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4. 09. 25. 목요일
문화불패 홍준호







편집부 주



이 글은 문화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올 4월부터 7월까지 제게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영화나 만화, 음악에 대한 글을 쓰면서 돈을 벌고 싶어하는 한 블로거이자 작가...라고 저 혼자 생각합니다만, 여튼 그런 사람입니다. 남자 대학생이지요. 한 영화 월간지 객원기자에 지원을 했고, 선발이 됐었습니다. 이것은 거기서 일한 기록입니다. 이렇게 존댓말 썼지만 본문은 반말인데... 이해 부탁드립니다.




1.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11월에 개봉한다. 첫 예고편을 본 순간, 나는 이 작품을 너무나도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됐다. 이유는 어떻게 보면 우스울 수도 있다. <인터스텔라>가 필름으로 찍은 마지막 아이맥스 영화가 될 것이라는 언급을 봤기 때문이었다. 2008년에 대구 CGV 필름 아이맥스관에서 <다크 나이트>를 봤기 때문에, 이 포맷을 접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지금 한국에서 필름 아이맥스 영화를 볼 수는 없다.

1.JPG

그 때 나는 미국과 호주 생각이 났다. 거기에 각각 몇 안 되는 필름 아이맥스 상영관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 거기에 가서 이 사라져갈 역사의 마지막 현장을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돈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그냥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으긴 싫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돈을 모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려면 거기에 해당하는 일을 찾아봐야지. 방법을 찾던 나는 하나의 공고를 보게 된다. 

2014701225.jpg

그건 바로 <맥스무비 매거진>에서 ‘객원 기자’를 뽑는다는 말이었다. 단순 기고도 아니고, 계약을 맺고 기사를 쓰는 객원 기자. 이건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정말 엄연한 프로 직업이란 말이다. 고로 아르바이트보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하잖아! 전문적인 일이니까! 그게 객원기자로 지원한 이유였다.

그리고 하나 더 있었는데, 그들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들을 뽑겠다고 공고에 적극적으로 어필을 했기 때문이다. 우습겠지만 그게 내가 저기 한 번 지원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또다른 이유였다. 적어도 내가 본 잡지들 중에서 적극적으로 블로거들을 객원기자로 기용하겠다 등등의 말을 한 건 맥스무비 밖에 없었으니까.

맥스무비의 객원기자 면접 과정은 이런 식이다. 처음엔 기고 경력을 알아보는 자기소개 서류 면접, 그 잡지 측에서 내 준 과제 면접, 최종적으로 직접 면접을 보는 것이다. 나는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이고, 당시 화상 면접으로 대체해서 하긴 했지만 합격을 했고, 이후 나를 포함해서 11명의 객원기자가 선발됐다. 

그 기자들이 모두 모이는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기 위해 난 서울에 있는 잡지사 건물에 가게 된다. 그런데 그 날, 이 잡지사 측는 처음 올린 위의 공고에는 없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합격된 사람들이 '객원 기자 1기이고, 객원 기자 활동은 1년이며 앞으로 1개월간 고료 없이 사수로 지칭된 기자들에게 기사 쓰기 트레이닝'을 받는다는 이다. 그들은 이 사실들을 채용이 끝난 뒤 오리엔테이션에 와서야 처음 말 해 줬다. 고료를 얼마나 받는지도 말하지 않은 채.

2166349.jpg

지금 되돌아보면 사실 이 때 항의를 하거나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야 했나 싶다. 하지만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한달까지는 용인해 보자고 생각하면서. 그 2~3시간의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서울에 간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큰 영화 관련 기업의 잡지 쪽에 객원 기자로 참여하는게 처음이라 잘 몰랐던 이유가 더 컸으리라.

맥스무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각각 고유한 컨텐츠가 있다. 난 한 달 동안 하루에 두 세개씩 그 잡지의 온라인 사이트에 트레이닝이라는 명목으로 뉴스 기사를 작성해서 업로드했다. 물론 최종적으로 통과한 것이 두 세개이지, 그것이 기사로 확정되려면 사수라고 지칭된 담당 기자와 편집장에게 모두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구조였다. 그러니까 하루에 기사가 될만한 아이템을 몇 개씩 찾아가면서 쓴 것이다. 난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학생이기 때문에 강의는 강의대로 듣고, 남는 시간에 무조건 PC에 붙어 앉아 기사 될 거리를 찾아 써야만 했다.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을 당시, 맥스무비 매거진 측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5월 31일에 최종평가회의에 참석하고 나서 '공식적인 객원 기자 활동'을 한다고 말이다. 공식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말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모이기 하루 전 날인 5월 30일날 한 달동안 '트레이닝' 받으면서 어땠는지를 이야기하는 자기 평가서를 작성하고 나자, 잡지사 측에서 일방적으로 최종평가회의가 밀렸다는 공지를 내걸었다.

거기까지는 회사의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이해했다. 문제는 다음이다. 그 뒤로 맥스무비 매거진 측에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객원 기자라고 뽑힌 사람들 쪽에서 기다리다 결국 먼저 언제 하느냐고 먼저 물어야만 공지가 포함된 답변을 해줬다. 그런데 그 공지에서 언급된 날짜도 결국 지키지 않았다. 

