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8. 10.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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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체불 실시간 분투기1: 싸우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
1.
나는 회사에 대한 모든 신뢰를 잃어버린 채 6월 22일 오전, 구로디지털단지역에 있는 해당 노동지청에 찾아가 진정서를 제출했다. 다음날 내가 접수한 진정서가 받아들여졌으며 조사를 담당할 근로 감독관이 배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하루 만에 담당 근로감독관이 배정되다니 생각보다 빠른 일처리에 내심 놀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주 내내 해당 근로감독관에게 진정서에 대한 전화나 문자 한 통을 받지 못했다.
이미 7월 1일을 기점으로 백수가 되기로 한 나에게 초조하기만 한 시간이 흘러갔다. 결국 먼저 내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xxx 근로감독관님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월요일 날 진정서 넣은 거 때문에 연락 드렸거든요.”
해당 근로감독관은 내 전화에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내가 진정서를 접수한 지 5일이 지났음에도 진정서를 넣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거 같았다. 나는 ‘6월 22일에 진정서를 넣었고, 다음날 당신이 근로감독관으로 지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조사가 어찌 진행되고 있느냐’는 문의를 드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는 걸 다시 한 번 설명해야 했다. 이 전화를 받는 그 근로감독관도 당황했겠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설명을 해야하는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결국 나는 진정서가 접수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진정서를 넣은 나에게 조차 아무런 연락이 없었는데 말이다.
“이왕 이렇게 전화를 주셨으니 다음 주 월요일에 시간 괜찮으십니까?”
아직까지 아무런 진전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래도 조사 일정을 잡는 최소한의 성과를 거두었다.
6월 29일 아침, 필자의 집이 있는 성남에서 구로디지털단지역까지 가서 조사를 받았다. 나의 기본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나니, 근로감독관이 진술서와 취하서를 동시에 내밀었다. 그렇다. <임금체불 실시간 분투기1>에서 나온 바로 그 조사 장면이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노동분쟁자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자신이 원하는 상황으로 결론이 나기 전에는 절대로 취하서를 적으면 안 된다. 근로감독관에게 미리 취하서를 제출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황이 종결된 경우도 수두룩하고, 사측의 ‘노동자에게 취하서를 써주면 돈을 지급해 주겠다’는 소리에 취하서를 써줬다가 시간이 더 걸린 사례도 아주 많다. 심지어 어떤 근로감독관은 다른 서류인 척하고 진정인에게 취하서의 사인을 받기도 했단다.
7월 6일 월요일, 백수가 된지 5일이 지났고, 딴지일보 메인에 내 글이 올라온 지 2일이 지났다. 그리고 내가 진술서를 작성하고 조사를 받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알아서 조사 잘 하고 있는데 괜히 내가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하는 노파심이 들었지만 그래도 확인이 필요할 거 같아서 해당 근로감독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xxx 근로 감독관님이시죠? 지난 월요일에 진술서 쓴 ○○○라고 하는데요.”
“네? 누구시라고요?”
당황했다.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는 다른 업무 때문에 그렇다고 쳐도 이번에는 좀 아니지 않은가? 불과 일주일 전에 한 시간에 걸쳐서 조사를 받고 돌아온 상황이었지만 그는 마치 나를 처음 대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이름과 지난 월요일에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피진정인의 이름 등 여러 가지 부분을 다시 말해줘야 했다.
“선생님, 제가 이 건은 조금 조사를 좀 해보고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이미 근로 감독관에 대한 신뢰를 많이 잃은 나는 그에게 오늘 안에 다시 연락을 주시는 거냐고 되물었고 그는 살짝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날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인 7월 7일 오전 10시에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어제 전화를 건 누구라고 하니 바로 알아듣는다. 전화를 많이 건 보람은 있었다.
“선생님, 일단 피진정인에 대한 소환조사 통보는 아직 안 된 상태고요. 일단 이번 주 안으로 최대한 빨리 불러서 조사를 하겠습니다.”
