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8. 12. 목요일
엘랑
1. 탄도미사일의 탄생
탄도미사일(Ballistic Missile)은 일반적인 미사일과 달리 지상(또는 해수면)에서 발사되어 우주권(80~100km 이상의 고도)까지 포물선을 그리며 상승했다가 중력에 의해 다시 대기권에 재진입 후 지상으로 떨어지는 장거리 미사일을 뜻한다.
2차 세계대전때 독일의 폰 브라운이 이끄는 육군 병기국 로켓연구소에서 개발한 V2 로켓이 최초의 탄도미사일로 분류가 되며 1톤에 이르는 폭약을 탑재하고 고작 1분 간의 짧은 로켓 연소시간에 무려 마하 5를 넘는 속도를 내고 320km를 날아가서 지상에 충돌 시 속도가 마하 2.4 였다.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이런 무기를 결코 방어할 수가 없었다.(현재에도 탄도미사일에 대한 방어는 극히 어렵다)
2차대전 막바지의 나치 독일은 최후의 수단으로 1년 간의 짧은 기간에 무려 5,200발의 V2 로켓을 생산한다. 그중에서 1,300발은 런던을 향해 발사되었고, 이후 차차 전선이 밀리면서 런던을 사거리로 잡을 수 없게 되자 연합군의 주요물자 보급항인 안트워프를 향해 1,600발이나 발사한다. 하지만 4,300발의 V2 발사에도 불구하고 기울어진 전황을 뒤집을 수 없어서 종전 후 나머지 V2 로켓과 부품들, 그리고 생산시설과 기술자들은 승전국들의 전리품으로 나뉘어진다.
2. 전쟁의 공포, 전방과 후방의 수위 차이?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아무리 세계대전이라고 할지라도 재래식 전쟁에서는 살육이 주로 '전장'에서 이뤄진다. 군인들이야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전사들이니까 그렇다쳐도, 민간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는 전선 근처의 포격이 가능한 범위에서 발생한다. 물론 후방에 대한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들의 직접 피해도 무시는 못한다. 이것은 대부분 한쪽이 이미 전세가 기울어서 적국의 공습을 막아낼 상황이 못되는 경우에 발생하는 일이다. 적의 공습에 후방의 민간인들이 무차별적으로 노출된다면 지도부는 전쟁을 멈추는 게 낫지 않을까?
전쟁의 참혹함과 실상을 알린 독일작가 E.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는 전방의 참호전에 휩쓸린 군인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과 전쟁에 대한 반감을 느낄 수 있다. 전선에서, 설령 적이더라도 서로 살고자 발버둥치는 심정은 똑같음을 느끼고 동정심을 갖는 소설 속 주인공의 심리에 공감할 수 있다. 주인공이 후방으로 휴가를 나왔을 때 동네 노인들이 자신들은 전쟁터로 나가지도 않을 거면서 적국을 공격해야 한다며 강경한 여론을 펴는 장면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
'전쟁은 노인이 일으키고,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건 젊은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것은 1944년, 미국의 전직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가 연설 중 "선전포고는 노인이 하지만, 싸우다 죽어가는 것은 젊은이들이다"라고 말한대목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어느 나라든지 전쟁수행 능력은 처음에는 준비된 병력과 무기들에 의해 좌우되지만, 전쟁이 지속되면서 전방의 전쟁수행을 지원할 후방의 중요성이 커지게 마련이다. 국제적인 전쟁일 경우 주변국과 지원국들의 상황에도 좌우된다.
일단 어떤 민간지역이 전선에 노출되어 민간인들에 대한 살육이 자행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해당 지역의 민간인들은 누구도 전쟁이 지속되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전쟁에서 대규모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는 이유는 지도자들의 광기와 집착, 독선 때문이며 일부 지역만 전쟁에 노출된 경우에는 후방의 대다수 민중들이여론 선동에 의해 감정만 내세워서 전쟁의 지속에 반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종교적인 이유도 다수 차지하고 있다.
3. 탄도미사일을 사용한 첫 번째 전쟁
다시 2차대전 당시의 런던으로 돌아가보자. 사실 2차대전은 너무 많은 나라들이 얽혀서 런던 하나가 쑥대밭이 되었어도 멈추지 않았을 전쟁이었다. 하지만 주요 전쟁수행국이던 영국의 입장에서 수도 런던에 대한 독일의 대규모 공습은 대중의 전쟁수행의지를 꺾고 사기를 떨어트릴 수 있는 위협이었다. 그러나 런던 시민들은 1940년의 대공습에서 방공호에 들어가고 아이들을 후방으로 대피시키며 굳건히 전쟁수행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전쟁 막판인 1944년 후반부터 고작 몇 달 간 이뤄진 독일의 V2 로켓 1,300발의 파상공격에는 다소 양상이 달라졌다. 이미 전세가 연합국측으로 완벽히 기울어진 상황에서 방심하고 있던 런던 시민들은 전혀 듣도보도 못한 신무기의 공습에 대공습을 능가하는 심리적 쇼크를 받게 된다.
