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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12. 수요일

범우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타인과의 관계가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아기 때부터 살아가기 위해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학습한다. 예전사람들은 서로 가진 숟가락 숫자를 알고 살 정도로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유지했다. 원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부족사회에서는 온종일 잡다한 대화를 한다. 먹은 것, 꿈꾼 것, 먹을 것, 먹고 싶은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며 유대감을 증폭시킨다.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갓난아이는 울음을 운다. 부모의 관심을 끌어 필요한 욕구를 채우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은 부모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안해진다. 울음은 고통과 위험한 상태를 의미한다. 울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살피고 열을 잰다.


위대한 부모의 사랑도 계속되는 울음엔 지치고, 익숙해진다. 아기가 내는 혼신의 울음의 효과도 떨어진다. 이제 아기는 웃음을 연습한다. 웃음은 에너지도 덜 들고 반응도 좋다. 육아에 지쳐가던 부모는 아이의 웃음을 보고 행복해진다. 다시 힘을 내고 아이에게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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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배우면 대화로 관계를 요청하고 유지하지만 웃음과 울음이 지닌 강력한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울음은 슬픔과 공포, 분노와 아픔을 호소하고 웃음은 안전과 친교를 상징한다. 사람의 유대관계는 이성의 부분이 아니라 좀 더 원초적인 감성의 영역에서 친밀하게 이루어진다.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들 간의 교류가 원활하지 않아서인지 울음과 웃음이 조심스럽다. 함부로 우는 울음은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잘 못 웃는 웃음은 싸움이 된다. 울기 위해 예술과 종교를 찾고 웃음을 위해 특별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헌신을 한다.


울음은 강렬한 반응을 얻어내는 만큼 피로도가 높다. 삶에 조금씩 소진 되어가는 사람들은 울음보다 웃음을 필요로 한다. 격벽으로 갈리고 계급으로 나누어져 삶을 영위하게 위해 쳇바퀴를 도는 사람들은 지친만큼 외롭다. 티비는 감정교류와 관계의 부족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일방향으로 보여주는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에 집착하고 반응한다. 자아가 성숙해질 충분한 기회와 여유를 얻지 못한 사람들에겐 자신을 투영할 우상도 필요하다. 티비에서 친밀감을 부여한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이 기준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이명박 시절 언론장악에 반대하던 사람들과 그들에게 반대하던 사람들이 함께 주목하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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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 없이 웃고 싶어서 개그 프로를 본다. 여직원들 생리휴가의 투명성을 위해서 생리대 검사를 해야 한다던 신입사원을 받아들인 방송국 개그프로를 본다. 그 시간대 채널 선택권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부엉이와 밀짚모자 쓴 사람이 벼랑으로 떨어지는 코너를 본 후 불쾌한 기분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우연이고 고의로 누군가를 조롱할 목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동안 코너가 유지되었다. 개그프로에서 유도하는 웃음들이 불편했다.


하늘아래 모든 것들의 주인이던 왕의 시대가 지나고 이 나라 사람들의 선두에 서려던 수많은 지도자들이 있었다. 지도자들도 사람이기에 완벽할 수는 없었다. 항상 일정 부분 이상의 과오를 남겼다.


보수를 주장하던 이들은 자신들의 욕심으로 벌어진 결과물들을 우리 모두의 잘못이고 책임이라는 말을 했다. 결국 아무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고 책임은 아래쪽으로만 균등하게 분배되었다.


진보를 주장하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집권하지 못하거나 개혁의 의지를 접는 이유를 국민의 욕심과 무지몽매함 때문이라고 했다. 반인 반신이 아니기에 과도 많았지만 죽음 앞으로 몰려서도 자신만의 실패고 책임이라던 사람도 있었다. 그의 죽음이 공중파에서 놀림감으로 다루어지는 게 불편했다.


개인의 불편함을 가족들에게 강요하진 않았다. 다시 그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집사람은 ‘니글니글’이란 코너를 보면 웃음을 품어낸다. 횃불 투게더란 코너를 보았다. 식당에서 순대 몇 조각을 더 얻기 위해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개사한 노동가요를 부른다. 관객들은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표정과 노랫말에 자지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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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개그콘서트


조그만 잇속 차리기에 광분하는 운동권 출신들의 격앙된 어조와 구호,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감성을 자극하는 연설을 비웃는 것 같아 함께 웃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반값등록금을 구호로 걸고 투쟁하던 대학생들을 비웃는 것 같았다. 그 아이들에게 피자를 사다준다고 해서 만원을 보탰던 기억도 조롱받는 것 같았다.


두려워하고 고민하다 머리띠를 두르고 저항하는 방편을 택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먼저 죽은 이들에게 미안해서 겨울에 보일러를 틀지 못한다던 김진숙님과 시장 바닥에 버려진 배춧잎 쪼가리처럼 시들고 말라비틀어져 가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웃음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행여나 길을 가다 머리띠를 두르고 목에 핏대를 세워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웃어 버릴까 봐 걱정이 됐다. 가뜩이나 합법적인 폭력과 조롱에 마음이 부서지는 사람들이다.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을 괜한 우려로 들쑤시는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문제를 지적질 하는 사람의 손가락을 부러트리고 문제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더 가는 사람들이 있다.


웃음에 성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방향이 잘못된 웃음코드는 끔찍하다. 시에라리온 반군들이 죄책감을 덜기 위해 기발한 질문을 던졌다. 반팔로 할래? 긴팔로 할래? 절단하는 손 위치를 선택하게 해준 것이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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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투표를 막기 위해 손목을 자르고 다닌 시에라리온의 반군

출처 -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얼마 전 김대중 노무현 빨갱이와 종북좌파를 척결해야 한다는 할머니가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 찾아가 정부비판을 하고 다니는 희생자 부모의 뺨을 때렸다. 경제도 어려운 시국에 자식을 먼저 보내고 돈벼락을 맞은 주제에 감히 대통령을 욕하고 정부비판을 하기에 응징했다.


치안을 위해 폭발물을 엄중히 취급하지만 정부 비판을 하는 사람에게는 사제 폭탄을 던져도 로켓 캔디나 인화물질로 이름을 바꾸어준다. 힘겨운 삶에 대한 분노를 애국심으로 포장해서 울고 있는 약자에게 풀어낸다. 잘 살려면 많이 웃어야 하는데, 웃고 살기가 자꾸 불편해진다.






범우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