3.jpg

사실 이런 점에 대해서 난 편집장이 대표로 사과의 말이라도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최종 평가 회의날은 1주일 가까이 미뤄지기만 했고, 이후에도 일방적인 공지만 몇 번 있을 뿐이었다. 아마 그런 생각 자체도, 할 필요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몇 번 그런 상황 때문에 객원기자들이 여러번 서운함을 토로하다 보니 그제야 객원기자의 대표에게, 혹은 사내 메일로 정확한 날짜 공지를 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31일 모이는 걸 미룬 이후에 답장한 박혜은 편집장의 공지 메일 (1).jpg 31일 모이는 걸 미룬 이후에 답장한 박혜은 편집장의 공지 메일 (2).jpg

맥스무비 매거진은? 미안하다는 말은 못할망정 아무 말도 없다가 '6월 2일까지 휴가다' 라고 급작스럽게 객원기자들을 휴가 보냈다. 당연히 열릴거라는 최종편집회의는 6월 2일에도 열리지 않았고, 최종적으로는 6월 6일이 되어서야 열리게 된다. 결국 나는 객원기자 일을 그만뒀다. 말이 '객원기자'이지, 정작 하는 건 정규 기자들을 뒤치닥거리나 하는 무급 어시스턴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굳이 그 기자로서의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계속 약속을 어기고 숨기고 거짓말을 하는 영화잡지 측에 초장부터 신뢰를 잃어 질려버린 점도 있었다. 추후 객원기자로 뽑은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며 어떤 식으로 말바꾸기를 하거나 부려먹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

최종평가회의가 미뤄진 이후 다른 객원기자들의 반응 (2).jpg

그만둬야 겠다는 생각을 갖기 전에 편집장에게 질문을 담은 메일을 보냈다. 두 개의 질문이었다. 

'도대체 고료에 대한 사실을 말해주지 않고 숨기는 이유가 뭔지', 
'더불어 오리엔테이션도 그렇고, 혹시 최종편집회의를 하러 가는 날에 나 혼자만 지방에서 올라가니까 교통비가 지원되는지...' 

해서는 안 되는 질문도 아니고, 그 정도는 물어보면 답변이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편집장은 그것에 대해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맥스무비에서 '그만둘 때는 자신의 사수 기자에게 전화해서 사유를 말하라고, 일 하기 싫다고 먹튀하지 말라'는 의도에서 그런 시스템(한 달여간의 트레이닝)을 만들었다고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었다. 나는 사수인 모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모 기자는 이유를 들어봐도 되겠냐고 되물었는데, 구구절절 설명하자 다 듣고는 "그래도 나한테만 말해놓고 그만둘 게 아니라 편집장에게 얘기해야 한다" 고 말 한 뒤에 "수고했다" 란 한 마디를 한 채 빠져버렸다. 그 여기자는 그냥 자기가 궁금해서 내게 물어본 것이었다.

ㅁㄴㅇㄴㅇ(1439).jpg

결국 난 편집장에게 다시 직접 전화를 걸었다. 건 김에 편집장에게 물어봤다. 

"객원 기자라고 고용해 놓고 돈을 주지 않고 기사를 쓰게 한 것을 가만 생각해보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왜 이렇게 한 것이냐?" 

위에서 난 '객원기자 1기' 라는 게 이상하다고 강조했었다. 이유는 이랬다. 맥스무비 매거진에는 객원기자가 한 사람 있었기 때문이다. 허XX 평론가였는데, 같은 객원기자 직함을 달고 있으면서 내가 받았던 대우는 그와 같다고 볼 수 없었다. 돈도 받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소비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면 그가 계속 맥스무비 매거진에 몸을 담고 있었을까.  편집장은 이렇게 답했다.

"준호 씨를 비롯해 여러분은 구체적으로 어딘가에 글을 기고한 적이 없지 않냐. 그래서 금방 일을 시킬 수 없었다. 지금 우리 잡지사에 있는 허XX 객원 기자와 여러분을 지칭하는 객원 기자의 의미는 다르다. 교육상 시킨 것이고, 여기서 일하는 게 훗날 경력이 될거다. 오해 없길 바란다."

참고로 난 지원서 낼 때 이미 기고 경력을 다 써서 냈다. 그런데 편집장은 어딘가에 기고한 적이 없지 않느냐는 태도와 무급으로 일을 시킨 것에 대해 저렇게 합리화 하는 말을 했고,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편집장은 익숙하다는 듯 현란한 수식어를 써가며 자신을 변호했고, 나는 순간 정신이 멍해져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제일 처음 오리엔테이션에 갔을 때 저 말을 듣고도 항의하지 못하고 동의한 내 잘못도 있을 것이다.
 
그만 두는 나에게 편집장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알 수 없으니 다음 번에 좋게 다시 봤으면 한다'고... 어째 협박처럼 들리기도 했다. 예술 계통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계통이 다들 그렇듯, 연줄과 인맥으로 유지되고 있으니 아마 언젠가는 다시 보게되지 않을까. 특히나 영화판은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발전해 왔으니 말이다. 나는 당신 메일로 질문을 했으니 다음 날까지 답신을 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편집장은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3.