결국 7월 8일까지 아무런 상황 변화도 없었다. 진정서를 넣은 지 2주가 넘었고 진정인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피진정인에 대한 소환통보 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또 진정인, 즉, 조사도 내가 전화를 걸어서 일정을 잡은 셈이고 피진정인에 대한 조사 일정도 내가 전화를 걸어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고용노동부 민원센터’에서 내가 접수한 민원을 살펴보면 내 민원에 대한 최소 해결 일자는 7월 20일로 나온다. 물론 여기서 근로 감독관은 30일 추가로 연장할 수 있다. 만일 내가 전화도 안하고 근로 감독관이 알아서 잘 조사하겠지 생각하고 있었으면 지금 어찌 되고 있었을까? 지금쯤 진정서를 넣은 나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졌을까?
2.
7월 10일, 해당 근로감독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나는 전화를 계속 걸며 근로감독관을 귀찮게 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 나를 알아보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으니까. 해당 근로감독관은 7월 13일 월요일 오후 4시에 사장이 직접 출석해서 조사를 받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장이 근로감독관의 출석 요구를 무시하며 ‘배째’ 전략으로 나올까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임금체불관련 사연을 찾아보면, 사장이 근로감독관의 출석 요구를 무시하고 근로감독관은 사측이 조사를 안 받으니 조사 진행이 안 된다고 해서 답답해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제 나의 상황은
1) 사측이 13일에 내가 주장하는 금액이 체불되었음을 인정한다.
2) 사측이 나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의 경우로 일이 진행될 것이다.
1번의 경우 해당 사항을 사측이 인정하면 근로감독관이 바로 시정지시를 하고 사건이 마무리 된다. 반면 2번의 경우엔 해당 근로감독관은 다시 근로자와 사측의 대질 조사 날짜를 정하고 조사를 통해 어느 편의 주장이 맞는지를 판단한다.
가슴속에 조금씩 남아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긴장감과 불안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13일 월요일 오후 5시 넘어서 해당 근로감독관에게 전화가 왔다. 다행히 1번이었다. 사장은 야간수당, 연장수당, 주휴수당 등을 체불했음을 시인하였고, 근로감독관은 17일 금요일까지 해당 금액을 지급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나는 즉시 해당 근로감독관에게 ‘임금 체불 확인서’를 발급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임금 체불 확인서는 말 그대로 한 사람이 임금이 체불되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서류(사측에게 임금체불로 인한 퇴사일 때 받을 수도 있으나 대부분 근로 감독관에게 받는다)로, 이 서류를 통해 실업 급여도 신청할 수 있으며 이후 민사까지 진행될 경우 유용하게 쓰인다. (입금 체불 확인서를 올리려고 했는데 죄다 신상 정보라 올릴 수가 없다)
필자의 것이 아닙니다. 대충 요롷게 생겼다구요.
(출처- 블로그 <생활의 지혜>)
나는 그 다음날 서울관악지청으로 이동해서 임금체불 확인서를 지급 받았다. 지급 받고 나올 때의 날씨는 매우 뜨거웠지만 내 마음은 매우 산뜻했다. 저기 앞에는 처음으로 근로 계약서를 들고 상담을 받을 때 ‘내가 한 근로 계약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계약’이라고 말했던 노무사가 있는 사무실이 있고, 그 옆 건물에는 자신들은 다수의 노동자가 연관된 큰 사건만 담당한다며 상담조차 거부한 노무사의 사무실이 있다.
