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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25. 목요일

펜더







 






초심편

 


 

어찌어찌 8월 한 달 동안 유럽순방(?)을 하고 돌아왔다. (기회가 닿으면, 이 유럽순방에 관한 을 풀어놓겠다. 우리나라 통일과 관련된 정말 중요한 이야기가 오갔던 힘들지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친구들의 말로는 내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였지만, 돌아보니 내게 필요한 건 휴식이 아니라 희망이었던 것 같다.

 


1. 예술가의 고뇌


작업실을 비운 사이 하수구가 역류해 컴퓨터 2대가 다 침수됐다. 메인보드뿐만 아니라 모든 게 다 타버렸다. 망연자실한 가운데 노트북으로 작업중이다. 새옹지마라 했던가? 컴퓨터가 박살나니 '위문'을 오겠다는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게 됐다환쟁이, 만화쟁이, 창쟁이, 글쟁이가 모였다. 명목상으론 위로였지만 사실 다들 힘들었다


지방에서 끈질기게 그림을 붙잡고 있는 A형이 새벽 2시에 만취한 목소리로 격정을 토해낸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돼. 아니, 매일... 아니 아니, 매 시간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돼. 지금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내가 지금 잘못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난 원래 그림을 그려야 할 운명이 아닐 수도 있는데 미련 때문에 지금까지 붙들고 있는게 아닐까?”

 

40대 중반의 나이로 끝까지 붓을 부여잡고 있는 A선배. 매년 전시회를 열 때마다 깨지는 돈이 작게는 수백만원에서 크게는 수천만원대에 이른다. 그 돈을 들여 전시회를 여는 것이 옳은 건지, 자기가 그림을 붙잡고 있는 것이 욕심은 아닌건지 A선배의 고민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언제나 끝은 자신에게 그림을 볼 줄 알고, 사랑하는 마음은 줬지만, 모차르트와 같은 재능을 주지 않은 에 대한 원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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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예이란 걸 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다. 새벽 어스름 참에 문득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불이란 좀벌레그 좀벌레는 작의 가장 약한 고리를 물어뜯는다.

 

네게는 재능이 없어.”

 

팍팍한 현실과 못마땅한 결과물, 점점 조여 오는 나이의 압박과 3차원 세계가 보여주는 비정함. 그 속에서 작가는 고민하게 된다. 그 고민이 생산적으로 향하면 전이나 절필쪽으로 옮겨가지만, 비생산적으로 향하면 자학과 자기비하, 결국 파멸로 향하게 된다.

 

때문에 작가들은 언제나 대화할 수 있는 동종업계 사람들이 필요하다. 새벽에 전화해 자기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이렇게 보면 여자들이 모여서 서로 이쁘다고 말하는, 이해하지 못할 무한루프를 보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이것도 연차가 지나면 알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확인절차이고, 싸구려 힐링이란 걸 말이다. 결국 답은 자기 안에 있고, 그 선택의 책임을 타인에게 미루기 위한 질문이든지, 아니면 잠시 잠깐의 회를 위한 명분이 필요했을 뿐이란 걸 말이다.

 

어찌보면 참으로 몹쓸 존재들이라 말할 수 있겠다.

 


2. 환쟁이, 만화쟁이, 창쟁이, 글쟁이


신변잡기들을 주절거리던 입에 도수가 좀 있는 알코올이 들어가자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부러움과 질시, 신세한탄 그리고 핑계와 막막함 (나이에 비하면 나름 성취를 했다고 볼 수 있는 이들도 막막함과 신세한탄이 나왔다) 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졸지에(?) 타켓이 된 나.

 

그래도 구성작가가 비구성작가 보다는 경제적으론 살만 하지 않냐?”


그래, 글쟁이가 환쟁이 보다는 돈 좀 만지지 않냐? 우리는 그림을 팔아야 하지만, 네들은 여기저기 쑤셔볼데라도 있잖아.”


환금성이 좋지.”

 

"아놔... 이것들아, 술값 내가 낼테니 더 몰아붙이지 마라."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은 환금성이 좋다. 인정한다. 웹툰이 아무리 활황기라 해도 뚜껑을 살짝 열어보면, 이만큼 치열한 곳이 없다. 아울러 그 안에서도 엄연히 게임의 룰이 존재하고 빈부의 격차가 존재, 아니 확연하다. 그림쟁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다행히 회화를 한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볼 수 있지만 조형을 한다면 목숨걸고 교수 타이틀을 따야 한다. (아파트나 빌딩 앞에 놓여있는 조형물의 거의 대부분은 대학교수들 몫이다) 설치나 퍼포먼스를 생각한다면 답이 없다.

 

어깨위에 고양이라도 한 마리 올려보지 그래? 혹시 알아 방송에서 너 불러줄지.”

