자력은 희망과 힘의 상징으로 다가왔지.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 발의 원자폭탄은 36년간의 식민지 지배를 끝장내고 희망을 준 고마운 힘이었어. 그런데 그 폭탄은 식민지 백성인 우리나라 사람들도 7만~10만 명이나 피해자로 만들어. 사망자가 4만~5만 명, 부상자와 후유 피해자가 또 그 정도 된대. 하지만 해방 후 불과 5년 만에 벌어진 한국전쟁은 다시 한 번 한국인들의 원폭에 대한 경향성을 강화해. 1951년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미국의 맥아더 장군은 중국군의 개입을 막기 위해 원자폭탄으로 만주를 폭격하자는 주장을 하여 많은 한국인으로부터 호응을 얻지.

 

이러던 차에 나온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한국에게도 원자력에 접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어. 전쟁이 끝난 뒤 리승만 정부는 미국 정부와 협상하여 1956년 2월 한미원자력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미국의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어. 음, 미국과 맺는 이 원자력협정은 말하자면 충성 맹세야. 우리는 핵무기 개발하지 않을 거고, 할 의사도 없으니까 너네 기술 지원 쫌 해주고 나중에 농축우라늄 따박따박 공급해주고 그래달라... 뭐, 그런 내용이지.

 

그해 3월에는 문교부 기술 교육국에 원자력과가 설치되어 향후 원자력정책 추진 계획을 수립해. 1958년에는 원자력법을 제정하고 1959년에는 원자력과를 원자력원으로 확대함과 동시에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원자력 연구개발에 착수하지.

 

1959년 원자력연구소는 미국의 제너럴아토믹사에게 100kW급 연구용 원자로를 발주해. 트리가 마크 2(Training, Research, Isotope Production, General Atomic Ⅱ)라고 불린 한국 최초의 원자로는 1962년 3월 임계에 도달하여 가동을 시작해. 이넘은 원자력 기초연구와 연구 인력 양성에 기여하는데, 1969년에는 2MW급의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 3가 착공되어 1972년 가동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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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가 마크 2. 나 작년에 문화재 등록했다~


1960년대 공업화의 진전으로 한국의 전력 수요는 급격하게 증가해. 한국 정부는 1967년 원자력원을 원자력청으로 승격시키고, 1968년 경제기획원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원자력발전추진위원회를 설치하여 상업용 원자로의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돼. 노형은 당시 기술적으로 가장 안정성을 보인 가압경수로로 간택하고.

 

1971년 드뎌 한국전력은 웨스팅하우스에 587MW급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를 발주해. 핵연료도 웨스팅하우스로부터 공급받는 조건으루다. 그리곤 7년 후인 1978년 4월 울나라도 원자력발전시대가 시작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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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건너온 증기발생기. 

웨스팅하우스에 발주한 고리원전 1호기가 울나라 원전시대를 열어.


한국 정부의 두 번째 원자로는 원자력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도가 엿보였어. 어설프게 내숭 떨다가 속내를 들킨 셈이었지. 첫 번째 원자로를 미국에 발주함으로써 동맹국으로서 성의를 보인 한국은 두 번째 원자로로 캐나다의 중수로(CANDU)를 선택했거든. 중수로는 천연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여 플루토늄 추출이 용이한 원자로. 고리 1호기의 총 공사비가 1,428억 원이었던 데 비해 6,428억 원이나 들어간 중수로 건설을 택한 것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어.

 

그런데 계약이 성사되기 전인 1974년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해. 인도가 캐나다에서 들여온 시험로 CIRUS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여 추출한 플루토늄으로 핵실험을 강행한 것이지. 이로 인해 당시 캔두를 도입하려는 한국과 대만이 '핵무기 제조 용의 국가'로 의심을 받게 돼. 여차하면 '악의 축'이 되는 엿 같은 상황이었던 거야.

 

한국 정부는 197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정식으로 비준하여 미국 달래기에 나서. 한국 정부는 중수로 선택이 핵무기와는 무관함을 강조하고 웨스팅하우스의 가압경수로를 추가로 도입하기로 약속하고서야 캔두 도입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었어. 우여곡절 끝에 678MW급의 가압관식 중수로인 월성1호기는 1976년 1월에 착공하여 1983년 4월 준공돼.