쇠뿔도 단김에 빼는 성격인 나는 7월 15일 오전에 실업급여를 신청하기로 했다. 이미 1주일 전에 워크넷으로 구직 신청은 마친 상황이었으니 바로 고용보험 사이트에 접속해서 실업급여와 관련된 동영상 강의를 보기로 했다. (동영상 강의가 힘든 분은 직접 담당 고용센터를 방문해서 교육을 받아도 되나 동영상 강의가 훨씬 시간이 적고 편하다)
동영상 강의는 전체적인 실업급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플래시 형태로 중간마다 버튼을 넘겨서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는 형태로 되어 있고 깜짝 퀴즈도 나온다. 그냥 동영상 틀어놓고 딴 짓하는 사람들을 방지하지 위해 고용 노동부에서 머리를 잘 쓴 것 같았다. (참고로 해당 교육 내용 중에 가장 긴 시간을 실업급여 부정수급 방지 부분에 할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어떤 점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부정수급은 하면 안 되지만)
약 40분 정도 걸리는 동영상 강의를 마치고 바로 서류를 들고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지역의 고용보험센터로 이동했다. (성남에 사는 필자는 미금역에 위치한 고용보험센터에 갔다) 번호표를 뽑고 신분증을 준비하고 체불 서류를 준비하고 해당 담당관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서류를 내밀었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가 받은 체불 확인서는 총 체불 금액만 나와 있고 달별로 분리가 되어있지 않아서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참에 실업급여에 대한 수급 조건을 짤막하게 알아보면 이렇다.
1) 월급 전액이 체불되지 않는 기간이 2개월 이상
2)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금액을 받는 기간이 2개월 이상
3) 각 달별 월급의 30% 이상 체불된 기간이 2개월 이상 되거나
4) 각 달별 월급의 20% 이상 체불된 기간이 6개월 이상 되거나
여기에 일정 거리 이상의 지역으로 직장이 이주를 하거나 하는 경우에도 지급 대상이 된다.
필자의 경우 ‘체불’은 확인이 되나 각 달별로 30% 이상 체불된 기간이 파악되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조사를 했던 근로감독관에 연락을 해서 진술서와 서류를 다시 받았다. 이 부분에서 시간이 걸려 생각보다 지체되었다. 나라의 돈을 빼먹는 게 생각보다 어려우니 서류를 잘 준비하시길 바란다.
또한 내가 다녔던 이전의 직장은 물론, 작년에 잠깐 짧게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다니고 퇴사한 직장에도 이직확인서가 처리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직확인서가 처리가 안 되면 실업급여가 지급되지 않으니 고용보험 사이트에서 로그인해서 이직확인서가 제대로 처리되었는지 파악하시길.
서류를 내고 2주 후 다시 해당 고용보험 센터로 가서 2차 교육을 받는다. 이 때 통장 등의 서류를 제출하면 그때부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이제 다음 문제는 사장이 17일 날로 명시된 체불금 지급 시한을 지키느냐 어기느냐다. 그대로 지급을 하면 사건은 여기서 종결되겠지만 지급을 하지 않는다면 해당 근로감독관은 검찰로 사건을 이송하고 필자는 민사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고, 그 전에 잠깐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얼마 전 많은 사람들을 큰 충격에 빠트린 뉴스가 하나 있었다. 대학교의 교수자리를 바라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던 한 사람에 대한 뉴스였다. 그는 교수가 되기 위해 자신보다 어린 여자 후배 2명에게 강제로 존대를 했고, 쓰레빠로 얼굴을 맞았고, 오줌과 인분을 먹었다. 야구 방망이로 맞아 더 이상 육체적인 체벌이 힘들어지자 얼굴에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리는 엽기적인 고문까지 당했다. 그의 얼굴은 녹아 내렸고 2도 화상을 입었다.
몸의 난 상처를 본 주변에서 상황을 물었고 그의 상황을 들은 한 친구의 제안에 그는 해당 교수가 자신에게 체벌을 지시하는 카카오톡을 갈무리하고 증거를 수집했다. 또 맞은 상처를 '넘어져서 다쳤다'며 치료하러 온 병원에서 그의 상황이 심각함을 깨닫고 상담사와 심리상담도 진행했다. 그리고 그 전모가 이제야 밝혀졌다.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토록 바라던 교수가 되면 지금의 치욕은 다 잊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만 들었을 것이다. 만일 그 이후에 그가 정말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내고 그 사이코패스 같은 교수에게 인정 받아서 한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고 치자. 과연 그에게 무엇이 남아 있을까?
