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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24. 수요일
아외로워









1.  텔레그램의 돌풍, 원인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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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카카오톡이다. 카톡이 되면 스마트폰, 안되면 옛날폰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경우 들어맞는다. 이런 분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폰이나 노키아의 미고 폰을 해외에서 구해다 쓸 일은 더더욱 없을 테니 적중률은 높아진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카카오톡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심지어 카카오톡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사용해야 한다. 많은 공적인 일들과 사적이지만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정보들이 카카오톡으로 떠돌아 다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21세기 이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인터넷 서비스가 카카오톡일 것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카카오톡의 시대에 강력한 균열이 생기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텔레그램 열풍이다.


2.  카카오는 법무부에 밉보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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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점은 지난 18일, 검찰이 사실상 카톡을 비롯한 인터넷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겠다면서 이른바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 수사팀’ 발족을 선언하던 시점이었다. 설령 내가 카톡으로 하는 대화가 버거킹 할인 행사 받아보는 것이 전부일지라도 나의 사적인 대화가 법무부의 감시를 받는다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 심지어 내가 대화하는 상대가 버거킹 할인 정보 계정밖에 없다는 사실 자체도 누군가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검찰은 사태가 심각해지자 (카카오의 입을 빌려) 해명에 나섰다. 그런데 그 해명이 아무리 봐도 불안감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영장이 있지 않는 한 ‘실시간’ 감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모니터링 주체가 검찰이 아니라는 보도자료는 국정원이 마치 미국의 정보기관이 그랬던 것 처럼 영장절차를 건너뛰고 카톡 서버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상상력이 지나치게 충분하며, 한국의 법무부에 대한 믿음이 약한 불충한 일부 국민들은 ‘메신저 망명’을 떠나기에 이른 것이다. 


3. 검수지옥에서 태어난 금강불괴, 텔레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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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말고도 메신저 프로그램은 많다.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 BBM, 바이버, 라인 게다가 네이트온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텔레그램일까. 

텔레그램은 러시아 사람들이 만든 서비스다. 러시아에서 서비스 되는 것은 아니고 독일에서 서비스된다. 엄혹하기로 소문난 러시아의 정보기관이 스캔하지 못하는, 그래서 사생활이 보장되는 메신저 서비스를 갈망한 러시아인들의 결실이다. 

이 서비스는 수익모델이 아니다. 메신저의 소스는 공개되어 있고, 심지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클라우드 서버의 API도 공개되어 있다. 메시지의 암호와 메커니즘은 복호화가 대단히 어려운 기술을 사용한다. 비밀대화 기능이 있어서 서버에 흔적이 전혀 남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주고 받은 메시지가 없어져 버리는 기능도 있다. 누구도 침해 할 수 없는 안전한 메신저 기술을 만든 뒤 공공재로 풀어 홍익인간 하겠다는 것이 텔레그램 서비스의 핵심이다. 러시아 정부가 국민의 사생활을 극단적으로 침해한 덕분에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서비스다.

물론 보안성 외에도 공식 앱의 깔끔하고 정돈된 인터페이스, 다양한 기기에서 접속 가능, 그러면서도 관리하기 쉽고, 각종 파일을 전송하는데 차원이 다른 자유도를 부여해 준다는 등의 다른 장점들도 사람들이 텔레그램을 선택하는 이유가 됐을 것이다. 

외국에서는 카톡과 비슷한 지위를 점한 왓츠앱이 잠깐 서비스 장애를 겪었다. 사람들은 그새를 못 참고 대거 텔레그램에 몰려들었다. 국가를 초월해서 텔레그램은 막강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4. 과연 보안의 문제일까?


