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9. 05.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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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1년 애플
잡스가 리바이스 501 호주머니에서 아이팟을 꺼내 들고 있다.
2001년 10월 23일 센프란시스코 예르바 부에나 센터 애플 키노트 발표 현장, 당시 Yahoo 등 닷컴기업들의 거품이 붕괴 중이었고 한달 전 벌어진 911 테러의 어두운 분위가 미국 전역에 지속되고 있었다.
당시 애플은 잡스가 1997년 돌아온 이래 iMac의 성공으로 서서히 회복중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 윈텔(Windows와 intel PC) 천하 아래 애플은 완전히 망했다가 1998년 ‘본디 블루’색의 반투명 일체형 데스크탑 컴퓨터 iMac을 성공적으로 시장에 선보였다. iMac은 베이지색 일색인 데스크탑 PC와 달리 디자인으로 시장의 뒤통수를 친 제품이었다.
하지만 애플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잡스가 왔다지만 맥이 다시 컴퓨터 시장에서 주류로 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또한 iMac을 어느 정도 성공했다하여도 iCEO(임시 CEO)에서 갓 벗어난 잡스에 대한 신뢰가 온전한 건 아니었다. 1년 전 2000년 7월에 야심차게 발표한 Power Mac G4 Cube가 시장에서 냉담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주류시장에서 밀려난 애플이 성공을 점칠 수 없는 맥 이외의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는 것은 내, 외부적으로 매우 위험해 보였다.
그래서 일까. 2007년 iPhone이 혁명의 시작이라 자신감있게 말했던 때와 달리 2001년 10월 카리스마 대명사인 잡스는 아이팟을 소개하면서 시장에 제대로 된 제품이 없기에 ‘디자인에 자신있는 애플이 만들었다'고 소극적으로 얘기 하였다.
발표는 차분한 가운데 잡스는 10분 정도를 공들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곡을 가지고 다니면서 들을 수 있는 MP3 뮤직플레이어가 지금 현시점에서 꼭 필요한 제품임을 강조한 다음, 어디서든 들을 수 있게 호주머니에 꼭 맞는 제품(Fits in your pocket)을 애플이 만들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리바이스 501 청바지 앞 주머니에서 아이팟을 꺼내 들었다.
2. 1000곡을 주머니 안에, 아이팟
아이팟. 1000곡을 주머니 안에...
토니 파델(아이팟을 처음 설계한 사람)은 하드웨어 마케팅 책임자인 스탄 응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이 새로운 제품(훗날 아이팟이 되는)을 위한 디자인 스토리를 신속하게 만들어 냈다. ‘노래를 주머니 속에’가 이 제품의 슬로건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들 제품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크기와 형태였으니까요” 응의 말이다.
<'조너선 아이브'(리앤더 카지 저) - 8. 아이팟 디자인-노래를 주머니 속에>에서 발췌
아이팟 제품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즉 상품 가치를 스펙이 아닌 크기와 형태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2001년 10월에 탄생한 아이팟 공식 카피는 ‘1,000 Songs in Your Pocket’으로 선보이게 된다.
아이팟의 특징으로‘고용량 하드디스크, 음장효과, 라디오 기능, 녹음 기능’등 기술에 상품 가치를 내세운 것이 아닌, 주머니 안에 음악을 1000곡이나 들고 다닐 수 있다는 단 1 문장으로 아이팟의 정체성을 내세운 것이다. 클릭 휠 Click Wheel* 을 이용한 검색의 편의성 등 음악 재생을 강조하고자 녹음, 라디오 등 부가기능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클릭 휠 CLICK WHEEL
수 백곡을 2인치 작은 화면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기존의 조그만 플러스 버튼으로는 원하는 곡을 쉽게 찾을 수 없다. 곡 리스트를 보면서 엄지 손가락으로 클릭 휠을 휙 돌리면 원하는 곡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애플 마케팅 담당자였던 필 실러의 아이디어로 아이팟에 클릭 휠을 넣게 된다.
아이팟 가격은 $399(당시 환율로 60만원 정도)로 기존 MP3 플레이어 보다 오히려 높은 가격을 책정 했다. 애플 스스로 iPod은 최초의 MP3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현존하는 가장 가치 있는 제품이라 평했다. 제품 발표 직후 $399의 가격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평론가들은 제품을 비판했고 제품 발표를 지켜봤던 누리꾼들은 ‘바보들이 우리 제품에 가격을 매겼다(Idiots Price our devices.)’라고 비아냥거렸다. 맥에서만 지원된다는 말이 더 시장을 어둡게 만들었다. (2003년 4월이 되어서야 윈도우즈 버전 iTunes가 발표되었고 그 이후 판매는 치솟게 된다.)
