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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여행해보라

2014-08-2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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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22.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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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행 중독자다

 

난 여행 중독자다. 벨기에 사람으로서 16살까지는 가족과 함께 해마다 가까운 프랑스여행만 갔지만 17살 때부터는 친구들과 가볍게 자유여행을 시작했다(이탈리아, 스페인, 튀니지, 네덜란드, 영국, 체코. 22살 때는 교환학생으로 스페인에서 6개월 동안 살았다). 물론 공부도 하긴 했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


23살에 취직을 하고 돈이 조금 생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휴가를 내고 친구들과 함께 미국으로 자동차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25 살 때 벨기에를 아예 떠나 중국과 베트남에서 6개월 동안 배낭여행을 했다. 여행을 마치고 중국 남경에서 2년 동안 살다가 한국으로 왔다. 6년 동안 한국에서 살면서도 해외 여행을 계속 했다(태국, 인도, 뉴질랜드, 터키, 말레이시아, 일본. 그리고 물론 해외 여행 못지않게 한국을 누비고 돌아다녔다). 이제 여행은 나에게 6개월 간격으로 비행기를 안 타면 마음이 허전할 만큼 필수적이다. 이 정도면 여행 중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런데 여행 중독증에 걸렸던 이유가 무엇일까? 마약, 술, 컴퓨터 게임, 쇼핑, 운동, 독서, 등등 유해하든 무해하든 간에 갑자기 생기는 중독은 없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호기심 때문에 시작한다. 그 다음에는 좋아서 계속 하다 보면 어느새 습관이 돼버린다. 마지막 단계는 못 하게 되면 허무함을 느껴 미쳐버린다. 그래, 그런 것이었다. 중독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생겼다. 그런데 여행중독증은 걸릴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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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관광이 아니다

 

처음에 외국에 가면 낯설어 모험을 절대 안 하고 안전한 길을 선택한다. 제일 유명한 관광지로 가고, 여행 책에 나오는 호텔에서 숙박하고, 밥 먹는 것도 인터넷에 나오는 맛집만 믿는다. 즉 평범한 관광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외 여행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감이 생기고, 쓸데없는 걱정을 버리고, 낯설어 설렌다. 가이드 북은 잘 안 보게 되고, 숙소나 맛집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냄새를 맡으면서 찾아본다. 점점 여행은 관광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깨달음이 생기기 전에는 실수를 많이 하겠지만 실수를 해야 깨닫는다. 자전거가 주는 재미를 느끼려면 20번은 넘게 넘어져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속에 뛰어 들어야 물살을 알게 되는 것처럼 여행도 몸으로 부딪히고 모든 어려움과 불편함을 직접 겪어야 배우는 것이다. 사기를 당하고, 모진 시련을 겪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외롭고, 배탈이 20 번은 나야 배운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관광에서 멀어지고 여행에 가까워진다.


관광했을 때와 달리, 여행할 때는 시간과 감정을 투자하면서 여러 지역에 가서 주민들도 만나고 그 나라의 문화도 접하면서 색다른 인생 가치관을 체험한다. 공간적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도 깊이 있게 여행하기 때문에 마음이 넓어진다. 단순한 관광을 했을 때 남는 것은 기억, 사진, 기념품밖에 없는데 비해 진정한 여행을 하고 나서 남는 것은 신세계다. 색다른 환경, 냄새, 맛, 색깔, 분위기, 언어의 멜로디까지 직접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익숙해왔던 세계가 갑자기 싱거워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관광이 아닌 여행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난 모험가도 아니고 여행 전문가도 아니다. 단지 여행은 관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광을 무시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관광은 여행의 첫걸음인 만큼 관광으로 시작해야 점점 여행을 할 수 있다. 이제는 관광에서 여행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찾기 위해 내가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배운 것들을 전달하고자 한다. 여행하려면 여러 가지 주의할 요소가 있는데 그 중에 세 가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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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여행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유명한 관광지로 가면 기념물, 성당, 궁전, 유적지와 같은 흥미롭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볼 수 있고 또는 거대한 폭포, 광활한 사막, 웅장한 화산과 같은 경이로운 경치를 감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관광지로 가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 없고 그냥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사진을 직접 확인하려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금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가면 경이롭진 않아도 그 곳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여행 책에도 나오지도 않고 관광객도 없지만 아름답고 꾸밈 없는 곳을 발견하는 것만큼 만족감과 성취감을 주는 것도 없다. 또한 관광지로 가게 되면 만나는 현지인들은 관광객들의 돈을 어떻게 해서든 쓰게 하려고 이해 관계를 따지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내가 여행해봤던 여러 나라에서 늘 그랬다.


