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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18. 월요일

편집부 홀짝










존 레논의 추억

 

2009년쯤이었을 게다. 대학 생활 말년에 떠난 오이도 MT. 당시 필자의 동기 A군은 후배 B양을 좋아했드랬다. MT를 떠나는 순간부터 함께하는 모든 남학우들은 일종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짊어지고 있었다


기필코 A군을 B양에게 엮어주리라.’


오후 늦게 오이도에 있는 숙소에 도착한 일행은 저녁이 되면서 본격적인 음주와 오락의 시간을 가졌다. 자연스럽게 남녀가 섞여 원형으로 빙 둘러 앉아 MT 초반 적당한 음주에 게임을 곁들이는 몸풀기 시간. 결의에 가득찬 우리는 당연히 B양의 옆자리를 A군에게 양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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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가깝게 지내던 선후배 동기들이 함께 떠나 술도 한 잔하고 이야기 꽃을 피우며 밤을 지새우는 시간. 게다가 모든 남학우의 지원 사격을 등에 업은 A군에게 그날 밤은 B양과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A군은 처음부터 줄창 삽질을 해댔다. 걸린 사람이 벌칙으로 술을 마시는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A군은 저 혼자 내리 몇 판을 연속으로 걸려 벌주를 마셨다. 좋아하는 후배 옆이라 긴장을 했는지 어쨌는지 대학 생활 4년간 수많은 MT와 농활을 통해 단련된 그의 게임 능력치는 오간 데 없어졌고, 연거푸 종이컵에 담긴 소주를 들이키고 만 것이다.


그렇게 술 몇 잔을 급하게 마시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졌다. 갑자기 오른 술기운 때문에 멀쩡한 다른 사람에 비해 반사 신경이 현저하게 떨어진 A군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벌주를 마셔야 했다. 그렇게 A군은 그날 술자리 게임을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완전히 장악해버렸고, 동시에 그날 MT에서 가장 먼저 취해버렸다. 이제는 게임이고 뭐고 순전히 자의로 술을 계속해서 마시던 A군은, 삼켰던 술이 역류하자 그대로 바닥에 뱉어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것도 평소 자신이 흠모해 마지않던 B양의 바로 옆 자리에서.


취한 A군은 급기야 원형의 대열에서 이탈해 술을 좀 깨고 있겠다며 홀로 TV앞에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며 셀프 왕따 모드에 들어갔다. 이 모든 일이 불과 두어 시간 남짓한 동안 벌어졌다. A군은 그렇게 묵묵히 TV게임을 시작했고 그 광경을 허망하게 지켜보던 나머지 남학우 모두는 게임 끝났다고 생각했다.(여자 후배들 입에서 '저 오빠 왜 저래?'라는 귓속말이 나오면 걍 게임 끝난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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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이어진 술자리. 그렇게 끝난 것 같았던 게임의 마지막 찬스가 A군에게 왔다. 새벽녘 조개구이집으로 나가 마지막 술잔을 들이켜고 있던중, B양이 잠깐 좀 걷겠다며 자리를 비운 뒤 한참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걱정이 된 몇몇이 B양을 찾으러 자리를 떴다. 그러나 눈치 없는 A. 홀로 있는 B양을 찾아나서기는커녕 묵묵히 남아있던 자들과 조개구이와 소주를 흡입하고 있을 뿐이었다. 끝내 그는 후반전 추가시간에 잡은 마지막 골 찬스마저 사뿐히 즈려밟아버렸다.


늦은 아침, 숙소 거실에서 일제히 눈을 뜬 남학우들은 누운 채로 간밤에 일어난 일들을 복기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A군을 향한 질타가 이어졌다. 이러저러한 많은 말이 오갔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이거다.


바보새끼…’


퀭한 얼굴의 A군은 이미 체념한 듯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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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불쑥 대화의 주제가 음담패설로 넘어갔다. 외국어 단어지만 한국말로 야하게 들리는 말이 뭐가 있을까 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 알자지라방송을 이야기했다. 다른 누군가는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 중에 보지노프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가 있다며 키득거렸다. 그때였다. 가만히 있던 A군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 말.


존 레논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일제히 빵 터지며 배를 잡고 방바닥을 굴렀다. 몇 분 동안을 정신 없이 웃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성기 표현이 직접적으로 들어가 있지 않으나 무지 야한 그 이름. 지금까지도 우리들에게 역대급 개그로 평가 받고 있는 전설의 존레논개그가 터졌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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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생각해도 당시 A군의 존 레논은 화자의 심리 표현과 상황 맥락, 그리고 상징성에서 모두 최고점을 줄만했다. B양과의 로맨스를 기대하면서 야심차게 떠난 MT에서 수 차례 삽질을 남발하며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주접을 떨고만 A군이 다음날 아침 느꼈을 심정은 말 그대로 사람들 앞에서 좆을 내놓은심정이었을 게다.


거기에 야한 외국 단어 대기 놀이를 하고 있던 상황에서 단어의 표기에만 집착하지 않고 발음상의 언어유희를 이용하여 행위를 연상시키는 존 레논이라는 이름을 던져놓으면서 화제에 걸 맞는 회심의 개그를 투척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좆을 내놓은 것만 같은 절망적 상황을 본인 인생 최고의 개그로 승화시킨 A군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철학적 메시지까지 선사했으니 가히 역대급 개그라 할 수 있겠다.


