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08. 수요일
trexx
1. 사용 가치
Excel... DDa! DDa! Bong!!!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엑셀이 제일 뛰어난 것 같아요.”
사무실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어느 여직원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다. 프로그램에 대해 뛰어나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각각 다르겠지만 행정업무를 맡아 보는 직원이 그 말을 하는 것은 타당해 보였다. 업무용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것 중 '아래아한글'과 같은 워드프로세서도 해당되겠다만 사무 업무의 많은 부분을 해결하여 주는 것이 엑셀이라 해도 될 테니 말이다.
기획이든 경영이든 행정 일 대부분이 숫자로 하는 일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은 얼마를 벌었냐'(성과), 혹은 '얼마를 벌 것인가'(목표)가 중요한 일이기에 따지고 보면 화이트칼라가 하는 모든 일은 숫자와 관계된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이 없었을 때에는 숫자로 된 칸(Cell)이 수백 줄로 구성된 표에서 어느 한 칸의 수를 변경하면, 표 맨 오른쪽 혹은 아래쪽 합계 등 전체 표 숫자를 수작업으로 다시 맞추어야 한다. 그야말로 노가다다. 스프레드시트가 사무실에서 사용된 이유는 '엄청난 노동을 덜어준다'는 이유가 제일 컸다. 스프레드시트의 가치는 표에 입력된 숫자들의 변경을 자동 계산하여 주는 것에 있었고 그 축복은 사무직원 뿐 아니라 회사 전체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씁쓸하지만 회사에서 컴퓨터를 도입했던 이유는 사무직원을 어여삐 여겨 노가다를 줄여주기 위해서라기 보단 인건비를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겠다.)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은 개인용 컴퓨터를 게임기에서 사무용 기기로 전환하게 하는 결정적인 프로그램(Killer App)이 되었다. 그 시작이 바로 VisiCalc다.
2. Spreadsheet의 탄생, VisiCalc
또다시 등장한 Apple II에서 실행한 Visicalc 화면.
플로피디스크 덕분에 컴퓨터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우리 컴퓨터가 더 강력한 성능을 갖출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비지칼크(VisiCalc)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는 보스턴에서 친구들인 밥 프랭크스턴(Bob Frankston)과 댄 브릭클린(Dan Bricklin)이 마이크 마쿨라(Intel에서 퇴사한 후 Apple에 처음 투자했다. 애플사 2번째 CEO)와 협력하여 만든 것이었다. 정말이지 때 맞춰 나온 알맞은 상품이었으며 딱 그 컴퓨터에 그 프로그램이었다.
(중략)
비지칼크(VisiCalc)는 강력한 기능을 갖췄기 때문에 Apple II에서만 돌아갈 수 있었다. 즉, 우리 컴퓨터만이 그것을 돌릴 수 있는 충분한 램(Apple II 는 48k, PET 등은 32k 메모리)을 갖추고 있었다. 라디오 샤크의 TRS-80과 코모도어의 PET는 그 프로그램을 감당할 수 없었다.
iWoz <3장 행복한 컴퓨터 애플의 탄생> - 스티브 워즈니악
최초의 Spreadsheet 프로그램은 1979년 댄 브릭클린(Dan Bricklin) 개발하여 발표한 VisiCalc다. VisiCalc는 1977년 나온 Apple II를 가정에서 가지고 놀던 게임기에서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업무용으로 용도변경하게 한 (어쩌면)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Apple II는 1978년 7,600대 팔렸다가 VisiCalc가 선보인 1979년에 35,000대 이르게 된다. 1980년 이후 Apple II 뿐 아니라 다른 플랫폼에도 지원하기 시작했다. APPLE II와 더불어 플랫폼 확장으로 VisiCalc는 시판 후 6년동안 70만 이상 카피를 팔아 치웠다.