그만두고 난 뒤에는 솔직히 그냥 좋게 좋게 '수업료 지불 하지 않고 기사 쓰기 교육 받았잖아.' 라고 생각할까 싶었다. 그러나 난 아르바이트로 한 게 아니라 정말 객원 기자로서 일을 한 것이기 때문에 생각할수록 황당하기만 했다. 오히려 그 잡지사 측에서는 고료를 주기는 커녕, 심지어 한 달 넘도록 고료를 얼마나 지급하는지도 가르쳐주지 않은 채 일 시킨 것에 대해 당연하게 여겼으니까.

내가 그만두고 난 뒤에 열린 최종편집회의에서 마침내 고료가 공개됐다. 그것도 '구두' 로. 구체적인 규정도 얄팍하고 고료 지급 방식도 아주 '탄력적' 이었다. 특히 온라인. 그 쪽 기사의 경우, 고료를 책정할 때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4 페이지까지만 급료가 지급되고, 그 이상의 페이지를 할애하여 기사를 쓸 경우, 원고료는 4 페이지 쓰고 받는 고료와 같은 것으로 책정해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글 더 써봐야 돈 더 받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878787.JPG
마치 고기뷔페와 같은 이치.

최종편집회의 이후 확정된 객원기자 일은 이런 방식이었다. 단신 기사 쓰기는 없고, 기획 아이템을 찾아서 데스크 통과가 되면 그에 관해 원고를 쓰고 고료를 받는단다. 아이템 건의 수는 자율이었다. 

그러니까 돈을 벌고 싶음 아이템을 최대한 많이 찾고, 벌기 싫으면 말라는 거다. 다른 잡지의 객원기자도 이렇게 활동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이 말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맥스무비 매거진에서는 이렇게 일한다. 지금은 시간이 몇 개월 지났으니 또 어떻게 바뀌었을런지는 모르겠다. 아이템을 많이 찾아봐야 그 중에서 데스크를 통과할만한 건 몇개나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객원기자가 이 일을 통해 돈을 버는 건 헛수고나 다름없었다.

내게 남은 것은 오리엔테이션 당시에 지원해 주기로 약속한 영화 예매권 네 장과 기자 명함 뿐이었다. 6월 6일 최종편집회의를 부탁해서 녹취했다. 거기서 편집장은 이런 말을 했다.




"...이거는 비공식적인 생각인데, 여러분들이 연령대가 어떻게 되지? 다 20대죠? 요새는 뭔가, 회사에 뒷통수 맞는 사람들이 많아요? 모르겠어요? 아니면... 주변에 피해사례들이 있나요? 예를 들면, 이렇게 뽑아서 쓴 다음에 돈 안주고 버린다던가... 있나봐. 주변에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얘길 들었거든.

그래서 글쎄... 저는 맥스무비의 객원기자라는게, 여러분들한테 개인에 따라서는 인생에서 중요한 타이틀이 될 수도 있고, 그냥 한 때의 재밌는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여러가지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봐요. 그거는 개인이 일이나 과정에 얼마나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어딘가에 '객원기자고, 내가 매체의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다.' 라고 했을 때는, 이 매체가 내 매체거든요. 그래서 '여기까지는 페이, 여기까지는 낫 페이' 이런 개념으로 생각을 하는게 맞을지 고민을 좀 해봤어요. 그렇지만 저는, 여러분들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로 생각하면... 지금 그거를 따지기엔 너무나 미약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좀 더 많은 것들을 챙길 수 있는 시간들로 여러분들이 썼으면 좋겠구요, 그리고 이왕이면 여러분들이 사는 경험에서 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도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걸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하는데는 각자의 몫인거 같아요. 여기서부터는 제가 뭘 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여기서부터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셔야 될 부분이라서...(후략)"





4.


나는 맥스무비에서 겪은 일을 노무사에게 물어봤다. 노무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수습약정에 무급이라고 약정을 했어도 최저임금 이상은 보장을 해줘야 합니다. 잡지사에서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고용노동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봅니다. 소규모 영세잡지에서 경영난을 겪어서 임금체불이 다수 발생을 하지만, 이런 경우는 질적으로 아주 좋지 않습니다. 법의 구제를 기다리는 것을 권유드립니다."


나는 이 얘기를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의외로 영화잡지 쪽에서 이런 식의 '임금도 주지 않고 부려먹는 시스템'이 상당히 깊은 역사를 가지게 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현재 찍어내고 있는 잡지들부터 이미 폐간된 잡지까지. 그러나 내게 이 사실을 알려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제에 관해서 항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형태든 불이익을 받는 쪽은 잡지사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불이익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이들이 기자들에게 돈을 주지도 않고 공짜로 글감을 받아 먹으면서 이리도 떳떳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였을까. 적어도 맥스무비 매거진 쪽에서는 '경력' 이었다. "우린 경력을 제공해줬다." 참 매혹적이고도 무서운 말이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가르쳐주는 '기술'이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상쇄할만큼 대단했는가를 묻는다면 난 회의적으로 답할 것이다. 적어도 내 사수인 이 모 기자는 짜증만 줄창 냈을 뿐, 기술 전수에 모든 걸 다 바쳐 열심히 해 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거기서 그만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다른 열 명은 같이 불평하고 욕했지만 남아 있게 됐다. 그 놈의 '경력' 때문에. 

