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슈르나 추천29 비추천0

2014. 10. 8. 수요일

슈르나





 






언젠가 이라크에 꼭 가보고 싶었다. 유서 깊은 도시인 모술에는 성경 <요나서>의 주인공이기도 한 요나, 그의 무덤이 있다. 티크리트 시에는 내가 빠심으로 찬양하는 간지의 군주, 살라딘이 직접 지었던 요새도 있다. 이런 거를꼭 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있었다'는 과거형으로 써야 한다. IS가 다 때려부쉈기 때문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찬란한 유적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는 같은 수니파의 사원도 부수고 있다고 한다. ㅇㅅㅂ 점점 가서 볼 것들이 줄어간다. 모술은 특히나 심하다. 도서관의 장서들을 끄집어내어 태우기까지 했다.


현재 IS 지역의 모든 기독교 교회는 문을 닫은 상태다. 같은 유대교 계열 종교 중에서는 야지디교라는, 신학적인 특성 때문에 평소에는 악마숭배자로 경원시 당하곤 했던 소수 종교가 있다. 지금 야지디 교도들은 차별 이상을 받고 있다. 야지디 교인 중 남자는 학살 당하고 여자와 아이는 인신매매로 팔려간다. 여자의 경우엔 강간도 옵션이다. 결국 기독교도와 야지디교도도 살기 위해 무기를 든다. 이들은 사무치는 원한 때문인지, 자신의 몸에 자기 종교의 상징을 문신으로 새기고 전투에 나간다. 붙잡혔을 경우 목숨을 빌 옵션조차 없애기 위함이다. 만약 IS가 2022년까지 존속한다면, 카타르에서 열릴 월드컵은 위험할 수도 있다. 이슬람에 맞지 않는 이런 퇴폐적 행사는 스커드 미사일로 때려버리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행정 조직은 잘 만든 건 같지만 그 행정 조직이 부과하는 형벌의 대다수는 사형이다. 라마단 금식의 의무는 미성년자에게 해당되지 않는데, 라마단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10세 소년을 십자가형으로 사형했다. 시리아의 기독교인들도 십자가에 달리고 있다. 절도는 손목 절단으로 처벌한다. 여성 법조인과 여성 정치인은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든 체포하고, 고문 후에 사형한다. 여성형 마네킹에도 부르카를 씌워야 한다. 여성 400만 명에게 여성 할례를 강요하고 있는데, 위생도 별로인 시설에서 하려 들어서 매우 위험하다. 담배 자체가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 되었기에, 아랍 특유의 물담배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알라와 이슬람의 축복이라고 말한다.



 3074298 (1).png

자료용 짤을 넣을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거 같았다.



드디어 오랜 낚시가 끝나고 미끼로 썼던 문장의 해답을 독자 니덜의 입에 물려줄 때가 도래했다. IS의 배경에 어떤 역사적 맥락이 있고, 그래서 IS는 어떤 과정으로 생겨났는가를 지나,



 "그래서 IS는 왜 수니파이며 뭘 원해서 저 지랄인데? 거기 동조하는 젊은애들은 뭐고?"



물론 내가 그리 호락호락한 강태공은 아니다. 지난 회에 이어, 얘들의 정체성은 무엇인지부터 보면서 상큼하게 시작하자.




3072007.jpg  

물론 등장할 단어들은 그리 상큼하지 않을 거다.




IS는 일단 '이슬람 원리주의'로 불린다. 그리고 이제부터 이 문장을 뒤집어엎어놓고 해체해보겠다.


'원리주의'란 영어로 풀이하면 Back to Basic, 기초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따라서 어느 종교를 불문하고 원리주의자는 경전과 교리의 최초 정신 및 최초 형태를 연구하고 주장한다. 일견 괜찮아 보인다. 초심으로 돌아간다잖냐. 그런데 원리주의에는 함정이 있다. 종교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면서, 그 시절의 정치제도나 사회적 인식 체계까지 같이 가져와버리는 실수를 매우 자주 저질러버린다. 특히 이슬람은 신정일치로 시작한 종교라 더 심하다. 게다가 그렇게 오래 전으로 돌아갈 정도니 보수주의 성향도 상당히 강하다. 그러다 보니 종교의 원래 의미로 돌아가기보다는 그저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가는 반동주의로 더 잘 빠진다. 기독교나 불교나 이슬람교나, 종교를 불문하고 원리주의는 이런 함정에 늘 노출되어 있다. 단어의 표층 의미대로 초심으로만 돌아가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말이다. 원리주의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 괴리를 보면 이런 점이 잘 드러난다.


