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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7. 27. 월요일

아직은투아웃





이야기 하나,


5년이 조금 넘었다. 타고 다니는 차의 조수석 앞유리에 어떤 이의 사진을 붙이고 다니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해 사진은 아니다. 그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엽서로 만든 것이라고 말해야 옳겠다.(그냥 사진이라 하자) 앞유리에는 그의 사진이, 차의 뒷유리에는 그를 좋아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단체의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다.


우여곡절이라고까지 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사진으로 인해 겪은 일은 많다. 어떤 이에게는 유난 떤다는 소리를 들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웃기는 놈이란 소릴 들었다. 친한 친구에게는 차라리 부모님 사진을 붙이고 다니라는 조언을 들었고 때로는, 이쯤 시간이 흘렀으면 이제 떼어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소한 주정차 문제로 입씨름을 하는 때, 이해하기 힘든 불쾌하고 적대적인 반응을 대한 경우가 많았다. 경미한(?) 교통 위반 건에 대해 불이익을 당한 적도 있다.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만큼 냉랭한 표정의 경찰관에게 부담스러운 금액의 딱지를 끊은 경험도 없지 않다. 앞유리의 사진을 보고서 순간적으로 눈에 띄게 표정이 바뀌는 사람들을 본 것은 여러 번이다.


몇 번인가는 사진 위 유리에 뱉어진 침을 닦아낸 적도 있다. 전에 타던 차의 경우, 한 번은 돌이나 망치 같은 것으로 내리쳤는지 유리 한쪽에 금이 간 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차량 카메라가 많아진 덕분에 그런 일은 사라졌다. 그렇게 5년여 동안 나는 그의 사진을 붙이고 차를 운전했다.


이런 적도 있었다. 언젠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차돼 있던 내 차 그의 사진 앞에 음료수가 놓여 있었다. 순간 울컥 했었다. 그 일로 한동안 기분이 좋았다. 무척이나 좋았다. 한 번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 워셔액 한 통을 서비스로 받기도 했다. 의정부 어딘가에서는 기름 5만 원어치 넣고 세차에 광택 서비스를 받은 기억도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사진을 쳐다보고 악수를 청해온 적도 몇 번 있었다. 꽉 잡은 손을 묵직하게 흔드는 그들의 밝은 웃음이 더없이 반가웠다. 주먹을 힘차게 쥐어 보이며 “다음에는 꼭 이겨야죠” 하며 지나가는 이들의 얼굴을 어쩌다 보는 일도 내게는 흐뭇했다. 그렇게 5년여 동안 나는 그의 사진을 붙이고 차를 운전했다.


그게 좋았다. 그렇게라도 그의 얼굴을 한 번씩 보는 게 좋았고 그를 기억할 수 있어 좋았다. 짜증 나고 힘든 세상에서 드물게나마 우리 편을 만나고 서로 반가워할 수 있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 아직은 우리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님을, 비열하고 저능한 저들의 시대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는 않으리란 걸 우리끼리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진정, 그를 좋아했던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소박했던 술자리, 딴지에서 만난 친구 미꽃이 했던 이야기가 잊히지 않는다.



“형님, 그분 돌아가셨을 때 저는 봉하로 갔었거든요.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날 봉하로 몰려들었어요. 차도 사람도 제대로 움직이기조차 힘든 상태였어요. 그날 비도 굉장히 많이 왔잖아요. 형님, 사람들이 그분 영정에 절 한 번 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끝이 안 보이는 거예요. 저도 열 시간쯤 줄을 서서 기다렸거든요. 그런데 형님, 그날 다들 어땠는지 아세요? 그 많은 비를 그대로 흠뻑 맞으면서도 사람들이 아무도 우산을 쓰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아무도 오래 기다린다고 불평 한마디를 않는 거예요. 형님, 이렇게 얘기하면 좀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저는 그걸 보면서 참 좋았어요. 물론 너무나 슬프지만 그래도 우리 편이 이렇게 많구나, 정말 많았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어요. 외롭지 않았구요. 저는 그날 그래서 행복했어요....”