 

중수로를 1기 확보하여 플루토늄 획득의 길을 연 한국 정부는 추가 도입 원자로로 웨스팅하우스의 가압경수로를 선택해. 1종의 노형에 집중하여 기술자립을 이뤄가고 있는 프랑스의 선례에 주목하여 기술 습득을 앞당기고자 한 결정이었어. 고리원전 2, 3, 4호기에 이어 새로운 원전 부지로 선정된 영광원전 1, 2호기까지 모두 6기의 가압경수로가 웨스팅하우스에 발주되었지.

 

1980년대 초가 되면 세계 원전 시장에 새로운 장돌뱅이가 나타나는데, 바로 웨스팅하우스의 원천기술 매입에 성공한 프랑스 프라마톰사야. 해외 진출 권리를 획득한 프라마톰은 원전 건설에 열중하고 있는 한국을 첫 번째 대상국으로 골라. (후에 미테랑은 떼제베 팔아먹을라고 병인양요 때 훔쳐간 조선 왕실의궤로 낚시질을 했었는데, 이때도 미끼가 있었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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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마톰은 웨스팅하우스를 제치기 위해 보다 나은 기술 이전 조건을 제시해. 이는 한국이 바라던 바였지. 콜!


한국은 울진원전 1, 2호기를 프라마톰에 발주해. 950MW급 가압경수로인 울진원전1, 2호기는 1981년에 착공하여 1990년 2월 완공되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은 기자재 공급에서 40%, 원자로 등 주 설비의 설계부문에서 46%까지 국산화율을 끌어 올려.

 

한국에 기술 자립의 결정적 기회는 스리마일원전 사고가 제공해. 1979년 사고 이후 미국 시장에서 추가 원전 건설은 자취를 감추고, 유럽에서도 원전 신설을 중단하는 국가들이 늘어나. 그러자 미국의 중소업체인 밥콕앤윌콕스와 컴버스천엔지니어링은 경영난에 봉착해.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은 원전 신흥국인 한국에서 사운을 건 모험을 하기로 해. '에라이~ 막판이다! 모 아니면 도!'

 

1987년 한국 정부가 영광원전 3, 4호기를 국제입찰하면서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달아. 웨스팅하우스는 프라마톰의 전철을 밟을 생각이 없었지만, 경영난에 몰린 CE는 한국에서만 사용한다는 조건을 달아 원천기술의 이전을 받아들여. 이렇게 한국은 미국 셋째딸의 치마를 벗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실루엣으로는 분명 티팬티였는데 올리고 보니 정조대네. 결국 빤스를 내리는 데는 실패! (헌데 이뇬이 2년 후에 아예 유럽의 S형제에게 보쌈을 당해. 이건 조금 있다가 다뤄보고...)

 

한국 정부는 CE와 계약을 체결하고 1,000MW급의 시스템80과 1,400MW급의 시스템80플러스 노형에 대한 기술을 전수받아. 영광원전 3, 4호기는 시스템80 모델로 건설되어 1995년과 1996년에 각각 가동을 시작해. 한국은 이를 바탕으로 우리 실정에 맞게 설계를 변경하고 그동안의 기술 진보를 받아들여 1,000MW급의 한국 표준형 원전(KSNP)을 개발했지. 그리고 마침내 울진원전 3, 4호기에 한국 표준형 원전을 적용하여 각각 1998년과 1999년에 완공함으로써 원전 기술 자립 시대를 열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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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울원전 1호기 APR-1400 원자로가 두산중공업에서 출하되는 모습. 원전에선 나가 핵심이여~


이후 한국 표준형 원전은 영광원전 5, 6호기와 울진원전 5. 6호기로 이어지고, 이를 개선한 OPR-1000(최적화 경수로)가 신고리원전과 신월성원전에 각각 2기씩 건설되고 있어. 또한, 시스템80플러스를 모델로 한 1,400MW급의 APR-1400(개량 가압경수로)은 신고리원전과 신울진원전에 각각 2기를 건설 중이고. APR-1400은 2009년 한국전력 컨소시엄이 수주한 아랍에미리트의 노형으로 채택되어 국제적인 관심을 끌기도 해.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세계 원전 마피아계에서 대부(godfather)의 반열에 오른 건 아냐. 대부가 되려면 수출권이 있어야 딴 동네 애들까지 패밀리에 끌어들일 수 있는데, 한국은 이게 안 돼. 걍 집 울타리 안에서나 목청껏 짖지, 밖에 나가면 눈치 보며 짖어야 돼. 그래두 뭐, 서방파 패밀리 안에서 중간 두목 자리는 꿰찼다고 봐야지.