어쩌라고어쩌라고.jpg

처음엔 납득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리 생각해도 난 납득할 수가 없었다. 경력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보장해 줘야 할 조건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만두고 난 뒤 그리 오래되지 않아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넣었다. 내가 한 달동안 쓴 글값은 받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편집장에게 전달되길 바랬다.

더불어, 적어도 이런 일이 있고 그 잡지사에서 나오는 태도를 보며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서 되려 당연하게 생각하는구나' 라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용노동부에 보낼 민원서를 작성하는 동안 '내가 잘못한 건가?' 하면서 끊임없이 의문을 가졌다. 지금 하는 행위가 정당한 것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더라. 순응이 아니라 의문을 제기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는 환경에서 살아오기도 했고, 내 줏대가 없는 탓일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작성을 완료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에서 응답이 왔다. 응답이 온 것치고는 그 쪽에서 내 민원을 받아든 사람이 너무 퉁명스럽게 질문하고 대답을 해서 불안했지만, 기뻤다. 고용노동부도 기업의 편을 드는 경우가 많아서, 대개 형식적으로 응답하고 애초에 사건을 해결해 주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5.

일단은 7월 3일에 서울고용노동청에 출석하라는 응답이 왔다. 나름대로 증거라고 할만한 것들을 모아두긴 했는데 거기서 받아들여 질까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법은 허점이 많으니까. 그리고 남아있는 다른 객원기자들에게 해를 끼치는 거 아닐까. 하지만 내가 나아진다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결론내리고... 나는 대구에서 서울행 버스를 탔다. 


적어도 이후로 객원기자 고용하고 일 시킬 때 조금이나마 <맥스무비 매거진> 측에서 그들의 눈치를 보게끔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img_234474_1.png



6.

고용노동부에 출석하기 한 1~2주 전 쯤, 사실 난 이 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질문의 메일을 보냈다. 그러니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영화 잡지를 포함하여 이렇게 글 쓰는 업계에서 사람들에게 원고료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무상으로 글을 받아먹으려 드는 시스템. 가령 올 해 허핑턴 포스트가 고료를 주지 않고 글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던 문제에 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거슬러 올라가보니 그 역사가 2~30년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 의해 알게됐던 때. 그 때였다.

unheim.jpg
허핑턴 포스트 '무'원고료에 대한 진중권의 트윗

문득 궁금해진 것이다. 소위 현재 한국에서 '영화평론가', 혹은 '영화 담당 기자' 라며 활동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 했다는 사실들을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영화에 관해 글을 쓰는 세 사람에게 이에 관한 질문을 담은 메일을 보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두 사람은 고용노동부 출석 전에 보냈고, 한 사람은 결과가 나온 후에 보낸 것이다. (이제부터 이 세 사람을 A, B, C로 통칭하려고 한다.)

정확히 그들은 3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내 말만 듣고 결정 내리기는 조심스러워 했을 거라고 본다. 그래서 답장을 보내준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히 생각하기로 했다... 만 한국의 영화평론가 / 기자들 중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싶어 많이 씁쓸해 졌다.

먼저 A로부터 답장이 왔다. 그가 보낸 내용의 일부다.

'...삼성같은 회사도 있고 동네 수퍼같은 회사도 있다는 뜻입니다. (어느 쪽이 좋은 지는 각자의 판단입니다)
 
그리고 현재 영화잡지는 씨네 21과 맥스무비, 중앙일보에서 나오는 M 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동인지들이 있지만 여길 직장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겠네요.) 어느 쪽을 선택하시건 모두 회사라는 것은 동일하죠.
 
충분히 검토하시고 좋은 선택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영화에 관한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것은 생활이며 취미가 아니라는 점만을 염두에 두신다면 현명한 판단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쓴 작업때문에 세금을 내야하며, 매년 종합소득세를 내는 날부터 프로라고 생각합니다.'


A의 답장을 받고 처음엔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여기서 뜬금없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왜 말 해. 회사에 대한 검토가 문제가 아니라 난 지금 위에서 언급한 회사 중 하나에서 나온건데. 이 사람이 내 메일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한건가. 내가 글을 제대로 못 썼나보다. 다시 질문글을 보냈다. 곧 이런 답장이 왔다.



'...회사의 경영방식에 따라 일을 하는 쪽에서는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경력을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노동력 제공에 대한 보상을 했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건 회사의 판단이므로 여기에 일반적인 노동가치론을 판단의 잣대를 제시하면 뭐, 아시다시피 대답은 더 간단하겠죠. 원칙과 현실이 다르다는 따분한 대답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바뀌어야 하고, 좋은 세상이 와야 하고, 노동운동을 해야 하고, 비정규직 조합이 필요하고, 등등)

안타깝지만 세상 일이 이해관계 속에 놓여있군요. 만일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 고 제게 물으신다면 고전적인 정치경제학 책을 영화 책 대신 추천해 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다음 현실 안에서의 행동은 홍준호님의 선택입니다.'


저기까지가 A의 입장이었다. 마음 고생 심했겠다는 적당한 위로와 함께. 뒤이어 B로부터 답장이 왔다. B가 보낸 메일의 내용 일부다.


