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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11. 월요일

멀더요원








요즘은 하도 세상이 구석구석 상식을 벗어나서 파라노멀(paranormal)한 상황이라 천붕지괴(天崩地壞: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짐)한다고 해도 그리 놀랍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문자 그대로 리터럴리(literally), 땅이 꺼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것도 꽤 자주, 특정지역 일대에서.


바로, 싱크홀(sinkhole)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도대체가 그게 뭐고 왜 생기는지, 막을 수는 없는 건지, 막을 수가 없다면 피할 수는 있는지,를 얘기해주는 언론은 없고, 롯데월드와 무관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찌라시들만 난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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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를 이해하기에 도움이 될만한 기초적이고 원론적인 얘기들을 일반상식 수준에서 써보려 한다. 조사에 직접 참여했던 것도 아니고, 찌라시를 통해 나오는 정보 밖에 없다 보니 특별히 할 얘기가 많지는 않은데다 본 요원의 글이 대부분 긴 편이라 기대를 갖고 들어온 독자들에게 좀 미안하긴 하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12년 공교육 중 절반만 똑바로 통과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써봤으니 끈기를 갖고 읽다 보면, 어디선가 누군가가 아는 척할 때, "그래? 그런 게 있었어?" 라며 자세 안 나오게, 깜짝 놀라는 일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야, 근데 그게 말이지..."로 시작하여 마치 본인의 경험처럼 얘기할 수도 있게 될 거다.



1. 싱크홀


싱크홀이란, 간단히 말해 땅이 꺼지는거다.


땅이 꺼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컨대, 카르스트 지형(karst, 침식된 석회암 지대 : 고등학교 한국지리 참조)의 경우, 지표의 식물이 썩고, 그게 이산화탄소와 물에 녹아 약한 산(acid)이 되고, 물이 침투해서 석회암이 녹고, 구멍나고, 구멍이 커지고, 땅이 꺼지는, 수백, 수천 년에 걸친 싱크홀도 있다. 그중 일부는 호수가 되고, 동굴이 되는, 이런 건 지구의 관점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근데, 우린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여기서 다루려는 건 저런 억겁의 시간에 걸쳐 생기는 싱크홀이 아닌 갑작스럽게 생기는 싱크홀이다. 그 원인으로는 우선, 흙 속의 지하수 유출에 따라 발생한 공극을 원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땅속에는 당연히 지하수가 있고,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그 지하수가 사라졌다면, 그 부분은 공극이 생기게 되는데, 이 부분으로 중력과 토압 등에 의해 흙이 밀려들어가서 지반이 침하하는 현상인 '싱크홀'이 발생한다.


이 과정은 모래 지반과 점토질 지반이 큰 차이를 나타내는데, 완전한 모래 지반이라면 모래가 공극으로 밀려들어갈 때 공극 속에 있던 공기가 모래를 통과해 지표면으로 빠져나오기 때문에, 지표면이 서서히 침하해서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끈적한 점토질 지반에서는 점토가 공극 사이로 들어가면 점토가 있던 자리로 공기가 비집고 올라오는데, 끈적한 점토질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공기주머니(air pocket: 에어포켓, 씨바, 또 나왔다.)가 형성된다.


이렇게 끈적한 점토 속에 만들어진 에어포켓은 지표면을 떠받치는 일종의 교량(bridge) 역할을 하며 어느 정도까지는 버티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공극이 계속 많아지면, 흙은 계속 빨려 들어가고 그만큼 에어포켓은 점점 더 커지다가 더 이상 지표면 하중과 토압을 풍선이 이기지 못하게 된다. 즉, 힘의 평형상태가 깨져 한 순간에 침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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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주머니로 지표면을 지탱하다가 붕괴.


그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지하매설물 붕괴에 따른 공극이다. 지하에는 많은 구조물들이 있는데, 이것이 노후화든 뭐든 붕괴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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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미국에서 벌어졌던 싱크홀 사고. 

직경 3.6미터의 50년된 하수관이 붕괴하면서 발생.



2. 지하수위 변화


석회암 지대가 아닌 서울의 특성상, 구조물이 붕괴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지하수가 빠져나가서, 즉 지하수위가 낮아져서 땅이 꺼지는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럼 지하수는 왜 없어진 걸까? 땅속에 있던 물이 다 어디로 갔을까?


가장 큰 이유로는 우리가 다들 의심하고 있듯이 인근의 어느 공사현장에서 굴착공사를 할 때 작업현장에 유입되는 지하수를 대량으로 퍼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공사현장의 배수작업 말고도 지하수위를 낮추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고밀도의 지하철과 각종 터널이 그중 하나이다. 터널은 지하수의 영향을 고려하는 방식에 따라 지하수를 퍼내는 배수터널과 인위적으로 지하수를 퍼내지 않는 완전방수개념의 비배수터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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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위에 주목


비배수터널은 주변의 지반침하가 우려되어 지하수위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나, 지하수 유입량이 너무 많아서 유지비가 너무 크게 발생하는 경우에 적용하는데 설계, 시공기술 등의 이유로 인해 현실적으로는 거의 대부분 배수터널을 채택한다. (참고로, 배수터널로 설계된 터널에서 배수가 똑바로 안되면, 부력을 받아 터널이 뒤틀리기도 한다.)


2013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서 발간한 "도심지역 대심도 지하공간 개발의 지반환경영향 및 정책 제언"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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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하철 노선을 따라 주구장창 지하수를 퍼냈고 결국 지하수위가 그 이전에 비해 평균 15m 정도 내려가 있단다. 아마도 이러한 지하수위 저하는 지하철 배수와 더불어 도시화에 따라 도로포장면적이 증가했고, 그래서 지표면에서 빗물로 지하수를 보충하지 못하는 부분도 일정하게 영향을 주었겠지만, 어쨌든 지하수위가 많이 내려가 있다.