 군웅할거와 짝짓기


현재 세계에서 운전 중인 원자로의 62%는 가압경수로야. 22%를 차지하는 비등수형 경수로가 그 뒤를 따르고, 중수로가 10%를 차지해. 일본에 세계 최초로 원자로를 수출하며 초반 기세를 올렸던 영국의 가스로는 이제 영국에만 15기가 남아 있어.

 

영국의 실패는 미국의 우라늄 농축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려 한 데서부터 발걸음이 꼬였지. 가스로의 기술적 문제와 대형화라는 난제를 해결하느라 고전하는 동안 미국의 경수로가 이미 세계 시장을 차지하고 진보했거든.

 

영국은 뒤늦게 노선을 변경하여 1981년에야 중앙전력청이 사이즈웰에 가압경수로 원전 건설 허가를 신청해. 1983년부터 2년 간 계속된 의회의 청문회를 거치고 다시 2년이 지나 청문회의 보고서가 나온 뒤 1987년 6월 비로소 사이즈웰 가압경수로 원전이 착공돼.

 

중앙전력청은 같은 해 두 번째 가압경수로가 될 힝클리포인트 원전 건설 신청을 냈지만, 영국의 가압경수로는 사이즈웰 하나로 멈추어야 했어. 이 때 원전 건설을 멈추게 한 것은 반핵운동이나 환경보호운동이 아니었어. 아이러니하게도 전력산업 민영화였지. 광산노조를 굴복시키고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한 대처 정부는 1988년 2월 전력산업 민영화 방안을 발표하고. 원전을 포함한 발전소의 매각에 나서. 스코틀랜드전력청의 발전부문은 1개 회사로, 중앙전력청의 발전부문은 내셔널파워사와 파워젠사로 나뉘어 매각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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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과정에서 신형 가스냉각로 발전소의 부진한 운영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 요구돼. 셀라필드재처리공장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포함한 폐기물 처리 비용, 그리고 기한이 만료되어가는 마그넥스 원자로의 해체 비용을 고려해야 했거든. 경제성만 따져서는 원전이 완전 찬밥신세가 된 거야.

 

결국 영국 정부는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부터 이용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 그리고 화석연료 발전에는 총 전력 판매액의 10.6%에 이르는 이른바 '원자력 부담금'을 부과해. 비효율적인 원전의 가동에 따른 부담을 화석연료 발전에 떠넘긴 거야.

 

가압경수로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었어. 바로 자본비용. 사이즈웰 원전을 인수하게 될 내셔널파워사는 20년 내에 자본 비용을 회수하기를 원했어. 연간 10%의 자본회수율을 근거로 하여 내셔널파워사가 제안한 전력요금은 kWh당 6.25펜스. 그런데 당시 공공부문의 발전단가가 3.2펜스이므로 민간 원자력 발전단가는 거의 두 배 가까운 요금이 되는 거지.

 

결국 정부는 원전을 관리하는 국영기업 원자력전기공사(Nuclear Electric Plc)를 따로 만들어야 했어. 우여곡절 끝에 원자력발전의 민영화가 완료된 것은 1996년 7월이 되어서야. 하지만 경제성이 떨어지는 마그녹스로는 끝내 민간업체에 넘길 수 없어 영국핵연료공사(BNFL, 이 친구 정력이 쎈 넘이니까 잘 봐둬.)에게 넘겨 버려. 이 과정에서 두 번째 가압경수로인 힝클리포인트 원전 계획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이후 민간 발전업체는 스스로 원전을 건설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어.

 

그니까 철의 여인 대처가 우리에게 보여준 건 뭐다?


