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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12. 금요일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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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새벽, 애플은 신제품 발표회를 연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나올 줄 알았던 게 나온다. 4.7인치 아이폰과 5.5인치 아이폰, 스마트 워치 그리고 혁신은 없었다는 언론 보도까지. 


매번 기대하고 실망하고 매일 똑같은 언론 보도를 보며 지겨워하는 것의 반복이 명랑 사회 이룩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판단 하에 펜을 함 들어보고 싶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플은 병신된 게 아니며 망할 징조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애플의 혁신은 의무가 아니라 장사 수단이기 때문이다. 아니, 본 기레기는 아예 '애플의 혁신'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노라' 선언하고 싶다. 이번 발표를 두고 '애플이 안드로이드 폰을 따라 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 반증이다. 애플은 왜 안드로이드를 따라 하는 처지가 되었는지 살펴보면 우리가 기대했던 '애플의 혁신', 그것의 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는 거다. 



애플은 왜 안드로이드의 팔로워가 되었나 


아이폰은 2007년 세상에 등장한 후 수많은 휴대폰 제조사들의 목표가 되었다. 감압식 터치스크린은 하나둘 정전식으로 교체되었으며 핀치 줌 등을 통해 화면을 확대, 축소할 수 있게 함은 물론, 온라인 마켓을 통해 어플리케이션의 제작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을 포함해 심지어 디자인까지 베껴댔다. 그러나 그들은 미숙했으며 삼성의 옴니아, LG의 안드로1 등 초기 모델들의 결함으로 인한 무수한 소비자 불만을 감당해야 했다. 


그런데 7년이 지나는 동안 둘의 위상은 사뭇 달라져 버렸다. 애플이 역으로 안드로이드폰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이다. 멀티태스킹이 처음 지원되던 순간부터 그 기미가 보이나 싶더니 iOS7에서는 제어센터와 앱 종료하기 방식, 심지어 OS 특유의 아이콘 디자인이나 바탕 테마의 알록달록함에서도 안드로이드의 데자뷰가 느껴졌다. 잡스가 그렇게 비난하던 7인치대 타블렛을 새로이 제품군에 추가한 데다가 최근에는 한 손에 들어가는 크기라 자랑하던 가로 길이(세로 길이는 한 번 길어졌으므로)를 포기한 아이폰6를 발표해 안드로이드 팔로잉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안드로이드폰에 비해 부족해 보이는 부분도 있다. 아이폰6+는 베젤을 줄이지 못해 같은 크기의 화면을 채택한 경쟁 기기보다 가로, 세로 길이가 커져 버렸다. 카메라 화질은 좀처럼 업그레이드되지 못하고 있으며 기타 하드웨어 사양 역시 경쟁 모델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지만 가격 경쟁력에서마저 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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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 진영의 폰들이 내세우는 건 하드웨어 스펙 밖에 없더라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버전이 바뀔 때마다 극적인 변화를 보여줬던 안드로이드는 소프트웨어에서도 애플의 iOS가 나아갈 길을 보여주고 있다. (최적화나 즉각적인 터치감, 색 재현 등은 아직 멀었지만) 킷캣에서부터 선보인 'OK 구글' 명령 인식 기능은 버튼을 길게 눌러야 하는 '시리'와 비교해 접근성도 좋으며 음성 인식률도 높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 땐 자동으로 검색하여 이름을 띄워주는 기능도 주목할 만하다. 구글맵에 등록된 기업 번호만 대응된다지만 모르는 번호에 이름이 표시되어 나오다니, 이건 많은 사용자가 바라던 기능 아닌가. 


그러나 안드로이드 폰들의 이런 변화들을 혁신이라 소리 높여 칭송하는 이들은 적다. 애플이 따라 했고 앞으로 따라 할 것으로 보이는 기능들을 선보였다 해도 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겠다. 하나는 안드로이드 진영이 다수의 기업들이 뭉쳐있는 형태이기에 애플보다 브랜딩이 어렵다는 것, 또 하나는 수많은 삽질 끝에 제대로 된 거 몇 개 건지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이유는 다시 하나의 단어로 설명이 된다. '오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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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과 달리 구글은 자신들의 스마트폰용 OS를 '우리가 만들긴 했지만 너님들 폰에 맘대로 적용하셈, 막 수정해도 괜찮음요'하고 공개해버렸다. 어쩌면 이런 전략상 초기 안드로이드가 iOS보다 촘촘한 만듦새를 보여주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 결과 89퍼센트의 사용자가 최신 버전을 쓰고 있다는 iOS 쪽 통계와 대조적으로 안드로이드의 최신 버전을 쓰고 있는 이들은 13퍼센트를 조금 넘을 뿐이다. 당신이 막 수정한 안드로이드를 적용한 폰을 사용한다면 그 수정한 넘이 다시 안드로이드의 최신 버전도 그와 같이 수정해주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OS 개발이 큰 골칫거리인 세계의 여러 제조사들은 위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당장 폰을 내놓으려면 안드로이드의 적용을 생각하게 된다. 하드웨어 규격도 지킬 필요 없다. 소프트웨어와 충돌하면 소프트웨어를 수정하면 되니까. 이러한 장점 때문에 안드로이드 폰은 아이폰과는 달리 정말 다양한 모델이 쏟아졌다. 큰 화면의 폰만 나온 게 아니다. 엑스페리아 미니, 옵티머스 원 등 작은 화면을 내세운 폰들도 나왔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큰 화면 쪽에 더 성원을 보냈고 많은 회사들이 이쪽 모델을 더 발전시키면서 스마트폰은 커지게 되었다.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애플처럼 '우리의 다음 폰은 여러분들이 쓰기 좋게 화면을 키웠다'며 발표해서 커진 게 아니라는 말이다. 소비자에게 선택되었을 뿐이지. 