3. 1981년 지각 변동, IBM PC
1981 년에 처음 선보인 IBM PC 5150
1981년 가정용 데스크탑 컴퓨터에 관심이 없었던 IBM은 데스크탑 시장에 진입하게 된다. 당시 컴퓨터의 주류 시장은 가정용이 아닌 은행 등 기업에서 사용하는 메인프레임 컴퓨터(Mainframe Computer)였고 그 업계의 절대 강자는 IBM이었다. 메인프레임 절대강자 IBM이 가정용 데스크탑 시장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3편下참조)
1981년 이후 데스크탑 컴퓨터의 주류는 IBM PC가 된다. 그 흐름에 따라 VisiCalc 또한 IBM PC에서 실행되도록 포팅되었다.
4. 강자의 탄생, 1983년 Lotus 1-2-3
DOS에서 구동되는 'Lotus1-2-3'의 1985년 두 번째 버전.
VisiCalc는 IBM PC에서 실행은 되었지만 16bit CPU 최적화 등 근본적인 개선이 없었다. Apple II에서 구동하든 IBM PC에서 구동하든 별 차이가 없었다. 최신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하드웨어 이점을 사용자는 느낄 수가 없었다고 할까. VisiCalc는 대세가 된 IBM PC를 위한 버전업을 신속하게 안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SuperCalc와 Multiplan(MS) 같은 경쟁사가 VisiCalc에 비해 기능적인 개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의 반응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VisiCalc 개발자들의 친구였던 미셀 캐퍼(Mitchell Kapor)가 '로터스사'를 설립 후 1983년 1월 26일 'Lotus 1-2-3'을 발표한다.(개발은 Jonathan Sachs) Lotus 1-2-3은 IBM PC에 최적화하여 작성된 프로그램이었다. Intel 16bit CPU 최적화, 보다 많은 메모리 접근, 진일보한 비디오 그래픽 처리 등 IBM PC 하드웨어를 충분히 활용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이다.
또한 1-2-3의 이름 처럼 Lotus 1-2-3은 스프레드시트 기능 뿐 아니라 수요예측 등 가능한 그래픽/차트 기능과 부가적인 기본적인 데이터베이스 및 매크로 기능 등을 추가하였다. 1983년 Lotus 1-2-3은 발표하고 6개월 만에 30만 카피를 팔아 VisiCalc의 판매량을 압도하게 되고 VisiCalc는 3년 후 로터스사에 인수되고 만다.
Lotus 1-2-3은 IBM PC와 MS-DOS의 플랫폼이 대세가 될 것을 정확하게 바라 보았다. 하드웨어 사양을 면밀히 분석하여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 결과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IBM PC 프로그램의 절대 권력으로 자리하게 된다.
5. MS Rising, 1985년 Excel
<MS Excel 1.X>는 맥에서만 출시했다. 1987년 1.06버전
MS는 1982년 Multiplan으로 스프레드시트 시장에 진입하였지만 VisiCalc와 Lotus 1-2-3 모두에게서 처절하게 패하고 만다. 자신의 플래폼인 MS-DOS에서 또한 Lotus 1-2-3의 아성에 접근조차 못하고 있었다. MS에게 Multiplan으로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는 곳이 MS-DOS보다 오히려 Apple의 Macintosh였다.
1985년 MS는 Multiplan이란 이름을 치워 버리고 향후 30년 가까이 스프레드시트 시장의 최고 영예의 자리에 앉게 되는 ‘Excel’로 이름을 변경하게 된다. Excel Version 1은 Macintosh System Software에서만 발표하였다.
나름 절친.
MS가 Excel을 맥킨토시에서 시작한 건 신의 한수가 아닐까 한다. 이 선택이 MS가 PC 플랫폼 전체를 뒤흔들게 하는 계기가 된다. MS-DOS 환경에서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의 절대자는 Lotus 1-2-3이었다. 사용하는 문서 형식(Lotus에서는 WKS, WK1 등)이 한번 결정되면 이를 변경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문서를 서로 주고 받을 때 문서 형식이 다르면 호환되지 않기 때문이다. MS-DOS에서 스프레드시트 문서의 사용 표준은 Lotus 1-2-3으로 이미 결정이 된 상황이었다.
