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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19. 화요일

金氷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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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충 이해하기


요새 의료민영화 이야기가 여기 저기서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안 그래도 먹고 살기 바쁜데 미처 신경 쓸 여지가 있나. ...고 생각하는 와중에 현재의 진행정도는 대충 '빤스에 손 들어간 정도'로 보면 된다. 왜 어떤 놈들은 의료민영화를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왜 누구는 죽어도 반대한다고 그럴까?


일단 다들 알고는 있겠지만 의료 민영화가 뭔지를 잠깐 짚어 보자면 우리가 아는 의료기관들, 동네 개업의가 운영하는 개인사업자 형태의 의원을 제외한 준 종합병원 이상의 병원들(대학병원이든 종합병원이든), 이들 병원은 전부 재단법인으로서 '의료법인'이다. 말하자면 '돈'이 모여서 생긴 법인(재단법인)이지만, 의료법인은 학교법인과 마찬가지로 '비영리 재단법인'이어서 '이윤'을 추구할 수 없다.


'으잉? 이윤을 추구할 수 없다고? 그러면 삼성병원이나 아산병원처럼 저 큰 병원들이 이익을 못 낸다고?'


물론 현행 국민건강보험제도 안에 편입되어 있는 현행 의료체제상 이들 병원이 이익을 내고 있는지 어쩐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실제로 '이윤 추구'는 할 수 없다. 말하자면 병원 운영이 잘 돼서 연말에 결산을 해 보니 이익이 100억 정도 남았다 하더라도 이 돈을 최초에 병원에 투자한 재단의 출자자에게 배분할 수는 없고, 그냥 법인 내에 유보시켰다가 재투자 용도로 밖에 쓸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학교 법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질 나쁜 병원 재단 이사장의 경우, 온갖 명목, 예를 들어 가족을 위장 취업시킨다거나 실제로는 없는 고문료나 자문료를 계상하는 식으로 해서 돈을 빼돌리는 게 오늘날 의료법인의 현실이다. 물론 새로 건물을 짓거나 의료장비를 넣을 때 콩고물 떼 먹는 건 너무나 전통적인 방법이고.


어쨌든 주식회사처럼 남은 이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다.


'의료 민영화'의 요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존의 의료법인을 현재의 기업과 같은 '주식회사' 체제로 바꾸어 병원을 세우는데 돈을 투자한 투자자들이 이익을 챙겨갈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그 요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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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의료민영화가 진행되면 당연히 돈 굴릴 데를 찾던 자본들이 병원사업으로 몰려들테고, 그러면 더 시설 좋은 병원들이 많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건 의료 소비자로서 반대할 일이 전혀 없다. 더 좋은 시설에서 진료 받게 되는 걸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문제는, 현행 전국민 개방 의료보험 제도 안에서는 이런 식의 병원들이 이익을 내기는 고사하고 살아 남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의료 민영화'에는 반드시 사영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료 민영화 이후 초특급 의료시설을 갖춘 병원이 등장했다 치고, 이 병원은 '국민의료보험'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보험'을 가입한 환자나 자기 돈을 내는 환자만 받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현재의 국민의료보험 가입자는 그 병원을 이용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돈 있는 사람은 그런 고급병원 가고, 없는 사람들은 기존의 병원 가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어차피 한 국가 내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실력 있고 뛰어난 의사들을 그런 고급 민영 병원이 독점하게 되면 일반 국민들이 이용하게 될 병원은 현재의 의료 서비스보다 현저히 질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누구나 하나씩 꺼내 먹던 사과 궤짝의 사과를, 누군가가 상품(上品)만 먼저 골라내서 부자들에게 가져가고 남은 것을 나눠먹는다고 상상하면 된다.


물론 의료 서비스 또한 식당이나 호텔처럼 생각한다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과연 '의료 서비스'라는 것이 맛있는 밥을 먹거나 좋은 데서 잠을 자는 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만약에 '그거나 그거나 뭐가 다른데?'라고 생각한다면 의료 민영화를 찬성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이 아파서 치료 받거나 죽고 사는 문제를 어찌 그런 것과 비교하는가?'라고 생각한다면 반대하면 된다.