 

어깨 위에 고양이를 올려놓지 않은 이상 최소생계비 이상을 버는 건 난망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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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을 한다? 지자체나 국가에서 운영하는 조직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조직에서 명예롭게 은퇴해서 학원을 차리는 경우 포함해서) 역시 먹고 살기는 난망하다.

 

그들의 시선으로 로 생계를 삼는 난 최소한 '성공한 삶'이다. 미술 작품 활동을 하는 Y란 작가가 있다. Y작가의 옷은 1365일 변하지 않는다. 옷이 한 벌 밖에 없는 것 같다. 후줄근한 자켓에 다 낡아 떨어진 청바지가 전부였다. 더 처참한(?) 건 그의 식사다. 그는 하루에 한끼를 먹는다. 그 한끼도 제대로 된 밥이 아니라 커피믹스다. 사무실이나 기타 미팅장소에서 커피믹스를 취득(?)한 다음 하루에 한 번 이 커피믹스 몇 개를 뜯어서 입에 털어넣는다. 그게 Y작가의 한끼 식사다. 부족한 영양분은? 선배나 지인들의 술자리에 꼬박꼬박 머리를 들이밀고는 안주를 챙겨먹는다. Y작가가 소인줄 알았다. 위가 한 4개 달려있어서 꾸역꾸역 배속에 안주를 밀어 넣고는 필요할 때마다 뽑아내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줄 알았다. (반쯤 농담이지만, 어느 정도의 진실도 담겨있다. Y작가의 대사효율이나 에너지 저장매커니즘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거 같았다) 한 번은 너무 궁금해서 Y작가에게 물었다.

 

“Y선생, 왜 그렇게 먹어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돈이 없어서 그렇지.”


“Y선생도 알바 뛰는 걸로 아는데... 힘들어요?”


재료비 맞춰야죠. 돈 아껴서 재료 사야 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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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작가인 경우 최악의 경우에도 종이와 펜만 있으면 작품 활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이들에게 있어선 재료비가 곧 생명줄이다. 아무리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재료가 없으면 아무것도 그릴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재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목숨을 걸게 되는 것이다여담이지만 회화나 설치 쪽을 하는 작가들을 보자면, 언제나 한탄을 한다.

 

소질이 있는데 열정까지 있어그런데 집도 잘 살아. 그러면 바로 뜨는 거지. 그런데 소질과 열정만 있어그럼 그때부터 인생 어려워지지.”


소질만 있으면?”


아예 소질만 있으면 그것도 좋아. 조금 하다가 접게 되지. 문제는 열정인데, 열정이 언제까지 가냐는 거야. 아무리 자기를 불태운다 하더라도 10년 세월을 버틴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버티는 건...어려운 일이야.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재료값을 벌기 위해 다른 일을 하고, 그 다른 일 때문에 정작 자기 작품은 하지 못하고, 그걸 피하기 위해 그림을 팔려고 하면, 대중이 원하는 것들을 선택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자기가 하고자 했던 것과 멀어지게 된다. 어려운 일이다. 뭐가 정답인지 모르는 미로 속에 갇혀 버리게 된다. 어디서 폰 메크 부인과 같은 독지가가 나오길 기다리는 망상 정도가 유일한 희망이랄까? 그럼에도 붓을 놓지 않는 이들을 보면, 어째서 이 길을 택했는지 한탄을 할 수 밖에.

 


3. 왜 이 짓을 하는 걸까?

 

음식장사가 하루 쉬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하루 쉬는 것 같지만, 이건 3일 쉬는 거야. 재료준비 다시 해야지. 청소해야지, 그리고 쉰 만큼 떨어져 나간 손님들 생각해야지.”

 

갈비탕 장사를 하는 지인이 내게 해 준 말이다. (자영업을 하면 자기 시간을 더 가질줄 알았다는 순진한 착각으로 시작한 자영업이었는데, 이 친구는 결국 갈비탕의 노예가 됐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며칠 목을 놓아버리지? 그러면 논 시간에 곱하기 3을 해야지만 원래 목으로 돌아가. 이게 티가 나. 전주대사습놀이 가지? 예선이 30분이야. 3년간 하루 2시간씩 꼬박꼬박 연습한 애랑 대회 앞두고 3개월 빡세게 해서 들어간 애가 있어. 딱보면 다 티가 나. 30분도 필요없어. 첫 장단 나오면 딱 보여. 이 바닥에서 10년 넘게 목소리 낸 사람이라면 대번에 알지.”

 

저희도 마찬가지죠. 며칠 그림 쉬죠? 그럼 손이 굳어요. 머릿속에서 아무리 구상을 하더라도 하다못해 스케치라도 하면서 손을 가다듬어놔야 해요.”