대표적인 게 지하드이다. 성전(聖戰), 성스러운 전쟁이란 의미의 지하드는 너님들이 흔히 알고 있는 '이교도들을 다 죽이자!'란 소리가 아니다.



3072957.jpg

요새는 SNS에서도 한다는 그것.



원래는 이렇다. 자기 영토 내에서, 개종도 않고 세금(인두세)도 안 내는, 이교도나 이단, 즉 체제 전복 세력에 대해서 선포하는 전쟁이다. 알리 vs 아이샤 때도 두 사람은 상대의 세력에 지하드를 선포했다. 내전이었고, 서로 상대를 이단이라 규정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미는 이렇고, 신학적 의미로 들어가면 좀 더 고상해진다. 세상에는 수많은 유혹거리가 있고, 이게 내 마음 속에서 자꾸 내 신앙을 방해하고 있으니, 이런 것들과 싸우는 것이 지하드이다. 즉 내면에서의 전쟁인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같은 걸 '영적 전쟁'이라 칭한다. 불교에서는 '선(禪)'이 되겠지.


이걸 가지고 원리주의자들은 첫 번째 의미의 변주인, '이교도 및 이단과의 전쟁'으로만 써먹는다. 이런 의미로 사용하니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에, IS가 세계 각국에 지하드를 선포할 수 있었던 거다. 이슬람이 절대 우세한 나라라면 이단이라 해버리고, 아니면 이교도이니 어쨌든 지하드! (미국의 기독교 원리주의자들 또한 영적 전쟁의 의미를 '이슬람 주겨라'로 이해하는 놈들이 많다. 원리주의의 함정은 차별이 없다.)


그리고, 놀라지 마라. 원래 이슬람은 포교를 강조하는 종교가 아니다. 오히려 "믿음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이 쿠란에 있다. 때문에 종교세, 인두세 같은 단어들이 나오는 거다. 신정일치인 이슬람이 어느 지역을 정복했는데, 정복지에 이교도가 있다? 잡아죽이거나 개종시키는 것이 첫 번째 선택지가 아니다. 개종을 권유한 후, 거절하면 세금만 더 물리고 끝인 것이 이슬람 선택지의 전부다. 때문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2대 정통 칼리파 우마르의 쏘쿨한 태도가 나올 수 있었던 거다. 그리고 현재에는 이런 인두세를 개종과 탄압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3023547.jpg

우리는 너희를 박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여기는 우리 성지이기도 해서 온 것이니, 

우린 우리대로 하고 너흰 너희대로 하자.

우리 종교가 더 나아보이면 개종은 그때 해도 된다. 

대신 피정복민으로서 세금은 좀 더 내라.

(1편에서 그대로 발췌)




초기 이슬람의 모습을 왜곡하고 있다는 데에서, 무언가 위화감을 느낄 수 있을 거다. IS는 원리주의라며? 물론 위화감이 안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1편에서 우마르는 여성혐오의 혐의가 있었다고 살짝 언급했다. 당시 이슬람은 여성이 곧 물건이던 사회 인식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무제한적 일부다처제를 제한이 엄격한 일부다처제로 끌어올렸다는 것도. 덕분에 사도 무함마드의 제3부인인 아이샤는 그녀 자신이 학자로서 자취를 남길 수도 있었고, 알리의 정치적 라이벌로 등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2대 칼리파가 될 정도의 유력자인 우마르가 여성혐오의 상태를 채 벗지 못했다는 것은, 그 시절 그 동네의 일반 인식이 그 정도였다는 의미다. 중세 중동은 사회 발전도가 비슷했던 다른 문화권과 비교해도 여성 인권이 현저하게 낮았던 동네다. 그래서 우마르는 서로 반대되는 두 특징을 동시에 보여주는 유닛이다. 타 종교에 대한 관대한 혁명성과 당시 그 지역의 보편 인식의 반동성을 둘 다 보여주기 때문이다.


