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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7. 28. 화요일

도비공





0.


수많은 감정과 관습, 사회적 유대관계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인간의 행동을 오직 경제적 유인이라는 한 가지 원인에서 발생한다는 터무니없는 합리적 인간 모델로 단순화한 주류 경제학은, 다시 시장이라는 신비한 공간을 상정하고 자신들의 논의를 이어간다. 그들은 시장이 다양한 참여자들의 경쟁 속에 수요량과 공급량의 변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완벽한 자원 분배의 공간이며,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에 정부나 사회와 같은 외적인 요소는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칼 폴라니의 용어를 빌어 ‘자기조정 시장 모델’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한술 더 떠 주류 경제학자들은 시장경쟁이 가장 합리적인 원리이기 때문에 사회의 모든 영역이 시장경쟁의 원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공공 분야는 민간기업에게 소유권을 넘겨야 더욱 경쟁력 있는 시스템으로 바뀔 수 있으며, 전통적으로 시장 원리와 거리를 두었던 교육, 학문 연구, 의료 등의 영역도 시장 경쟁 원리를 받아들여 완전히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각종 공기업의 민영화가 추진되고, 국민연금·건강 보험 등 사회보장 제도 역시 합리화라는 명목 아래 민영화의 움직임이 물 밑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영리 병원 추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제고사 실시 등 사회 전 분야가 이른바 시장 원리에 따라 재편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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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겨례>


그러나 주류 경제학이 선전하는 장밋빛 유토피아와는 달리 현실은 혼란과 부작용만 가중될 뿐이다. 공공분야가 무력화되면서 가난한 이들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지만, 민영화를 통해 이미 독점적 지위를 구축하고 있는 공기업을 접수한 거대기업들의 부는 끝 모르고 상승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처음에 설정한 가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연구자의 자세라 할 것이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꽁꽁 틀어막고, 취객의 헛소리처럼 시장주의 유토피아 예찬만 반복할 따름이다. 유토피아의 어원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주류 경제학의 시장주의 유토피아야말로 가장 그 어원에 충실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주류 경제학의 시장 모델의 원리와 문제점은 주류 경제학의 근간이라 할 만큼 본질적인 내용이므로, 이 글은 대략 네 부분에 걸쳐 진행할 계획이다. 첫째로는 주류 경제학의 시장 예찬과 자기조정 시장의 원리를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하고자 했던 밀턴 프리드먼에 대한 소개, 다음으로는 몇 가지 사례를 바탕으로 밀턴 프리드먼의 문제점을 살펴볼 예정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들의 예찬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실패하는 상황에 대해 살펴볼 것이고, 마지막으로 ‘자기조정 시장’의 허구를 날카롭게 지적한 칼 폴라니의 사상을 ‘거대한 전환’을 중심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1.

 

주류 경제학자들은 ‘합리적 인간 모델’의 발명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형의 인간 행동을 가정하며 방정식 만들기에 탐닉하였다. 그런 그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환상은 이른바 자기조정 능력을 갖춘 ‘완전경쟁 시장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맨큐는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고전파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1776년에 저술한 <국부론(國富論,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ure)>에서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을 했다. 그것은 바로 가계와 기업들이 시장에서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끌리는 것처럼 행동하여 바람직한 시장성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경제학의 목표 중 하나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손’이 어떻게 이런 마술을 행하는지를 배우는 데 있다. 여러분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동안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활동을 조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가격임을 알 것이다. 어느 시장이든지 구매자들은 가격을 보고 얼마나 구입할지를 결정한다. 판매자들도 가격을 보고 얼마나 시장에 내놓을지를 결정한다. 그 결과 어떤 재화의 가격은 그 재화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나타낼 뿐 아니라 그 재화를 생산하기 위한 비용의 의미도 포함하게 된다. 가계나 기업은 모두 물건을 사고팔 때 가격을 고려하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이 초래하는 사회적 이득과 사회적 비용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가격은 개별 의사결정자들로 하여금 대부분의 경우 사회복지를 극대화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바로 아담 스미스의 위대한 발견인 것이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손의 이러한 조정기능에 관하여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른 가격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의 조정기능을 제한하는 것과 같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세금의 부과가 왜 자원의 배분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세금은 가격을 왜곡시키고 가계와 기업의 의사결정을 왜곡시킨다.(2015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담배 가격 인상 정책에 대해 어째서 경제학자들은 침묵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 필자 주) 특히 임대료 규제와 같은 가격규제가 어째서 큰 폐해를 초래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도 짐작케 한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지 않고 중앙정부의 계획담당자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 경제계획 담당자들은 자유로운 가격이 반영되어야만 하는 정보들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손 하나, 즉 보이지 않는 손을 묶어놓은 채 경제를 관리하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했던 것이다.