반면에 유명하지 않지만 조금 떨어져 있는 평범한 지역에 가면 감탄할 것은 별로 없겠지만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사심 없이 자연스럽고 친절하게 대우해주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관광지에서는 아름다운 장소에 감탄하겠지만 떨어져 있는 지역에서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관광은 감탄, 여행은 만남. 그렇다고 해서 꼭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골에 가야만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유명한 관광지만 지향하면 인간적인 경험에 대한 기대를 하면 안 된다. 관광지로 가는 것은 좋지만 관광지에만 집착하면 안 된다. 관광지와 떨어져 있는 지역으로 번갈아 지향하는 것이 여행에 가장 제격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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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기간. 불과 15일 만에 유럽의 다섯 나라를 여행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여행이라고 할 수 없다. 그냥 급하게 구경한 관광 코스에 불과하다. 시간도 너무 빡빡하고 현지인들과 제대로 된 이야기도 할 수 없고 관광지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빨리 사진을 찍고 나서 다음 관광지로 이동해야 한다. 내 관점에서 이런 방식으로 유럽을 구경하는 것은 돈만 아깝다.


반면에, 똑같은 돈이라면 다섯 나라 중에 제일 관심이 있는 나라 한곳을 골라 그 나라에서 한달 동안 천천히 자유롭게 돌아다녀봐야 진정한 여행의 맛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여행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먼저 그 나라에 도착한 후 시차를 극복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그 나라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배워보고, 길을 잃어도 보고, 기차를 놓치고, 현지인에게 물어도 보고, 초대도 받아보고, 인연을 맺고, 등등, 이런 식으로 여행하다 보면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행할 때 시간은 자유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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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동행자 문제를 언급하겠다. 혼자 여행을 하면 현지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같이 여행하는 사람과의 의견충돌을 피할 수 있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끔 외롭거나 특히 여자들은 위험할 수도 있다. 반면에 동행자가 있다면 외롭지 않고 위험에서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로움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한 노력은 안 하게 된다. 같이 있는 친구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소극적으로 여행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감상보다는 동행자와의 관계가 주를 이루게 될 것이다. 동행자가 곁에 있으면 좋긴 하지만 여행의 경험이 많이 달라진다. 나도 아내와 같이 여행을 가게 되면 너무 좋다. 그러나 여행 자체가 좋다기보다는 아내와 같이 일상생활에서 당분간 벗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좋다는 것이다.


장소, 기간, 동행자가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 이와 같은 세 가지 요소가 여행의 경험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변수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다.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진정한 여행을 체험하기 위해 굳이 외딴 시골에, 오랫동안, 혼자서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여행을 하는가 마는가의 결정적인 변수는 자신의 마음가짐이다.


호기심, 개방성, 용기, 도전 근성과 같은 가치를 가지면 성공이고 불안함, 폐쇄성, 소극적 태도를 가지면 실패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리라는 마음으로 떠나면 성공이고 자기 나라와 비슷한 것을 찾으러 가면은 실패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여행을 하려면 자기 나라를 당분간 잊어버리고 문화 상대주의의 자세를 취해봐야 된다. 그래야만 여행의 신비로운 힘에 접근 할 수 있고,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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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보라!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떠나라!" 물론 반론의 여지는 수없이 있겠다. ‘돈이 없어! 여행할 시간이 어디 있어? 집이 너무 좋은데 굳이 왜 불편한 여행을 해야 돼? 여행이 좋긴 한데 너무 위험해! 죽을 지도 몰라! 여행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허락을 안 해줘, 등등’. 그러나...