'....저는 사실 질문해주신 문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영화 관련 주간지나 월간지에서 일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 중 한 명이니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어쨌든 (제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관행'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쪽의 사정이나 상황에 대해선 제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홍준호님의 메일 내용으로만 판단한다는 전제 하에 일반적인 제 의견을 말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라면 제 상식에는 어긋나는 일로 보입니다. 원고를 썼고 그 원고가 상업적으로 활용되었다면, 본인이 사양하지 않는 한, 고료는 지급되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 사안에서는 쓰신 기사들이 기자 트레이닝이나 선발 과정의 재료로만 활용되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실렸는지도 중요하겠죠. 


후자였다면 제 판단엔 적든 많든 원고료가 지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설혹 전자라도 만일 그렇다면 처음 공고에서 미리 밝혀야 좋겠죠.


의지를 가지고 시작하신 일에서 마음이 많이 상하셨겠네요. 
부디 원하시는대로 앞날이 풀려나갈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B가 보낸 답장은 A와 달랐다. 사실 읽으면 호감이 가는 건 B 쪽이라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러나 답장을 보며 잠시 우울해 지기도 했다. B는 월간지나 주간지에서 일하지 않았기에.. 말하자면 이런 상황을 겪을 일이 없는 환경에서 일해왔으니 자긴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경력이 그랬다. 의심이 들었다.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그 쪽 업계에 몸 담고 있으면서 소식을 듣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B의 답장은 그래서 미심쩍었다. 고용노동부에 갔다온 이후 C에게 메일을 보냈고, 그에게서도 답장이 왔다. C는 A와 견해가 똑같았다. 

 
저명한 평론가로 인정받는 그들, 그 중에서도 A는 '세상 일과 이해관계'를 논하고 있었다. 명성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여전히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무기력한 것인가, 아니면 이런 일을 자신도 분명 겪었을텐데 바꾸려고 들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을 직접 만난다 해도 얻어낼 수 없는 대답이리라. 그에게도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수 밖에 없었다.




7.

그 메일들을 읽고 7월 2일에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7월 3일 고용노동부에 출석했다. 고용노동부 담당관과 나, 뒤이어 맥스무비의 편집장이 들어와 합석했다. 고용노동부로 가는 길을 걷다가 어디서 많이 본 거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맥스무비 본사가 있는 곳 주변이었다. 노동부 출석할 때 해당 지역 부근의 장소로 정한다고 하던데, 그런 거였구나 하면서 들어갔다.

사실 시작부터 불안했다. 고용노동부는 내가 내놓은 증거를 보는 둥 마는 둥 '휘휘' 들추어 보고는 책상에 탁 던지더라. 그리고 갔다 온 결과는 이랬다. 

고용노동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내가 맥스무비에게 요구했던 몫을 받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객원 기자'는 정 직원이 아니라 '프리랜서' 라고 했다. 그러면서 프리랜서는 고용노동부의 노동법의 지원과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뒤에 나온 말은 더 씁쓸했다. 고용노동부의 담당관이 내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애초에 계약을 철저하게 했어야 한다' 고 지적한 것이다.


나는 허위공고가 문제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고용노동부 감독관은 공고는 원래 허위가 있을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애초에 오리엔테이션에서 고료가 이후에 지급되는 걸 알면서도 결국 거기에 승낙을 해서 일을 했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의 시각에서 보자면 나도 문제가 있다' 는 것이었다. 그걸 해결해야 하는 게 고용노동부 아니냐, 뭔 개소리냐 하고 싶었지만 그러고 보면 명확하게 모든 걸 묻지 않은 내 탓도 있기는 하다. 고용노동부의 담당관이 이렇게 말하자, 편집장이 말했다.


"그렇다. 공고를 낼 때 우리는 직원을 모집한게 아니라 객원 기자에 '지원' 하라는 거였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됐었다. 준호 씨가 이렇게 나와서 맥스무비를 포함해 일하고 있는 다른 객원기자들도 무척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원래 공고는 허위가 많으니 프리랜서들은 당사자가 계약을 잘 해야하고, 고용노동부에서는 당신같은 사람들을 보호해줄 수 없다.


마지막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혹시 다른 객원기자들도 이에 대해 반발한다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은 그런 여건을 줘도 감수하고 일을 하고 있는데, 당신 혼자만 이에 불만을 가지고 항의하면 정당함을 입증하기가 힘들수 있다는 이야기... 담당관이라는 사람이 진짜 나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맞는건지에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고용노동부의 한계이고 결정이란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적어도 고용노동부는 저 같은 사람을 도와주는 곳은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맥스무비의 편집장이 곧 내 블로그에 있는 글을 증거로 인쇄해 와서 이야기를 좀 더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나는 이런 이야기를 내 블로그에 먼저 올렸었다. 그 뒤로 맥스무비 매거진은 내 블로그의 꾸준한 방문자가 되어주었다. 수시로 들어와서 감시 겸 눈팅을 한다더라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봐도 뭐, 얻어낼 것도 없을텐데... 그렇게 감시 겸 눈팅을 한 이유를, 편집장은 그 날 유감없이 뽐냈다. "공고의 '지원' 이라는 글귀는 '모집' 을 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지원' 하라는 거였다"는 변명을 하면서. 우리는 그냥 문을 열어놨고 당신들은 들어왔을 뿐이니 우린 잘못이 없다. 들어온 너희가 잘못이지. 이 말을 하기 위해서...