 

글도 별거 없어. 엉덩이로 쓰는 거지. 다 필요 없어. 글을 쉬지? 그럼 쓰기 싫어져. 그 힘든걸 왜 쓰겠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글을 쓰지 않을 이유를 찾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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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하루 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걸 돌려놓기 위해서는 3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 만사가 다 그렇지만, 글도 정직하다. 노력하면 나올 것이고, 노력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피카소...개막장인 사생활로 회자되는 그이지만, 그가 평생 동안 5만점이 넘는 작품을 그려냈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일 것이다) 한때의 재기발랄함과 재능은 지금 당장은 통할지 모르겠지만, 결코 오래갈 수가 없다. 이건 글에만 한정할 이야기가 아니다. 물었다. 왜 이걸 했는지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무아지경...그거 느껴 본 적 있지?”


몰입 같은 거 아니에요? 손이 멋대로 막 움직이는 느낌?


그렇지. 손이 멋대로 나가고, 3일 정도 날을 샜는데도 쌩쌩한 그 느낌.

 

공통적이었다. 마라톤 선수들이 느낀다는 러닝하이(Running High) 그걸 한 번 느낀 작가라면, 자신이 재능이 있다는 착각(?)과 함께 그 느낌의 결과로 나온 작품에 대한 만족감에 도취되게 된다. 그리고 그 느낌을 되살리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게 된다.

 

다 비슷비슷하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해야 할까? 자신의 활동영역은 다르지만, 작품에 임하는 자세, 작품을 하는 이유, 그리고 그 작품에서 추구하는 궁극의 지향점은 비슷했다. 아니, 똑같았다.

 

백과사전을 옆에 끼고 읽어야 할 소설이라면, 그건 소설이 아니다.”

 

쉽고, 단순하게 써야 한다는 걸 인생의 모토로 삼았던 헤밍웨이의 말이다. 창을 하는 이도 목소리에 기교를 넣는 건 초짜들이나 하는 짓이라 했다. 진짜는 생목소리 그대로 피 몇 번 토해내고 목을 가다듬고 내는 목소리로,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진짜 목소리가 자신이 지향하는 바라고 말했다. 그림 그리는 이도 30대 초반에 기교나 기술에 집착했던 시간들을 후회하고 있었다. 단순함. 원칙에 충실한 단순함. 그리고 그 단순함을 기반으로 한 창조적 파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계속 하는 이유 역시 비슷비슷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초심(初心)을 말했다. 그들은 그게 좋아서 선택을 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그 길을 걸어오고 있다.

 


4. 또 다른 분기점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내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15년째 이 바닥에서 글을 팔아서 먹고 살았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운'이 없었다면 힘든 여정이었을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모습도 비슷했다.

 

그렇게 버텨온 게 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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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용케 버텨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게도 몇 번의 전직(轉職)기회가 있었지만 무슨 깡이었는지 그 기회를 버리고 끝까지 글을 고집했다. 지금 생각해도 무슨 깡이었는지 모르겠다. 경제적인 궁핍함과 생활의 불안정, 주변인들과의 불화, 창작의 고통 등등 수많은 난제가 내 앞에 펼쳐져 있음에도 나는 왜 글을 고집했던 걸까? (아마도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일수도, 그리고 새로운 직업으로 내 삶을 꾸려나갈 자신이 없었던 것일수도 있겠다)

 

며칠 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 전직(轉職)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앞으로 경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고, 향후 5년간 긴긴 겨울밤이 이어질 거란 모 경제연구소 연구원의 말이 퍼져나가던 때라 더욱 고민 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이쪽 경기가 별로 좋지 않다. 예전 같으면 일거리 찾는 게 어렵긴 해도 이렇게 없을 수는 없는데, 지금은 아예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거기에 우울한 사건 몇 개가 겹치고, 스스로에 대한 의문과 불신이 더해지면서 다시 한 번 실체 없는 '재능'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이때 떠오른 게 내가 24살때 숙대 앞 연탄집에서 겪었던 일이다.

 

그 당시 난 모 커뮤니티 (글 쓰는 모임이었다)에 갓 들어간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게 그때 모였던 인물들이 결국은 각자의 분야에서 저마다의 이름을 걸고 꿋꿋이 버텨나가고 (상당수는 잘나가고 있다!) 있다는 사실이다.

 

군대를 막 제대한 후 어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던 때, 글에 인생을 걸겠다는 의지 같은 건 고사하고 확신도 없던 시절에 나는 형들과 누나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형들, 누나들은 왜 글을 써요?”

 

선배들은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이었다.

 

좋아서

 

간단했다. 9명의 형과 누나들의 입에서는 똑같이 '좋아서'란 말이 나왔다. 그때 난 결심을 했다.

 

나도 좋아한다.”

 

그 날의 기억이 내 작가 인생의 시작이었다.

 

요 며칠 그 기억을 계속 떠올리고 있다. 어제는 그 자리에 있던 이 모임의 대모(代母)에게 연락을 했다. 장문의 문자에 걸맞는 장문의 회신. 그 안에서 내 눈에 들어온 몇 가지 단어는 '행복'과 '글쓰기'였다.

 

결국 쓸 수밖에 없는 팔자인가 보다







펜더

 

편집 : 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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