동네 상황이 이러니 이슬람은 쿠란에 '어떤 경우라도 여성을 강간하거나 죽이지 말라'는 내용을 넣었다. 살인은 이슬람뿐 아니라 같은 계열 종교인 유대교/기독교에서도 강한 죄로 규정하지만, 전쟁과 같이 특수한 상황에서는 허용이 되기도 한다. 암묵적이든 명시되어 있든 간에. 하지만 이슬람 율법은 여성에 대한 강간과 살인은 '어떤 상황 하에서도' 죄라고 명시한다. 물론 IS가 이걸 지키냐고? 이교도는 물론 자국민 여성도 율법을 어겼다고 강간 살인하는 판에 별 걸 물어본다. 이슬람의 여성 인권 실태 하면 꼭 따라나오는 단어인 '여성 할례'와 '명예 살인'은 원래 이슬람 율법에 없다. 이건 아랍 지방 전통의 악습이다. 근세를 거치면서 없어져야 했을 악습이 이슬람에 묻어서 생존한 것이다.


결국 현재의 이슬람 원리주의는 우마르의 장점은 따르지 않고 단점은 적극 계승하는 꼴이다. 지하드를 선포하고 역사적 유물까지 박살내면서 여성을 찍어누른다. 각각 도달하는 루트는 다르지만 결론은 똑같은, 묘한 일관성이다. 위화감이 안 느껴져야 했던 측면조차 잘 보면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리주의자의 함정, 그 프로세스를 도출할 수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명목 하에 머리 속을 과거로 점프 시킨다.


→ 그 과거 시절에서 혁명적이었던 것들은 껍데기만 가져오고 반동적인 것들은 정신까지 가져온다.

→ 이 취사 선택의 기준을 물어보면, 맞는다. 지하드!




아마 그 취사 선택의 기준은 '그러고 싶어서'가 될 것이다. 그럼 결국 초기 이슬람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이슬람의 형태, 그 중에서도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서 회복하여 옛날 중세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게 진짜 의도 되겠다.


초기 이슬람의 정신으로 돌아간다더니, 그 정신을 이런 식으로 위배하는 자들이 원리주의 칭호를 가져가고 있다. 시아파 원리주의 국가인 이란 또한 여성 인권 상태가 낮긴 하지만 최소한 여성의 교육 기회를 보장해주기는 하는 등, IS 정도의 막장은 결코 아니다. 이러니 IS를 '원리주의'라 칭하는 건 부적절하다. 더 적절한 용어는 현재 대다수의 언론이 사용하고 지난 2회 마지막에도 사용했던 단어, '극단주의'다.


그래서 우리의 질문은 이것만 남게 된다. "왜 얘들은 이렇게 극단적으로 가버렸을까?"



3072011.jpg

극단적으로 가버렷-! ...미, 미안타;;




역사에는 극단적으로 가버렸(...)던 예가 몇몇 기록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은 나치. 우리 주변에도 있긴 하다. 일베?

이런 케이스를 모아보면 원인 부분에서 하나의 공통점이 나온다. 상대적 열등감이다. 나치는 1차 대전 패배 후 전쟁배상금을 물어내고 망가진 경제 상황 속에서 국민 전체의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었고, 일베는 사회적으로 무력한 '잉여'들의 해방구 역할을 하면서 탄생하고 성장했다. 극단주의는 열등감과 소외감 속에서 시작한다. 이슬람의 경우에는, 그게 한 시대 전체였다.

중세의 이슬람은, 최고였다. 사도 무함마드와 정통 칼리파 왕조 이후, 이슬람 제국은 사회 체계가 잘 정비되어 사람 살기 좋은 쪽이 되었다. 바로 이웃의 유럽은 로마 제국이 망한 후의 기나긴 추락 상태를 수습하기에도 바빴고, 신생 제국인 이슬람의 사회 체계는 페르시아, 비잔틴 등의 경쟁자들보다 월등히 나았다. (그리고 페르시아는 아예 우마르가 집어삼켰다.) 최종 승자가 되어 제국을 움켜쥔 무아위야 왕조의 통치도 괜찮은 편이었고, 그 뒤를 잇게 되는 왕조들도 문화권 전체를 말아먹을 정도의 병크는 터뜨리지 않았다. 당연히 학문과 문화는 한껏 진흥될 수밖에. 로마의 정통을 이은 비잔틴 제국이 바로 근처여서인지, 시대를 앞서갔던 로마 제국의 학문적 유산도 대부분 이슬람으로 넘어왔다. 때마침 비잔틴도 골골거리고 있겠다, 실전된 기술을 재발굴하거나 기존 철학을 정리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등의 역할은 이슬람이 싹쓸이해갔다. 당시 세계 문명 발달사를 재구성해보면 중국의 당 제국이 가장 앞선 테크트리를 올리고 있었고 그 바로 뒤에 이슬람 제국이 있는 형국이었다.

