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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22. 금요일

정치불패 wookhyunii







편집부 주



이 글은 정치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야당 대표 무능기野黨 代表 無能記  : '야무기'>


야당(野黨) : 정당 정치에서, 현재 정권을 잡고 있지 아니한 정당.

대표(代表) : 대표자.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
무능(無能) : 능력이나 재능이 없음.


-> 현재 정권을 잡고 있지 아니한 정당을 대표하는 사람의 능력이나 재능 없음을 써두다.






서문


한국 정당사에서 야당은 늘 여당(권력)에 대해서 강하게 대응하는 위치에 있었다. 정부 수립 이후 자유당 이승만 정권 때도 그랬고, 쿠데타로 성립된 박정희 군사정권 때도 그랬다. 마찬가지로 쿠데타 세력인 전두환-노태우 정권때는 물론이고 3당 합당의 수혜로 정권을 잡은 김영삼 때도 마찬가지였다.


헌정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던 김대중 정권 때도 야당은 늘 정권의 반대 입장에서 고집을 부렸다. 여/야 어느 쪽에서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 노무현 정권 때는 헌정 사상 탄핵소추안이 야당에 의해 의결되는 결과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야당의 역할은 정부와 여당이 하는 정치활동을 적절하게 대응해가며 권력의 의지대로 국정이 운영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때로는 권력에 의해 철저히 짓밟히면서도, 때로는 권력의 꼬투리를 철저히 잡아내면서 말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무능이 만천하에 공개된 상황에서 야당에게는 완벽하게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야당은 그렇지 못했다. 광역단체장을 싹쓸이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타났던 6.4 지방선거에서 '무승부인듯 무승부 아닌 무승부 같은' 결과를 만들었다. 그리고 'AI', '교통사고' 발언만 남긴 세월호 특별법 국면 아래에서 펼쳐진 <미니총선 7.30 재보선>에서 4:11이라는 이기지는 못할망정 뺏기기까지 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바로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제1야당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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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의 두 당대표는 사퇴를 했다. 어쩌면 진작에 이뤄졌어야 할 두 대표의 사퇴가 그제서야 이뤄졌다. 이 야당 대표들은 진정한 야당의 모습을 자신들의 임기동안 단 한 차례도 보여주지 못하고 선거참패라는 결과만을 남기고 물러났다. 나는 오래전부터 야당 대표가 2013년 5월 취임 이후 해온 일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1년 3개월 동안 대체 뭘 해왔는지 정리를 하고 싶었다. 원래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던 시기는 7.30 재보선 전이었다. 어차피 물러나길 바랐던 대표들이었고 물러날 수 밖에 없는 결과가 나올 거라는 생각에 재보선 전에 이 대표들이 뭘 해왔는지 정리를 해보고 싶었다. 글을 정리하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이제서야 마무리하게 됐다. 재보선 전에 글을 마무리 짓고 결과를 보게 됐다면 참 뿌듯했을 것 같은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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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앞부분은 주로 김한길 대표 위주로 쓸 예정이다. 리더십이 부족한 인물이 정당의 지도자가 되면 얼마나 답답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개인적인 평가로만 이뤄지진 않는다. 2013년 5월 전당대회를 시작으로 각종 기사를 통해 보도된 말, 행동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를 통해서 정리할 것이다. 부족한 글솜씨로 인해 다소 재미 없거나 지루할 수 있음을 미리 알려둔다.



의욕기 (2013.5 - 2013.9)



1. 김한길을 대표로 만든 전당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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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4일. 민주통합당은 대선 패배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끝내는 전당대회를 열고 김한길 의원을 당 대표로 선출했다. 임기 2년의 10월 재보선과 6.4 지방선거 공천권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전당대회를 지나 민주통합당은 당명을 '민주당'으로 다시 바꿨다.


그리고 민주통합당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던 온오프통합 체계가 완벽하게 무너진다. 일반시민들이 전당대회에 참여해 당 대표 선출하는 투표를 할 수가 없어졌다. 마찬가지로 재보선, 지방선거 후보들을 선출 할 기회도 없어졌다. 철저하게 당원 조직으로만 선출하게 한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민주당은 당원을 중심으로 운영하되,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 라고 하는 문구를 당헌에 포함하며 당원 중심의 정당을 만들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문구는 김한길 측에서 주장했고 일부 수정돼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모바일투표 등의 시민 참여로 인해 자신들이 2012년 총선 경선 때부터 대선 경선까지 계속 패배한 것이라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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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전당대회를 통해 2011년 야권통합운동 핵심으로 민주통합당 창당에 크게 이바지 했던 문성근, 명계남 등 (저들에겐 단지 친노세력의 일부였겠지만) '혁신과 통합-국민의 명령-시민통합당'세력이 탈당했다. 이에 따라서 친노세력의 결집으로 이용섭 의원이 대표에 당선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있었지만, 당시 김한길과 비주류(왜 그들을 비주류라고 언론은 불렀는지 모르겠다.) 측에서는 '저들이 나가서 잘됐다' 싶었을 것이다. 