MS는 자신의 플랫폼이 아닌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의 불모지인 맥킨토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Apple Macintosh는 기존의 OS 환경과 다른 GUI(Graphic User Interface / 사용자가 그래픽을 통해 컴퓨터와 정보를 교환하는 작업환경. 명령어(text) 방식의 DOS와 대조적인 방식) 환경이었다. 이는 그래프와 차트를 만드는데 MS-DOS보다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할 뿐 아니라 MS-DOS와 달리 컴퓨터를 잘 못다루는 사람이 사용하기 쉬운 마우스를 키보드와 함께 주 입력장치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MS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애플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맥킨토시용 프로그램을 작성하게 된다.* MS는 워드프로세서, 스프레드시트 등 OA 프로그램에서 강자가 아니었다. MS-DOS에서 사무용 주류 프로그램은 워드프로세서 에서 WordPerfect, 스프레드시트에서 Lotus 1-2-3, 데이터 베이스에서 dBase였다.
나름 풋풋했던 3인방.
1983년 10월 스티브 잡스는 3명의 젊은 개발자를 모셔와 The Macintosh Software Dating Game(당시 유행하는 1:3 데이트 TV 프로그램을 패러디)라는 이벤트를 개최하였다. 참석한 개발자는 Fred Gibbons(SPC / 우), Mitch Kapor(Lotus / 가운데) 그리고 Bill Gates(Microsoft / 좌)였다. 빌 게이츠는 2년 전(1981년) 부터 맥킨토시를 만졌다고 한다.(아래 동영상에서 확인) 친목을 위한 이벤트였지만 결과는 전쟁이었다.
1983년 Apple Event에 함께한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MS는 GUI의 가능성을 간파하였고 맥킨토시를 위한 프로그램을 설계하게 된다. 애플 또한 새로운 플랫폼 맥킨토시에 그럴싸한 프로그램이 없을 경우 사용자들이 외면할 것이라 생각했다. 목적을 달랐지만 서로 애타게 원하는 상황이었다고 할까? 당시 애플은 MS에 비한다면 공룡기업이었다. 애플 입장에서 MS를 단지 BASIC 프로그램과 IBM 휘하 아래서 MS-DOS를 만든 기업으로만 알았기에 맥킨토시 플랫폼에 경쟁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초창기 애플은 MS를 경계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훗날 애플과 구글. 역사는 반복된다!?)
MS는 맥킨토시를 통하여 GUI와 CLI(Command-line interface, DOS 처럼 명령어를 키보드로 입력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이 어떻게 다르게 설계, 구동해야하는지 알게 된다. MS는 내부적으로 새로운 OS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IBM에게 복종하듯 OS/2(1988년 버전 1.1까지 GUI가 아니었다.)를 설계하고 있었지만 암암리에 Windows를 준비 중에 있었다.(IBM에게는 Windows를 DOS 혹은 OS/2 프로그램이라고 속였겠지!) Windows용 Excel은 1987년 Windows 버전 2에서 맥용과 함께 버전 2로 발표한다. MS는 더이상 MS-DOS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가지지 않았다.
구도는 명확해졌다. MS 입장에서 Excel의 성공을 위해서는 Windows는 반드시 시장에서 성공하여야 했다. 의미있는 성공을 한 Windows 3.0 기점으로 MS는 IBM과의 관계를 청산하고자 OS/2 개발에 손을 떼게 된다.
6. Lotus 1-2-3의 실패
Windows용 1-2-3
Lotus 1-2-3은 MS-DOS에서 주 프로그램이었다. 80년대 IBM PC의 거대한 시장에서 큰 이익을 얻고 있었다. MS Excel이 1985년 맥용으로 발표되었지만 경쟁상대가 아니었고 1987년 윈도우용으로 나왔지만 당시 IBM PC에서 주류는 여전히 MS-DOS였다.