그러나 시장과 소비자는 아이팟 편이였고 아이폰이 나오기 이전 애플을 다시 태어나게 한 사용자들이 원하는 위대한 상품이 되었다.
3. 양복바지 호주머니의 의미
주머니를 강조한 2005년 iPod 광고
아이팟 슬로건을 보면, 이어령 교수 글 중 호주머니에 대한 문구가 생각난다.
한국의 바지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호주머니가 옷에 붙어 있느냐 없느냐는 꽤 간단한 차이인 것 같지만, 거기에는 벌써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사고의 갭이 놓여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옷에 호주머니를 달 생각을 하지 않고 따로 주머니를 만들어가지고 다녔다.
그러고 보면 ‘호주머니’란 말부터가 혹시 ‘호(오랑캐)의 주머니’, 즉 이방의 주머니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흙속에 저 바람속에'(이어령 저) - 한복바지, 양복바지 중>
이어령 교수 말에 따르면 옷에 기능을 더한 것(과학을 입힌 것)이 호주머니이다. 주머니가 옷 안으로 들어오자 이동의 편의성이 극대화 되고 지갑과 수첩을 넣고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호주머니 하나로 자본(지갑)과 지식(수첩)이 바지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바로 지식과 자본의 이동이 용이하게 된 것이다.
애플은 담뱃갑과 비유되는 제품의 크기와 형태를 통하여 사람의 손과 바지로 상품 가치를 결정하였다. 아이팟은 기존 바지 호주머니 영역에 문화에 까지 지평을 넓게 하였다.
물론 그 시작은 아이팟이 아니었지만.
4. 걸으면서 음악을 듣는다. Walkman TPS-L2
1979 년 소니의 첫 Walkman
개인용 모바일 휴대기기 시장을 만든 회사는 아이팟을 만든 애플이 아니다. 바로 소니다. 음악 애호가였던 소니의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는 장시간 해외출장 시 비행기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지루함을 달래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개인적인 고민을 하고 있었다. 주변을 살펴봐도 이동하면서 간편하게 음악만 재생되는 크기가 작은 제품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1965년 Musicassettes* 출현으로 카세트 테이프 음반 시장은 열렸지만 모바일 음악 플레이어가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카세트 관련 제품은 Cassette Recorder로 녹음 기능을 넣은 손으로 들고 다니기 어려운 제품들 뿐이었다.
Musicassette(MC)
일명 음반 테이프로 음반회사에서 미리 녹음하여 판매하는 음악 테이프, 196 6년 머큐리 음반사(필립스 계열사)는 미국에서 처음 선 보였고, 1968년 85개 기업에서 240만 앨범 이상 판매, 70년대 후반 LP의 인기를 누르게 된다.된다.
들고 다니기 편하도록 간단히 음악을 재생만 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하에 1979년 7월 소니는 개인이 음악을 들고 다닐 수 있는 제품 WALKMAN TPS-L2의 출시한다. 워크맨은 모바일 음악 플레이어 시장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70년대 카세트 기기는 재생보다는 녹음의 용도로 인식되어 명칭 또한 Cassette Recorder(카세트 녹음기) 이었고 Walkman 기획할 당시 소니 임원들은 녹음기능을 뺀 재생기를 누가 사겠냐며 반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료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재생기능을 충분히 즐길 것이다’하며 이부카 마시루를 지지하고 상품화 하도록 밀어붙였고 그 이름하야 카세트 플레이어 Walkman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Walkman은 녹음 등 기능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밖을) 걸으면서 음악을 듣는다.’를 내세워 개인 사용자 경험을 차별화한 제품이었다.
Cassette Tape 규격은 필립스에서 정하고 Cassette Recorder Player 또한 필립스에서 먼저 만들었지만 왕좌는 소니가 앉게 되었다. 바로 사용자가 구매하는 상품을 만든 덕분에 말이다.
5. 소니의 실패
워크맨 Walkman 상표로 4가지 다른 상품을 만든 소니 Sony. 과연 옳았을까?