전당대회 결과는 앞서 말했듯이 김한길 대표선출로 이어졌다. 지난 대선 때 책임을 지고 지도부는 총 사퇴해야 한다고 했던 최고위원 김한길(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사퇴 2순위쯤 된다.)이 다시 대표를 맡은 것이다. 자신도 지도부의 일원이었으면서 불과 몇 달 사이에 다시 대표가 됐다.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물론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위하지 않았다면... 책임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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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김한길 대표는 대선 직전의 대표 경선에서 이해찬에게 진 것이 모바일 투표 때문이었고, 일반 시민들의 참여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민참여를 완벽히 배제한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에 자신과 자신의 세력화를 위해 제일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당을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하는 시민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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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용섭 의원에겐 강기정 의원의 사퇴로 김한길과 맞짱(?)을 뜰 기회가 주어졌지만 결국 패배했다. 김한길에 비하면 당내 조직 동원력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모바일 투표 등 시민 참여가 배제된 상태에서 김한길의 조직동원력을 이겨낼 수는 없었으리라 본다. 비록 패배했지만, 당시 대세였던 김한길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인물이었다. 이렇게 연결하기에는 다소 비약이 있지만, 이용섭 의원은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광주광역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하며 지지도를 끌어올렸지만, 김한길(+안철수) 대표는 광주시장 후보를 경선 없이 윤장현으로 전략공천했다. 결과적으로 이용섭은 선거 출마로 의원직을 잃었고, 김한길(+안철수) 대표가 전략공천한 권은희가 이용섭의 지역구(광주 광산을)에서 당선됐다.


<김한길의 '말말말'>


"계파주의를 청산하겠다"


"친노니 비노, 주류니 비주류라고 쓰인 명찰들 다 떼서 쓰레기통에 던지고 오직 민주당이라고 쓰인 명찰을 달고 혁신에 매진하겠다"


"우리가 이룩할 3대 목표는 새로운 민주당, 더 큰 민주당, 이기는 민주당을 만드는 것”


“정당 민주주의 실천을 위해 상향식 공천제도를 정착시키고, 주요정책결정권, 대의원선출권을 당원에게 돌리겠다. 또 정책정당의 면모를 강화하며, 계파와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인사를 발굴해 영입해 대탕평인사를 실시하겠다"

<대표 당선 직후 수락 연설 중>


나는 김한길 대표의 이 수락연설에서 말한 것 중 단 하나도 제대로 실현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계파주의를 청산한다고 했지만 자기 계파를 위했고 자기 계파만 살렸다. 계파와 상관 없는 영입은 없었으며 대탕평은 커녕 지나칠 정도로 한 쪽으로 치우쳤다. 심지어 안철수와의 합당 이후 안철수 계파를 챙겨주면서 자신의 계파를 보장받았다. 새로운 민주당은 없었으며, 민주당은 더 크지 못했고, 끝끝내 민주당은 이기지 못했다. 불과 1년 3개월 만의 일이다.



2. '을(乙)'에 꽂힌 김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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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대표는 전당대회 다음날 야당 대표로서의 첫 일정을 시작했다. 바로 아내 최명길과 함께한 어린이병원 식사봉사다. 물론 일요일이자 어린이날이었고 어린이병원 봉사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표 당선에 큰 힘이 된 아내 최명길과의 봉사 일정은 '보여주기식 이미지 정치'일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일각이나 일부 언론에서는 '민생정치 우선' 행보를 걸어갈 것이라고 표현했다. 보통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거나 정치현안과 관련된 행사에 참석하는 게 통상적인 움직임이지만 어린이병원을 찾은 것은 이례적인 행보라는 이유다.


하지만 당 대표가 되어야만 그런 봉사활동이 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이전까지는 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냥 이미지를 위한 것일 뿐이다. 김한길 대표의 인상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기 때문에 김한길은 아내 최명길을 철저하게 활용해왔다. 심지어 전당대회 당일에도 최명길은 물론 황신혜, 김성령 등 4, 50대 이상 남성들의 마음을 이끌 수 있는 배우들이 총출동했을 정도니 말이다.