이것이 의료민영화의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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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 그렇게 의료민영화에 목을 매는가


요새 우리나라 경제를 돌아 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솔직이 뭐하나 잘 나가는 사업이 없다.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던 포스코도, 세계 최고 경쟁력의 조선사업도, 심지어 스마트폰조차도 중국에 밀려 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국내적으로는 '눈앞의 원가절감'을 바라 보고 대거 수입(?)한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내 조선족(재중동포라는 말은 영 어색해서) 덕에 비정규직이 대거 늘어나면서 임금이 급전직하함에 따라 내수 경기를 살려줄 여력 조차 잃어버렸다. 힘의 논리에 의한 임금의 인하, 말하자면 '굶어 죽을래, 이것 받고라도 일 할래?' 같은 강제적인 임금인하는 당장은 자본주에게 이익이 돌아 오는 것 같지만, 그들의 구매력을 상실시켜버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씨나락'을 까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다음 해 농사 지을 밑천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수 년 동안 대기업들은 특별한 경쟁력을 갖지 않았음에도 저임금과 고환율이라는 쌍검을 필두로 '단기적'으로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거의 끝이 보인다. 더 이상 내려갈 임금도 없을 뿐더러, 더 이상의 고환율도 시장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판국에 기업들은 수백조 원에 이르는 이익잉여 유보금을 가지고도 선뜻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당연하다. 지난 수 년 간과 같은 기업 환경이 절대 재현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엄청난 위험이 감수해야한다는 것을 대기업들 스스로 모를 리가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를 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다 더 안전한 투자를 원하고 있다. 


안전한 투자라면, 바로 '사회간접자본' 투자만 한 것이 없다.


인천공항이든, KTX든, 의료서비스든. 이것들은 국가가 사라지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항이나 KTX야 물론 '독점'까지 덤으로 제공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의료서비스 또한 그에 못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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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은 대기업의 눈으로 현재 우리나라 의료시장을 바라 보는 것은 류현진이 리틀 야구에서 투수로 기용되는 정도 만큼의 경쟁력 차이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의료시장은 전국민 개방의료보험제도라는 '그린벨트'가 막아주어 독자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그 시장에 이제 '자본'이라는 늑대가 침입하게 된다는 뜻이다.


예전 동네에는 구멍가게가 있어서, 가게와 연결된 살림집 방에 있는 할머니가 손님이 오면 문을 열어 계산을 하는 그런 가게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구멍가게는 최신식의 깨끗하고 편리한 편의점이 점령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자본'의 역할을 볼 수 있는 좋은 예다.


물론 편의점이 과거 구멍가게에 비해서 훨씬 깨끗하고 좋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편의점은 그동안 솔솔찮던 노인 노동을 말 없이 빼앗아 감으로써 노인 빈곤을 부추겼을 뿐만 아니라 과거 구멍가게에 비해 더 많은 비용(투자 비용+운영 인건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로 부터도 당연히 더 많은 추가 부담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단순히 '자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편의점'이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구멍가게는 자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써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편의점에서의 가격 인상 정도는 용인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는 않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이것이 '자본'을 앞세운 시장 침탈이라는 측면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의료민영화가 진행되면 빠른 속도로 동네 병원들은 사라지고 '자본'을 앞세운 일종의 프랜차이즈 병원이 들어설 공산이 크다. 그래도 원장님 소리 듣던 동네의원 의사들은 그냥 '자본'에 고용된 페이 닥터로 전락(이 적당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하게 될 것이고, 자신의 위치 사수를 위해 지금의 편의점 점주처럼 훨씬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민영화된 의료시장은 분명히 더 높은 '비용'을 청구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더 많은 진료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또 다시 '민영 의료 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는 데 있다. 우리가 지금 구멍가게와 편의점을 놓고 선택을 할 기회가 없어졌듯이 의료 민영화가 진행된다면 기존 국민의료보험으로 진료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사라지거나 있다하더라도 진료의 품질은 현저히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신 의료 시장'은 생각보다 클 것이고, 또 영원할 것이다. 그래서 '잉여 자본'이라면 눈독을 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인정한다면 '의료 서비스'에서는 '효율'보다 '공평'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믿기 때문이고, 또한 이런 인간 가치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의료 서비스에서조차 '자본'이 이윤을 빼 가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金氷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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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