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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26. 금요일

요제프 K


























며칠 전 엠마 왓슨 배우님께서 유엔 본부에서 여성 인권에 대한 연설을 하셨다.(개인적 팬심으로 인한 극존칭 사용, 이하 엠마 왓슨); 자그마치 13분이나 되는 엠마 왓슨의 연설(프롬프터도 없이!)을 요약 하자면 다음과 같다.



“남자들이여,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는 당신들의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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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탐미주의로 유명한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읽던 때였다. 소설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광기어린 말투와 그에 이어 등장하는 각종 여성 비하적인 발언들을 보며 느낀 점은 '이 작가는 여성을 그저 열등한 타자로 본다'는 것이었다. 소설 속에서 여성은 그저 남성 주인공이 이끌어 나가는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 실제 세상에 대입 하자면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존재가 아닌, 남성들의 삶을 둘러싼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취급 된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러시아 문학에서도 자주 발견 된다. 러시아 문학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들은 상당히 비슷한 특성(주로 부정적인)을 가진 그저 소설의 한 장치로 등장했다. 이렇듯 인간사를 솔직하게 투영하는 문학에서도 여성은 그저 남성의 일부, 혹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 되곤 했다


그 후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위 연설에서 엠마 왓슨이 주장했듯 “아직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국가는 지구 상에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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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유엔 사무총장이 부러웠...(Feat. 밴키문)


그럼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보자.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은 일이나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세상 일에 대해 알고 싶을 때 나는 그 사건을 섹스와 돈에 연결해 보곤 한다.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이 있겠지만 본 필자는 이 글에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남성 우월주의적인, 한참은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는지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성욕과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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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우리나라 성범죄 해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것은 그 위대한 희랍인 철학자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빌려온 것이라 추측할 수 있는데, 가족이라는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이상화하여 예로부터 우리 사회를 '단군의 자손'이라는 한 핏줄(민족적으로)로 묶는 전통에 대입한 기념비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풀이해 보자면 '손녀' 같은 여성을 다리털 다 빠진 '할아버지'가 추행하는 우리 사회의 어그러진 모습을 직접 보여 줌으로써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어린 여성들을 그저 남성의 성욕 해소 대상으로 보는지 만인에게 이해 시켜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가족이라는 사회 집단의 존재를 사회의 여러 모습을 풀이하는 데 접목시켜, 나같이 생각이 모자란 잉여도 사건에 대해 쉽게 공감하고, 사람들과 같이 분노 할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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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키태가 시작한 사상적 혁신에 이어서 이번엔 '언니' 같은 사장이 '동생' 같은 사원을 접대에 이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썸앤파커스(aka 썸앤퍼커스)라는 출판사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몇 년 전 모든 젊은이들을 골병들게 한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책을 펴낸 경력이 있기도 하다.


이렇듯 (마치 한가족 같은)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종종 성욕 해소의 대상으로 비춰 지고 있고, 그와 관련하여 각종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 자주 '여배우 000의 아찔한 의상' 따위의 기사가 전시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여성들은 자주 남성들의 성욕을 충족시킬 '성적인 타자'의 모습으로 비춰지곤 한다.


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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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권리에 대해 논할 때 자주 이용되는 자료는 바로 남여임금격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큼 확실한 게 없어서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숫자이다보니 눈에 확 들어와서이기도 할 것이다.


위 그래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남여임금격차 배틀에서 쟁쟁한 선진국들을 여유롭게 따돌리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 따위 두 배에 가까운 수치로 부숴버렸다.(참으로 자랑스럽다. 금메달이 역시 최고다. 은메달 동메달이 무슨 의미가 있으리?)


페미니즘(여성주의)은 마르크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간의 갈등을 페미니스트들이 남성과 여성간의 갈등으로 약간 바꾼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 페미니즘도 여러 번의 단계와 흐름이 있었고 각각 차이가 있지만 너무 복잡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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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알고 싶으시다면 위키백과를 찾아 보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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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더라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페미니즘의 기본은 자고로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슈들을 재조명하여 이것들이 어떻게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는가에 대한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그 중 본 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세컨드 시프트(the second shift, 한국말로 뭔지 안 나오더라)이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직장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노동의 시간은 비슷한데, 퇴근 후 가사분담은 그러한 변화와는 별개로 여성에게 집중된다는 이야기이다(세컨드 = 두번째, 시프트 = 근무, 즉 퇴근 후 집에서 두 번째 근무를 한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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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부부들의 경우 비교적 가사분담의 균형이 맞춰진다고 하지만(이 주장 역시 출처가 불분명하여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난 미혼이니 잘 모르겠다);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 따르면 아직까지도 여성들은 직장에서의 노동과 가사노동의 굴레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다.


