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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05. 수요일

퍼그맨








밴드 컨셉은 우리나라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밴드가 인기 없다는 게 아니다. '나는 가수다'만 봐도 윤도현 밴드, 국카스텐 같은 애들 뜨면 박수치고 난리나건만 음악 방송이랍시고 음향보다 무대에 들어가는 LED에나 공을 들이는 나라에서 밴드는 그들의 장점을 살리기 힘들다는 얘기다. 


결국 똑같이 MR 틀어놓고 노래만 부르게 될 텐데 이럴 바에야 비싼 악기랑 부수적인 장비랑 연습 시간이랑 왕창 드는 밴드 보다 그냥 춤-노래 되는 애들로 팀을 만드는 게 많이 남을 거라는 계산이 나온다. 


(댄스 가수들이 연습을 안 한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절대적 시간만 비교해 보면 댄스가수가 더 많은 시간 연습하고 있을 거다. 다만 밴드는 모두의 시간을 조율해 합을 맞추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부분에서 추가로 노력할 부분이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를 빼고 보더라도 대부분의 밴드들은 자력으로 장비 조달하기 위해 알바 뛰고 있긴 하지만...)


아이돌 그룹이 댄스곡을 많이 들고 나오는 이유는 다른 게 없다. 그냥 그게 우리나라 음악 시장에 최적화된 형태니까 그럴 것이다. 그래서 처음 원더걸스가 밴드로 나온다고 발표됐을 때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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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저의 연주를 놓고 잘 하는 거다, 못 하는 거다 논란이 많았지만 

본 기레기는 일단 판단을 보류했드랬다. 

직접 녹음했다지만 솔로곡도 아닌데다 이건 편집을 거친 홍보 영상이지 않은가. 

만일 '연주 잘 하는 듯' 보이는 곡을 놓고 그것만 연습한 거라면?

멤버들의 기본적인 연주 실력과는 괴리가 있는 게 당연할 것이다.


나름 음악 욕심이 있는 애들이 아이돌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일 수 있겠다는 점에서 기대. 


별도로 음향을 준비할 턱이 없는 각종 방송, 공연 환경이 밴드 음악을 할 수 없게 만들 거라는 점에서 걱정. 


그러다 마침내 'REBOOT'라는 야심 넘치는 이름의 앨범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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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본 기레기가 좋아하던 소희는 없지만 그래도 왕년의 팬으로써 전곡을 들어봤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리부트 된 건 소품 뿐임을...


유일하게 멤버들 대신 박진영이 작곡했기 땜에 타이틀곡이 되었을 것으로 졸라 추정되는 'I FEEL YOU'부터 보자. 탈퇴한 선예 대신 리더격으로 올라선 예은(신디사이저)에 대한 예우인지, 텔미 때부터 먹힌다고 확인된 '복고 컨셉'으로 안전빵을 노린 건지 모르겠지만 곡 전체에서 신디사이저 반주가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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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요런 80년대 분위기 물씬 난다.


그러나 뮤직비디오를 봐도 라이브를 봐도 그 모든 신디사이저 파트를 예은이 연주하진 않는다. 유빈은 서서 드럼을 연주하는 관계로 베이스를 밟지 않고 있으므로 역시 드럼 비트 또한 상당수 MR에 의존한다. 그나마 이 둘은 연주하는 모양새라도 보여줄 수 있겠지만 나머지 두 멤버는 더 안습이다. 티저에서 베이스 연주가 수준급이네 어쩌네 논란이 일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선미의 베이스 파트는 기계적으로 단조로우며 혜림의 기타 파트는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묻혀있다. 그러다보니 만약 연주까지 라이브로 한다해도 멤버인 4명 보다 세션들이 곡을 주도할 것 같은 어이 없는 구성이다. 이런 걸 밴드 음악이라 부를 수 있을까? 


밴드로 리부트한다는 선언을 깔끔하게 무효화시키는 이런 행태가 혹시 K팝스타, 무한도전 등으로 드러난 박진영의 음악적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건 아닐까 잠시 생각을 해봤지만 다른 곡들을 들으니 타이틀 곡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곡들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원더걸스의 기존 음원과 들어봤을 때 리부트라고 할 만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One Black Night' 같은 경우에는 도입부터 2집 수록곡인 'G.N.O'를 연상시키며 'BACK'은 역시 2집의 'Act Cool'을 연상시킨다. 대부분 밴드 음악이라 볼 수 있는 구성이 아닌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OPPA' 같은 곡을 담을 거였다면 그냥 멤버 중 한 명을 기타나 베이스를 시킬 게 아니라 스크래치나 FX를 시키는 게 나았을 듯 싶다. 


이번 원더걸스의 앨범에서 악기는 춤동작을 만들기 위한 소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라이브 공연에서 연주를 좀 할지는 모르겠다만 현재까지 보여준 모습이나 수록곡들의 구성을 보면 그렇다. 


물론, 악기를 소품으로 쓰는 사례가 없는 게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내내 맨몸으로 춤추다가 곡 말미에 가서야 통기타를 줍더니 대충 치는 척하고 졸라 뽀개버렸던 예도 있는데 원더걸스는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악기를 부각시킨 춤동작으로 채웠으니 그래도 일관성 있는 연출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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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 나와준 게 어디냐


다만 이번 앨범의 목적이 말 그대로 '리부트'라면 그거, 실패라는 지적을 하고 싶을 따름이다. 아무리 봐도 그냥 윈도우 절전모드에 빠졌다가 마우스 까딱까딱해서 살린 정도로 밖에 안 보이니 말이다. 


끝으로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원더걸스 멤버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어렵게 컴백했는데 초치는 걸로 받아들이지 말고 앞으로 각자가 맡은 악기들 소리가 중심이 되는 음악을 하라는 조언 쯤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나 당신들 팬이다. 예전 콜렉트콜 모델하던 시절 나온 달력도 여지껏 갖고 있다.) 


분발하라고 침묵 외계인 등급에 랭크시키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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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딴지 크리티크는 문화 콘텐츠 전반을

우주적 관점으로 디벼본 후

외계 생명체의 감각 기관에 어찌 작용할 것인가,

연구해보는 코너로 최고 1등급부터 최저 5등급까지의 

리액숀 외계인이 대기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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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른 별의 관점을 갖고 있다'

이런 분들 졸라 환영입니다.





퍼그맨

트위터 : @ddanzipu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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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그룹 마켓팀원. 편집부 일도 하고 왔다갔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