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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금요일

2015-08-0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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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딴지 추천14 비추천0

2015. 08. 07. 금요일

이즈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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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을 힘겹게 시작해 탈진 상태로 금요일을 맞는 이 생활은 십 년이 넘어도 매주 낯설고 불편하다. 나는 직장인으로서 대략 육백 번의, 이따위 월요일을 맞이해 왔다.


오늘은 금요일. 점심시간 이후로 시계를 처음 봤을 때, 오후 네 시 반이었다. 떠 놓은 물을 한잔 마시고, 담배를 하나 들고 비상계단으로 나와 뒤집어 놓은 초라하고 작은 플라스틱 통 위에 앉았다. 그늘에 있었는데도 의자 대용으로 뒤집어 진 플라스틱 하얀 통은 따뜻했다. 얼마 전까지 저 뜨거운 햇빛을 그대로 다 받고 있었나 보다. 이제 겨우 그늘에서 뜨거운 몸을 식히는 통의 노곤함이 엉덩이를 통해 이심전심 전해지는 듯했다.


쉽게 담배를 입에 물지 못했다. 어제에 비해 습도도 높지 않았고, 간간이 부는 바람이 정말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솔솔솔. 더운 여름 바람이 위로가 되기도 하는 그런 너그러운 금요일 오후 네 시 반을 조금 즐기고 싶었다. 더 이상 나를 찾을 전화나 메시지가 오지 않을, 조용한 금요일 오후를. 물론 맛있게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니 나를 애타게 찾는 메신저가 컴퓨터 화면에 번쩍이고 있었지만. 오늘 하루 중 가장 맛있는 담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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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 완벽하게 지칠 준비가 완료된 월요일 아침, 같은 장소에서 쭈그리듯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다. 사무실 막내 여직원이 문을 빼꼼 열고 내 앞에 섰다.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이날은 일주일의 출장을 다녀온 후 첫 출근이어서 기운도 없고, 마음도 그리 편하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내 표정이 좋았을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방금 출근한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는 게 쉽지는 않을 터인데... 할 말이 있다? 답은 하나뿐이지 않은가.



“왜, 그만두려고?”



입사한 지 1년이 막 지난 직원이었다.



“네, 여긴 정말 아닌 것 같아요.”


“야, 나도 여긴 아닌 것 같아. 누군 그런 것 같아서 다니냐. 월급 받으려 다니지.”


“네......”



담배를 빠는데 싱거운 담배 탄 맛이 났다. 담배가 너무 조밀하게 말렸는지, 중간쯤에서 불이 꺼져버렸다. 달디 달게 타 놓은 시원한 믹스 커피 위에는 먼지가 두, 세 개 둥둥 떠 있었다. 이 모든 게 월요일 아침답다고 생각했다.


마음 정했냐는 물음에 네, 하며 말끝을 흐렸다. 이 말, 누군가에게 했냐고 물으니 아니라 했다. 그래서 난 데이트 신청을 했다.



“야, 오늘은 아무런 티 내지 말고 그냥 일해. 오늘 일 일찍 마무리하고 나랑 커피 한잔 하자. 30분만.”

“네......”



그 친구가 사무실로 들어간 후, 종이컵을 이리저리 기울이며 이제는 네, 다섯 개가 되어버린 먼지를 컵 벽에 붙여 손가락으로 닦아내었다. 절반쯤 타다 남은 담배에 눈을 찌푸리며 어렵사리 불을 다시 붙였다.


자, 그날의 월요일 시작.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진부하고 비슷한 내용으로 사람을 항상, 매번, 새롭게, 지치고 짜증나게 할 수 있는지. 월요일을 설계한 그는 정말 신급이다. 꾸역꾸역 어쨌든, 그렇게, 오전이 지나고, 점심을 먹고, 오후를 보내고, 야근 밥을 시켜야 할 퇴근 시간이었지만 그날은 그만 접고 퇴근을 외쳤다.


막내 여직원은 나와 열학 번 정도 차이 나는 학과 후배이기도 하다. 학연이라는 말이 너무 안 좋게만 쓰여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한 번 더 신경 쓰이는 친구였던 건 사실이다. 뜨끈뜨근한 98년식 클래식 세단에 태우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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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아 손목시계를 보고 30분 후의 시간이 몇 시인지를 계산하고,



“야, 나가는 것도 위아래가 있지, 치사하게 먼저 나가냐!?”



로 시작했던 것 같다. 최대한 그 친구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결론은 이 일이 정말 자신에게 맞지 않고, 자신도 없다, 그만두겠다는 것이었다. 외국으로 나가 공부를 하려 한다고. 해외유학이 정말 네가 원하는 것이냐, 아니면 여기가 싫어 떠난다는 것을 덮기 위한 변명스러운 계획이냐 물으니, 후자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면 보직을 바꿔 업무 내용을 바꿔 보는 것은 어떠냐, 물으니 답이 없었다. 생각해 보고 다음 날 이야기 하겠다 했다.


요즘 나는, 나름 대화라고 직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을 때, 그것은 그저 나의 일방적인 연설이었구나 라는 것을 아찔하게 깨닫곤 한다. 그 날의 30분이 그 친구 입장에서는 어땠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랬겠지 뭐.