탄도미사일은 일반적인 공습과는 한 가지 다른점이 있다. 폭격기 공습은 사전에 예측이 가능하다. 물론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경보를 늦게 울리면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은 폭격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또한 장거리포 사격은 사정권 내에 있는 지역에서는 늘 위험을 인지하고 있는 문제다. 반면에 탄도미사일은 발사되고 극히 짧은 시간만에 목표에 도달하기에 설령 포착하고 경보를 울린다고 해도 대피할 시간이 사실상 없다.
V2 로켓 공격을 당한 런던의 모습
"300km 사거리의 미사일은 발사 후 1분이 지나야 대충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고, 고작 5~6분만에 목표에 도달한다."
폭격기의 경우에는 중간에 요격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에 탄도미사일은 최소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요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방어불가'의 무기였다. 제공권을 한 쪽이 장악한 경우라도 열세인 쪽의 탄도미사일은 언제든 발사되면 상대편의 도시에 도달할 수 있다. 1944년 후반에 런던으로 발사된 1,300발의 V2 로켓은 다행히 초기기술의 한계로 매우 정확도가 낮았고, 심지어 비행도중에 오작동으로 영국으로 날아가지 못한 것도 상당수다. V2 로켓의 발사 성공율은 고작 78%였고, 런던의 시가지에 떨어진 것은 그중에서도 매우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V2 로켓의 급습으로 2,000여 명의 런던 시민이 희생된다. V2 로켓은 명중 정확도가 형편없었지만 무려 1톤에 이르는 고폭탄을 장착해서 제대로 떨어지면 반경 100m를 파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55mm 포탄의 무게는 고작 40~50kg이다. 다행히 유럽 본토의 전선이 빠르게 독일 쪽으로 이동하면서 독일은 런던까지 V2를 날릴 수 있는 발사위치를 확보할 수 없었기에 런던에 대한 탄도미사일 위협은 곧 제거되었다.
4. 탄도미사일의 확산
소련은 독일에서 입수한 V2 로켓과 기술을 응용해서 V2의 카피판을 개발한다. 하지만 에틸알콜/액체산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V2 로켓은 연료의 보관과 주입, 이동에 난점이 있어서 상온에서 저장과 보관이 용이한 UDMH(비대칭 디메틸 하이드라진)/RFNA(적연질산)를 연료로 하는 스커드 미사일을 개발한다. 스커드 미사일과 V2 로켓은 사거리가 비슷하다.
"국내에는 스커드 미사일이 발사 직전에 연료를 주입하는 데 30분 가량이 걸린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스커드 미사일은 기지에서 미리 연료를 주입한 후에, 차량으로 이동하다가 미사일을 기립시키고 5분 내로 발사한 후에 도주할 수 있다. UDMH는 공기 중에 유출되면 인체에 유독한 물질이고, 적연질산은 강한 산성이라서 일반 금속을 부식시킬 수 있다. 하지만 상온에서 물과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어서 액체산소에 비해 보관이 매우 간편하므로 미사일에 주입 후 몇 개월 동안 대기가 가능하다.
스커드 미사일 이외에도 미국과 소련, 그리고 여러나라들이 다양한 탄도미사일을 만들었지만 실전에서 가장 널리 쓰인 탄도미사일은 스커드 미사일이다. 스커드는 다양한 버젼으로 1만 발 이상이 각국에서 제작되었다.
북한군의 스커드 미사일
5. 탄도미사일을 사용한 두 번째 전쟁
1981년에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은 탄도미사일이 대량 사용된 두 번째 전쟁이다. 이란은 원래 중동의 최대 군사강국이었으나 종교혁명으로 팔레비 왕가가 축출된 이후에 왕정에 충성하던 군장교 다수가 숙청되고 정규군은 와해됐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득세한 이란 혁명의 파급효과를 우려한 주변 이슬람 국가들의 지원 하에 이라크는 이란을 기습 침공하여 중동의 맹주가 되려 했다.