가정폭력을 경험한 많은 남자는 커서 자신이 당한 가정폭력을 그대로 대물림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것이 그것 뿐이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예상하자면 만일 그가 교수가 되었다면 짧게는 10년 후, 멀게는 20년 후에 그를 괴롭혔던 교수처럼 되었을 것이다. 그가 그 교수에게 얻은 것이라고는 그가 그토록 바라던 디자인 교수로서의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런 엽기적인 상황은 아니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근로자들은 심정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 되며 앞뒤가 안 맞는 상황으로 일을 몰아가는 경우도 많을 것이며 육체적인 폭행과 언어적인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책상위에 놓아둔 가족사진을 한번 쳐다보고 더욱더 힘들 때는 술의 힘으로 담배의 힘으로 이겨내려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선동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상사가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자신을 욕보일 때 마다 일을 그만두면 세상은 실업자로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 답이 없는 이야기지만 너무 답답해서 사족을 달아봤다.
3.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내 상황을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대략 이렇다.
1) 7월 13일 오후 4시경 사장은 조사에 출석하여 내가 주장하는 사실을 인정했다. 근로감독관은 7월 17일 금요일까지 나에게 체불된 임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2) 해당 근로감독관은 이 사실을 바로 나에게 알려왔고 필자는 다음날 근로감독관을 방문하여 체불임금 확인원을 발급했다.
3) 다음날 수요일 필자는 고용보험센터를 방문하여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17일이 되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사장은 돈을 입금하지 않았다. 전화를 거니 받지를 않는다. 결국 문자로 20일 월요일 오전 9시까지 돈을 입금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바로 민사로 넘어가겠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20일 오전까지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소액 금액에 대한 분쟁이나 필자 같은 임금 체불 상황이 발생하여 법적인 도움을 받아야 할 때 직접 변호사를 선임해서 하는 방법도 있지만 법률구조공단을 이용하면 무료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행히 필자가 사는 바로 집 앞에 법률구조공단 출장소가 있다.
(출처- 법률신문뉴스)
필자처럼 임금 체불 문제로 상담을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준비물이 필요하다.
1) 근로감독관에게 지급 받은 임금체불 확인원
2) 해당 사측에 대한 법인 등기부 등본
3) 도장 및 신분증
대부분의 법률구조공단은 등기소 주변에 위치해 있다. 그러니 미리 등기소를 거쳐서 서류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사업자 번호나 업체 명만 확실하게 알면 서류를 뗄 수 있으며 유인 창구 기준 수수료는 1200원이다.
참고로 대부분의 법률구조공단엔 상담하는 인원은 적은데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은 많아서 무턱대고 찾아갔다간 많은 대기 인원 때문에 낭패를 보기 쉽다. 상담이 시작되는 10시 이전에 찾아가거나 예약을 해서 이러한 불편을 줄이도록 하자. 필자도 아무 생각 없이 찾았다가 2시간 가량을 대기해야 했다.
어쨌든 저 세 가지 서류가 완벽하게 준비돼있다면 특별히 문제되는 상황은 없다. 서류를 제출하고 민사 진행 상황을 통보받을 휴대기기 번호가 맞는지만 확인하면, 상담하시는 분이 알아서 서류도 작성해 주시고 질문에도 답변을 해 주신다. 필자도 약 10분 만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올해 7월 1일부터 소액 체당금 제도라는 것이 생겼다. 6개월 이상 사업을 운영 중인 사업체에서 임금 체불 및 퇴직금 체불이 발생하는 경우, 최대 300만원에 한해서 근로복지공단에서 먼저 해당 노동자에게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 때 근로복지공단에서 지급한 금액은 정부에서 직접 회사에 청구해서 받아낸다. 근로자에겐 매우 유리하고 회사에선 근로자가 아닌 정부를 상대해야 하니 골치 아픈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체불된 금액이 3백만 원에 살짝 못 미쳐서 승소를 하면 소액 체당금 제도를 이용해서 빠르게 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해당 사업체가 2015년 1월 5일부터 영업을 시작한 걸로 나와 있어서 기간이 살짝 애매하다. 승소가 난 이후 근로복지 공단에서 정확하게 판정을 받아야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소액 체당금 제도를 적용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회사의 재산을 추적해서 압류를 하는 정통적인 방법으로 돈을 받아야 한다.