milgal-gozara.jpg
모집이 아니라 '지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이 일을 겪었던 사람들이 과거에 나서서 목소리를 냈으면 잡지사 측에서 '직원 모집 공고를 낸게 아니라 지원 공고를 낸 거라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겠다고 말하면 되지 않은가' 따위의 헛소리를 저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편집장은 영화 저널이 번성하던 2000년대 초중반 업계 진입에 성공함으로써, 현재 영화계에서 기고나 GV, 강연등으로 이권 카르텔을 형성한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분야에서 글을 쓰고 살아가려면 방법이 없었다. 이런 카르텔을 형성한 사람 밑에 들어가 불합리한 대우를 받더라도 감지덕지하며 살아가는 것 밖에는. 이런 사람들이 영화잡지에서 '갑'을 논하며 젊은 사람들의 진을 빼먹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를 내지 못한 사람들을 탓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객원 기자'는 정직원이 아닌지라 고용노동부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결론났다. 그리고 고용노동부에서 서로 간의 대화는 1시간 30분 만에 끝이 났으며, 편집장은 떠났고 나는 많이 아쉬웠다.




8.

고용노동부에게 의문이 들었다. 고작 이 얘기를 해줄 거였다면 나 보고 왜 올라오라고 했을까. 객원기자가 고용노동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없다면 맥스무비 측에서 편집장을 부르건, 내가 오건 결과는 결국 똑같지 않은가. 왜 그랬나 알아보려고 은근슬쩍 떠 보는 말을 했다. " 이거 출석하려고 경산에서 올라왔어요." 라고. 
 

고용노동부 담당관의 말은 이랬다. "아. 경산에서 올라온 거였어요?" 증거 자료고 사는 곳이고 뭐고 다 냈는데, 순간 '아. 이 사람이 뭐 제대로 읽은 게 없구나. 어디서 올라왔는지 다 적어놓고 여러번 말했는데.' 란 생각이 들었다.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하고 싶었지만, 어쩌겠나. 고용노동부에서 판정하는 시간이 다 끝났고, 출석한 내가 고용노동부를 평가하고 판정할 수는 없는 것을... 
 
3lJBC9b.png
경산에서 올라왔나?

글을 쓴 내 몫은 받지 못했다. 사실 받지 못했다고 해서 당장 길거리에 나앉거나 하는 건 아니었기에 지금 이렇게 살고는 있지만, 많이 원망스럽고 아쉬웠다. 나는 이런 내용의 글을 블로그에 먼저 남겼다. 편집장을 비롯해서 거기서 객원기자들을 가르쳤던 사수 기자들은 그런 식으로 살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이걸 맥스무비 매거진 측에서 본 것 같기는 하다. 고용노동부에 출석한 이후인 7월 9일에 블로그 안부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9. 

사수 기자들 중 한 사람인  모 기자가 글을 남겼다. 내 사수 기자와는 다른 사람이며, 블로그에 써 놓은 어떤 문장을 보고 눈물이 돌아 남겼다고 한다. 그 문장을 보며 위의 저 내용 때문이겠거니 싶었다. '그렇게 살지 마라'는 부분 말이다. 그 기자와 나의 관계는 무척 얕다. 내가 맥스무비 매거진 객원기자에 관련하여 화상 면접을 볼 때 한 번 보고, 그 놈의 객원기자 트레이닝을 받을 때 카카오톡에서 얘기 몇 번 한 정도(?) 그의 안부게시글은 '후배가 없는 선배의 조금 긴 넋두리' 로 채워져 있었다.

도대체 자기 넋두리를 왜, 자기가 다니는 잡지 때문에 고통스러워 한 사람의 블로그에다 남기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런 식으로 엿을 먹이려 드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이런 식으로 글을 써서 무급으로 트레이닝 기사를 쓰게 만든 회사의 마음을 이해시키고 싶었나 보다. 내용의 일부가 이런 식이었다.

'... 기자가 쓰는 문장에는 블로그에 나만의 감상을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책임이 따릅니다. 누군가 맥스무비, 그게 무슨 영화잡지야, 그냥 이제는 한물간 예매사이트 아니냐, 그 옛날 키노나 필름 2.0이 진짜 영화잡지였지. '어 요새 씨네21 이상하게 바뀌었어' 그런 기사는 나도 쓰겠다. 독자들에게 아무리 욕을 먹어도 내 이름 달고 나가는 기사의 모든 문장을 오롯이 책임지고 내가 사랑하는 영화를 위해 한 번이라도 더 좋은 표현을 찾기 위해서 밤을 지새는 누군가의 노력이 있는 것이죠.


맥스무비에 첫 입사한 날부터 거의 이틀 동안 잠을 못 잤어요. 아침에 출근해서 써야 할 단신기사가 너무 부담이 되어서였어요. 영화에 누가 될까봐 내 미천한 문장력이 바닥을 드러낼까봐 지금도 저는 단신 기사가 너무 어렵습니다. 


영화 잡지라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인생이 걸린 결과물이라는 것을 그래도 이렇게라도 한 번은 꼭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영화 기자가 되고 싶다면 더 많이 보고 정말 더 많이 쓰셔야 합니다.'