화학의 아버지인 연금술? 이슬람에서 처음 꽃을 피웠다. 커피의 전파? 이슬람 제국이 시작했다. 그리스 철학? 이슬람이 문헌을 보존하지 않았으면 실전되었을 문헌, 많다. 역사적 영웅? 12세기 최고의 쿨간지 계몽군주였던 살라딘을 배출했다. 오죽하면 유럽 문명의 르네상스가 십자군 전쟁을 하면서 이슬람으로부터 그리스-로마 시절의 유산을 이어받았을 때부터 싹텄을까.


3073003.jpg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이슬람 버전.


문제는 이런 중세가 끝나가면서, 이슬람권이 서서히 역사라는 무대의 뒤로 밀려났다는 점이다. 첫 빠따는 결국 비잔틴의 숨통을 끊는 데 성공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었다. 비록 과거의 통일 이슬람 제국이라는 간지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강력한 왕조들이 할거하고 있던 아랍 지역이 싹 정복당해 버렸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았다. 정복을 벌였던 셀림 1세의 후임 술탄이 지금도 명군으로 추앙받는 쉴레이만 1세였고, 오스만 투르크 역시 이슬람교 계열 제국이었으니까. 이슬람 원조 지역이라고 내세우던 자부심이 무참히 꺾인 것만 빼면 괜찮았다.

그리고 세상은 결코 녹록치 않다. 쉴레이만 1세를 기점으로 오스만 투르크가 쇠퇴해가더니, 무서운 속도로 테크를 올린 유럽이 근대 세계의 패자로 떠올라버렸다. 그리고 나서 이어진 운명은 식민지의 운명이다. 400년을 들여 성장한 오스만 투르크는 역시나 그 정도 시간을 들여가며 쪼그라들었고, 그 시간 내내 오스만 투르크에게 정복당했던 혹은 그 근처의 이슬람교 국가들은 하나둘 유럽 국가의 식민지로 떨어져갔다. 이게 크리티컬 히트였다.

식민지가 되지 않은 국가들도 사정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유럽 세계의 빠른 테크 덕에 상대적으로 밀리더니, 나중에는 확연한 차이로 밀려버렸다. 이미 국력, 문명 발전, 군사력, 정치 체제 등의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으로 뒤쳐져버린 것이다. 10세기 가량 되는 시간 동안 유럽보다 앞서거나 유럽과 비슷했던 문명권이, 대항해시대 이후 200여 년만에 3류 문명권으로 전락해버렸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시대를 벗어나면 이젠 냉전 시대다. 미국/유럽의 자본주의 권역과 소련/동유럽의 공산주의 권역이 세계를 주름잡는다. 이슬람 권역은 대부분 '제3세계'라는 식으로 묶여버렸다. 여전히 국제 사회의 관심은 2등급에 머문다.


3073104.jpg  
한때는 세계의 중심이었는데 왜 우리가 저런 가난뱅이 미개인들과 묶이는 거지!
(듣는 인도 화날라)



우리 자신도 개털이 되었고 우리를 마지막으로 정복했던 지배자도 개털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19세기와 20세기를 맞게 되었는데, 각국의 지배자들은 자기 종파가 아니면 극심한 탄압을 했다. 각각의 국가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한때 세계의 중심에 섰던 기억은 있는데, 현재에는 그냥 무식한 개털이 되어버린 사람들. 석유는 많아서 돈은 벌었는데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라 소수 계층의 것이다. 수니파/시아파 할 것 없이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게 된다. 자꾸 옛날 생각이 난다. '그때는 좋았다던데...' 불만이 쌓이니 무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수니파는 절대 다수다. 당연히 극단주의 무장단체는 수니파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1회의 떡밥을 회수한다.) 이들이 시아파를 죽인다. 시아파도 무장단체를 만들어 수니파를 죽인다. 서로 죽이다 보면 세계의 경찰이라는 미국이 끼어든다. 미국은 유럽의 후예이고 제국주의 국가이니 미국도 싫다. 다른 종파 독재자들이 싫어 죽겠는데, 몇몇은 미국 후원도 받는댄다. 그놈들을 죽이고 우리가 집권해서 독재하면 또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가 태클을 건다. 다 싫다. 그냥 세계의 짱짱 문명이었다는 중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ㅅㅂㅅㅂ