자, 언제나 찾아와서 감사한 다음 날 아침이 왔다. 보직 변경이 가능하다면 바꿔서 일 해보겠단다. 막상 기다리던 답을 들으니, 내 마음은 좀 복잡해 졌다. 솔직히 좀 서운했다. 나랑 일하는 게 그리 싫었어? 이 서운함이 내 표정에 어떻게든 떠올랐겠지?


요즘 젊은 직원들의 퇴사가 끊이질 않고 있어 각 본부장들은 인원관리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 덕분인지 그 친구는 어렵지 않게 보직 변경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 주 정도 흘렀을까. 오전에 그 친구를 찾아 뒤에서 슬쩍 놀래키며 물었다.



“어때?”

“......정말 아닌 것 같아요.”



그 친구는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며 답했다. 뭐가 그리 답답했는지 그 짧은 사이에 눈에 눈물이 그득했다. 여직원이라 조심스러웠지만 등을 툭툭 두세 번 쳐줬다.


며칠 지나 인사 공람문서에는 그 친구의 면직이 적혀있었다. 퇴사일은 정해졌고, 그날 아침 그 친구와 회사 입구에서 마주쳤다.



“안뇽.”


“안녕하세요.”



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숙 되돌아 나간다. 흠...... 사무실로 올라가 가방을 놓고, 비상계단으로 나갔다. 플라스틱 통 위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니 그 친구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들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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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땡큐. 잘 마실게.”


“감사했어요.”



하며 내게 작은 카드를 한 장 건냈다.



“오! 야! 이거 로또야?”



딱 로또 한 장 들어갈 만한 사이즈였다. 그냥 씨익 웃으면서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담배를 들고 다시 나가 담배를 물었다. 그 친구가 사준 마지막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유난히 시원했다. 카드를 열었다. 두근두근. 정말 로또가 들어있는 건 아닐까. 카드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이럴 거면 좀 큰걸 사지 그랬니. 오랜만에 보는 손글씨다.


내용은, 미련 남지 않게 해볼 것 해보고 나갈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조금 더 편하게 대하지 못해 아쉬웠다, 나중에 좋은 곳 취직해서 다시 연락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또 지 혼자 꺼져버린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이고 카드는 고이 넣어 주머니에 넣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번엔 그리 시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주 화요일이었나. 친하게 지내던 또 다른 녀석의 면직을 알리는 인사 공람을 확인했다. 가끔씩 점심을 같이 먹고, 담배도 같이 피우던 녀석이었는데 둘 다 입만 열면 그만둔다고 배틀 아닌 배틀을 하던 사이다.


그리고 이번 주 월요일이었나 화요일이었나... 나는 신입사원 언어 면접에 들어갔다. 퇴사자가 많아서 생긴 계획에 없던 공채였다. 그 중 한 명은 작년에도 봤던 지원자도 있었다. 다행히,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친구는 최종 합격했다.


오늘, 금요일 오후 네 시 반, 뜨끈한 플리스틱 통 위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잠시 여유를 즐겼다. 서둘러 업무를 마무리 하고, 자칫하면 주말 내내 신경써야할 골치 아픈 일거리를 최대한 떠오르지 않도록 머릿속을 정리하고 자가 최면을 걸고 일곱 시가 되기 전, 해가 있을 때 퇴근을 했다.


그리고 단골 카페에 와서 이러고 앉아있다. 열 시가 넘었네. 밖은 어둡고, 카페 안은 평소 금요일 밤과는 다르게 조용한 편이다. 이제 집으로 가서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맥주 한 캔과 달콤한 과자를 씹고 마시며 나만의 주말을 시작해야겠다. 간만에 시작된 소개팅 릴레이가 끊어지기 전에 연애가 시작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흠... 그러고 보니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군. “안녕하십니까! 저는 얼모스트 마흔에 무직인이고요, 와, 반갑습니다, 어떻게 저랑 한번 만나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질 못하겠으니까. 직장마저 없다면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존감 제로의 솔직한 내 모습 아닌가.


회사가 ‘전쟁터’라면 그 밖은 ‘지옥’이라는 현실을 잘 알면서도 어려운 결정을 한 친구들에게 화이팅을 보낸다. 부러움도 함께. 적지 않은 쪽팔림은 숨기지 않겠다.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려 들어온 친구들에게는, 전에도 한 말이지만,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지 에구에구 톡톡”과 함께 “전쟁터에 온 걸 환영한다, 이 녀석들아, 근데 나도 니들 옆에 있다” 하는 정도의 위로. 근데 이건 정말 내 욕심인데, 니들 제발 나보다 먼저 나가지 좀 마라. 정말 순서라는 게 있잖아. 좀만 참아! 곧 멋지게 사라져 줄테니까!


아, 이제 진짜 집으로 가야지. 가는 길에 로또 한 장 사고. 천 원짜리가, 어디 보자, 네 장 있구나. 아니다, 세 장이구나. 이천십오 년 칠월 마지막 날이자 마지막 금요일, 로또 자동 세 게임을 구입하는 것으로 모든 공식일정을 마무리하겠다.


가벼운 주말 되시길......





이즈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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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