 

존 레논과 제주지검장

 

이렇게 불현듯 존 레논의 추억이 떠오른 이유는 지난 주말 홀연히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른 김수창 제주지검장 때문이었다. 제주시 중앙로에 있는 분식집 앞에서 만취한 남성이 지퍼를 내리는 등의 음란 행위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한 여고생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목격 현장 근처에서 신고 내용과 비슷한 인상착의를 하고 있던 남성을 체포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김수창 제주지검장이었다는 것.(진짜 존 레논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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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창 지검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혐의 내용을 전면 부인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좆을 내놓은 사람이 김 지검장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제주시의 존 레논이 김 지검장이 아니었다 해도, 그런 혐의를 뒤집어 쓴 것만으로도 참 당혹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진상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의혹만 가지고 김수창 지검장을 성토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나 체포 당시 김 지검장이 처음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동생의 이름을 댔다는 점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에 김수창 지검장은 자신이 신분을 숨겼던 이유에 대해 해명했는데, 입건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검찰 조직에 누가 될까봐 그랬다는 것과 자칫 잘못되면 검경 갈등이 증폭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만약 그가 주장하는 결백이 사실이라면 김 지검장은 한여름밤의 산책중에 난데없이 자신을 뒤따르던 경찰에 현행법으로 체포된 거고, 명색이 현직 지검장이 길거리에서 좆을 내놓은 혐의로 억울하게 조사를 받은 것인데, 그런 어처구니 없고 지저분한 혐의를 뒤집어 쓴 상태에서 웬만하면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내가 제주지검장이야! 미치지 않고서야 내가 그랬겠나!'라고 할 법도 한데, 오로지 조직의 명예에 누가 될까봐, 그리고 나아가 검찰과 경찰의 조직 간 갈등으로 일이 번질까봐 '내가 지검장임을 알리지 말라'는 셀프 희생으로 동생의 이름을 댔다는 거다. 그러다 지문 확인을 통해 신분을 숨긴 것이 들통나자, 몸소 누추한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신 게다. 현직 지검장께서.


그래, 백 번 양보해서 그게 사실이라고 치자. 요즘 세상에 이해 안 가는 일이 벌어지는 게 하루 이틀일이겠는가 말이다. 만약 김 지검장이 경찰서에서 자신의 신분을 까발리며 결백을 주장했다가는 '지검장이 길거리에서 좆을 내놓은 것이 사실인가 아닌가'의 문제로  검찰과 경찰이 대립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을 수도 있었지 않겠나. 검찰 조직에 대한 김 지검장의 충심은 갸륵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뻘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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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법한 절차에 의거하여 수사를 하는 이유가 뭔가? 혐의가 있는 사람의 범행을 증명하여 처벌하는 목적도 있지만 수사를 통해 혐의 없음이 밝혀지면 피의자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경찰은 신고에 따라 현장에 출동했고, 마침 신고 내용과 인상착의가 흡사한 김 지검장을 발견하여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의 이렇다 할 문제는 없다. 만약 김 지검장이 결백하다면 조사에 성실히 응해 혐의를 벗으면 될 일이었다.(혐의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명예가 실추될까봐 걱정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피의 사실 공표는 엄연히 불법이다. 물론 그 불법을 어떤 조직이 자행하여 전직 대통령 한 명을 완전히 보내버린 일이 있기는 하다)


현직 지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런 수사의 절차와 목적을 모를 리 없음에도, 어쨌거나 그는 자신의 신분을 거짓 진술한 것이다. 게다가 그것이 간단한 지문 조회로 들통날 거짓말이라는 것을 역시나 무려 현직 지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몰랐을까? 몰랐다면 창피한 일이고, 알면서도 '어차피 내가 한 짓이 아니고 검찰 조직에 누가 될 수 있으니 일단 신분을 속인 상태에서 혐의만 벗으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위험한 생각이다. 혹자는 조사과정에서 본인 이름 대신 동생 이름 말한 것이 무슨 큰 죄라고 이렇게 호들갑이냐 할 수 있겠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나 당자사가 현직 검사, 그것도 지검장 정도의 위치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김 지검장이 주장하는 결백의 사실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최근 한국을 다녀간 교황의 탈권위를 본받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쳐 탈권위를 넘어 아예 탈의를 해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사 과정에서 보였던 행태만으로 그는 사실 여부를 떠나 '좆을 내놓은 심정'과 같은 창피함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는 충분히 검찰 조직에 누를 끼쳤다. '자신이 결백하기만 하면 조사과정에서 신분 정도는 거짓으로 밝혀도 된다'는 식의 행동을 몸소 보이셨으니 말이다.


김수창 지검장이 결백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이럴진데, 만약 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신고를 한 여고생이 본 그 남자가 김 지검장이 맞다면? 


다른 건 다 모르겠고, 내가 동생이면 그 형 가만히 안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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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이 기사가 업데이트 되기 직전인 오늘(18일) 오후, 김수창 제주지검장의 사표가 수리되었다는 속보가 떴다. 이제 더 이상 검찰 조직의 누를 끼칠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 '자유인' 김수창 전 지검장의 결백이 속히 밝혀지길 빈다. 그가 진짜로 결백하다면.


아, 하나 더. YG 법인 변호사로 재취업하셔도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편집부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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