6월 22일에 노동센터에 진정서를 넣고 임금체불 확인원을 발급받고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데 딱 한 달이 걸렸다. 필자의 인생에서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는 한 달이 흘렀지만, 느끼고 배운 것은 지난 10여 년의 사회생활을 통틀어서 가장 많은 달인 것 같다.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아직 더 싸워야 할 시간이 많기에 힘들지만 억지로라도 웃고 힘을 낸다. 싸워야 이기기 때문이다.
4.
시간이 너무 빠르다. 실업급여 신청을 한 게 어제 같은데 벌써 2주나 흘러 7월 29일 수요일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 2주 동안이 꽤 힘들었다.
7월 20일, 법률구조공단에서 ‘근로감독관의 임금체불 지급명령을 어긴 사업주를 고발’하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한달 간의 싸움을 마무리지었다.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신경 쓸 일도, 싸울 일도 없을 거 같았다. 남은 건 시간과의 싸움뿐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이전 회사에 대한 분노도 조금 가라앉았고 이후에 뭐하면서 살아야 하나, 실업급여를 받는다 하더라도 가족의 눈칫밥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7월 말의 무더위까지 내 몸을 공격하니 식욕을 잃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그냥 지내기도 하고 우울함과 실패감에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심 실업급여 2차 교육이 있는 수요일이 반가웠다. 교육 때문이라도 아침부터 일찍 몸을 움직일 수 있다. 기대가 돼서인지 소풍 전날 잠을 설치는 초등학생처럼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아 고생을 좀 했다. 다행스럽게 새벽부터 강하게 내린 비에 저절로 일어나는데 성공했지만 말이다.
몸은 살짝 피로하고 강하게 내리는 비 때문에 더 나서기 힘든 아침이었지만 그래도 마음 편하게 성남 고용보험센터로 향했다. 교육장 앞에 사람이 그득했다. ‘이것이 실업의 현실인가….박근혜 정부 정신 차려라’ 속으로 박통 욕을 한번 하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입구 앞에서 기다리는 직원에게 신분증을 제시하니 그 직원이 신분증과 미리 작성되어 있는 취업 희망 카드를 대조해서 앞으로 어떻게 취업 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서류 하나와 카드를 준다. 주의해야 할 것은 실업 급여를 처음 신청할 때 예약증에 재취업 활동에 대한 서류가 함께 있는데 이것을 가져가는 게 좋다. 물론 없다면 현장에서 바로 지급하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해당 서류를 받고 적당한 곳에 앉아서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이 중장년층이지만 젊은 층도 꽤 있었다. 다시 한 번 속으로 ‘창조경제’를 외치고 수업을 들었다. 수업은 취업 희망 카드와 함께 나누어주는 팸플릿에 있는 것을 큰 화면에 PPT로 작성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는 형식이다.
1차 실업 인정 이후 (나 같은 경우엔 2차 교육을 받는 날이 된다) 한 달 후인 2차 실업 인정일에 구직 활동을 어떻게 인정받는지에 대한 내용이 주였다. 젊은 층들은 인터넷으로 간단하게 하면 되지만, 그게 힘든 중장년층도 많기에 직접 창구로 와서 어떤 식으로 해당 구직활동을 인정받는지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게 했다.
이후 조기 재취업 수당, 부정급여, 자영업&개인 프리랜서로 활동할 사람들에 대한 안내가 끝나고 함께 배분된 서류를 작성했다. 이로써 약 한 시간 정도의 교육이 끝났다.
근데 나 같은 경우엔 문제가 있었다. 취업 희망 카드에 ‘소정 급여 일수’, ‘소정급여일수 만료일’, ‘구직급여 일액’이 적혀 있어야 하는데 이게 빠져있는 것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이직확인서가 처리가 되지 않아 계산이 안 된 것이다. 2주 전 실업급여를 처음 신청하는 날 이직확인서가 안 되어 있다고 하기에 전화하기 싫은 거 억지로 연락해서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는데도 아직도 처리가 안 됐다.