- 맨큐 경제학 -



이 글에서는 우선 명백한 오류 하나가 눈에 띈다. 아담 스미스는 가격이 개별 의사결정자들로 하여금 대부분의 경우 사회복지를 극대화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한다는 위대한 발견을 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 글에서 논한 바 있고(관련기사: 신자유주의 거짓말의 도구, 경제 선생님 아담 스미스)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니만큼 따로 내용을 추가해서 다른 장에서 더욱 자세히 논할 예정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참여자들이 경쟁에 참여하기 때문에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맨큐의 설명을 듣도록 하겠다.



경쟁시장이란(competitive market)이란 소비자와 판매자가 매우 많아서 개별 소비자나 판매자가 시장가격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시장을 말한다. 다수의 판매자가 비슷한 아이스크림을 팔기 때문에 특정한 판매자가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어떤 판매자도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할 이유가 없으며(강조는 필자, 강조한 이유는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다), 혹시 다른 가게보다 가격을 높게 책정한다면 소비자들이 다른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살 것이다. 한편, 개별 소비자의 아이스크림 구입량은 아주 적기 때문에 역시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 맨큐 경제학 -



시장에서 구성원들의 경쟁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은 경제학의 상징이라 부를 수 있는 수요 공급 곡선으로 설명된다.



그림을 보면 시장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점이 하나 있는데, 이 점을 균형(equilibrium)이라고 하고, 거래량을 균형거래량(equilibrium quantity)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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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균형은 여러 종류의 힘이 평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라고 정의되어 있다. 시장균형도 바로 이런 상태다. 균형가격에서는 소비자들이 구입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수량이 판매자들의 공급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수량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가격에서 소비자들은 원하는 만큼 재화를 살 수 있고 판매자들은 원하는 만큼 재화를 팔 수 있으므로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만족스런 상태다. (중략) 이렇게 다수의 소비자와 판매자의 행동은 자동적으로 시장가격이 균형가격을 향해 움직이도록 만든다. 그리고 일단 균형에 도달하면 모든 소비자와 판매자가 만족하므로 더 이상 가격이 오르거나 내릴 이유가 없다. 얼마나 신속하게 균형이 달성되는지는 시장에 따라, 가격이 얼마나 신속히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자유로운 시장에서는 대부분 가격이 궁극적으로 시장균형을 향해 움직이므로 물량부족이나 공급과잉 상태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친다. 이와 같이 어느 재화의 가격이 그 재화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도록 조정되는 현상을 수요 · 공급의 법칙(law of demand and supply)이라고 한다. 

- 맨큐 경제학 -



사실 수요·공급의 법칙은 중학교 교과과정에서 소개되는 것이므로 여기서 굳이 그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주류 경제학은 이러한 수요·공급 법칙의 작용으로 사회는 효율적인 자원의 배분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해변에 접한 토지를 배분하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해변에 있는 토지의 양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누구나 해변에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누가 이 자원을 사용할 것인가? 누구든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려는 사람이 해변의 토지를 차지할 것이다. 해변에 위치한 토지가격은 이 토지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할 때까지 조정된다. 이와 같이 시장경제에서 가격은 희소자원을 배분하는 장치가 된다.


마찬가지로 가격은 누가 어떤 재화를 얼마나 생산할지를 결정한다. 농업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식량이 있어야 생산할 수 있으므로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농부가 되고 어떤 사람은 농부가 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시장경제에서는 정부가 이런 결정을 하거나 적정한 양의 식량공급을 계획하지 않는다. 누가 농장에서 일할지는 수백만 근로자의 직업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산된 의사결정은 가격을 기초로 훌륭하게 작동한다. (강조는 필자) 식량가격과 농업 부문 임금의 변동을 통해 충분한 수의 근로자가 농장에서 일하도록 조절되는 것이다. 