이란-이라크전 초기에는 대규모 기갑부대를 앞세운 이라크군이 정규군이 와해된 이란의 서부지역 주요도시들을 손쉽게 점령했고, 이에 단기전으로 이라크의 승리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종교를 앞세운 이란 민병대가 이라크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고, 뒤이어서 숙청되었던 이란군 장교들이 다수 현역에 복귀하면서 우세한 공군력을 바탕으로 반격에 나선다.
이란의 인구와 국력은 이라크의 두 배가 넘는다. 이러한 풍부한 지원능력을 바탕으로 이란군과 시민지원병들은 이라크군을 물리치고 결국 잃어버린 도시들을 탈환한 뒤에 이라크 영내로 역침공을 가한다. 이라크가 궁지에 몰리자 이번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과 함께 소련까지도 이라크에 많은 무기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모두 이슬람 원리주의의 이란이 중동을 장악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전선은 결국 고착상태에 빠지고 마치 1차 세계대전처럼 참호전과 독가스전이 개시된다. 풍부한 무기지원으로 기갑전력 등이 우세한 이라크와, 많은 병력을 보유한 이란은 서로 끝없는 소모전에 돌입하여 피아간 막대한 인명사상과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당시 무기금수조치를 당한 이란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과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조달한다. 그리고 이란은 1985년에 북한이 막 개발을 끝낸 화성5호 탄도미사일을 100여 기 수입하게 된다.(화성 5호는 사거리 300km의 스커드B 미사일의 카피판이며 대당 수입가격은 300만 불 정도로 추정된다)
이라크는 소련으로부터 입수한 스커드B 미사일을 1982년 말부터 사용해서 약 100여 기를 이란의 도시들로 발사한다. 하지만 스커드B 미사일은 사거리가 300km이므로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까지 도달할 수 없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제공권은 이란 쪽이 우세했다. 혁명 직전에 도입한 F-14전투기를 비롯한 F-4전투기까지 다수 보유했었고, 이란의 영토는 넓어서 이라크 전투기들이 이란 영내 깊숙히 작전을 펼치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탄도미사일 공세에 대응해서 북한의 스커드B 카피판을 수입한 이란은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비롯한 도시들에 약 60여 발의 대응 탄도미사일 공격을 펼친다. 이에 이라크는 소련에서 추가로 스커드B 300여 발을 수입했고, 서방기술진의 도움으로 일부를 개조하여 사거리 1,000km에 이르는 알 후세인 미사일을 만들어서 테헤란으로 집중 발사하게 된다.
알 후세인 미사일
이란-이라크전 막판에는 계속된 전쟁에 부담을 느낀 이라크가 먼저 휴전을 제의하였고, 오랜 전쟁에 지친 이란도 화답하면서 종전 분위기가 무르익었으나 이란의 종교지도자인 호메이니는 "내가 살아있는 한 전쟁은 지속될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들을 되찾기 전에는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을 천명한다.
이에 이라크군은 1988년 초에 대규모 공세를 펼침과 동시에 테헤란을 향해 무차별 탄도미사일 폭격을 가해서 결국 이란 지도부가 민심 동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휴전에 응하게 만들었다.
전쟁기간 동안에 이란은 약 60여 발, 이라크는 360여 발의 스커드B, 카피판, 개조판을 서로 발사하였다. 이란은 무기금수조치로 어쩔 수 없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인해전술을 펼쳤기에 인명피해가 더 컸다. 공식적으로 18만 명의 이란 군인,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25만 명 이상의 이란 군인과 자원병들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라크의 주요도시들은 이란에서 쏜 스커드 미사일의 사거리에 들어갔지만 발사횟수가 적어서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반면에 이란은 넓은 영토 덕분에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이 초기에는 전선에 가까운 도시에 제한적인 타격만 입혔으나, 개조된 알 후세인 미사일로 테헤란까지 공습할 수 있게 되면서 1988년에 100여 발의 알 후세인이 테헤란을 타격했다. 수천 명의 민간인 사상자 발생과 함께 시민들의 공포가 극에 달하자 결국 완강했던 호메이니 조차도 두 손 들게 되어 전쟁이 끝난다.
6. 과연 탄도미사일이 이란-이라크 전쟁을 종식 시켰나?