그리고 제1야당 대표로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이 고작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남북한 갈등의 뿌리 깊은 곳에는 북미 관계가 있다. 방미 성과가 가시적으로 보여지길 기대한다."라는 멘트 뿐이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 등 눈 앞에 대통령과 여당을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도 부족할 시점에 고작 한다는 소리가 '기대감'뿐이었다.


취임 초기 주요 쟁점 중 하나는 바로 홍준표 경남지사가 추진하고 있는 진주의료원 폐업이었다. 김한길 대표는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를 진주의료원에서 열 정도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진주에 직접 찾아간 것이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봉하마을을 찾아가는 일정 중 하나이진 않았는지 의심스럽다. 진정으로 의미를 둔 방문이었다면 회의를 갖고 바로 봉하마을로 넘어오는 일정이 아닌 제대로 이야기를 듣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방문 일정을 잡아야 하는 게 아니었나 싶다.



특히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민주, 경남서 민생-당 화합 '두 마리 토끼 잡기'>라는 연합뉴스의 기사가 나온다. 민생을 위해 진주의료원을 찾았고 당 화합을 위해 봉하마을을 방문했다는 해석으로 보인다. 야당 대표의 일반적인 취임 일정 중 하나인 두 전직 대통령의 사저 방문의 목적으로 그 중 하나인 봉하마을을 찾아갔고 '겸사겸사' 진주의료원을 들른 것이 아닌가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때부터 민주당은 조금이라도 노사 갈등이 보인답시면 '갑-을'관계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진주의료원 현장 최고위에서도 진주의료원의 정상화는 단순히 '을'의 문제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김한길 대표는 "민주당이 반드시 국민과 공무원의 뒤바뀐 '갑을' 관계를 바로잡겠다"며 "6월 국회에서 지방의료원 법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한다. 봉하마을 방문 시 권양숙 여사에게도 '갑을' 관계 해결이 중요한 문제라며 '을'을 위해 노력한 노 대통령이 생각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심지어 흥사단(도산 안창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민족운동단체) 창립 100주년 기념식에도 참여하여 "흥사단의 활동은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사회·경제적 폭력과 인격 모욕이 우리 사회 곳곳에 널려 있는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는 말도 했다. '갑을' 관계 개선이라는 주제를 모든 현안에 갖다 붙일 정도로 꽂혀(?)있다.


민생을 챙기는 정치가 오로지 '을'을 지키기만 하면 다 된다는 식이다. 특히 민생을 강조할 때는 현장을 찾아서 현장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직접 만나면 모두 다 진정한 해결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일일이 다 찾아보고 싶은 심정이다. 스승의 날이 되니 학교를 찾아가는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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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때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grab'이라는 영어 단어를 가르쳐 준 윤창중 성추행 사건이 벌어진 시점이다. 야당 인사가 이런 일을 일으켰을 경우 새누리당에서 어떤 공격을 퍼부었을지 생각만 해도 짜증이 밀려온다. 하지만 김한길 대표는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한 마디 하더니 도로 '을'로 돌아왔다. 청와대 기능을 돕기 위해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하면서 빨리 매듭짓고 경제민주화에 몰두해야 한다고 한다. 좀 더 몰아붙일 수 있는 시점이었지만 '빨리 매듭' 짓고 자신들이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는 '을'을 지켜보자는 이야기다. 근데 중요한 것은 매듭을 못 지었다. 청문회는 커녕 윤창중은 지금 범죄의 대가도 치르고 있지 않다. '을'에 꽂히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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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에 꽂힌 김한길 대표와 당시 민주당은 5월 광주를 찾아가서도 결국 '을'이야기로 끝냈다. '을'을 위한 광주선언. 굳이 광주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을 광주에서, 그것도 5.18 묘역에서 했다. 중요한 것은 멋지게 선언해놓고 5월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유영봉안소에서 뻘짓(?)을 하고 만 것이다. 대충 추모를 마무리하더니 돌아 나오던 중 카메라 앞에서 웃음을 지었던 그것이다. 이 웃음 짓는 짓거리(?)는 이명박 전 가카가 서울시장 시절 고개를 젖히면서까지 웃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을'을 위한 광주선언을 하려고 왔지 참배하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게다가 5.18 기념식에서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끝내 공식적으로 제외됐다. 물론 5.18 당일에는 시민들과 일부 정치인들이 (박근혜 대통령도 따라불렀다. 이정현도 대통령이 일어나니 벌떡 일어나더라.) 제창하긴 했지만. '을'을 위한 선언보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무산시키지 않고 공식 식순에 포함했다면 김한길의 광주 방문은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그저 '을'에 꽂혀있었을 뿐이다.