소프트웨어적 기능도 마찬가지다. 안드로이드 폰들은 진영 내부의 경쟁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음성 명령으로 카메라 촬영을 하는 등 자잘한 소프트웨어적 기능을 넣어 이를 광고했으며 이 중 소비자 반응이 좋은 것은 발전되었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되었다. 마치 생태계에서 일어난다는 자연선택처럼 종의 분화를 겪은 후 이 중에 자연환경에 걸맞은 조건을 가진 종만 남고 나머지는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진화'라 부르지, '혁신'이라 부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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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자연 선택된 '큰 화면', 'NFC', '제어센터' 등을 애플이 외면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생태계를 거스르는 행위가 되기에 애플은 안드로이드 폰을 따라 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생태계 싸움이 되어버린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은 하나이며 안드로이드는 다수이다. 쪽수가 많은 안드로이드 진영에 종의 분화가 더 많을 건, 따라서 진화가 더 빠를 건 자명한 일이었다. 



'아이폰'이 '혁신'이 된 것인지, '혁신'이 '아이폰'이 된 것인지


그럼 여기서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계실 것 같다. 쪽수에서 밀리는 애플이 초창기에는 어떻게 지금의 반대 상황을 만들어냈나 하는 의문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그때는 애플이 생태계를 장악(까지 아니라고 본다 해도 '내가 제일 잘 나가' 정도는 흥얼흥얼할 수 있었음은 분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MP3의 등장으로 시작된 소니 워크맨의 몰락에 수많은 mp3기기 제조업체가 봉기했으나 시장을 평정한 이는 아이튠즈로 콘텐츠를 장악하고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한 애플이었다. 아이리버 같은 스타트업은 물론이고 삼성에 소니까지 콘텐츠 장악은 커녕 변변찮은 플랫폼 하나 못 만들어 놓은 상황이었다. 애플이 장악한 생태계에서는 종의 분화가 일어났고 이 중 자연선택을 받은 종이 아이폰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이 과정에서 사라진 종도 있다. 출시된 시기는 다르지만 뉴튼 PDA와 모토로라와 합작한 아이튠즈폰도 이에 해당한다 하겠다. 아이팟에서 분화된 것은 아니지만 이 선택 받지 못한 경험은 새로운 종을 창조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되었을 게 분명하다. 실제로 뉴튼 PDA는 필기인식이 부정확하기로 악명 높았으나 아이폰은 터치 반응성이 뛰어나다고 호평을 받는다. 결국 아이폰의 등장은 안드로이드의 대화면 폰 등장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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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실패작으로 평가받는 뉴튼 PDA(왼쪽)와 아이튠즈폰 ROKR E1(오른쪽)


그럼 혁신은? 


안드로이드 진영에 없는 혁신의 이미지가 왜 애플에는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자. 애플의 무엇이 혁신이었는지를. 아이폰인가? 그렇다면 아이폰은 그 자체로 무언가를 완전히 바꾸어낸 산물인가? 아니다. 애플은 아이팟을 개발하던 그 기업 체제 하에 아이폰을 개발했다. 무엇보다 팜탑 컴퓨터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으며 많은 회사들이 이것의 개발에 매달려왔다. 그러니 아이폰 자체를 혁신이라 부르는 건 무리가 있다. 


아이폰이 아무리 훌륭한 기기였다고 해도 아이폰과 사용자가 만나는 지점에서 무언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지금 애플이 가진 혁신이란 이미지 또한 없었을 것이다. 기업들은 그 지점을 바라보며 사용 편의를 구상하였으며 윈도우 모바일 등 다른 기업의 구상보다 애플의 구상이 다행스럽게도 주효했다는 얘기다. 애플이 그렇게 강조하다 어느덧 잡스의 철학으로 둔갑한 '한 손 크기' 등의 컨셉이 이 구상의 결과물이었다. (애플 스스로도 이 발견이 대견했기에 포기할 수 없었으리라.)