탄도미사일이 과연 이란-이라크 8년 전쟁 종식의 주요한 원인인지는 따져볼 문제이다. 전선에 노출된 병사들과 인접지역 시민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됐다. 오랜 전쟁은 1차대전의 예처럼 반전의식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이란의 병사들과 시민들이 아무리 종교의 광풍에 휩싸여 전쟁에 참전했어도 전쟁의 장기화에는 장사가 없다. 게다가 비교적 안전한 후방의 이란 시민들은 전선의 참극과 동떨어져서 전쟁을 지속하길 원했다고 해도 막상 자기집 근처에 탄도미사일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상황에서는 버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노인들도, 자신들이 전쟁에 휩싸이게 되면 오히려 젊은이들보다 먼저 도망치기 마련이다."
필자가 짧은 인생을 살아오며 느낀 것은,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죽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말로는 "에휴~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해도 막상 병원에 입원하면 더 필사적으로 살고 싶어한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렇게 느꼈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 '어버이 연합'을 비롯한 여러 극우보수세력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전쟁이 일어나면 참전하겠는가? 자신들은 종북좌파들이 북한에 동조하고 있으므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북한과 일전을 불사하겠다고 과격 발언을 일삼지만 그것은 모두 자신들의 나이가 징집연령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뱉는 거짓말이라고 단언하겠다.
만약 전쟁이 발발해서 젊은이들이 전선으로 끌려가도 그들은 후방에서 전쟁을 부추길 거다. 그러나 그분들의 집근처에 탄도미사일이 떨어지면 과연 어떨까? 그때도 전쟁을 지지할까? 이란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조차도 결국 탄도미사일 세례를 받고 얼마 안되서 종전을 서둘렀다. 정확히 탄도미사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시기적으론 그랬었다.
7. 한반도의 군사/지리적 상황
우리나라의 상황을 한 번 보자. 수도 서울이 휴전선에 인접해 있는데다 수도권 집중화 때문에 북한의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에 수많은 시민들이 노출되어있다. 북한과 전면전이 벌어지면 수도권 일대에 막대한 민간인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이유다.
이란-이라크의 예와 달리 한반도 전면전에서는 우리의 수도가 너무 전선에 가깝다. 굳이 탄도미사일이 아니어도 북한 입장에서는 전략적인 공격이 지리적으로 쉬운 편이라 우리에게 불리하다. 반면에 제공권에 있어서는 한미연합군의 전력이 압도적이다. 북한은 항공기로 공습하긴 어려우니 필연적으로 장거리포와 장거리 방사포로 민간을 대상으로 하는 전략포격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에서는 먼저 상대방의 군사력을 꺾는 것이 최우선이다. 장기전으로 가야만 민간을 대상으로 하는 전략폭격의 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북한의 장사정포들도 초기에는 대부분 한미연합군의 전력을 상대로 투사될 것이다. (몽땅 민간포격을 한다는 가정은 어처구니가 없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일부만 민간포격에 나설 것이다)
물론 시가지에 포탄이 떨어지면 민간인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고 심리적인 타격이 클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전면전을 가정하면 이러한 피해는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사거리 300~500km의 스커드 미사일 400~600여 기다. 노동 미사일은 수량도 적고, 사거리가 1,000km가 넘어가기에 굳이 북한이 한국으로 쏘기엔 다소 부적절하다.
전면전이 발발하면 한국 전역이 전장이 된다는 말이 있다. 물론 북한의 비정규전 부대가 침투해서 전국적으로 파괴활동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비정규전 부대는 기본적으로 경무장이다. 수백kg의 폭약을 휴대하고 다니진 않는다. 중화기조차 휴대하기 힘들다.
스커드 미사일은 한 발에 1톤에 육박하는 고폭탄이 장착된다. 생각해보라. 수도권 북부는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로 포격하고, 수도권 이남과 대전, 대구, 전주, 광주, 부산, 울산, 포항에는 도시 마다 몇 발, 또는 십여 발의 스커드 미사일이 날아든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받는 공포와 충격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후방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북괴 응징을 떠드는 노인들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탄도미사일 세례가 퍼붓기 시작하면 오히려 더 먼저 전쟁종식을 외치며 누군가를 비난할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핵무기를 소형화해서 탄도미사일로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거의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전면전 발발 시 한국으로 날아오는 스커드 미사일들은 모두 핵무기가 탑재됐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하기에 그 공포감은 극대화 된다. 탄도미사일은 기본적으로 핵무기 운반수단으로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대포나 방사포는 탄두의 무게가 적기 때문에 핵탄두를 날리기엔 부적당하다. 하지만 탄도미사일들은 수백kg에서 수 톤 단위의 탄두를 나른다.
전선 근처에서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반드시 탄도미사일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자폭차량에 탑재하고 이동하거나, 단거리 미사일에 싣고서 발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스커드 미사일만 사용해도 한반도 전역이 북핵의 사정권에 놓이게 된다.