취임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지겹도록 '을' 이야기 밖에 하지 않는 김한길 대표다. 최고위원회의는 물론 당무위원회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도 '을'이야기 밖에 없었다. '을'이야기 외에는 관심조차 없는 것 같이 보였다. '을'들의 만민공동회라는 행사에 참여하며 6월 임시국회를 '을을 위한 임시국회'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오로지 '을' 외에는 아무런 정책도 정치적인 목표도 없어 보인다. 심지어 남북관계를 이야기하며 한국이 '갑'이라고 말하는 정도니... 김한길 대표의 '을'바라기는 더 적지 않겠다. 검색하면 하루에도 몇 페이지씩 '을'로만 가득한 기사들을 볼 수 있을 거다.


지방선거를 1년 앞둔 이 시점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은 10퍼센트 대에 불과했다. 계파정치를 청산하고, 실패했다고 표현한 호남, 친노 세력이 물러나고, 김한길 대표의 '중도'세력이 당권을 차지했지만 지지율은 변함이 없었다. 그저 김한길이 대표 명함만 가져갔을 뿐 변화는 없다는 뜻이다.


그때 그때 이슈를 쫓아가는 김한길 대표의 모습을 이때부터 볼 수 있다. '샤워기의 바보'라는 이야기처럼 '뜨거운 물이 나오니 찬물을 틀고, 찬물이 너무 세니 다시 뜨겁게 하는' 형태의 기준 없는 이슈 쫓아가기. 의욕만 앞서고 능력이 없는 의욕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3. 국정원 댓글 사건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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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유가족들이 정치인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시작한 단식은 40일이 넘어서고 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특별법 논의는 새누리당의 재보선 승리 이후 더 멀고 험한 길이 됐다. 불과 1년 전인 2013년 여름은 그야말로 국정원과의 싸움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2012년 12월 11일 한 오피스텔에서의 감금(?)사건과 16일 어처구니없는 수사결과 발표, 그리고 박근혜의 당선. 댓글 개입이 전혀 없다던 수사 결과는 전부가 뒤집혀 원세훈, 김용판의 구속 수사까지 이뤄졌다. 대통령의 사과는 물론 사퇴, 심지어 탄핵까지 시민들의 촛불을 통해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제1야당 민주당은 무기력했다. '불복'이라는 단어 하나면 다른 곳을 쳐다보는 야당 대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취임 한 달 동안 '을'만 이야기하던 김한길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을'이야기를 다 하고 나더니 긴급 기자회견을 요청하며 기자들을 모았다. 황교안 법무장관의 수사 개입, 원세훈 선거법 적용 문제 등 논란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기자들은 대표의 입장 표명이니 큰 메시지가 있을 줄 알고 모였다. 하지만 별거 없었다. 민주당 진상조사특위 입장과 똑같은 이야기만 나열했다. 심지어 기자들은 '아침부터 괜히 왔다'며 수군거렸다.


이미 대정부 질문 직전부터 기자회견을 하고 당 대표로서 무게감 있는 메시지를 던져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발 빼고 있다가 뒤늦게 '대표' 역할을 좀 해본 거다. '을'만 바라보다가 다른 이야기를 하려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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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댓글 선거 개입 사건은 명백한 부정선거다. 정권의 부정한 수사 개입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실이 밝혀졌고 지금 이 시점까지도 더 많은 숨은 진실들이 드러나는 중이다. 야당의 적극적인 대응만 있었다면 국면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만약 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상황이었다면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의결이나 적어도 전직 대통령 소환 정도의 결과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러지 못했다. 말만 앞섰을 뿐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김한길 대표는 '임기가 끝나지 않은 정권을 뺏어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게 부정선거일지라도.