'착취'라고 하면 대부분 19세기 영국의 공장에서 하루 15시간씩 일하던 어린아이나 아이폰을 만드는 팍스콘 공장의 노동자를 떠올리겠지만 사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착취'란 노동에 비해 얻는 보수가 적은 모든 경우를 포함한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정의에 따르면 우리 사회 대부분의 여성들은 착취에 시달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것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다. 즉 남성이 주도하는 우리 사회에서 '열등한 타자'였던 여성이 현대 자본주의사회에 들어 '열등하지만 중요한 타자' 정도로 위치가 상승 되었지만 아직 '동반자'의 위치보다는 '착취의 대상인 열등한 타자'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본 필자의 생각이다.


남성 우월주의자들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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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성범죄와 착취에 시달리며 살아가지만, 오히려 우리 사회의 한켠에선 현실을 망각한 채 각종 프로파간다를 동원한 남성 우월주의가 일어나고 있다.


항상 트렌드에 민감한 본 필자는 유행 지난 떡밥을 끌어다 쓰는 것을 지양하지만 이 만화보다 남성 우월주의자들이 바라보는 여성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이 없어서 비난을 무릅쓰고 꺼내들었다. 이 만화는 몇 주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탈북여성들과의 결혼을 알선하는 회사의 홍보물이다. 그럼 한 번 같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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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성들과 달리, 이하 생략); 한국 여성들은 관리를 엄청 하고 성형수술도 하는데, 안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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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들은 남자들이 2년간 군생활 하는 것도 무시한다. 그리고 나이 차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 광고가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란 걸 이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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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들은 사치를 하고 (군대를 안갔다와서); 개념없이 난잡한 생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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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들은 사랑이 아닌 돈을 밝히고 순수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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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은 성에 개방적이지도 않고 딱히 결혼을 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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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들은 부모님 모시는 것을 싫어하고, 그 이유는 '효심'이 없어서이다.

(이후 이어지는 만화들도 굉장히 문제가 많지만 주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서 생략한다)


이 만화에서 보이는 여성에 대한 낙인들은 일베 같은 자칭 20대 보수, 타칭 베충이들의 거주지에서 자주 보이는 그것과 흡사하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이제 단순히 소수의 남성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다른 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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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유행했던 스시녀(일본여성을 칭하는 말현상에 대한 북조선 종편의 보도이다(내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데 하여튼 내 기사 주제는 주로 얘네가 준다). 한국 여성을 '김치녀'라 부르며 비하하던 것과 연결되어 더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는데, 이 역시 앞서 살펴본 만화와 비슷한 내용으로 한국 여성을 비하하고 그 대안으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말도 안되는)은 일본 여성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요즘엔 이것이 탈북 여성에게로 옮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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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조선 종편(또!)에서 방영하고 있는 모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한국 노총각과 젊은 탈북 여성이 만나 '가상결혼'을 한다는 내용이 그 기본 골자이다. 보시다시피 한 남성 출연자가 한 말이 성희롱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이슈가 되기도 했다.(대통령께서는 제발 프로그램을 고심 끝에 해체하시길 바란다)


일본 여성과 달리 탈북 여성의 경우엔 이것이 실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만 하다. 물론 '스시녀, 김치녀'도 여성비하라는 점에서 주시해야할 것이었기는 하지만 탈북여성들의 경우 우리 사회에 흡수된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그 무게가 확실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고,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가진 남성 우월주의자들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그 대안으로 불안정한 신분의 탈북 여성을 목표로 삼아 희생양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한 대책도 물론 정부, 여당이 신경을 써야 하겠지만 건국 이래 최초의 여성 대통령께서는 안타깝게도 여성의 권리에는 관심이 없으시고 여당은 민생법안에만 관심이 있으니 시간 많은 나라도 떠들어 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열등한 타자인가 동반자인가?


여성과 관련된 사회이슈가 터지면 매번 하는 것이 있다(피해)여성에 우리 엄마, 내 동생, 그리고 내 애인(은 현재 모집 중)을 대입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키태에게 성추행을 당한 캐디가 만약 내 동생이었으면 난 어떻게 반응했을 것인가?' 하고 말이다.

세월호 참사로도 잘 드러났듯 우리 사회엔 사회적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 많다. 내 일이 아니라면 공감이 쉬이 되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일이 내가 속한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노력을 기울여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공감해야 마땅한 것이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같이 슬퍼하는 것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한 남성으로서,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고통은 공감하기 힘들다. 아마 그래서 엠마 왓슨이 유엔본부까지 가서


“남자들이여,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는 당신들의 일이기도 하다.”


라고 주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동반자로 인식되는가아니면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에서처럼 여성은 사회(소설)의 구성(장치) 요소이자 열등한 타자에 불과한가?


우리 사회는 '내(내가 사랑하는 여성 누구든)'/가 살기에 좋은 사회인가?


마지막으로 One Women : A Song for UN Women이라는 노래를 선곡하며 글을 마무리 하겠다.




끝.






요제프K

트위터 : @JosefK44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