이야기 둘,


지난 토요일 청계천 주변의 어느 이면도로에 주차하기 위해 차를 세웠다. 노면의 주차선에 차를 댄 후 이십여 미터쯤을 걸어갔을까?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이든 노인이다. 일흔은 넘어 보인다. 차를 언제까지 주차시킬 건지 내게 묻는다.


거주자우선주차구역인 줄 알고 잠깐 댔는데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인 모양이다. 상관없다. 다른 곳에 주차하면 된다. 차를 세워둘 곳은 많다. 차로 되돌아가 올라탄 후 시동을 걸고 있는데 차를 뺄 것인지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그러면 기본요금 500원을 달라고 한다. 어이가 없다. 그렇게 주차비 500원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투아웃: 무슨 소립니까? 차를 지금 빼잖아요?


주차옹: 그러니까 기본요금만 달라는 거 아니오. 바로 뺀다고 하니까.


투아웃: 그게 아니고, 제가 주차를 한 게 아니잖아요. 유료니까 안 대겠다는 거 아닙니까?


주차옹: 당신이 차를 세워놓고 저만치 갔잖어. 그게 주차한 거 아니믄 머여?


투아웃: 그게 어떻게 주찹니까? 왜 이렇게 억지를 쓰세요?


주차옹: 억지를 누가 쓴다고 그래. 주차를 했으면 돈을 내는 게 맞는 거지.


투아웃: 그게 어떻게 주차냐구요? 시간도 1~2분도 채 안 됐는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막무가내로 계속 손을 내밀며 주차비를 내놓으라 소리치는 그 노인이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나름 참아가며 계속해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노인의 거친 욕설이었다.



주차옹: 새파랗게 젊은 놈이 무슨 돈 500원을 아끼겠다고 이렇게 어거지를 쓰고 있어! 어린 놈의 자식이... 나이 먹고 이런 일 한다고 사람 우습게 보는 거여 뭐여! 차를 잠깐이라도 세웠으면 주차비를 내는 게 당연한 거지 젊은 놈이...



그렇게 노인의 말은 점점 심해져 갔고 버텨보던 나는 결국 동전 다섯 개를 세어 손에 쥐었다. 더이상 끌어봐야 어차피 될 일이 아니었다.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는 빨리 빠져나가는 게 최고라는 걸 알고 있다. 순간적으로 몹시 화가 나고 별생각이 다 들지만 그냥 주고 가자는 생각을 했다.


시설관리공단에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니지 싶다. 담뱃값이나 벌어보자고 하는 일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잖은가? 내가 쥐새끼랑 똑같이 될 수는 없잖은가? 그래. 어차피 이길 수도 없는 상대이고 또 이겨 보았자 내 기분만 하루 종일 찜찜할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래도 그렇지 씨바,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닌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내를 감추기는 힘들었다. 노인의 손바닥에 동전을 놓는 내 손길은 거칠었다. 동전이 하나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동전을 내고 차를 빼는 순간 마지막으로 던진 내 말은 더 거칠었다. 솔직히 막말 수준이었다. 그 노인의 자식이 들었다면 아마 날 죽이려 들었을지 모른다. 인정한다.



투아웃: 영감님, 앞으로는 차라리 구걸을 하세요. xx, 이렇게 젊은 놈들한테 쌍욕 해가믄서 돈 뺏지 마시구요. 알았어요? xx 앞으로는 이러지 말고 구걸을 하시라구요...



그만큼 분했다. 돈을 주고 가면서도 조용히는 못 가겠다는 기분이었다, 도저히. 이 글을 읽는 다른 이들이 당시의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그냥은 못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다. 그렇게라도 한마디는 기어이 해야겠다 싶었다. 아니 솔직히 얘기해, 그 말이 그냥 마구 튀어나왔다는 게 맞겠다.


결국 그렇게 한마디를 던지고서 차를 후진시켜 빼낸 후 이제는 갈 길로 가려고 하는데 그 노인이 급하게 차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처음엔 나에게 그리고 곧이어 운전석 앞의 사진을 향해서도 번갈아 삿대질을 해가며 욕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들어주기 힘든 욕들이었다. 욕설을 퍼붓던 노인은 나중에는 분이 안 풀리는지 사진이 있는 쪽을 향해 아래 타이어를 발로 차기도 했다.