새누리당은 이 시점에서 여러 가지 물타기 작전을 보여준다. 대선 때 들고 나왔던 NLL 문제를 또 들고 나온 거다. 물론 국정원이 장난질을 쳤다. 발췌본이라는 것을 새누리당 서상기 정보위원장에게 보여주며 불을 지폈다. NLL 진실공방을 펼치며 논점을 다른 곳으로 흐린 것이다. 국정원 댓글 조작 문제만 몰아가도 될 것을 김한길 대표는 '선 국정조사, 후 NLL 대화록 공개'라는 말로 받아준다. 대화록 문제는 어차피 자기와는 상관없이 문재인과 친노를 타겟으로 삼을 것으로 판단한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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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조작'과 '대화록 공개' 문제 모두 국정원의 문제다. '셀프개혁'을 내세운 정부와 여당, 국정원이 여전히 뜻을 고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도부는 현장 정치라며 밖으로 나갔다. 민주주의와 민생을 함께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둘 다 하겠다고 하는 게 김한길 대표의 이야기다. '을'만 바라보던 모습은 사라졌지만 뭘 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 듯하다.


특히 이 시점에서 늘 새누리당 공격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비켜가기 바빴다. 홍익표 의원의 '귀태'발언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격에 개인적인 의견이니 지도부는 할 말이 없다는 식으로 나간다. 괜히 같이 욕 먹을 것 같으니 한 발 빼겠다는 것이다. 결국 홍익표 의원은 당시 당직(원내대변인)을 사퇴했다. '귀태'발언 하나를 '선거 불복'으로 몰고 나오니 '선거 불복은 아니었다'며 오히려 진화하기 바빴다. 이때부터 '불복'만 언급되면 다른 곳을 바라보기 바쁜 김한길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였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민주당이 댓글 문제로 접근해오면 새누리당은 '불복'이라는 폭탄을 던지고, 민주당은 폭탄을 피해서 한발씩 도망가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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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잔머리 좋은 새누리당은 '대선 불복론'을 '친노'와 끼워팔기를 시작한다. 갈등을 부추기는 '갈라치기'다. 그러니 '친노'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불편해하는 민주당 지도부는 열심히 발을 뺀다. 동시에 '친노'를 까며 당내 싸움을 시작한다. 김한길 대표도 같이했지만, 주로 조경태 최고위원이 그 역할을 전담 했다. 그는 "이해찬, 대국민 이미지 부정적 시각 많다"며 '김한길 대표를 사퇴시키기 위한 계산된 실수'라는 의견에 부정하지 않는다. '불복'과 '친노'가 합쳐져서 날아와 불이 붙으니 진화하기 바쁘단다. 김한길 대표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정통성은 의심 없이 확립돼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대선 불복으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은 조심하고 자제해야 한다. 국민에게 외면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당내 중진들이 경고했단다. 이런 식으로 당내에서 갈등이 있는 것으로 비치면 여지 없이 조중동이 김한길 대표의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기사를 써준다. 뻔한 패턴이지만 민주당과 김한길 대표는 패턴에 맞춰 움직이기 바쁘다.


국정조사는 준비단계부터 민주당의 뻘짓(?)으로 시작한다. '감금'사건과 관련돼 있다는 이유로 새누리당은 김현, 진선미 의원을 국조 위원에서 사퇴하라고 압박한다. 오랫동안 국정원 댓글 조작사건을 전담해서 준비해 온 두 사람을 빼라는 것이다. 빼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니 여지없이 민주당은 두 사람을 뺀다. 물론 두 사람은 자진사퇴했다고 나오지만 지켜주지 못한 것은 당 지도부다.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하니 어쩔 수 없다는 '사퇴불가피론'이다.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 아닌가. 세월호 특별법 관련한 지금 국회에서도 새누리당이 떼쓰면 한 발 빼주는 새정치연합. 버릇은 남 못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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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조사를 하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서 받았던(?) 대화록 공개 문제는 결국 대화록 실종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새누리당은 대화록 유무 여부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냈고 민주당은 또 '친노'와 싸우기 바빴다. 끌려다니기만 하던 민주당 지도부는 결국 '장외투쟁'을 꺼냈다. 국민운동본부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상 천막당사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현장 최고위를 열고 의원총회와 각종 회의도 했다.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전해주고 국민보고대회를 열겠다고 했다. 이미 촛불을 든 시민들이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투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시민들을 외면했던 민주당이 이제서야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촛불시위'를 하는 사람들과 연대를 할지 말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럴 거면 나가지를 말지. 