민간 발전업자는 경제성이 안 맞아 결코 원전을 지을 수 없다는 숨겨왔던 원전의 민낯이었던 거야. 원전을 가능하게 하는 건 곳곳에 숨어 있는 공적 자금이었단 말씀!! (개인적으로는 대처의 최대 업적이라고 봐.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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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의 죽음에 대처하는 잉글리쉬의 두 가지 자세. 

당신을 원전 민낯 드러내기 대모로 임명합니다~

 

영국이 세계 시장에서 배제된 1980년대 미국 주도의 원전산업계에 새로운 강자들이 모습을 드러내. 프랑스의 프라마톰과 알스톰, 독일의 지멘스, 일본의 히타치와 도시바, 미쓰비시중공업이 그들이야. 바야흐로 척박해지는 강호에서 썩은 고기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들이 벌이는 피비린내 나는 혈전이 다가오고 있었어.

 

이들은 모두 1970년대 자국의 원전 건설 과정에 참여하면서 기술을 습득하고 세계 원자력산업의 주요 업체로 성장했어. 이 중 프라마톰은 1970년대 후반 카터 쇼크(쳇바퀴 도는 고속증식로 개발 중지, 그리고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기술의 수출 금지를 제안)와 스리마일원전 사고 이후 미국에서 원전산업이 주춤한 틈을 타 1981년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원천기술을 매입하는 데 성공해. 당시 라붐에 출연했던 소피 마르소도 남자 친구가 씌어준 헤드폰으로 이 소식을 듣고 환호해. '아~싸! 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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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 프라마톰 아저씨가 웨스팅하우스 홀려서 기술권 사왔대~ 아싸~

 

세계 원전 시장에서 경수로의 원천 기술을 가진 업체는 가압경수로의 웨스팅하우스와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 밥콕앤윌콕스(B&W)와 비등수형 경수로의 제너럴일렉트릭, 그리고 자체 개발한 가압경수로 기술을 가진 소련의 국영기업뿐이었어. 미국과 소련이 아닌 국가에서는 캐나다의 중수로만이 유일하게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았지. 캔두는 캐나다원자력공사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원천기술이 있으면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원자로를 수출할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기술을 습득했다 해도 원천기술 보유자의 승낙이 없이는 수출을 할 수 없거든.

 

따라서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원천기술을 매입한 프라마톰은 아주 예외적인 사례야. 미국 원자력발전 시장의 전망이 불투명한 틈을 타 기술양도를 시도한 프랑스의 행운이었지. (아니면 당시 웨스팅하우스 CEO가 소피 마르소 광팬이었을지도...)

 

반면 1980년대 후반 기술 자립을 이룬 일본은 원천기술에 대한 권한을 넘겨받을 수 없었어. 원천기술 권한을 획득한 프라마톰이 바로 한국 시장에 뛰어들어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수주에 성공했잖아. 오일장터에 판 벌였더니 엄한 넘이 도라꾸 끌고 와 떨이로 들이민 거지.


큰 딸년이 옆 동네에서 인기가 좋아 잠시 밖으로 돌렸더니, 아 글쎄 이뇬이 빤쓰까지 벗는 바람에 이런 사단이 났네. 미국은 딸년 넷을 불러다 전부 정조대를 채워버려. 미국은 이런 전철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일본업체들이 일본형 원자로라 할 수 있는 개량비등수형 경수로를 개발하여 건설하는 동안에도 원천기술에 대한 권한은 제너럴일렉트릭이 쥐고 있었어. 개량가압경수로를 개발한 미쓰비시도 마찬가지였고. 웨스팅하우스는 또 하나의 프라마톰을 세계 시장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았거든.

 

1980년 레이건 행정부는 원전산업의 부흥을 위해 카터 정부가 설정한 제한을 없애버려. 하지만 1986년에 발생한 소련의 체르노빌원전사고는 일어서려던 세계 원전 시장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어. 특히 방사능 낙진 피해를 직접 입은 유럽에서는 스웨덴, 독일 등이 원전의 단계적 폐쇄라는 원전산업계로서는 최악의 선택을 하기에 이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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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 하고 터져서 여지껏 반경 30km엔 사람이 살 수 없지만, 

날 '본체 내장형 원폭'이라고 부르면 안 된대.

