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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07. 금요일

산하






부끄러운 고백 하나 하자면.


<긴급출동 SOS 24>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의 일이다. 가정폭력이든 아동학대든 뭐든 폭력과 관련된 아이템이면 눈이 뒤집히게 쫓아갈 때였고 학교폭력은 당연히 그 초점의 대상이었다. 당시 한 교사가 학교 내에서의 일진 문제를 폭로했었고 그는 뉴스의 중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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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할 때 그는 전교조 교사 소속임을 밝히며 교내 학생들간에 이뤄지는 폭력 문제와 이른바 '일진'의 심각성을 비장하게 이야기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전교조 ' 소속 교사임을 스스로 밝히는 교사에게 보내는 신뢰는 컸다. 하물며 그 교사가 '일진회'를 고발한 교사라는 데에야...


몇 번을 만났다. 세 번은 만난 것 같다 정확히. 한 번은 인사만 하고 헤어졌고 두 번째는 꽤 긴 얘기를 했다. 주로 들었다. 일진회의 폐해와 어떤 아이들이 일진이 되며 어떻게 학교를 장악하며 이른바 일반 학생들이 어떤 피해를 보는지... 이야기는 실감났고 듣다보면 탄식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케이스였다. 혹시 지금 진행 중인 사태에 대해 아는지, 풍문으로나마 듣는 얘기가 있는지.


그 교사는 난감하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아니 흐렸다기보다는 흘렸다. 뭔가 있긴 한데 내가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다는 듯. 그 심경은 이해했다. 그건 교사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신중함으로 치부할 수 있었고 방송에 노출해서 좋은 게 있겠냐는 당연한 경계감의 표출로 보였다. 하지만 그 신중함과 경계심을 뚫고 방송을 만들어야 하는 게 내 의무였다. 그를 통해서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촉구하는 게 내 직업이었으니까. 애닳아하는 나에게 교사는 "몇 가지 케이스는 있는데..." 하면서 더욱 애를 닳게 했다.


세 번째 만남. 나만큼이나 작가도 애닳아 있었다. 두 번 모두 함께 가서 얘기를 들었던데다 직업의식으로 보나 정의감으로 보나 나보다 우위에 있던 작가였다. 어떻게든 직접 피해자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교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선생님 저희가 방송 안해도 좋으니 일단 피해자를 좀 만나게 해주세요" 읍소했는데,


교사가 ‘신뢰’라는 말을 꺼냈다. 서로 신뢰가 쌓여야 할 거 아니겠는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신뢰라는 건 하늘에서 별안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쌓아나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일단 함께 작업하면서 우리를 테스트해 보시라 등등 손을 모으는데 이 교사 황망한 얘기를 했다. 그 순간 그 멘트 그대로를 옮긴다. 나 이런 기억력은 영등포구 최강은 된다.


“하하 신뢰라는 게... 우선 이런 일을 하려면 교장, 교감 선생님부터 협조를 구해야 하는 거고, 우리 교장 교감 선생님하고 자리를 마련할 테니까 우리 예쁜 작가 선생님이 오셔서 술도 한 잔 권해 주시고.”


이 말 들은 순간 나는 '이 새끼는 개새끼구나' 생각을 했다. 니가 전교조고 지랄이고 일진회를 폭로를 했든 말든 너는 개새끼고 사짜구나 직감을 했다. 작가 얼굴은 이미 붉으락푸르락이었다. 합동으로 '이 개새끼야 니가 선생이냐' 말을 하고 싶었으나 둘 다 그러지는 못했다. 작가는 깽판을 치기 어려웠을 터, 내가 그 얘기를 당연히 해야 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어차피 접더라도 언젠가 혹시 나올지 모를 아이템 걱정을 했던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왜 개랑 싸워야 하나 싶은 고고함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비겁했다, 그때 느물느물 신뢰 얘기를 하던 교사라는 족속에게 “미친 새끼 지랄하고 있네 니가 선생이냐? 아가리를 확 열 십자로 찢어 버릴라. 니가 무슨 교육을 해? 이 썅노무 새끼야.”라고 못하고 그냥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나와서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작가한테 저런 새끼도 있는 거지 다신 상종하지 말자 정도로 넘어갔다. 하나 더 그 생각도 있었다. '저 새끼 입이 방정이지 진짜 그런 마음이기야 했을라고'


그 선생 나이 쉰 둘인가 그랬고 전교조 소속이고 지가 무슨 운동을 했고 그 지역 일진 애들을 이름까지 꿰 가며 자기 손바닥에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 위세(?)에 나도 삼고초려를 했었고 희한한 소리를 듣고도 그냥 넘어갔다. 혹여 뭐가 있을 것 같아서. 혹여 뭐 건질 거 있을 것 같아서. 다시 안 볼 위인으로 치부하면 되는데 그걸 못해서.


몇 달 뒤 다음의 기사가 떴었다. 이 양반의 성추행 기사에 대해서. 보면서 혀를 찼다. 이 새끼였구만. 그리고 변명하는 품도 딱 그 새끼구만. 그냥 웃고 넘어갔다. 개가 똥을 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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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문화일보>


이번에 K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을 보면서 나는 무척 부끄럽다. 나 또한 개에게 똥을 끊지 못하게 만든 사람 중의 하나였다. 선생이라는 작자가 나에게 보인 추한 꼴을 보고서도 혹시나 뭔가 내가 따먹을 게 있지 않나 싶어 문제 삼지 않았고 그래도 선생인데 입이 좀 방정맞은 거지 실제로 뭘 그러랴 넘어갔던 거. 바로 그게 자기 제자건 동료 선생이건 별의 별 짓을 다한 중년의 괴물을 만든 거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만나 그 괴물이 자칭 전교조였고 그걸 누누이 강조했던 기억에 의지하여 전교조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생긴다.


전교조는 교사들의 이익 단체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 전교조가 처음 뜰 때 ‘참교육’을 내세우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열정적인 지지와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성추행으로 법적 처벌받은 교사의 반이 다시 교단에 서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며 미안하지만 전교조에게 요구하고 싶다.


법적으로 판결받고 증거가 명백한 교사는 전교조 차원에서 좀 파면을 요구했으면 좋겠다. 저런 새끼가 선생이면 우리도 선생 못해먹겠다고 해 줬으면 좋겠다. 아주 쉬운 포인트다. 물론 억울한 경우는 변호해 줘야 한다. 하지만 진짜로 아닌 경우는 항상 존재하고 그때는 전교조가 좀 나서서 쓸어 주는 게 전교조의 위상과 지지를 더 드높이는 일이 아닐까.


성추행 혐의가 확정된 뒤에도 교단에 서는 교사 명단을 전교조가 확보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의 파면을 전교조가 요구해 줬으면 좋겠다. 왜 전교조더러 그러냐고. 그럼 교총한테 얘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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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BS>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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