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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7. 금요일

편집부 독구







 



본 기사는 


영화 리뷰가 아닌

여성 딴지스의, 여성 딴지스에 의한, 여성 딴지스를 위한

영화 잡담으로

남성 딴지스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필자가 그 점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읽어 내려간다면

여성 심리 이해에 피가 되고 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외다.

                                                                                                 




 







3탄 <차우> : 마초가 수줍어할 때



 

1. <차우>와 윤제문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 백만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군복스타일의 옷, 어깨까지 내려오는 야성적인 머리카락 그리고 평생 감정 따윈 표현한적 없는듯 한 무표정한 얼굴. 필드생활 20년 경력의 싸나이 of 싸나이가 여자에 꽂혔다. 그녀가 구성지게 트로트를 부르며 내민 손을 잡는 순간 마초의 심장엔 하트가 뿅뿅뿅. 마이크를 잡고 뱅그르르 도는 그녀가 슬로우 모션으로 보인다.


사랑에 빠진 마초는 그녀 옆에 찰싹 붙어 앉아 한 살배기 애처럼 우유를 질질 흘리질 않나, 입가에 커다란 빵조각 하나 붙인 채 배시시 웃질 않나, 그녀가 덥썩 잡아준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질 않나, 일행이 잠든 사이 그녀에게 몰래 뽀뽀하려고 얼굴을 들이대질 않나 이렇듯 너무나 귀엽고 수줍은 행동을 보여준다. 그 모습에 나는 그만 홀딱 반해 버렸다. 이쁘다! 이뻐죽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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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도 작 <차우>는 감히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말하고픈 영화다. <차우>외 신정원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는 <시실리 2km> <점쟁이들>이 있고 현재 <더 독>이라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년에 캐스팅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별 이야기가 없어 엎어진건지 진행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차우>가 개봉했을 당시 내 주위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 영화는 꼭 봐야한다고 침을 튀기던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차우>를 봤는데 옴마야, 크나큰 충격에 몸져 누울 뻔했다. 한국영화계에 이런 걸작이 나타나다니... 그래서 <점쟁이들>이 개봉하자 바로 극장으로 달려갔는데 몹시 실망 했다는 사실을 밝혀야겠다. 차우빠인 지인들과 내린 결론은 신정원 감독이 각본까지 써야 제대로라는 것. 한낮의 똥개마냥 축늘어져 리모컨을 돌리던 나를 각 잡고 앉게 만들었던 <시실리 2km>의 각본에도 그의 이름이 올라가있다. 감독님, 어서 빨리 신작 개봉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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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제작발표회. 

주연배우마저 웃음을 참을수 없어

보는 사람을 오글거리게 만드는 선언문 낭독의 현장




<차우>는 식인 멧돼지와 5인의 추격대의 살벌한 대결을 다룬 영화다. 포스터에는 괴수 어드벤처라고 되어있는데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절대로 혹하지 마시라엄태웅이 김순경, 정유미가 생태연구원, 장항선이 포수, 윤제문이 포수, 박혁권이 신형사 역을 맡았다. 조연들 역시 연기력이 끝내준다. 주조연의 절묘한 앙상블이 코미디를 살렸다고 본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개봉 당시 이 영화를 호러로 마케팅했다. 차라리 코미디라고 했으면 - 이게 더 진실에 가깝기도 하고- 더 흥행했을지도 모르겠다. <차우>는 미장센과 코믹 장치가 아주 영리한, 섬세함이 박찬욱&봉준호에 뒤지지 않는 코미디영화다


'느끼아 느끼아'

'휘바 휘바'

'비달 사순?'


팬들 사이에 회자되는 차우의 명대사 중 일부다. 맥락없이 늘어놓는 바람에 이건 뭐지 싶겠지만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서 손가락을 자르는 심정으로 봉인을 걸었다. 워낙에 명장면, 명대사가 많아서 하나하나 언급하기 어렵지만 요 세개는 단언컨대 최고의 대사가 아닐런가 싶다. ,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만고 내 생각이다. <점쟁이들> 개봉 때는 코믹호러라고 해서 코미디에 좀 더 초점을 맞추기는 했는데 문제는 영화가 별로 ... 헛헛 흐압.


우연찮게 본 영화가 지금껏 존재도 몰랐던 배우를 재발견하게 해주곤 한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류승룡을, <박수건달>은 조진웅을, <군도>는 마동석을 내게 각인시켜주었다. <차우>는 윤제문의 매력을 흠뻑 느끼게 해주었다. 사랑에 빠진 상남자의 모습을 어찌나 찰지게 연기했는지 평소 남자의 의외의 귀여움에 페티쉬가 있는 소녀 독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윤제문의 모습만 떠올리면 가슴이 아려왔다고 고백해야겠다.