그렇지만 이 당시 Lotus는 프로그램 설계에 있어 여러 난관에 부딪치고 있었다. Lotus 1-2-3은 버전 3을 새롭게 작성 중이었는데 개발기간이 1년이상 지체되고 1989년 발표할 때 고사양 PC용은 버전 3으로 기존 PC 사용자는 2.2(확장 메모리를 사용하지 않는 버전 2.01의 업그레이드)로 어이없이 이원화하여 발표하였다.(이원화 전략은 대부분 실패한다. Apple II와 Apple III, PC와 PCjr(PS/2) 등이 그러했듯이...)
1990년대가 되자 Windows 3.0의 성공으로 MS Excel은 기세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격 Lotus 1-2-3은 GUI에 최적화된 Windows용 프로그램을 제대로 설계하지 않았다. MS-DOS 프로그램을 Windows 용으로 포팅한 수준이었다. VisiCalc가 MS-DOS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기회삼아 성공했던 Lotus가 똑같은 실수로 Windows에서 좌초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1995년 MS Windows 95로 Lotus 1-2-3은 더 이상 주류 프로그램이 아니게 되었고 결국 MS가 배신한 IBM에게 인수 당한다.
그리고... 2013년 6월 11일 Lotus라는 브랜드는 세상에서 없어지게 되었다.
7. 플랫폼 승리자 MS Excel
1992 년 기점으로 Excel은 주도권을 잡는다
90년대 이후 MS는 절대권력을 행사하였다. 감히 말하지만 그 시작을 알린 건 1985년 Multiplan에서 이름 바꾼 위대한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 ‘Excel’이라 생각한다. Windows와 달리 Office 아니 Excel의 기세는 지금까지 유효하다. MS는 Excel을 통하여 GUI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었고 결국 GUI OS인 Windows를 만들 수 있었다.
플랫폼의 가치를 미리 깨닫고 미래 가치에 도전한 결과 지금의 MS가 되었다. MS는 어찌되었든 (운도 작용했겠지만) 플랫폼을 구축함과 동시에 승리자가 되었다.
1985년 당시 MS는 강자였을까? 절대 아니었다. MS 위에는 컴퓨터 권력 그 자체인 IBM이 호령하고 있었다. IBM과 비교 할 것도 없이 그 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가정용 데스크탑을 만들고 있는 Apple Computer보다도 작은 회사였다. MS는 자신의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약자로 있을 상황에서 직접 경쟁을 하기 보단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장소(플랫폼)를 만들고 적들과 일전을 벌렸다. Lotus는 자신이 지배한 MS-DOS 플랫폼이 지속될 줄 알았고 MS는 새로운 플랫폼 GUI의 가치를 미리 깨닫고 시장을 바라보며 내달린 결과 지금의 MS가 된 것이다.
MS의 성공의 근저엔 씁쓸한 면이 있지만 그들의 성공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잡스도 인정했으니까.
아아아아... 슬프다.
"내가 슬픈건 마이크로소프트가 성공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성공은 대부분 그들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취향(taste)이 없는) 3류 제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있다."
TBS Triumph Of The Nerds 스티브 잡스 인터뷰 중에서
MS의 성공은 Excel에서 멈추지 않았다. OA프로그램 진영에서도 약자였던 MS는 그들의 리스트에 워드(Word)와 파워포인트(Powerpoint)를 추가함으로서 소프트웨어로 IT계의 진정한 세계정복을 시작하게 된다. 그 성공의 과정은 절대 3류가 아니었다.
다음편에서는 워드프로세서시장을 정복한 MS 워드(Word)와, 그의 경쟁자들을 다뤄보도록 하겠다.
이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trexx
편집 :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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