이렇게 지하수위가 많이 내려가 있는 상황에서, 인근의 대규모 굴착공사를 하는 현장에서 엄청난 양의 지하수를 퍼내고 있었다면, 당연히 싱크홀이 발생할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렇게 이미 여러 가지 주변 현장 여건이 다같이 싱크홀을 발생시킬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면 어느 특정한 현장이 영향을 주었다는 증거를 찾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제일 마지막에 숟가락 얹은 놈만 범인으로 몰기가 애매한 상황, 다시 말해, 악당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땅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사고에 대한 조사와 원인 규명도 매우 어렵고 논란이 될 여지도 많다.


최근의 많은 사건들이 처리되는 방식을 볼 때, 이렇게 악당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으로 결론날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이런 시나리오는 잠실에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3. 지하수위에 영향을 줄만한 계획들


다음 그림은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U-Smartway 라는 건데 지하 40~60m에 149km 정도의 지하 도로를 11조 정도 들여서 건설하겠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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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martway 노선도


다음은 다들 잘 알지도 모르는 김문수 전경기도지사의 GTX다. 지하 40m에, 대략 한 140km정도의 지하철도를 14조정도 들여서 건설하겠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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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X 제안 노선도


그밖에 빗물저류시설도 있고, 지금 서울시에서 추진하겠다는 경전철도 지하화를 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죄다 지하에 건설되는 경우, 그 노선 주변의 지하수위는 내려갈 것이다. 여기에 각종 재개발 현장에서 발생할 대규모 굴착 등을 감안하면, 싱크홀이 발생할 가능성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뭐, 어차피 하지 말란다고 안 할 분들도 아니고...



4. 결론


그동안의 한국 정부는 지방에 특색 있는 도시를 키워 인구의 수도권 집중을 해결하기보다는 농어촌을 떠나 수도권으로 밀려드는 노동력을 값싸게 이용하기 위해 노동자가 과밀되어 있길 바라지 않았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수도권 인구 집중을 유도했거나 최소한 방치했다.


서울은 지방정부의 입장에서 세금 내는 사람들이 많은 게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므로, 인구 집중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고 많은 시민들도 자기 집이 역세권이 되어 집값이 오르길 원했다. 


결국, 인간들이 가진 각각의 욕망은 수도권 인구 집중을 만들어냈고, 더욱 많은 대중교통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결국 더 많은 지하철이 만들어졌으며, 지하수는 많이 빠져버렸다.


여기에 쪽팔림을 모르는 권력을 가졌던 어느 사기꾼은 공군 공항의 전술적 기능마저 위협하면서 장사꾼에게 고층 빌딩 건축 허가를 내주는 것으로 크게 한 삽 더 얹은 상황이기에, 어쩌면, 지금 싱크홀이 자꾸 생기는 건 우리 모두가 그동안 우리도 모르게 조금씩 파 놓았던 '함정'이 하나둘씩 발견되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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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5일에도 여전히 멀쩡하고 건강하신 분...씨바, 졸라 반갑다.


끝으로, 싱크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땅속에 있는 공기주머니를 레이더를 이용해 탐사를 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서울시 전체를 탐사할 것도 아니고, 사실 탐사한다고 해도 지하에 워낙 많은 매설물이 있는 상황에서는 정확히 찾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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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있긴 한데... 별로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이게, 도로에서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집안에서도 생길 수 있다. 혹시라도 도로에 못 보던 균열이 있거나, 갑자기 방문이나 창문이 잘 안 닫히거나, 지하수 쓰는 집은 거의 없겠지만 어쨌든 물에서 흙이 좀 많이 나온다거나 하면 약간 긴장하길 바란다.


특히 역세권에 집 가지신 분들, 집값 올라서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자기집 바닥에서 지하수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좀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을 것이다. 


뭐, 당장 뭔일이야 나겠냐, 허허, 씨바.



*****추가*****


1. 보도블록 포장 깨져서 여성분들 하이힐이 얼마나 망가질지는 모르겠으나, 지하수측면에서 보면, 약간 깨져있는 보도블록이 빗물을 땅속으로 침투시키는데는 더 유리한 상황이니 그거 자꾸 새걸로 교체하고 그러지 좀 말자.


2. 지하수위 내려간 게 문제라고 하면, 어떤 단순한 인간들은 그거 다시 채우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마라. 괜히 지하수가 과잉함양되면 건물이 둥둥 떠서 더 위험해질 수 있다. 빼도 박도 못할 때는 그냥 어설프게 뭘 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살짝 박힌 채로 놔두는 게 좋을 때도 있다. 


3. 씽크홀 말고도 도로에서 주로 비온 뒤에 자주 나타나는 포트홀(pot hole) 같은 것도 있긴 한데 포트홀은 지하수위와 크게 상관도 없고, 그냥 그 규모와 원인이 다르다고만 알고 있으면 된다. (여기서 얘기하려는 것은 싱크홀이다.) 어떤 찌라시가 <석촌역 싱크홀 이어 광화문 포트홀> 이라는 식으로 제목을 뽑아서, 마치 광화문에서도 땅이 꺼지는 일이 발생하니, 송파구 일대에서 벌어지는 싱크홀은 롯데월드 공사가 원인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려는 뉘앙스가 엿보인다. 또, 어떤 라디오방송에서는 그 기사를 인용해서 전문가를 데려다 놓고 질문을 번갈아서 하면서, 물타기를 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걸로 애쓰지 마라. 모자라 보인다...


4. Aerosmith - Hole in my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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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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