간헐적 무도빠로서 방영 초기부터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도니도니 정형돈이 어느 순간 눈에 쏙 들어온것도 그의 귀여움때문이었다. 쑥쓰러워하는, 몸둘바 몰라하는 그의 순진한 행동거지에 총 맞은 것처럼 어지러웠다. , 귀여워. 최근 형광팬편에서 팬들의 애정공세에 심히 부끄러워하던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 깨물어 버리고 싶어. 나만 그런가.

 


 

2. 마초의 마음

 

우람한 등치에 우락부락한 얼굴, 말은 없으나 불의에 굴하지 않는 행동을 보여주는 남자. 목숨 걸고 나를 지켜줄 것 같은 남자. 흔해빠진 할리우드 영화 주인공처럼 낭만적이고 정형화된 마초가 내 이상형이었다. 그래서 연세대 농구팀을 목이 쉬어라 응원했지만 은밀히 현주엽에게 눈길을 주었고 (나도 모르게 연식 노출을 ㅜ.ㅜ) 다모로 뜨기 전 모델로 활동했던 김민준의 야성적인 화보를 벽에 붙여놨으며, 대학생 때엔 머리가 크고 산적같이 생긴 선배를 좋아했더랬다. 특히 선배는 생긴 것과 달리 부끄럼이 많고 유머감각이 뛰어나서 내 마음을 마구 흔들어놨는데 다른 년을 좋아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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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라고 하면 로드리게즈 영화 <마셰티>에 나오는 주인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마초는 일단 외모만으로도 식별 가능하다. 여기서 잠깐. 마초는 나쁜 남자와 다르다. 나쁜 남자가 닳고 닳은 인간이라면 마초는 인간보다 짐승에 가깝다고 해야할까나. 전자가 개체를 존속시키기 위해 이기적 유전자가 내놓은 진화의 산물이라면 후자는 종을 존속시키기 위해 이타적 유전자가 내놓은 진화의 산물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리차드 도킨스 책 참 지랄맞게 어렵더이다.)


마초와 나쁜 남자는 둘 다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사회적 특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행동의 동기와 결과는 분명하게 다르다.


이들에게서는 남성우월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우월하기에 나쁜 남자는 여자를 등쳐먹고, 마초는 여자를 보호 존중이 아니라 열등하니까 지켜준다 식의 해준다.

가부장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래서 권위, 남자니까 강해야 하고, 참아야하고, 눈물 따윈 필요없다는 매우 중요하다. 권위를 세우기 위해 마초가 무식하게 무기를 들고 싹 쓸어버리는데 반해 나쁜 남자는 가식이라는 엄폐물을 내세운 후 뒷작업을 통해 뺏고 싶은 자리를 차지한다. 여인들이 바치는 동경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마초와 달리 나쁜 남자는 여인을 대하며 권위를 행사한다. 하렘은 하렘인데 운영방식이 다르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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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에 살고 폼에 죽는 묵직한 남자. 스위스제 금고보다 단단한 마초의 마음이 열렸을 때 어찌 녹지 않으리오.


여자는 남자가 마음을 보여주길 바란다. 아주 먼 옛날부터 여자들은 걸핏하면 동굴로 들어가려는 남자라는 동물이 쉽게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이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싶은데 확인할 길이 없다. 사랑한다고 말은 하는데 진짜인지 뻥인지 확신이 안 든다.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도 내 옆에 앉은 남자는 눈만 껌벅일 뿐 가타부타 말이 없다. 이 색...


고대인들은 신에게 소원을 빌기 전에 일단 제물을 바쳤다. 제물은 내 진심과 성의를 표시하는 증표다. 여자 역시 남자가 희생을 통해 진심을 보여주길 바란다. 말은 너무 쉽고 가벼우니 증표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명품가방이 됐든, 반지가 됐든, 꽃이 됐든 나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는 증거가 필요해졌다. (물론 마음 따위보다 선물을 중히 여기는 나쁜 년들이 곳곳에 있다는게 문제지만)


<차우> 속 마초 윤제문의 수줍은 행동은 그의 내면에 꼭꼭 숨겨져 있던 순정을 보여주는 증거다. 고독하고 과묵한 마초는 비록 십원짜리 하나도 여인에게 바치지 않으나 어찌할 줄 모르는 그 행동만으로 충분하다. 마초의 천진난만한 행동은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말보다 더 가슴 떨리게 다가온다. 남자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기에 여인의 마음은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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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를 진짜 사랑하는거야?