주차옹: 처음에 차를 댈 때부터 딱 알아봤다. 이 xx 같은 새끼야. 차에다 저런 xx 같은 새끼 사진을 떡하니 붙이고 다니는 xxx 놈이니 오죽하겠냐? 이 xxxx xxx은 새끼야... 김정일이한테 나라 팔아먹다 뒤진 xxx 새끼가 ... 빨갱이 새끼들이 xxxx. 무덤에다 똥물을... xxx. 다 망해가는 나라 이제야 겨우 다시 살려 놓고 있는 마당에 저런 더러운 빨갱이 새끼들이... 대통령 하는 내내 뇌물 받아 처먹다가 나중에 그게 밝혀지니까. 야 이 xxx 야. 새파란 노무 새끼가 어디 돈을 땅바딕에 패대기를 치고... xxxx 같은 xx 새끼들아. 너희 같은 새끼들 때문에 이 나라가 어떻게 먹고살게 된 나란데...


투아웃: ......



그 느낌은 참... 그냥 더러운 기분이었다고 하자. 나도 욕먹을 짓을 했으니까. 그런데 내 욕은 까짓거 그런가 하겠는데, 나도 잘못한 게 있으니 참을 수 있는데, 그를 욕하는 건 견디기가 힘들었다. 참아내기 어려운 욕설을 듣다 노인이 사진에 발길질을 하고 침을 뱉으려 할 때는 좀.... 솔직히 살의를 느끼기도 했었다. 결국 참담한 마음으로 노인의 욕설을 뒤로한 채 차를 돌려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그에게 미안했다. 그게 제일... 아팠다. 그 일이 있은 지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한동안 그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았다. 아니 울적했다. 후회하고 있다. 주차비 500원 때문에 그렇게 그의 사진을 떼어냈다. 그에게 미안하다.



이야기 셋,


1992년의 일이니 벌써 23년이 지났다. 여름, 이맘때로 기억한다. 지리산 쌍계사를 지나 쇠점터라는 곳에 있는 한 야영장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개인적인 인연은 아니었고 어떤 정치단체의 행사와 일정 때문이었다. 한밤중에 우리 일행 네 명이 술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텐트에 그가 불쑥 찾아왔다. 막걸리 다섯 병인가를 들고.


밖에서 들으니 우리들의 이야기가 재밌더란다. 그래서 들어왔단다. 몹시 뜻밖이었지만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히 놀라울 만큼 반갑고 신기한 상황이었다. 한 시간이 넘게 이어진 그 여름밤 텐트의 술자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곧 옆 텐트의 청년들이 합세하고 또 다른 이들이 다투어 모여드는 바람에 술자리는 결국 불을 밝힌 야영장 한가운데로 옮겨졌다.


시간이 흐르고 모깃불이 다 꺼지고 해가 뜨기 직전까지 이어졌던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 스무 명이 넘는 이십 대의 젊은이들과 밤을 세워가며 격의 없이 토론하고 술을 마시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그의 모습. 스무 살 가량인 나이 차는 아랑곳없이 나이 어린 상대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해주고 차분히 조언을 건네던 그의 모습.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던 그의 모습.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르자 불콰한 얼굴로 "저 더레 퍼러런 솔니펄 보라~~~" 로 시작되는, 그의 18번 <상록수>를 부르던 모습. 함께 한 시간 내내 전해져 오던 그의 담백함과 소탈함. 그리고 상대를 무장해제하게 만들던 특유의 너털웃음. 그러나 무엇보다 내게 기억나는 것은 우리 일행의 텐트로 들어선 그가 악수를 청하며 꺼낸 자신에 대한 소개 인사였다.



국회의원 하다가 낙선해서 지금은 놀고 묵는 노무현이라 캅니다. 반갑습니다.”



23년 전에 만난 내 마음속 대통령. 오늘 그의 사진을 떼어냈다.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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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투아웃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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