- 맨큐 경제학 -



길게 인용한 까닭은 시장의 조정 기능과 관련된 이 부분이 주류 경제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대목이기 까닭이다. 누군가가 이 대목에 대한 주류 경제학의 설명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 만약 그가 비전공자라면 대번에 이해력이 떨어지는 무식한 인간 취급을 당할 것이고, 전공자라면 사악한 사회주의 내지는 진즉 한물간 케인즈 따위나 숭배하는 비주류 취급을 당할 것이다.


주류 경제학 가운데에서도 흔히 신자유주의로 분류되는 이른바 ‘시장 원리 주의자’들은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이 이와 같이 신비스럽고 효율적인 자원 배분의 효과를 이룩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시장과 무관하다고 여겨져 왔던 사회의 다른 모든 영역, 이를테면 교육, 복지, 학문, 의료 등도 시장의 원리를 받아들여 자기조정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오늘날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국가들마다 앞다투어 추진 중인 공기업 민영화, (의도된)공교육 부실화 및 귀족형 사립학교 난립, 대학의 취업 연수원화 등의 사회 개혁(?, 개악?)의 선전대라 할 수 있다.


이들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이라는 이름을 접하게 된다. 이들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이론의 정립자라 할 수 있고,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을 무한히 신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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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먼(좌) / 하이에크(우)


이를테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의 심복 부하 순욱과 허저처럼 하이에크는 보다 이론가라는 느낌이 강하고, 프리드먼은 저돌적인 행동가라는 느낌이다. 하이에크는 경제학자로는 드물게 역사와 인문학에 대한 이해 수준이 깊고 지식도 폭넓은 편이다(복거일과 같은 자유지상론자가 기회만 있으면 하이에크를 칭송하는 까닭은 현학적인 취미를 일정부분 채워주는 하이에크 특유의 글쓰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2차대전 이후에 하이에크가 시카고 대학에서 12년간 머물며 연구생활을 한 것으로 미루어, 같은 시기 시카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밀턴 프리드먼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곳곳에는 본인이 하이에크의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하이에크는 원론적 차원에서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 역시 아카데믹한 논쟁으로 흐르기 쉽다. 한 마디로 일반 독자들에게는 재미없는 내용이다. 그에 비해 밀턴 프리드먼은 사회 각 영역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들쑤시고 다닌 탓에 언급할 내용이 한둘이 아니다. 예를 들면 최근 최저임금 인상이 이슈인데, 경제 신문에 최저 임금 인상은 실업을 유발할 뿐이라는 주류 경제학 진영 칼럼니스트들의 글을 살펴보면 1962년 출간된 프리드먼의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의 내용을 표절에 가까울 정도로 그대로 답습한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 중에서도 극단적인 시장주의자, 이른바 신자유주의자들에게 프리드먼은 이데올로기의 창시자일 뿐만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 지침까지 일러주는 전략가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2015년 7월 3일자 ‘한국경제’에서 김선태 논설위원은 ‘시사이슈 찬반토론,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타당할까요?’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정년연장과 대학졸업생의 급증으로 청년 실업 문제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질 게 뻔하다. 이런 와중에 80%에 육박하는 최저임금 인상은 현 상태의 우리 경제가 감내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수출 증가로 한참 경기가 좋고 높은 성장률을 보일 때라면 모르지만 올해 우리나라 경제는 3%대 성장도 어려운 상황이다. 엔저로 수출은 줄고 메르스 등의 여파로 내수에도 한파가 분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최저임금만 큰 폭으로 올리는 것은 불가피 기업실적을 악화시키고 이는 채용여력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보단 낮은 수준에서라도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은 더욱 구직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기업들은 임금이 싼 나라를 찾아 더욱 해외로 공장을 옮기려 들게된다. 최저임금 인상은 얼핏 모든 근로자에게 좋을 것 같지만 미래의 근로자가 되려는 청년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한국 경제’ 6월 7일자 사설에는 아예 이런 제목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질타한다. ‘최저임금 올리면 실업자 늘어난다는 것 정말 모르나’



생산력의 뒷받침 없는 최저임금 인상이 곧 실업률 상승을 의미한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원리다. 지난달에는 중소기업 70% 이상이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과 사업을 축소하겠다는 설문결과도 나왔다. 신규 채용 철회·채용인원 감축(40.7%)과 기존 고용인원 축소(9.3%)가 불가피하다. 그런 중소기업이 절반에 달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타격도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더 커져 영세기업 근로자의 실직 위험이 더 높아진다. 생산성이 뒷받침 안되는 모든 임금인상은 거품일 뿐이다.