 

그리하여 여자들은 오늘도 증거확보를 위해 쌍라이트 번쩍 켜고 남자를 살핀다. 이 시점에서 우리 재미있는 사례를 살펴보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루이스 C. K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미드 <루이 louie> (<럭키 루이> 아니다!)의 시즌 19편과 시즌 210편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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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시즌 210. 할로윈을 맞아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사탕을 받으러 다니는 아빠 루이. 어느새 밤이 되자 집으로 가기 위해 그들은 후미지고 어두컴컴한 길을 걷는다. 그런데 양아치 새끼 두 명이 갑자기 나타나 위협을 가한다. 아빠 루이는 쫄았다. 본인도 무섭고, 혹여나 아이들이 해꼬지라도 당할까봐 걱정이 되어 이러지 말라고 애원조로 말을 하니 양아치들은 더욱 기세 등등. 이렇게 갑갑한 실랑이가 벌어지는데 유치원생 막내딸이 갑자기 요정막대를 휘두르며 양아치들을 혼내기 시작한다. 그러자 당황한 양아치들은 슬슬 뒷걸음질을 친다. 이때 루이가 버려진 의자를 번쩍 들어 이들을 쫓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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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시즌 19. 루이는 간만에 괜찮은 여자랑 즐거운 데이트를 한다. 도넛가게에서 시끄러운 고등학생 패거리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다가 졸지에 폭력을 당할 위기에 처한 루이. 실컷 조롱 받고 쪽팔리게 자기를 때리고 말라고 애원한 끝에 고등학생들이 물러난다. 그런데 이런 그의 모습에 여자는 대 실망. 루이가 옳은 행동을 했다고 맞장구는 쳤지만 솔직히 깨는건 사실이라며 제 마음에선 루이씨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 본능은 루이씨가 완전 루저라고 말하는데 어떡하나요라고 말한다. 결국 빠이 짜이찌엔. 데이트는 망했다.

 

이 상황에서 영화 속 마초라면 두 주먹 불끈쥐고 일어나 상대방을 때려눕혔을 것이다. 자기 몸엔 상처 하나 안 입고. 그런데 우리가 사는 요 현실세계에서 양아치나 고등학생과 치고 박고 싸웠다가는 누가 손해일까. 그러다가 엄하게 죽을 수도 있다. 개죽음 당하느니 순간 쪽팔려도 그 상황을 모면하는게 훨씬 현명한 일이다. 미드 속 여자의 대사대로 우리 모두 이것이 옳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내 안의 본능은 이 남자가 찌질한 놈이고 겁쟁이고 쓸모없는 놈이라는 지령을 내린다. 그러니 매몰차게 갖다 버려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여자들은 내 남자가 <테이큰>의 아빠처럼 <007 카지노 로얄> 제임스 본드처럼 나를 지켜줬으면 하는 판타지가 있다.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것 역시 희생이라는 관점에서 보자.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나를 지켜준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왜냐? 나를 사랑한다메! 그래서 남들 앞에서는 허세라도 부렸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그 뒤에 벌어질 일은 일단 제껴놓고 말이다. 여인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자는 물러설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 되겠는가? 뻔하다. 사달이 난다. 재수없으면 몸 상하고 돈 깨지고 시간 낭비하는 대 참사가 벌어지겠지. 남는건 후회와 원망과 이별 뿐. 어리석은 중생들이여.

 

나는 추울 때 남자라면 응당 겉옷을 벗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장 동료가 남자도 똑같이 춥다고 말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남자라면 당연히 추위를 안 느낄거라 생각했던게다. 대학도 나온 여자가 이런 생각을 했다니 솔직히 내 자신에게 어이가 없었다. 남자에 대한 착각이 뭐 이것 하나랴. 친구가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해병대출신 남자랑 사귀느라 온갖 시비에 말려들어 고생하는걸 알고 혀를 찼지만 막상 내 남자가 자기는 깡패를 만나면 무조건 도망갈거라고 말했을 때엔 저주를 퍼부었다. 이런 식으로 나도 강한 남자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대다수의 여자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내 여자에게는 따뜻한 차가운 도시 남자? 과연!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현명한 남자가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 모든게 다 기대 때문이 아닌가. 바로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건가

 

란 질문에 나를 확신시켜주길 바라는 기대. 현명한 여자는 안다. 기대가 충족되면 또 다시 새로운 기대를 한다는 것을. 요란하게 날 사랑한다고 지랄을 떨어도 실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가오는 좀 떨어져도 별탈없이 나와 오래오래 함께 있을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이라면 겉모습은 비록 마초스럽지 못하다 하여도 사랑하리라. 그가 수줍은 행동으로 나를 향한 사랑을 보여준다면 내 마음은 활짝 열리겠지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Mon coeur s'ouvre a' ta viox'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려요

아침의 키스에 눈 뜨는 꽃처럼 넓게 저를 기쁘게 하고

다시 눈물짓게 하지 않으시려면

변하는 않는 사랑을 맹세하셔요

다정한 말씀과 진실 어린 맹세를 들려주셔요

오. 가장 사랑하는 분!

사랑의 매력에 몸을 맡기셔요

저와 함께 사랑의 기쁨에 취하셔요

바람에 날리는 보리이삭처럼

내 마음은 흔들리고, 열정에 설레며

그대의 달콤한 속삭임에 놀랍니다

사랑의 매력에 몸을 맡기셔요

삼손, 삼손!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독구 


트위터 : @zorbaji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