김한길 대표는 바로 이 곳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만나자는 이야기를 꺼낸다. 바로 영수회담 제의다. "대통령만이 지금의 상황을 푸는 열쇠를 갖고 있다"며 "대통령과의 담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사전조율과 조건 없이 만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단다. 자신이 127석을 가지고 있는 제1야당 대표이니 대통령에게 직접 만나자고 하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여야 대표 회담이 우선이라고 못 박았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일언반구 반응이 없었다. 김한길 대표는 반복적으로 단독회담을 이야기하지만 박 대통령은 자신과는 상관 없으니 여야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그러자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3자회담을 제시하고 혼자 만나긴 싫었던 대통령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5자회담을 다시 역제안한다. 말할 사람이 많아야 자기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었을까. 어쨌든 '대통령과 단독으로 만나는 제1야당의 대표 모습'을 그렸던 김한길 대표는 퇴짜를 맞은 거다.



천막당사에서 한 달을 보낸 김한길 대표는 아무런 결과도 얻어내지 못했다. 그저 이런저런 활동들을 깨알 같이 한다. 묵묵부답인 단독회담 제안을 '선 양자, 후 다자 회담'으로 역제안했다. 그리고 자신의 만남 제안을 받아달라는 듯이 '민주주의 회복'까지 광장에서 잠을 자겠다며 노숙투쟁을 시작한다. '단식'은 아니고 그냥 거기서 잠을 자며 살겠다는 것이다. 영등포에 있던 당사를 여의도로 옮기며 당색을 오랫동안 보수정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으로 바꾸게 된다. 나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야당의 정당색이 파란색이라는 것은 익숙하지가 않다. 안철수의 상징색이 파란색이었고 통합정당의 상징색도 파란색이 됐다. 노란색과 녹색을 이어왔던 야당의 상징색을 바꾼 것이 지금의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요구하고 원했던 단독회담은 성사시키지 못한 채 3자회담으로 끝났다. 청와대의 복장 지시에 천막에 있던 김한길 대표는 '등교 복장 지시하느냐'며 불만을 투덜투덜했지만 옷은 결국 갈아입었다. 의전도 조건도 필요 없다고 해놓고 막상 만나려니 옷은 갈아입어야겠다고 생각했나보다. 아무것도 얻은 것도 없었다. 합의문을 이끌어내겠다고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도, 황교안 법무장관의 수사개입 문제도, 국정원 국정조사도 아무런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렇게 만나고자 했지만 만나서 얻어낸 것이 없었던 거다.


장외투쟁은 아무런 결과도 얻어내지 못했고 민주당은 국회로 돌아갔다. 그냥 돌아가기 애매하니 24시간 비상국회를 운영한다고 한다. 그리고 김한길 대표는 전국을 돌며 민심을 수렴하겠다고, 노숙투쟁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전국을 돈다는 김한길 대표는 첫날은 의정부, 둘째 날은 성남을 찾았다. 전국 곳곳을 돌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결국 지역별 거점 지역만을 돌았다. 경로당 등 시골 곳곳에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나섰으나 각 지역에서 토크콘서트를 여는 등 일반적인 정당 행사 수준일 뿐이었다. 왜 전국을 돈다고 나섰는지 모르겠다. 덥수룩한 수염에 평범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을까. 무엇을 위해 장외투쟁을 접고 국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했을까.


이렇게 또 시간은 지났다. 취임 5개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시간은 지났고 10월엔 재보선이 열렸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2곳이고 화성과 포항 모두 새누리당 텃밭이다. 하지만 5개월 동안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대응을 적절하게 했다면 해볼 만 했을 지도 모른다. 손학규라는 큰 인물이 돌아와 이슈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10월부터 어떤 일이 생길까.


<김한길의 '말말말'>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민주당은 대선 불복하는 게 아니다."


"오늘부터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그날까지 광장에서 노숙하려 한다."


부정선거는 불복해야 맞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의 핵심은 권력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부정선거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김한길 대표는 '불복'이라는 말만 나오면 아니라고 한다. 역풍이 두려워서일까. 국정원 사건을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니 역풍을 맞는 것이다. 진실을 밝혀내고 부정선거임을 증명한다면 순풍을 맞았을 텐데 말이다.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그 날까지 광장에서 노숙한다는 김한길 대표는 며칠 사이에 전국을 돈다며 광장을 떠났고, 결국 국회로 돌아갔다. 민주주의는 회복되지 못했고 국민은 안전마저 위협받는 나라가 되었다.



'의욕기' 다음은 '헛발기'로 이어진다.




P.S.) 길고 지루한 글을 다 읽어봐주셨다면 감사합니다. 2부, 3부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졸라 재미 없으셨겠지만 욕보다는 잔소리를...





정치불패 wookhyunii

편집 :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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