‘매일 경제’ 4월 9일자 기획특집 ‘특종! 틴매테 엿보기, 최저임금 올리면 실업률 덩달아 들썩’에서도 같은 논지의 기사를 내놓았다.



정부가 시장 임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책정하고 임금이 그 이하로 내려가지 않도록 규제한다면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은 전보다 늘어날 것이고, 근로자를 고용하려는 사람들은 줄어들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의 공급량은 늘어나는 반면 수요량은 감소해 초과공급 현상이 나타납니다. 즉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노동의 공급 초과가 발생해 실업자가 늘어나고 이는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또,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정부가 임금을 지불하도록 규제한다면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도 일을 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고용주들도 이들을 고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 전체의 효율성은 저해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최저임금제도를 시행할 때 시장에서 형성된 임금보다 낮은 가격으로 최저임금을 책정한다면 시장에서는 이미 그 가격보다 높은 수준에서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결정되므로 정책을 시행하는 효력이 없습니다.



다 같은 내용의 문장에 토씨나 조금 바꿔서 기사를 생산하는 수준이니 인용은 여기서 그만하려 했으나 매우 섹시한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어 하나만 더 인용하겠다. 내가 경제학의 개구라 시리즈를 연재하니까 몇몇 분이, 일부 극단적 주장을 하는 경제학자들의 사례만을 가지고 경제학 전체를 매도한다는 내용의 댓글을 단 바 있는데, 그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내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5월 9일 ‘데일리안’에 윤상호 한국경제원 연구위원이 기고한 글이다. ‘나는 경제학자다. 고로 최저임금제에 반대한다.’



최저임금제도는 지나친 저임금으로 말미해 일정한 수준의 안정된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을 막고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착취를 근절시키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제도의 경제학적 기반 및 당위성은 매우 취약하다. 최저임금제도의 본질은 시장에서 결정된 균형가격이 특정 가격보다 하락할 수 없도록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최저가격제에 있다. 대다수 대학교의 입문경제학 과목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들은 최저가격제를 잉여공급을 초래해 시장기능을 교란시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하는 최악의 정책일 뿐이다.



이 사람들이 한결 같이 이야기하는 ‘최저임금제는 실업을 늘릴 뿐이다’라는 무슨 근거에 바탕을 두었을까? 최저임금제 실시와 실업률 증가 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논문이라도 있는가? 윤상호의 글에 단서가 보인다. ‘대다수 대학교의 입문경제학 과목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들은 최저가격제를 잉여공급을 초래해 시장기능을 교란시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맨큐의 경제학을 찾아보았다.



최저임금제의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노동시장에 대해 살펴보자. (a)는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시장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적용되는 노동시장을 나타낸다.(a에 해당하는 도표를 찾지 못해 삽입하지 못했습니다. - 필자 주) 근로자들이 노동공급을 결정하고 기업은 노동수요를 결정하며 정부의 개입이 없으면 대부분의 경우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도록 임금이 조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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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는 최저임금제가 적용되는 노동시장을 나타낸다. 그림에 표시된 것처럼 최저임금이 균형임금보다 높으면 조동의 공급량이 수요량을 초과하여 실업이 발생한다. 따라서 최저임금제가 시행되면 직장이 있는 근로자들의 소득은 상승하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소득은 하락한다. 