그의 안부글을 보고 혼자서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생각을 했다. 그를 비롯해서 '그들'은 이런 이유로 '우리는 단신 기사를 잘 쓸 수 있도록 가르쳐 줬으니 급여를 주지 않는 것은 정당하다' 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기자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가 허위 공고로 사람들을 채용하고, 그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지원하라고 했다. 그들을 채용한 적 없다' 고 말했으며, 돈도 주지 않고 기사를 쓰게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비록 한 '정규직' 기자의 글에 불과하지만, 여기서 이 잡지는 자기들이 지금도 뭘 잘못했는지를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자신의 회사에 대한 알량한 '애사심'이 있는 개인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둘 중 어떤 이유이건 나는 읽으면서 화가 많이 났다. 

설사 개인의 마음이라 할지라도 정규로 입사하여 일 하는 사람이 허위 공고에 해당 매거진 편집장의 생각으로 따지면 '지원했지, 우리가 채용한 것도 아닌' 객원 기자, 그렇게 일을 했던 사람의 사정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모르면 차라리 말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알고 있었다면 (전) 객원 기자의 블로그에 와서 정규직 기자의 넋두리를 올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




10.

고용노동부를 나와서 포기를 한 건 아니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알아보니 고용노동부에서 안 되면 법률구조공단이라도 찾아가 보는 게 낫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민사를 가야한다면, 법률구조공단에서 상담을 받고 무료로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보니 고용노동부 주변에 맥스무비 매거진 본사가 있고, 거기서 좀 더 진득허니 걸어가면 법원이 있다고 했다. 법원 옆엔 법률구조공단이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법원 건물 옆에 조그마한.. 한 3~4층짜리 빌딩이던가? 가볼만 하겠다 싶어 거기서 상담을 받았다. 나 스스로 글값을 받아내기 위해 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법률구조공단의 상담원은 회의적이었다. 동시에 사무적이었다. 항상 입에서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찌됐든 그들은 '사전에 먼저 고료 없이 일을 시키겠다고 말을 했으며, 내가 응했기 때문에 재판에서 확실히 승소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고 얘기했다. 그 확실함이 없으면 자신들은 나서지 않는다' 고 말해줬다. 결국 나는 법률구조공단 상담을 중단했다. 일어서는 나에게 상담원은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원래 전화로 예약을 하지 않으면 상담을 길게 해드리지 않아요. 고객님은 상담을 30분 정도 하셨는데, 제가 특별히 많이 해드린 거에요."

...그래. 고생했다. 나는 법률구조공단에서 상담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좌석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얼마나 멍하니 앉아 있었으면, 시간이 흐르고 흘러 거기 문 닫을 때까지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내가 나가지 않자 법률구조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수군수군 댔다. 

저 사람 뭐야. 왜 안 나가? 뭔 일 있었어? 모르겠어요. 상담 받고 난 뒤부터 나가질 않아요. 가서 쫓아낼까, 나가라고? 아니 아니. 그러지 마요. 이상한 사람 같아.

3631_1856.jpg

그들이 문 닫고 나가려는 시늉을 하는 걸 보고 나서야 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용노동부에 출석하여 하루만 있다가려고 했던 서울은, 어쩌다 보니 친구의 자취방에 신세를 지게 되면서 7월 10일까지 있게 됐다.




11.

난 7월 11일, 해가 질 때 쯤에 돌아왔다. 원래는 포항에 산다. 원래 거기로 내려가려 했지만, 내린 곳은 대구였다. 대학교를 그 쪽에 다녀서 자취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취방 계약기간이 끝나가기 때문에 직접 짐을 조금씩 빼려고 내린 것이었다.

7월이니 한창 더울 때다. 타들어 갈 것 같은 더위 때문에 저는 가방에 무거운 짐을 담은 채로 걸어가다 잠시 햇빛을 봤다. 잠시동안 스스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걔는 태양을 봐서 헤까닥 돌아가지고 권총으로 쏘고 그러던데... 난 생각은 많이 했지만 차마 그걸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해서는 안 되는 짓이기도 하고, 법은 나 같은 사람의 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돌아와서 바로 나체로 침대에 엎어졌다. 깨어보니 그 다음날 아침 7시 40분이었고, 나는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 궁리를 하고 있었다. 내년이면 대학 졸업인데.. 잠시 머리가 백지 상태가 됐고, 막막했다.




12.


'객원기자 1기' 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뒤, 혼자 '객원기자' 했던 허XX 평론가는 맥스무비 매거진의 '편집위원'이 되어 있었다. 모 편집장 말마따나 그가 맡고 있는 '객원기자'와 내가 맡고 있는 '객원기자'는 그 의미가 다르다더니, 부랴부랴 직책 하나 만들어서 그렇게 올려준 것 같았다.




13.

여기까지가 나의 영화 월간지 객원기자 체험기다. 회사에 소속된 정규 기자는 (이런 여건에서 일하라고 하면 절대 일하지 못할 거면서) 영화에 관해 글을 쓰고 싶어했던 객원 기자를 향해 저런 발언들을 하고, 노동력을 착취하고 허위 공고를 내거는 영화잡지는 스타 배우의 인터뷰를 앞세우며 서점에, 극장에 잘도 나오고 있다. 