그럼 혁신은 애플의 아이디어에 있었나?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던 아이폰 1세대를 떠올려보자. 전화와 문자 기능에는 버그가 있었으며 이메일 푸시 등의 기능은 블랙베리의 그것보다 못했다. 2G폰이었기에 웹의 이용도 제한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앱스토어의 풍부한 어플리케이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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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에 따른 소비자의 개선 요구가 빠르게 반영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러한 소비자 요구의 반영을 통한 진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사용자들의 끊임없는 요구에 따라 화면이 커지고 절대 안 넣겠다던 NFC가 채택된 것이 그 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볼 때 '혁신은 애플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혁신의 중심에 애플이 있었던 것'이라 표현하는 쪽이 정확하다 하겠다. 애플이라는 휴대 기기 시장의 신흥 강호가 과거 실패를 교훈 삼아 더 나은 종을 고민했다. 부족한 점은 이용자들이 제시한 아이디어를 채택해 진화시켰으며 그것을 알리는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은 강렬하고 세련됐다. (터틀넥 패션을 제외하고) 돌이켜보면 신제품 발표를 통해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것이 아닌 이 모든 과정이 지금 애플의 '혁신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온 요소들이었다. 


자, 이제 마무리를 해보자. 



잡스의 철학은 정말 버려진 걸까 


애플이 '대화면'의 아이폰을 발표하자, '잡스의 철학을 버렸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저게 철학일까? 철학이라는 단어 사용에 특별한 감정을 갖고있진 않지만, '우리 제품은 한 손으로 쓸 수 있어야 된다' 이런 게 철학이고 그런 철학을 가진 사람에 우리가 열광했다니 뭔가 시시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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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대화면 아이폰을 발표했다고 잡스의 철학을 버렸다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그가 한 손 크기의 아이폰을 고집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편하지 않다는 차원이었다. 그런데 다수의 사람들은 두 손으로 스마트폰 사용하는 것을 크게 불편해하지 않았다. 그 뿐이다. 


정말 스마트폰은 한 손으로 쓸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는 똥고집 따위가 잡스의 철학이라고 생각하시는가? 그렇다면 잡스가 아이튠즈를 개발하게 된 계기에 대하여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자기 가족들이 왜 음질 좋은 음향 기기들을 놔두고 컴퓨터로 음악을 듣는지 궁금해한 끝에 아, 그냥 졸라 편리해서 그러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고 컴퓨터로 음악 듣는 거를 더더더더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아이튠즈를 구상했다는 이야기를.


애초에 잡스는 아이튠즈를 만들 때 '플레이 버튼은 화면 상단에 있어야만 한다' 따위를 생각하고 만든 게 아니다. '기술의 본질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임을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로 iOS가 고릴라도 쓸  수 있는 직관성을 갖춘 것이며 아이폰이 지금 같은 완성도를 갖게 된 것이라 보는 편이 정확하지 않을까? (물론, 아이폰4 안테나 게이트 때 '그렇게 잡지 않으면 된다'고 말한 사례를 보면 잡스가 사용자 편의를 고려했던 이유는 그가 졸라 이타적이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우리 제품 더 많이 쓰게 만들까였던 것 같으나 이 글에서는 그가 뭐에 초점을 맞췄는가를 얘기하고 싶은 거니까 두 가지 의도를 동일한 것으로 다루겠다.) 


이렇게 볼 때 애플워치의 작은 화면이 사용하기 어려울 것을 고려해 디지털 크라운을 단 것 같은 시도가 잡스의 철학으로 알려진 것의 본질에 가깝다 하겠다. 애플은 오히려 잡스 철학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주효할지 실패로 돌아갈지는 디지털 크라운 자체에 달려있지 아니하다. 온전히 이후의 과정, 쓰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이 어떻게 만나 진화의 토대가 만들어지는가에 달려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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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보다 쇼킹한 애플의 삽질을 기대한다. 사람들에게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다 많이 내포한 무언가를 기대한다. 아울러 삼성도 소심한 삽질 말고 시원한 삽질을 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실패로 돌아갈지 모르는 연구의 비용 지출이든, 지나치게 실험적이라 벙찔 제품의 출시든, 직원들 야근 안 돌릴 정도로 사람 넉넉히 써서 추가로 나가게 될 인건비 집행이든 말이다.


'내가 이 삽질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그 고민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과 만나 무언가를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혁신의 여부는 결정될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날을 살아간다. 날마다 반복되는 우리 삶이라도 선택 하나에 일상은 일탈이 된다. 이렇듯 혁신은 어디에도 없는 동시에 모든 곳에 있다. 








퍼그맨 

트위터 : @ddanzipugman

Profile
딴지그룹 마켓팀원. 편집부 일도 하고 왔다갔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