- 맨큐의 경제학 -



맨큐의 경제학을 뒤져보아도 최저임금이 실업을 유발한다는 근거는 그래프 설명 외에는 찾기가 힘들다. 물론 그래프가 경제상황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는 장점은 있으나 적어도 ‘최저임금제가 실업을 유발한다’와 같은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제도와 실업률 상승과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데이터를 내놓는 것은 글쓰기의 기초 중의 기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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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큐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그래프

출처 - <ANTONIO FATAS>


지면 관계상 데이터를 내놓을만한 여건이 안 된다면 적어도 어떤 경제학자의 연구 결과가 그러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지 소개라도 해야 한다. ‘경제 교과서에도 나온다’ 정도를 근거로 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경제 교과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맨큐 경제학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래프와 추정만이 나타날 뿐, 의미 있는 데이터는 찾아볼 수 없다. 실은, 이들의 주장이라는 것은 결국 밀턴 프리드먼의 일방적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최저임금법은 선의의 지지자들이 품은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정책의 가장 명백한 사례라 할 만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최저임금법에 찬동한 많은 사람이 극도로 낮은 임금에 개탄했으니, 그들은 극도의 저임금을 빈곤의 증거로 간주했고 일정 수준 이하의 임금을 불법화함으로써 빈곤이 감소하리라고 기대했다. 실제로는, 최저임금법에 무슨 효과가 있다면 이는 분명 빈곤을 증대시키는 효과일 것이다. 국가는 최저임금을 법으로 정할 수 있다. 이전에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료를 주고 고용했던 사람들 모두를 이제 최저임금 수준에서 고용하라고 고용주들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은 분명히 고용주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저임금제 도입의 효과는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실업률을 더 올라가게 하는 것이다. 저임금이 사실상 빈곤의 표시라고는 해도, 최저임금제로 인해 실업상태에 빠진 사람들이야말로 최저임금제 도입 이전에 받았던 소득 - 최저임금제에 찬성했던 사람들의 눈에는 쥐꼬리만 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을 포기할 여력이 가장 적은 사람들인 것이다. 

-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



최저임금제에 관련된 논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다른 장에서 따로 논할 생각이므로, 여기에서는 다만 밀턴 프리드먼의 한 마디가 오늘날 주류 경제학 가운데에서도 경제 원리주의자라 부를만한 이른바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들은 프리드먼의 주장을 어떤 식으로 확대 재생산하는지만 눈여겨보도록 하자. 보다시피, 프리드먼이 한 마디 하면 다른 학자들은 무비판적으로 그의 주장을 경제학 원론 같은 곳에 수록하고, 현실에서 비판자들과 쌈박질하는 칼럼니스트들은 수긍할만한 자료를 제시하기는 커녕, 프리드먼의 주장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비판자들에게 이런 간단한 이치도 모르냐고 일갈한다. 그러나 이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반복되는 순환논증의 과정에서 과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검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내 말에 반박하고자 하는 경제학도가 있다면 최저임금제 실시와 실업률 증가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연구자료를 하나라도 들이밀고 반박하길 바란다.


사회 모든 분야의 시장화를 추진했던 프리드먼은 정부가 손을 떼고 민간의 경쟁에 넘겨야 하는 분야를 정리해 놓았다. 내용이 길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용하도록 한다. 이 목록은 사실상 오늘날 자유방임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거의 모든 정책의 원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농업을 위한 패리티 가격(정부가 다른 물가와 균형을 이루게 결정하는 농산물의 가격, 패리티 계산에 의하여 결정한 가격으로, 농산물 생산자의 소득을 다른 생산자의 소득과 균등하게 보장하여 주기 위하여 책정한다. - 네이버 사전 참조) 지지 제도.


2. 현재 시행 중인 석유수입할당, 설탕할당 등의 수입관세 또는 수출제한.


3. 정부의 산출량 통제, 예를 들어 농업 프로그램을 통한 농산물의 재배 규제나 텍사스 철도위원회에 의한 산유량의 할당.


4. 뉴욕에서 아직 실시되고 있는 것과 같은 주택임차료 통제나 제2차 세계대전 중이나 그 직후에 시행되었던 것과 같은, 더욱 포괄적인 가격 및 임금 통제.


5. 상업은행의 요구불예금에 대한 0퍼센트의 법정 최고이율이나 저축성 예금 또는 정기예금에 고정된 법정 최고이율과 같은, 법정 최저임금제나 법정 최고가격제.