 응? 그럼 난 뭐지?

 

미국의 원전시장이 축소되면서 미국의 중소원전업체들이 경영난에 직면해. 제일 먼저 꼬맹이 밥콕앤윌콕스가 흔들려. 스리마일원전의 설계를 맡았던 밥콕앤윌콕스는 1979년 원전사고로 더 이상의 수주를 할 수 없었거든. 이때를 노린 프라마톰이 1988년 밥콕앤윌콕스의 원자로 설계 부문을 인수하여 원천기술 면허를 강화해. 정조대 채우면 뭐해 아예 보쌈을 해버린 거야.

 

컴버스천엔지니어링은 파격적인 기술 제공을 내세워 한국시장에서 대거 수주하면서 위기를 넘겨보려고 했지만 역부족. 결국 북미에너지시장으로 진출하려는 스웨덴과 스위스의 합작 에너지업체 ABB(Asea Brown Boveri) 그룹이 1989년 컴버스천엔지니어링을 인수해. 넷째딸 보쌈당하고 나더니 셋째딸도 어이없게 보쌈꾼 자루 속으로 들어간 거야.

 

1990년대와 2000년대 동안 세계 원자시장을 이끈 것은 프랑스와 일본, 한국이었어. 미국의 원전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미국의 원자력 업체는 현상유지에 급급한 가운데 세계 시장에서는 프랑스와 다투어야 했지. 일본의 해외 진출은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 업체의 승인을 받고 핵심기자재를 미국에서 가져가야 했으므로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지만 말야.

 

미국 원전산업의 쇠퇴는 2001년 7월 결성된 제4세대 원자로 국제포럼(GIF)에서 극적으로 나타나. 1990년대 3.5세대 원자로의 개발에서 프랑스와 일본, 한국 등에 밀린 미국은 이미 독자적으로 차세대 원자로의 개발에 나설 처지가 못 되었어. 미국은 국제 공동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프랑스, 일본, 영국, 한국 등 9개국이 참여하는 포럼을 구성했고, 참가국들은 분야별로 연구 주제와 관심 노형을 나눠 맡았지.

 

2000년대가 되면 원자력산업계의 최강자로 프랑스가 자리를 잡아. 프랑스는 이미 총 전력의 3/4을 원자력발전으로 생산할 만큼 원전 중심국가가 되어 있었어. 한편 이웃한 독일은 원전을 포기하고 재생가능에너지에 집중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지. 국내 시장을 잃어버린 지멘스는 2001년 1월 원자력산업 부문을 프라마톰과 통합하여 프라마톰ANP로 들어가. 같은 해 8월에는 프랑스원자력공사(CEA)와 프랑스의 핵연료 제조사인 코제마(COGEMA), 코넥터 제조사인 FCI가 합병하여 세계 최대의 원자력 업체인 아레바(AREVA)사가 되었어. 알 파치노의 등장이라고나 할까.

 

한편 마그녹스로 원전을 소유한 영국핵연료공사(BNFL, 아까 그 정력 쎈 넘)는 1999년 웨스팅하우스를 전격 인수하여 세계시장에 발을 들여놓아. 2000년에는 CE를 낼름했던 ABB로부터 원자력 사업부문을 인수하여 몸집을 키웠고. 하지만 발전산업이 민영화된 영국 시장에서 원전을 수주할 수는 없었어. BNFL은 2005년 원전 해체 사업에 집중하기로 하고 조직을 개편해. ABB의 원자력 부문을 통합한 웨스팅하우스는 매각하기로 하지. 이렇게 시장에 나온 웨스팅하우스의 당시 평가액은 18억 달러였어.


두둥~

 

인수전이 시작되자 치열한 경쟁이 벌어져. 알 파치노의 등장에 움츠러 들었던 하이에나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이빨을 드러낸 거지.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과 일본의 도시바, 미쓰비시중공업, 한국의 두산중공업(어디서 마이 보던 애지? 얘도 레이스에는 등록했지만 걍 쌈판 주변을 기웃거렸다고 봐야 해.)이 물고 뜯는 혈전을 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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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끼다! 건디리지 마라 고마!


