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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불멸을 꿈꾸며

2014-10-2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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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8. 화요일

파토









형, 그냥 옛날 이야기 좀 할게.


처음 만난 게 아마 1994년이었지?. 그때 나는 컴퓨터 통신 하이텔의 ‘언더그라운드 뮤직 동호회’라는, 나름 회원 2천명을 거느린 록 동호회 회장이었고 형은 넥스트의 1집 앨범 <Home>을 성공시키고 2집을 준비하고 있었던 때였어.


기억하겠지만 그 만남은 그리 우호적인 동기로 마련된 건 아니었우. 내가 왜, 넥스트 1집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글을 우리 동호회 게시판에 썼었잖아. 그런데 당시 하이텔 활동을 꽤 하던 형이 내 글을 읽고 나를 녹음 스튜디오로 초대하더라고. 뭐 만나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좀 긴장도 됐지만 못 갈 이유야 없었고 나 역시 이래저래 궁금하기도 했고.


당시 형이 작업하던 스튜디오는 대방동의 한 건물 지하였다우. 형은 특유의 털털한 분위기로 나를 맞았고, 의외로 내가 쓴 비판적인 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더군. 그리고는 마치 오래 된 친구인양 2집 녹음이 진행되고 있는 스튜디오에서 모든 작업 광경을 보여줬지. 잠시 견학시킨 게 아니라 그냥 종일 죽치고 있게 하고서 ㅎㅎ


그래서 그날 나중에 내 노래방 레파토리 중 하나가 된 <날아라 병아리>의 코러스와 기타가 녹음되는 광경을 지켜봤고, 또 앞으로 녹음 작업에 들어갈 데모테잎 전체를 리스닝 룸에서 함께 앉아서 감상하며 형의 자세한 설명까지 듣게 됐었지? 2집에 수록될 곡 한곡 한곡에 가지고 있는 형의 열정과 자부심은 참 인상적이었우. 특히 <껍질의 파괴>와 <The Ocean>에 대해 설명하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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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을 녹음하던 때 말야. 


그 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자기에게 비판적인 사람에게 욕을 하거나 싸움을 걸거나 구구절절 해명을 하는 대신 음악을 들려주고 작업 광경을 보여주는 게 신해철이라는 사람의 방식이구나. 사실 난 첨엔 형이 나랑 현피 뜰려고 오라는 줄 알았거든ㅋㅋ 그래서 그 언저리에서 호형호제 하게 됐지. 성격상 지금까지도 그런 거 잘 안 하는데, 이래저래 이 양반은 형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이구나 싶었어.


하지만 정작 내가 놀란 것은 그 다음이었지. 녹음 끝나고 밥 먹고 꽤 시간이 늦었서 대충 집에 가야지 하던 중에, 형이 나를 집으로 초대한 건 정말 뜻밖이거든. 그래서  졸지에 형 벤츠를 같이 타고 밴드 멤버들과 같이 살던 대림동 아파트로 가서  맥주와 양주를 마시며 새벽까지 주다스 프리스트의 비디오를 보지 않았겠어. 그리고 형의 넓지 않은 침대에 함께 누워 수다를 떨다가 잠들었으니 말이우. 남자 중에 형이랑 그런 경험 한 사람도 그리 흔하진 않을 것 같으이.


이제서야 이야기지만 내가 그 침실에서 형한테 살짝 감동한 장면이 하나 있어. 형 왜 그 시절에 책꽂이에 만 원짜리 다발을 몇백 장씩 쌓아두고 있었잖아. 당시만 해도 신용카드가 지금처럼 일반적일 때가 아니니 본인과 밴드의 비용으로 현금이 많이 필요했겠지. 하지만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그 방에 함께 누워 자는데도 거기에 전혀 신경을 안 쓰더라. 막말로 내가 맘만 먹는다면 형 화장실 갔을 때 몇십 장 집어갈 수도 있는 거였잖아?


그래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음악이고 뭐고 다 떠나서 멋진 남자였어, 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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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형이 대략 이런 모습이었을거야.

정말 젊었다...


그런 다음에도 몇몇 록 페스티벌에 같이 참여했고 연세대에서 함께 특강을 한 적도 있고 이래저래 만나고 또 마주쳤지. 의견이 대립한 적도 있었고. 2천 년대 초에 딴지일보 지면으로 촉발된 MP3 논쟁 기억나우? 내가 먼저 형 주장을 기사로 씹고 형이 라디오에서 우리 기사를 씹었던가 그랬을 거야ㅎㅎ 사실 형도 주관이 원체 강한 사람이고 나도 그래서 쉽게 양보하고 융화되고 머 그런 타입들은 아니지.


하지만 그건 일이고, 우리는 여하튼 형 아우 사이 아니었우? 그래서 그 MP3 논쟁 이후에 사적으로 연락해서 소주나 한잔하자 하려고 벼르다가 외국 나가게 되고 어쩌고 하면서 기회를 놓쳤어. 그리고는 또 세월이 한참 흘러 버렸고.


...그리고는 결국 이렇게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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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형의 추모글을 쓴다면 사람들은 어떤 걸 떠올릴까. 인간 신해철의 생을 되돌아보고, 아티스트 신해철의 명곡들을 재조명하고 그 음악사적 의미를 되새긴다? 그리고 이제 푹 쉬십시오, 점잖은 영면의 인사를 하고 끝을 맺는다? 


이 사람 저 사람, 뮤지션들 떠날 때 그런 글들을 쓰기도 했었어. 하지만 그건 이번엔 다른 사람들이 하면 될 것 같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냥 막 하겠수.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대체?