6. 주간통상위원회에 의한 수송규제처럼 여러 산업에 대한 세부적 규제, 이 규제는 당초 철도 산업에 도입되었을 때에는 기술적 독점이라는 이유로 어느 정도 정당화되었으나 지금은 어떤 수송수단에 대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또 하나의 예는 은행업에 대한 세부적 규제이다.


7. 연방통신위원회에 의한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통제도 위와 비슷하지만, 이는 검열과 자유언론에 대한 침해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각별히 언급할 가치가 있다.


8. 현재의 사회보장제도, 특히 (a) 자기 소득의 일부에서 퇴직연금부담금을 납부할 것과 (b)공기업이 운영하는 연금에만 가입할 것을 사실상 강요하는 노령 · 퇴직연금제도


9. 많은 시와 주에서 채택한 것처럼, 면허를 가진 사람들만 특정사업이나 정규직,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면허 규정으로서, 면허가 그 활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납부할 세금의 영수증 이상의 의미를 띠는 경우.


10. 소위 ‘공영주택’이나 연방주택청 및 재향군인청에 의한 저당보증 등과 같이 주택건설 촉진을 도모하는 보조금제도.


11. 평시 징병제. 자유시장에 적합한 제도는 지원병제도, 즉 복무할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다. 필요한 수의 장정을 끌어 모으는 데 필요한 돈이 얼마건 간에, 이를 지급하지 않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현재의 제도는 불공정하고, 자의적이고, 자기 인생을 설계해나가려는 젊은이들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며, 모르기는 해도 시장이 제공하는 대안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들 것이다(전시의 예비 병력을 공급하기 위한 일반적 군사훈련은 그와는 별개의 문제로서, 자유주의적 입장에서도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12.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국립공원.


13. 영리 목적의 우편배달업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


14.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정부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유료도로. 


 -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




항목 중에 11번 징병제 폐지가 눈에 띈다. 프리드먼 본인도 이와 관련해 나름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의 어느 무렵 나는 구제불능의 집산주의자(국가권력의 개입 없이 자유로운 협동조합에 기초한 사회를 지향하는 사회주의 일파)인 리언 케인절링과 위스콘신 대학에서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그가 생각한 결정타는 내 견해가 지독하게 반동적이라고 조롱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 이 책 2장의 말미에 있는, “앞서 개관한 원리들에 비추어 설득력 있게 정당화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정부활동들의 목록(위에 인용한 목록을 말한다 - 필자 주)을 읽어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그가 가격지지나 관세 등에 대한 나의 혹평을 읽어나가는 동안은 청중인 학생들의 반응이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11번째 항목인 ‘평시 징병제’에 이르러 문제가 발생했다. 11번째 항목에 표현된 징병제에 대한 나의 반대가 열렬한 박수를 받게 되자, 그는 청중의 지지를 잃고 토론에서도 패하게 되었다.

-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



1960년대 후반이면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을 상황이다. 징집을 눈앞에 둔 대학생들에게 징병제 폐지는 다른 무엇보다도 관심이 가는 이슈였을 것이다. 평소 밀턴 프리드먼의 말씀이라면 자다가 잠꼬대하는 것도 어록으로 만들 기세인 국내 경제학자들이 어째서 모처럼 좌파들의 호응도 끌어들일 수 있는 이 항목에만큼은 묵묵부답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미국의 상황과 우리나라의 상황이 약간 다르게 때문에 위의 목록 가운데 몇 개의 항목은 솔직히 나에게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밀턴 프리드먼이 정부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항목들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의 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최저임금제, 연금 제도 등을 들 수 있다. 밀턴 프리드먼이 <자본주의와 자유>를 발간한 지 반 세기가 흘러 드디어 이 땅에도 그를 신봉하는 일련의 테러리스트들은 시장과 효율을 내세우며 국가가 추진하는 모든 복지 정책을 폐지해야만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원래는 이 글에서 밀턴 프리드먼 주장을 하나하나 살펴볼 계획이었으나 무한정으로 분량이 늘어나는 바람에 그에 대한 비판은 다음 글로 넘길 예정이고 이 글에서는 자기조정 시장 원리와 밀턴 프리드먼의 소개 정도로 마무리하겠다.








 도비공

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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