1999년 음반시장은 격변을 맞이하게 된다. PC 사용자 간 음원을 공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Napster 소프트웨어의 등장으로 LP에서 CD로 안착했던 기존의 음반 시장은 삽시간에 붕괴되고 있었다. Walkman으로 모바일 음악 플레이어 시장을 만들었던 소니는 이에 속수무책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LP 규격을 만든 Columbia 음반 회사를 인수하였는데 불법복제의 온상인 MP3로 플레이어를 만든다는 건 음반 업계(계열사 Sony Music, 음반 제작사, 아티스트 등)와 상충하는 것이었다. 또한, 소니는 1992년 MiniDisc를 선보이면서 만든 독자 규격인 ATRAC*을 밀고 있었기에 MP3 음원 규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기술적이든 문화적이든 소니는 내부적으로 MP3를 재생하는 Walkman을 만들 것을 결정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ATRAC (Adaptive Transform Acoustic Coding)
소니가 독자 개발한 MP3, AAC 등과 같은 음원 규격(format) 단 MP3와 AAC(M4A)의 경우 산업표준으로 라이센스 적용이 ATRAC과 차이가 난다. 소니는 자신의 기술로 만든 독자규격인 ATRAC을 포기할 수 없었다.
소니 매니악 이었던 잡스는 Walkman의 상품가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Walkman의 가치는 라디오, 녹음 등 제품의 기술적인 기능이 아니라 걸어 다니면서 편하게 음악을 듣는 것이었고 그 것이 음악을 듣는 사용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애플은 과거 기술을 신봉하다 된통 당한 뼈아픈 기억(1편 참조)이 있었고 돌아온 잡스는 과거 기술을 버리는데 가차 없었다. 애플은 맥 이외에는 어느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도 오히려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데 득이 되었다. 음반사와 저작권으로 법정에서 싸움(Apple Vs. Apple)*을 했었지만 음반사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5대 대형 음반사들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음반사가 당시 무서워한 기업은 공룡 MS였지 애플이 아니었다.
Apple Vs. Apple
The Beatles가 1968년 만든 Apple Records(Apple Corps)사는 1976년 설립한 Apple Computer inc., 와 상표권으로 싸우게 되었다. 1차 싸움에서 Apple Computer inc.,가 음반시장에 진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합의 했다. 그런데 그 합의 조건은 2000년 iTunes, 2001년 iPod로인해 깨지게 된다. .
그러나 80년대 도전적이고 영민했던 소니도 21세기에 와서는 내부 기술과 계열사 간 문화 갈등으로 새로운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게 된다. 잡스는 2001년 아이팟 발표 때에도 소니가 MP3 플레이어 시장에 제품 출시를 안 한 사실에 의아해 했을 정도니 말이다.
6. 상품의 가치, 편의성
워크맨 Walkman으로 1989년 시장점유율 50%를 장악한 소니 Sony
소니는 Walkman을 통하여 밖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함으로써 모바일 음악 플레이어 시장을 개척하였다. 장시간 이동하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지루함을 달래줄 수 없을까 하는 한 개인의 고민이 수억의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상품으로 이어진 것이다.
애플은 iPod으로 음악 라이브러리(수 천곡을 저장한다는 의미로)를 ‘호주머니 안에 넣고’ 밖에서 원하는 곡을 클릭 휠로 편하게 검색해서 들을 수 있게 하였다.
비슷한 상품을 만드는 다른 기업들이 상품 가치를 사용자의 편의성 보다는 제품 기능 유무로 생각할 때 소니와 애플은 음악 플레이어의 기본적인 요소인 ‘음악을 듣는다.’에 상품 가치를 두었다. 사용 편의성에 집중함으로써 같은 기능을 구현하는 기기가 기존에 있었을지라도 가치가 전혀 다른 상품을 만들게 되었다.
제품을 개발하다 보면 기술 본위의 사고를 하게 될 경우가 허다하다. 전자기기에서는 기술이 중심적인 차별화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술이 사용자가 원하는가는 다른 차원이다. 아니 더 직접적으로 말해서 사용자가 어떤 기능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돈을 쓰면서 구매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잡스의 유명한 말 중에 '시장조사는 하지 않았다.'라고 한 말은 매우 오만불손하게 들린다. 얼핏 보면 사용자를 개무시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아이팟을 개발하면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에 집착하는 것 보다 사람의 행동을 면밀히 분석하여 손과 호주머니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그 결과 아이팟은 음악을 듣는데 충실한 제품으로 세상에 나오게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상품 가치를 기술에 두느냐 사용자에게 두냐 차이가 아닐까 한다.
소비자는 상품을 구매할 때 자신에게 가치 있는 제품인가만 생각할 테니까…
이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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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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