내가 겪은 현실은 이런 거였다. 아니면 다른 곳들은 좀 더 나을 수 있는데 내가 하필 유독 저질스러운 곳에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문제는 얘기 들었던 것보다도 더 심각했으면 했지, 덜하지는 않은 듯하며 정신과 지식 노동은 정말 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내게 사적으로 달아준 댓글들과 보내준 메일들을 보고 나서 깨달은 것이었다.)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경력이라는 것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내 주린 배를 채워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료, 혹은 급여를 묻는 자신을 속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절대 그러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동을 하고 받는 대가는 정당하기 때문이다. 

난 순응했다. 노동을 하고 받는 대가가 정당하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런 건 아니다. 나름대로 그것에 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닥쳐오니 여러가지 환경과 이해 관계에 따라 순응하고 말았다. 아마 맥스무비 매거진 측에서 날짜를 미루지 않고 객원기자들을 향한 일들을 진행했더라면 계속 순응하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국 나 혼자만 나오고 말았다. 내가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고 먼저 묻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내 손으로 남의 코만 풀어주고 만 셈이다. 

이후로도 나는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민사를 걸어볼까 했지만, 돈이 없었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대학생이 무슨 돈인가. 변호사 선임할 수 없으면 혼자 해야 하는데, 이미 그 전에 재판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거의 10만원 가까운 돈이 지출된다고 하더라. 돈이 문제였다.

111.jpg
나와는 상관없다.



14.

내 블로그에 이 이야기를 올린 뒤, 몇몇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었다. 내 몫은 받지 못할 것 같지만 이런 사실들을 많이 알려서 조금이라도 이 풍토를 바꿔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론가들은 답이 없이 묵묵부답이었다. 몇몇 곳에서 연락이 왔으며, 최근엔 미국의 어떤 대학교에서 내 글을 보고 연락을 하여 자료를 보내줬다. 

민들이 아무리 말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정부가 산케이 신문에서 뭐라 한 마디 하니까 바로 성명 발표하는 걸 보고, '아.. 역시 외국 애들이 뭐라고 말해줘야 얘들이 민망하게 여겨서 뭘 고치려는 시늉이라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영화 덕후' 들의 마음과 열정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을 거면서 이용했고, 열정이라는 단어를 더럽힌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후회를 할까 싶어서...

내게 남은 건 없다. 이 짓을 왜 하나 스스로도 이상하게 여겼다. 지금 당장 내게 급한 건 돈과 일자리인데. 근데 어찌됐든 하고 있다. 경력을 내세운 착취, 혹은 과도할 정도의 재능 기부 호소 등등이 조금은 자중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정말 슬픈 건 영화에 관해 글을 쓰고 그걸로 입에 풀칠하는게 꿈이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걸 생업으로 할 순 없겠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다는 점이었다. 맥스무비 매거진 따위가 계속 출간되고, 다른 영화잡지들이, 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곳들에서 돈도 주지 않은 채 사람들이 머리를 쥐어짜며 써낸 글들을 아무런 대가도 주지 않은 채 가져갈 수 있는 현실이었다. 그 놈의 잘난 '경력' 이라는 이름 아래서. 

예전부터 영화평론 등으로는 절대 먹고 살지 못한다고 들어왔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뼈저리게 느낀 적은 없었다. 김부선 누님은 세상에 직업이 수만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안타깝게도 내 눈이 좁은 탓에 그렇게 많은 직업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누가 내 눈에 점안 좀 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글을 썼냐고? 어떻게든 뭔가로 승화시키지 않으면 그 동안의 일들이 가치없는 쓰레기로만 남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다 써 놓고 나니, 스스로가 다시 읽어보기 싫었다. 그렇게 해서 블로그 정도에나 올려 놨었는데, 다시 정리해서 다른 웹 사이트에 올려야 겠다고 생각한 걸 보면 이젠 조금 나아진 것도 같다. 

1@1393207758df4a6372de33733.jpg

그러나 여전히 나는 막막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상 나의 영화 월간지, 그러니까 <맥스무비 매거진> 객원기자 체험기였다. 어차피 올려봐야 나보다는 충분히 성공하실 분들이 차고 넘치시겠지만, 그냥 핵폐기물보다는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글을 남겼다. 이미 딴지일보에는 팬더 님의 명문인 <글이 돈이 되는 기적> 연작이 있지 않은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글임이 뻔하겠지만.. 그래도 읽어주신 분들, 길고 좋지 않은데도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드린다.



 


편집부 주

 

본지는 

독투불패에 올린 

홍준호님의 글에 대해

맥스무비 측 입장을 함께 싣고자

수차례 전화연결을 시도했으나

'기자들이 전원 외근중이라 통화가 힘들다'

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맥스무비 측은 이 사안과 관련, 

해당 매거진 편집장에게 

직접 연락을 넣어놓겠다고 답한 바, 

명확한 입장이 나오는대로

다시 마빡을 통해 전해드리겠습니다.



 



 


편집부 주2

 


맥스무비 매거진 편집장은 

본 사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공식입장을 전해왔기에 

이에 독자제위께 알려드립니다.



 






문화불패 홍준호


편집 :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