씨바. 형. 딴 사람도 아니고 신해철이잖아. 신해철. 어떻게 형이 이렇게 허망하게 가 버릴 수가 있냐고. 형 쓰러졌다는 기사 보고는 내가 페북에 뭐라고 썼는 줄 알아? 금방 멀쩡히 살아나서 심정지 중에 임사체험이니 유체이탈했다면서 구라풀 거라고 했어. 


그게 맞는 거잖아. 그래야 되는 거잖아 형은. 


그리고 내가 형한테 미안한 것도 하나 풀어야 했다고. 90년대 초반 그 시절에 이 나라에서 솔로 가수로 날리다가 엄한 록 밴드하겠다고 덤빈 형이야. 인기나 돈만 따지면 안 해야 하는 짓을 한 거지. 그때 이 나라 상황에서 그런 시도가 어떤 어려움이었을지 대략 짐작이 가. 단지 음악 스타일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소속사나 티브이 등 미디어하고의 관계, 팬들의 기대에 대한 부담... 얼마나 많이 것들이 덕지덕지 걸려 있는 일인지. 실패하면 가수 생명이 끝날지도 모를 모험이고.


다른 걸 다 떠나 그 시도 자체만으로 훈장이라도 받아야 할 일이었는데, 내가 첫 앨범을 너무 냉정하게 씹었어. 머 그 덕에 형을 알게 된 건 있지만 실은 그게 지금까지도 찜찜하다고. 그때의 나는 한국의 현실에는 눈을 감고 구름 위에서 살던 서양 록 덕후였으니 그랬지만, 또 막상 형은 호형호제하고는 잊어버렸을지 모르지만 암튼 맘 한구석에 계속 남아 있었어. 차라리 형이 그때 스튜디오로 불러서 진짜 현피 뜨는 분위기로 지랄이라도 했다면 모를까.


그래서 언젠가는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그간 살아온 이야기도 하면서, 그때의 인간적인 미안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우. 그걸 못한 게 이렇게까지 맘에 걸릴 줄은 어제 오후까지만해도 몰랐어.  


또 형은 누가 뭐래도 한 시대와 세계관의, 어떤 상징 같은 사람이라고. 게다가 나이도 아직 젊고 앞으로 할 일도 산더미처럼 많아. 우리 지난 몇 년동안 그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잃었잖아.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형 무대에서 펑펑 울던 거 기억나지? 이러고 지금 몇년이나 지났어. 근데 벌써 간다고?



이 공연 중에 형이 그랬지. 노무현의 죽음이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전기가 될지 모르지만, 그런 것과 바꾸기에 너무 아까운 사람이라고. 나도 그런 맘이야. 신해철은 가지만 그의 음악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 거다, 지금 차마 그런 소리는 못하겠네. 물론 그것도 사실일 거야. 하지만 그러기엔 형이 너무 아까워.


이제 우리, 형 같은 사람이 허무하게 가 버리는 걸 버틸 힘이 별로 남아 있질 않아. 끈질기게, 바퀴벌레처럼 살아 남아야 같이 이기든 지든 해야잖아. 장협착인지 패혈증인지 뇌손상인지 여하튼 무조건 살아 남아야 했다고. 아니면 죽을 때 죽더라도 독하게 싸우는 모습이라도 보여주고 갔어야지. 정신도 차려보고 눈도 떠 보고, 내가 누군지 알아, 신해철이다! 이러고 고함이라도 한번 지르고 말야. 


그런 형의 삶, 음악, 생각, 감정들이 저 6일 동안 상처받은 뇌 속에서 조금씩 지워져 갔다는 생각을 하면 슬프지조차 않고 그저 아프우.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 기가 막히고 허망할 뿐이야. 


...돌아가신 분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미안하우. 마흔도 훌쩍 넘긴 어른이라면 감정 추스르고 아름다운 말들, 덕담을 남겨야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충분히 크지 않은 모양이야.


더 길게 말하면 뭐 하겠어. 이제 보내 드리겠우. 형을 보내는 곡, 당연히 형 음악 중에서 골랐어. 첨엔 날아라 병아리 생각이 나더라. 죽음에 대한 노래고 내게도 형과의 기억이 있는 곡이고. 그런데 너무 약해. 씨바 형의 굵직했던 삶을 이 귀여운 병아리 얄리로 기릴 수는 없는 일이잖아. 그리고 형이 죽으면 뜬다던 민물장어의 꿈도 많이 울려 퍼질 테니 나는 생략할려고.


그래서 대신 이 곡 보내우. 형의 모든 곡 중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곡이고, 가장 형 다운 곡이라고 늘 생각했어. 겉은 쎄게 보였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여리고 섬세했던 사람이잖아. 그런 티를 낸 적은 없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았을 거야. 아 좀 티내고 살아도 되는 거였다 진짜.. 그리고 몰랐던 사람들이라도 이 곡을 지금 볼륨 최대한 키우고 들으면 다들 느낄 거야.


신해철을 위한 장송곡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렇지?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



바다. 검푸른 물결 저 위로 새는 날개를 펴고

바다. 차가운 파도 거품은 나를 깨우려 하네

슬픔도 기쁨도 좌절도 거친 욕망들도

저 바다가 마르기 전에 사라져 갈텐데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처음. 아무런 선택도 없이 그저 왔을 뿐이니

이제. 그 언제가 끝인지도 나의 것은 아니리.

시간은 이렇게 조금씩 흐르지만

나의 시간들을 뒤돌아 보면 후회는 없으니.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그대 불멸을 꿈꾸는 자여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으라 말하는가

왜. 왜 너의 공허는 채워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처음부터 그것은 텅 빈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잘 가시우. 비울 것도 채울 것도 없는 그 불멸의 공허 속으로. 두려움 없이. 


해철이 형.







파토

트위터 : @patoworld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