우리 어머니가 내가 죽어라 말을 안들을 때 “진짜 징글징글하다” 하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나도 모르게 고용보험 센터 중앙에 서서 혼잣말로 “아, 징글징글한 놈들” 이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최종적으로 확인을 안 한 내 실수다. 결국 다시 앉아서 이전 회사에 전화를 걸어 인사를 담당하는 과장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잠시 웅성웅성 거리더니 전화를 받은 신입 직원이 다시 전화를 받고 “해당 문제는 죄송하지만 대표님과 전화를 해보시는 게...” 한다. 어쩔 수 없이 목소리 듣기도 싫지만 이전 회사의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점심 먹을 시간이었지만 전화를 받는 그의 목소리는 방금 일어난 듯 했다.
“아, 대표님. 저 ○○○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직확인서 때문에 그러는데요.”
“당신이 사직서 쓰고 나간 걸 왜 나에게 이직확인서를 달라고 하는 거요?”
“그게 아니라 회사에서 당연히 고용보험센터에 제출을 해야….”
“아니, 그러니깐 그게 뭔데? 내가 그걸 왜 때야 하는지 설명을 해줘 봐.”
한 달이 지났고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좀 사람이 바뀔 만도 한데 역시 그대로였다. 한숨을 쉬고, 이때부터 전화기의 녹음 버튼을 누르고 이직확인서가 무엇인지, 왜 이걸 고용보험센터에 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 후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지급 거부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사장은 “알아볼 테니 나중에 전화하쇼.”하며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징글징글한 놈, 그야말로 징글징글한 사람이다.
과감하게 엿이라도 날려줄 수 있다면!
(영화 <19곰 테드>의 한 장면>
그냥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간 실업급여도 못 받는 상황이 될 것 같아 인터넷도 찾아보고 창구에 실업급여 수급 팀에도 다시 상담을 하며 길을 알아봤다. 결국 해당 회사가 있는 고용보험센터 ‘피보험팀’에 연락을 해서 회사에서 이직확인서를 제출해 주지 않는다고 신고를 했다. 그리고 ‘확인청구’ 방법을 통해 일을 직권으로 이직 확인서를 받은 것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신속하게 이전 회사가 있었던 관악센터에 연락해서 피보험팀을 바꿔달라고 했다. 각 구와 동마다 담당하는 담당관이 따로 있으니 회사의 정확한 주소를 알고 있는 게 좋다.
관악센터의 상담원은 내가 원하는 담당관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고 필자는 해당 담당관에게 바로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상담관은 바로 상황을 이해하고 이렇게 말했다.
“일단 제가 해당 회사에 연락을 해서 빨리 이직확인서를 내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후에도 제출을 하지 않는다면 확인청구를 하시는 걸로 하죠. 대략 2시간 후에 다시 연락 주시겠습니까?”
필자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공무원 중에 단연 최고였다.
5.
7월 29일 오후 4시경, 다시 관악고용센터의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당 공무원은 회사가 전화를 받지 않으며, 내가 임금체불로 퇴사한 것이 맞느냐고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고용보험 상실 사유가 ‘임금불만’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었다. 임금체불 문제로 퇴사한 것이 맞는다면 상실사유도 수정을 해야 하고 이직확인서 문제로 처리를 해야 하니 방문할 것을 권했다. 7월 30일 오전 중으로 방문하겠다고 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29일 밤, 잠을 청하는데 잠이 도통 오지를 않았다. 아침에 먹었던 커피 탓일까? 아니면 이 고온다습한 열대야 때문일까? 보통 잠이 안 올 때 썼던 나만의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고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앞으로의 미래 걱정 때문이었다.