비등수형 경수로 기술을 보유한 제너럴일렉트릭은 미국의 경수로 시장을 장악한다는 장점에다 세계 시장에서 양수겸장할 수 있는 기회였고, 일본과 한국의 업체들에게는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지. 감히 넘보지 못했던 웨스팅하우스를 영국에서 가져가는 것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었거든. '아~ 시바~ 저 시키도 이빨 빠진 호랑이였잖아'

 

첨에는 미쓰비시가 개량형가압경수로를 개발한 경력이 있고 웨스팅하우스와는 협력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어서 앞서는 듯했어.

 

하지만 도시바로서는 원자력산업 부문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고비였지. 비등수형 경수로의 기술을 가진 도시바는 원천기술 업체인 제너럴일렉트릭과 협력할 수밖에 없는데, 국내 경쟁사인 히타치가 더 오랜 기간 GE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야. 게다가 비등수형의 장래는 가압경수로만 못하지 않은가.

 

도시바는 결단을 내려. '그래! 올인이닷!'

 

그리곤 전략적 파트너인 미국의 쇼그룹과 일본 이사카와지마하리마중공업(IHI)을 끌어들여 2006년 1월 평가액의 3배에 육박하는 54억 달러를 질렀어. '깨갱~' 다른 하이에나들은 꼬리를 내렸고 2006년 10월 마침내 도시바는 BNLF로부터 웨스팅하우스 인수에 성공해. 도시바의 지분은 77%, 쇼그룹이 20%, IHI가 3%. 그 후 2011년 하반기 도시바는 쇼그룹과 IHI의 지분을 인수하는 작업을 벌여.

 

웨스팅하우스가 도시바에게로 돌아가자 가압경수로 기술을 가진 미쓰비시가 위협을 느껴. 미쓰비시는 거위간과 올갱이(달팽이?)를 들고 프랑스의 알 파치노 형님을 찾아가. 또 하나의 가압경수로 원천기술업체인 프랑스의 아레바와 손을 잡은 거지. 2006년 10월 양사는 중소형 원자로의 공동 개발 및 인허가 취득을 위해 협력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07년 9월에는 파리에 본사를 둔 합작회사 ATEMA를 설립해. 2010년 미쓰비시는 4,800억 원을 투자하여 아레바의 지분 2%를 사들여 성의를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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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좋차능 거 아닝게 같이 가더라고~"

"흐미~ 어쨔 쓰까~"


도시바와 웨스팅하우스 연합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제너럴일렉트릭도 마찬가지였어. 일본 내 경쟁사인 히타치도 몸집을 키울 필요가 생겼고. GE와 히타치는 2006년 11월 양사의 원자력 사업 부문을 통합하기로 전격 합의해. 미국 내 합병회사의 지분은 GE 60%, 히타치 40%로 일본 법인은 히타치가 80%, GE가 20% 참여하기로 하지. 원전과 관련한 특허 등 지적 재산권도 모두 새 합병회사로 옮기기로 하면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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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쪄? 한눈에 들어오남? 원전 마피아 족보여.

 

이로써 세계 원자력산업계(라고 쓰고 원전 마피아계라고 읽는다)의 판도는 아레바-미쓰비시 연합, 웨스팅하우스-도시바 연합, 제너럴일렉트릭-히타치 연합의 3강에 러시아의 ASE가 구공산권 국가 시장에 진출하는 4강 구도를 갖추게 돼. 4강이라고는 하지만 3강 1중인 셈이지.

 

2000년대 들어 활발한 연합이 이루어진 것은 화석연료의 고갈과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원자력발전에 대한 수요가 다시 살아나는 경향을 반영한 거야. 2010년까지만 해도 국제에너지기구는 55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고 2020년까지 100기가 계획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해.




아~ 울나라는 왜 빼냐고?

 

갸는 수출권이 없어서 보스들 모임엔 못 껴. 뭐, 중간 두목이라고나 할까?

 

그럼 아랍에미레이트는 어떻게 된 거냐고?


그건 다음 편, '아부다비의 대리전'에서 디비 보자구~







에너지전환


편집 :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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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이토록 거침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 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