카카오톡 탈출 현상의 일차적인 원인은 대한민국 법무부의 바보짓이다. 경애하는 수령님이 내 욕하는 놈들 잡으 라고 하니까 내놓은 해결책이라는 것이 결국 “법무 당국이 주체가 된 메신저 앱 실시간 검열” 이라는 뉘앙스를 띄게 됐고, 사람들의 대대적인 메신저 망명을 부추긴 것이다. 물론 정부가 이렇게 대놓고 검열을 암시하는 것이 대단히 경악스러운 사건이긴 하다. 이 사태의 중대성을 검찰이 몰랐다면 거짓말이다. 대충 쎈 뉘앙스로 암시를 줘서 국민들을 협박만 하려고 했는데 이 문제가 이렇게 흐를 줄은 몰랐던 거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 사태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내 회사가 제공하는 온라인 서비스를 사용하는데 신물이 나있다. 그 알량한 서비스 한 번 사용해 보려고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다 쏟아 부어야 한다. 아이디만 만들면 되는 카카오는 좀 나을 수 있다. 주민번호와, 핸드폰 번호와 주민번호를 줘야 받을 수 있는 아이핀 번호와, 내 똥꼬 주름 수까지 입력해야 가입을 비로소 허락해 주시는 서비스들이 얼마나 많은가. 

카카오의 경우 기술기업으로서의 혁신은 수년전 ‘겁나 빠른 황소 프로젝트’ 이후 완전히 끊기다시피 했다. 예전에는 단순하고 빠른 메신저였던 카카오톡은 얼핏 봐도 열 가지는 될 것 같은 복합 ’수익모델’ 앱이 돼버렸다. 하루에도 수 차례씩 내가 원하지 않는 게임 초대와, 각종 광고계정으로 짜증을 겪어야 한다. 원래 카카오톡의 장점이었던 ‘Spam free’는 제휴업체 광고로 사실상 없어지고 말았다. 

사실상의 스팸을 보내야 하는 제휴업체들도 카카오로부터 ‘삥’을 뜯기기는 마찬가지다. 게임 업체들은 도대체 왜 그리 많이 떼어가야만 하는지 모르겠는 수수료를 카카오에 헌납하고 있다. 엄청난 유저를 확보하고 상장에도 성공한 카카오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갑질 이외의 기술적 혁신을 완전히 포기해버린 것만 같다. 

카카오톡이 겨우 참아주고 사용할 수밖에 없던 서비스였던 사람들에게 검찰의 검열 가능성은 단지 방아쇠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5. 텔레그램 돌풍은 무엇을 남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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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듣도보도 못했던 새로운 메신저를 검찰 때문에 설치해본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좋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좋지 않다는 사람들도 있다. 부정적인 의견의 상당수가 ‘대화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메신저 프로그램의 특성상 내가 대화를 하고픈 사람도 같은 서비스를 사용해야 하는데 카톡에 비하면 사용자 풀이 좁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카카오톡의 헤게모니가 지금만큼 위협받아본 일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근거는 역설적으로 텔레그램의 사용자 수다. 지금까지 카톡을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 시도는 언제나 실패했다. 대화를 나눌 사람이 문자 그대로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텔레그램은 다르다. 내가 BBM메신저와 덕덕고를 전파하고 다닐 때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던 사람들 십수명이 내가 처음 텔레그램에 가입했을 때 이미 텔레그램에 접속해 있었다. 물론 텔레그램으로 고향에 계신 친척들과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당장 다음주 팟캐스트 녹음 스케줄을 조정할 수는 있다. 일부나마 실용적인 사용이 가능한 것이다. 

텔레그램이 카카오톡을 완전히 대체하긴 어렵다. 사람들은 카카오톡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일부를 대체 불가능 하다고 여기고 있다. 여기에는 게임 포털로서의 역할과 친정부 성향의 일베 게시글 유통 경로로서의 역할이 포함된다. 

카카오톡이 주력으로 배포하는 캐주얼 게임에 둔감하고 유언비어 단톡방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텔레그램에 성공적으로 정착 할 가능성이 높다. 일부 정지척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새로운 메신저 세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혹은 스마트폰 메신저의 헤게모니가 완전히 뒤집힐 수도 있다.


6. 괜한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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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의 추상같은 명령과, 이 명령을 수행하는 검찰의 지나친 충정이 오해를 빚어 애꿎은 카카오톡이 큰 타격을 입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집단적인 탈출을 시도할 만큼의 에너지는 카카오 스스로가 키워오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설령 카카오의 국내시장 지배력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일반 사용자와 제휴사를 알차게 빼먹는 폐단에 경종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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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