 
쩔었던 그때 + 초라한 현재 = 극단적 반동성


이렇게 이슬람 극단주의가 탄생한다. 이런 원리에 따라, 이슬람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체제가 안정적인 국가들에서는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전무하다. 상실을 달래주고 심리적으로 보상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실감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심리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슬람권에 칼리파라는 낭만적인 칭호를 던진 IS의 한 수는, 그래서 신의 한 수다. 자신들이 자라난 토양 자체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거다. 덕분에 같은 극단주의 계열에서조차도 '야 이건 너무 하잖아! 사람 좀 그만 죽여! 게다가 칼리파라니, 이게 뭐야!'라는 소리가 나오지만, IS에 합류하는 각국 젊은이들이 생겨나게 된 거다.

대부분 이민자의 후예들인 이들은 자국에서는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다. 그들의 부모 세대는 어렵게 어렵게 정착해 살아왔고, 그래서 현재 가진 것이 어느 정도는 있다. 때문에 극단주의에 완전히 경도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가진 것도 없고, 그래서 결코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이슬람 특유의 상실감을 공유하고는 있는, 또한 높은 확률로 인종 차별 혹은 종교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을 젊은 세대는 극단주의 발흥에 최적 조건이다. 그래서 IS에 합류하려고 출국하는 사람들이 젊은이들인 것이다. (이렇게 2회의 떡밥도 회수했다.)

역사적인 상실감 때문에 과거로의 회귀를 원하는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이 출현하고, 이들이 원리주의를 내세우며 지지 기반을 얻어 성장하고, 더더욱 극단으로 나아가 건국까지 해버린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금까지 설명한 '역사적 박탈감'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부터 설명할 '이슬람의 게으름'이다.

인종차별적 의미가 아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IS로까지 성장하게 만든 원인 중 반은 이슬람교 자신의 탓이다. 이슬람, 특히 수니파 자체가 역사적인 진화/적응에 실패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3073089.jpg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사실 현재까지 설명한 역사적 환경을 제외하고 생각한다면 극단주의가 나올 가능성이 더 높은 종파는 시아파다. 시작부터 알리에 대한 신격화로 시작한데다 이맘의 권위와 권한이 크다 보니, 시아파는 독재 정치가 매우 쉽게 끼어들 수 있는 구조다. 반면 수니파는 시아파에서 이맘이 하는 역할의 대부분을 이슬람 공동체에 부여했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결합하기 좋다. 그런데 IS도 탈레반도 죄다 수니파라는 것을, 단순히 수니파가 많기 때문에 확률상 그런 것이라고 설명하면 뭔가 모자라 보인다. (회수한 떡밥을 다시 뿌린다!)

해답으로 가는 길은 이렇다. 이맘들이 진보적이라면 진보적이 되는 시아파 신학과 달리, 수니파 신학은 그 지역의 종파 평균을 따라가게 된다. 즉, 수니파 민중의 평균 신학 수준이 극단주의를 배양하기 좋은 상태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같은 계열의 다른 세계 종교인 기독교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기독교에서 원리주의를 내걸고 극단주의가 되어있는 인간들은, 주로 현대 미국에 몰려 있다. 그 이전까지는 IS처럼 유의미한 집단 행보를 보인 기독교 극단주의가 거의 없었다.