여행할 돈이 없다면 돈을 모으라. 핑계가 약하다. 비행기표를 포함해 백 만원만 있으면 베트남에서 한 달 동안 넉넉한 배낭 여행을 할 수 있다. 돈이 없는 학생이라도 일 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조금만 아껴 쓰면 백만 원을 못 모을 리가 없다. 심지어 베트남, 중국, 말레이시아와 같은 나라에서 배낭 여행을 하면 생활비가 싸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것보다 덜 쓸 지도 모른다. 돈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고 우선순위가 문제겠지. 여행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여행에 썼던 돈을 다 모았으면 나도 명품 정장을 입고 화려한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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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 시간을 내라. 학생이라면 일 년 동안 영어를 공부하는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을 뉴질랜드 농장에서 과일을 따면서 보내면 돈도 벌고 영어 실력도 쌓으면서 아름다운 자연이 풍부한 섬나라도 구경할 수 있겠다.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적성과 딱 맞는 일이라서 이 일이 아니면 안되겠다는 사람이 아니면 일을 그만두면 된다. 별로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 때문에 여행이 제공하는 새로운 세계를 놓치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싶다. 그런 일이라면 여행 후에 다시 찾으면 된다. 아이들이 있는 가장이라면 좀 더 어렵긴 한데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시간이 없다는 문제는 마음만 먹으면 해결된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너무 좋아해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해할 수는 있다. 우리 마누라도 집이 너무 좋다고 했던 사람이었지만 처음 여행을 시작하더니 지금은 여행가는 걸 누구보다도 좋아한다. 집도 좋고 여행도 좋다고 해서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집은 편해서 좋고 여행은 새로워서 좋다. 자기 나라는 익숙해서 좋고 다른 나라는 색달라서 좋다. 그러나 여행할 때 편안함과 익숙함을 찾게 되면 바로 집에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집에서 모험을 찾는다면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


여행은 조금 불편하긴 해도 낯섦과 다름을 느끼기 위해 하는 것이다. 게다가 한 달 동안 텐트를 치고 차가운 물로 샤워한 후 딱딱한 바닥에서 추운 밤을 보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도 못 먹는 여행에서 살아남았다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은 여행의 절정이 될 것이다. 드디어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푹신한 내 침대에서 잘 수 있겠구나! 배가 고파야 밥을 맛있게 먹는 것처럼 불편하게 살아봐야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가치를 또 다시 깨닫는다. 난 가끔 문명의 이기에 너무 익숙해질 때면 여행을 떠날 때가 됐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다시 말해, 집이 좋다고 해서 여행을 아예 배제해야 되는 것이 아니다. 집에서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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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불안전한 교통 수단도 타야 되고, 이상한 음식도 먹어야 되고, 음산한 호텔에서도 자야 되고, 모르는 사람도 믿어야 되고, 한마디로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된다. 그러나 외국에서 느끼는 위험성은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직면할 수 있는 위험성과 큰 차이가 있다. 자기 나라가 안전하고 외국에 나가면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오버하는 사람들이 적진 않다.


그래, 여행은 위험하다. 근데 자기 나라에서 길을 건너가는 것이 여행하는 것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통계에 따르면 2012년에 한국에서 5392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루에 15명이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것이다. 심지어 그 중에 38%는 운전자가 아니라 일반 보행자였다. OECD나라 중에 길을 건너가는 것은 한국이 제일 위험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길을 안 건너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평소처럼 별 생각 없이 길을 건너고 아무렇지도 않게 아침마다 자동차의 시동을 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기 나라에 남아 있든지, 여행을 하든지 간에, 운이 나쁘면 어디가 됐든 사고가 생길 수 있다. 오버들을 하지 말고 매일 아침 출근하러 차를 타는 것처럼 별 걱정 없이 해외여행을 떠나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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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못해 여행을 못 간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핑계일 뿐이다. 이제는 자신의 뜻대로 살아도 될만한 나이가 됐을 것이다. 그래, 부모님 없었으면 본인도 없었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사춘기까지 부모님이 헌신적으로 키워줘서 커다란 신세를 졌다. 부모님을 존중하고 존경한다고 해서 끝까지 부모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사춘기가 지나고 나면 부모님도 본인의 개성을 인정하고 본인이 하는 결정을 존중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대학생이고 6개월 동안 여행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반대한다는 핑계로 포기한다면 사춘기가 아직 안 지났다는 뜻이다. 대학생이라면 부모님의 인정은 안 받아도 된다. 여행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고 자력으로 떠나면 된다. 대학생 때 조차 자신의 뜻대로 살기 시작하지 않으면 평생 남의 뜻대로 살고 말 것이다. 진짜 여행을 하고 싶다면 부모님의 허락이 없어도 떠나라!


계속된 핑계거리가 생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 집에 있으라. 이미 포기한 사람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더 이상의 핑계거리가 없다면 한번이라도 떠나보라. 1단계는, 해외 여행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면 유명한 관광지로 가서 안내 책을 꼼꼼히 보며 안전한 관광을 한번이라도 해보라. 2 단계는, 관광객으로서 몇 번 경험해봤다면 용기를 내서 여행 책에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직감을 믿으면서 진정한 여행을 해보라. 3단계는, 여행지에서 편견 없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계획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절대 자유와 같은 여행의 신비로운 힘을 느껴봤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나보다 잘 알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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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S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