문득 고용센터 앞에서 나눠준 팜플렛을 보았고 국비지원으로 플랜트 용접을 무료로 가르쳐 준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더 늦기 전에 용접을 배워볼까. 제대로 배우면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다던데.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여 결국 날이 다 밝은 오전 6시가 넘어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4시간 정도 자고 부랴부랴 구로디지털단지로 이동했다. 노동센터에서 다시 임금체불 확인원을 받고 근처에 있는 관악 고용센터로 이동해서 해당 공무원을 찾아 서류를 내밀었다. 2장 정도 되는 사유서를 쓰고 나니, 원칙적으로는 해당 회사에서 이직확인서를 처리해 줘야하기 때문에 촉구 공문을 발송을 하고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직권으로 처리해 주겠다고 하였다. 길게 잡으면 2주 정도 소요되지만 실업급여를 받는데 지장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해주었다.
드디어 마지막이다
이 처리를 끝으로 나의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싸움이 사실상 끝이 났다. 법률구조공단에 의뢰한 민사는 배정된 변호사가 작업 중이다.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지만 승소는 100% 확정이니 이후 체당금으로 받아내면 된다. 거기다 이직확인서가 발급되면 실업급여를 받는데도 지장이 없다. 아마 고용보험의 상실사유도 의도적으로 해당 회사에서 잘못 적었고, 이직확인서의 처리까지 미적대면 과태료를 부과받을 것이다.
마음 한편에서는 그냥 미래를 보고 참고 버틸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싸워야 이길 수 있다는 믿음엔 변함이 없다.
6.
오늘이 8월 10일. 시간이 빠르다. 실업한 지 벌써 한달하고도 10일이 지났다. 현재는 <임금체불 실시간 분투기>의 완결을 쓴 이후, 열심히 공기를 낭비하고 쌀을 낭비하며 9월 초가 마감인 공모전에 보낼 글을 틈틈히 작성하는 중이다.
그런데 10분 전, 내 사건을 당담하던 근로감독관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아 ○○○씨 노동부 근로감독관 입니다. 기억나시죠?”
“네, 당연히 기억납니다. 무슨 일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에 사장에 대한 마무리 조사를 하고, 이제 막 검찰로 넘기려고 하는데 사장한테서 방금 연락이 왔어요. 수당하고 체불된 것이 대략 XXX만 원 정도인데, 그중에서 50만 원을 뺀 나머지를 일시불로 지급하고 상황을 종료했으면 한다고...”
이 이야기를 듣고 한 5초 정도 고민을 했다. 50만 원 정도 인생 수업료로 낸다고 치고 그냥 나머지 받고 종료할까? 하지만 괘씸했다. 내가 회사 사정을 모르면 말도 안한다. 하루에 들어오는 수입을 뻔히 다 아는데 이 상황에서 50만 원을 아끼자고 뻘짓을 하나? 게다가 사장의 성격이라면, 검찰로 넘기는 것을 막은 뒤 돈도 안 줄 가능성도 있었다.
“어차피 민사로 걸었고 그냥 진행하겠습니다.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신좀 차려라 제발.
P.S
1)
“면접관님이 파악하신 제가 면접관님이 생각하신 것은 아닌 거 같네요.”
7월 30일 오후 4시 40분, 강남역에 위치한 회사에서 나는 면접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씁쓸하게 말을 던지니 면접관도 당황함을 보이며 이렇게 말한다.
“네, 결론이 그렇네요.”
최악의 면접이다.
구로 디지털 단지에서 성남으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면접 제의를 받았고, 집에서 옷을 갈아입자마자 강남으로 가서 면접을 보았다. 하지만 최악의 면접이었다. 아침부터 성남-> 구로-> 성남-> 강남을 뺑뺑이만 돌았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강남역에 있는 라멘집에 들어가 소유 라멘과 맥주를 시켰다. 더럽게도 비싼 강남 물가라 그런지 2만 원이었다. 차슈를 추가했는데 뭘 추가로 줬는지도 모르겠다. 비싸기만 하고 맛은 없는 라멘을 씹고, 음식을 주문하자마자 나와 거품이 다 빠진 맥주를 마시니 더 헛헛했다. 실로 짜증이 나는 하루였다.
2) 해당 시리즈를 독투에 연재하도록 용기를 준 죽지않는돌고래 부편집장에게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소리지기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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