기독교가 극단주의를 방지했던 첫 번째 원인은 교황청이었다. 신학의 최종 해석권을 쥐고서, 너무 많이 나가버린 사람들은 이단 판정을 내리고는 파문을 던져 잘라내어버린다. 두 번째 원인은 토론이다. 정통과 이단의 사이에서는 마냥 토론이 벌어져도 용납한다. 옆동네 아랍에서 사촌인 이슬람이 발흥한 후로는 적극적으로 대응 논리를 개발해야 할 필요도 있어서 지속적인 신학 발전이 이루어진다. 발전이 지나쳐서 이단이 되면 다시 쳐낸다. 이 사이클이 돌면서 기독교는 역사의 발전 상태를 따라가며 진화했다.


3073067.jpg  
기독교 가톨릭이 종교적 공룡을 면한 가장 큰 이유, 교황청 체제.


사이클의 기능이 퇴화해서 타락상이 손대기 힘들어지자, 마르틴 루터 같은 원리주의자들이 등장해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이번엔 경쟁자로 형제가 뜬 것이니, 졌을 경우 영업상 문제가 크다. 초반엔 시아파와 수니파만큼이나 서로 물어뜯고 싸웠지만,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은 세계가 되자 전쟁은 신학적인 토론과 경쟁으로 바뀐다. 세계 역사가 변화하는 만큼 구교와 신교는 각자의 방식으로 변화에 적응하고 진화한다.

권위 있는 어르신 - 즉 정론의 존재, 그리고 토론이라는 두 가지 핵심을 통해 신학을 진화시키는 게 적응의 테크트리이건만... 기독교가 성공한 이 지점에서 이슬람은 계속 실패해왔다. 토론은 충분했으나 그 결과 지나치게 나가버린 케이스를 규제하거나 금지할 권위가 없었다. 칼리파? 그거 유명무실해진 게 언제인데. 술탄? 정치하기도 바쁜 애들인데 뭐. 이맘? 자꾸 새 학파만 만들고 뭘 바로잡는 쪽엔 약한 듯. 현재 슬슬 문제가 되고 있는 기독교 극단주의 세력 또한 같은 프로세스로 성장하고 있다. 기독교 신교 강세의 국가 미국에서, 당연히 파문 등의 신학적으로 강력한 이단 제제 조치가 없는 상태에서, 흑인이나 여성의 인권/민권이 강화되고 세계 패권이 약화되는 과정에서, 상실감을 느낀 자들이 극단주의에 빠져든다. 근대 이슬람이 빠졌던 함정에 그대로 빠지고 있는 것이다.


3073053.jpg  
이런 병신짓을 막을 사람은 바로 옆에서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 형제자매들이다.
말 통하는 그들이 이들을 말릴 정도의 역량이 있어야만 한다. 
이슬람은 실패했고, 미국도 지금...?


그리고 극단주의의 선배인 이슬람 극단주의는 현재 IS까지 와있다. 명예 살인 같은 중세의 미개한 악습까지 극단주의의 반동성을 타고 생존했으니 기독교 극단주의보다 상태는 더 심각하다. 이 글을 쓰면서 초고의 파일명을 '종교적 공룡'이라고 붙여놓은 상태인데, 이슬람이 현재 딱 그런 모양이다. 초기 이슬람의 교리와 그 해석은 진보적이었고 세련되었다. 신자의 5대 의무에 '자선의 의무'를 넣을 정도로 경제 정의를 챙겼고, 여성을 비롯한 일반 인권의 개념을 발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그 후예들은 여전히 오일 머니의 분배에 게으르고, 옆동네 극단주의자가 오늘 내 딸을 강간하지 않기만을 바라다가 강간을 당하면 딸을 죽여버리는 식의 인권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슬람의 신학이 그만큼 게을렀기 때문에 생긴 나비 효과다.

그래도 '게으름'이라는 강한 단어로 욕할 필요까지 있겠냐고 묻는다면, 게으르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욕을 먹어야 하는 거라고 대답하겠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은 수니파의 한 사람과 시아파의 한 단체로 장식하도록 하겠다. 전혀 게으르지 않았던 이들의 신학적 태도에 이슬람의 미래가 있다. 이제부터 그 희망적 반례들을 설명해야 하겠지만... 다음 편으로 미루도록 하겠다. 나도 독자도 슬슬 이번 주 공부 한계선에 다다랐을 테니까 말이다.

내가 IS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의 대부분은 한 것 같다. 마무리는 다음 편에 하도록 하자. 다음은 진짜 마지막이다. 진짜다!




슈르나

편집 : 독구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