8. 탄도미사일,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래식 병기
탄도미사일을 핵무기 운반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재래식 고폭탄을 탑재하는 경우에도 빠른 속도와 높은 고도로 비행하는 특성 때문에 제공권을 잃은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도시를 효과적으로 전략 폭격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탄도미사일이 재래식 전력으로 사용될 때 갖는 강점이다.
미국은 재래식 탄도미사일을 실전에서 사용하진 않는다. 대신에 지금껏 5천 발이 넘는 순항미사일을 생산해서 무려 2천 발이 넘게 실전에서 사용하였다.(현재도 수천 발을 실전에 대비하여 항시 비축 중이다) 순항미사일은 탄도미사일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수백kg의 재래식 탄두나 핵탄두를 탑재하고 1천km 넘게 날아가서 목표를 정확히 타격할 수 있다.
1천km 사거리의 순항미사일이 사실 1천km 사거리 탄도미사일보다 더 만들기가 어렵다. 하지만 속도가 느린 대신에 정확한 타격이 가능하다. 탄도미사일의 명중 정확도를 높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다. 가격은 순항미사일이 탄도미사일에 비해 조금 싸게 먹힌다. 미국이 탄도미사일 대신에 순항미사일을 다량 사용하는 이유는 가격적인 측면과, 정확도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수백 발의 탄도미사일을 쏴서 개전 초기에 이라크를 제압했다면 민간인 사상자가 엄청났을 것이다. 탄도미사일의 파괴력은 더 크고, 정확도도 낮기 때문에 전략폭격에 어울린다. 반면에 순항미사일은 느려서 대공포에 격추될 확률은 있어도 정확하게 주요 군사시설만 골라서 파괴할 수 있다. 파괴력도 너무 과하지 않고 적당하다. 탄도미사일에 비하면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 셈이다. (그럼에도 오폭으로 수많은 민간인과 아이들이 희생되었다)
국제 정세를 보면 강대국에 비해 열세인 일부 국가들이 전력 격차를 비대칭 무기로 극복하고자 탄도미사일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한 마디로 탄도미사일이란 것 자체가 전략무기다. 여지껏 탄도미사일들이 사용된 전쟁에서 모두 전략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지, 전술적인 목적으로 사용된 전례가 없다. 최근의 일부 탄도미사일은 매우 높은 정확도를 갖춰서 전술적인 용도로 적의 군사목표를 제압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전략적으로도 이용이 가능하다.
탄도미사일의 요격은 90년대 걸프전에서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처음 선보였다. 그런데 정확했냐? 아니다. 패트리어트의 스커드 요격율은 사실 처참했다. 다만 탄도미사일은 방어불가의 무기가 아니라는 가능성만 보여준 셈이다. 지금도 신형 패트리어트나 최신 요격미사일들이 탄도미사일을 얼마나 정확히 요격할 수 있는지는 입증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탄도미사일 요격무기들은 보통 탄도미사일보다 가격이 훨씬 비싸다. 탄도미사일 한 발 막기 위해 몇 배 더 비싼 미사일 여러 발을 쏴야 한다. 목표로 하는 탄도미사일에 핵이 탑재되었는지, 재래식 탄두가 탑재되었는지 분간하지도 못한다. 핵위협이 가시화되면 멍텅구리 탄도미사일을 향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수십 발의 요격미사일이 동원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모든 점을 고려할 때 탄도미사일은 재래식 전쟁에서조차 후방의 시민들을 언제고 위협할 수 있는 전략무기로 사용될 수 있기에 시민들의 전쟁수행 의지를 꺾는 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다. 그리고 살상대상은 당연히 무고한 민간인들이다. 전장에서 대치하고 있는 군인들끼리는 탄도미사일을 주고 받지 않아도 그보다 훨씬 간단한 포탄과 미사일, 전투기 만으로도 충분히 상호 간 살상을 벌일 수 있다. 그러나 후방에 대한 전략적 공격 수단으로는 탄도미사일 만한 것이 없다.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해서 전투기나 폭격기로 폭탄을 실어 나르기 전까지는.
참고로 V2 로켓의 원래 명칭은 A4 로켓이다. 그런데 히틀러가 이름을 V로 바꿨다. 승리를 의미하는 V가 아니라 보복(Vergeltungs)을 뜻하는 단어의 첫 자다. 그게 탄도미사일의 숙명인 것이다. 인간의 광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무기이다.
엘랑
편집 : 딴지일보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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