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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닉 에너지 전환은 실은 에너지 체제의 전환이야.


옛날에는 에너지 전환하면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혹은 운동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바뀌는 등의 에너지 변환과 같은 뜻으로 쓰였었어그런데 요즘은 에너지 변환보다는 에너지 체제의 전환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졌지.

 

각설하고그래서 에너지 체제를 왜 바꿀려고 하냐고?

 

내가 바꿀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바뀌고 있어꽃이 피면 지고, 달이 차면 기울듯 세상만사가 다 그렇잖아지금 에너지 체제가 나 어릴 때 산에 나무하러 다니던 때와 다르듯 10년 뒤면 또 많이 바뀌어 있을 거야.

 

우리네 청춘이야 급격한 산업화 시절이니까 장작에서 구공탄으로석유보일러를 거쳐 가스보일러지역난방으로 바뀌었다 치고성숙한 (유신시대로 회귀가 회자되는 작금에 시방 어울리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산업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마당에 바뀔 게 뭐 있냐고?

 

그려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화석연료 고고씽!’ 파야.


석탄석유천연가스현재 에너지 체제의 주역인 화석연료 3인방대표 선수 석유이런 석유의 시대가 계속되리라는 믿음은 의외로 넓게 퍼져 있어바닷물이 눈에 띄게 뒤로 빠지고 있는데도 막상 닥쳐와야 시바 ㅈ때다이게 쓰나미구나!’ 하는 사람들처럼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이쪽 파야. 96% 1차 에너지원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전체 수입액의 3분의 1을 에너지 사오는 데 쓰고 있으면서도 돈만 있음 얼마든지 사올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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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나라가 쓰는 1차 에너지원의 85%가 화석연료

원자력까지 96%를 수입하는 데 쓰는 돈은 연간 200조원!




그런데 세계적으로 이쪽 파는 극히 소수야미국 정도?


미국도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전환을 꾀하는 쪽이 많아특히 민주당이 강세인 주에서는하지만 세계 13위의 매장량을 가지고 세계 최초로 석유산업을 시작한 나라로서 이쪽 업계의 입김이 여전히 연방정부를 지배해게다가 10여년 전부터 개발이 시작된 셰일가스가 붐을 일으키면서 당분간 이 기조가 이어질 거야.

 

그럼 함 따져보자구석유의 시대가 얼마나 유지될지그 과정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석유는 수십억년 전 미생물이 큰 호수나 바다 밑에 퇴적되고 이게 지각 변동으로 땅속으로 들어가 고압과 고열로 응축되어 엑기스만 남은 탄화수소화합물이야석탄은 식물들이 쌓인 거고천연가스는 석유나 석탄이 생길 때 가스가 따로 모인 거지.

 

인류가 처음 자연의 에너지를 활용한 것은 불을 사용한 거야첨에는 주변에 널려 있는 마른 나무를 모아 땠지나무건 석탄이건 뭘 태워서 에너지를 얻는 건 그 속에 있는 탄화수소화합물이 산소와 결합하는 작용이야탄소와 수소가 산소와 결합하면서 열에너지를 내놓는 거지그 결과물이 탄소가 탄 이산화탄소와 수소가 탄 물이고.

 

나무를 때던 시절엔 석탄과 석유는 연료 축에도 못 꼈어목재연료 중 고급인 숯은 깔끔한데씨커먼 이넘들은 태우면 유독가스가 나와서 집안에서 쓸 수가 없었거든아주 오래 전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이 끈적끈적한 아스콘 같은 놈으로 배의 틈을 막거나 길낼 때나 썼다고 해.

 


석탄산업혁명을 일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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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이 본격적으로 연료로 사용된 것은 12~13세기 영국에서였어


면직공업이 발달하고 인클로저 운동으로 농민들이 땅에서 추방되면서 도시가 성장했지그러자 도시 인근의 야산들은 빠르게 민둥산이 되어갔어(0스님의 머리처럼 마리아) 13세기 후반에 벌써 런던은 석탄의 뿌연 연기로 덮여 있었대.

 

16~17세기가 되면 결국 귀족들도 어쩔 수 없이 유독한 연료를 집안으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어석탄의 채굴과 유통이 산업화 되면서 공장들은 이 열량 높은 연료에 매료돼특히 제철업에서는 숯보다 엄청 센 이넘으로 코크스를 만들어 가마에 집어넣어근대 제철산업이 시작된 거야이로써 석탄산업과 제철업면직공업으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이 꽃을 피우지.



석유신대륙 어메리카를 세계 무대로 이끌다

 

뒤늦게 산업혁명 대열에 명함을 올린 신대륙 어메리카에서는 19세기 후반까지도 석탄보다 풍부한 목재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대그런데 석탄이 화학산업의 원료가 되어 화학공업이 태동하던 이 무렵에 어메리카의 시골 구석에서 화석연료의 총아 석유의 상업적 시추가 시작돼. 1859년 에드윈 드레이크가 펜실베이니아의 오지에서 유전에 파이프를 박아 퐁퐁 뽑아내는 기술 적용에 성공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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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추시설 이랑은 다르지? 그땐 아직 목탑이 대세였다능..



첨엔 이 시커멓고 찐득찐득한 넘을 정제해서 등유와 윤활유로 사용했어고래기름피마자 기름목랍으로 불을 밝히던 때에 싸고 좋은 등유가 시장에 등장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지휘발유는 다루기 까다로운 천덕꾸러기였어증류할 때 젤 먼저 튀어나와 폭발을 일으키기도 하는 이넘은 독일의 고틀리에프 다임러와 칼 벤츠가 각각 내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를 만들면서 귀중한 존재가 돼.

 


석유산업으로 세계 최고 갑부가 된 스탠더드 오일의 존 로커펠러

 

미국에서 유전 개발과 정유공장은 빠르게 확산되었어이렇게 커진 장마당에 재빠르게 끼어든 농산물 중개업자 존 로커펠러(록펠러재단의 그 칭구야한글맞춤법 표기법은 록펠러라는 예외적 표기를 인정해.)는 미국의 석유산업을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독점회사로 통합하고 최초의 다국적 대기업으로 성장시켜.


로커펠러가 스탠더드 오일로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된 건 리베이트와 트러스트를 통해서였어이 두 가지를 경제용어로 만든 건 온전히 로커펠러의 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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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가 니들이 록펠러로 알고 있는 그 사람이여. 

록펠러 재단은 청계재단하구는 레베루가 달러야~



먼저 로커펠러는 리베이트를 통해 클리블랜드의 석유정제업체들을 낼름낼름.


 당시 원유나 정제한 석유는 운하와 철도로 운송했는데이게 생산량이 들쑥날쑥이라 철도회사들이 애를 먹고 있었어어떤 때는 물동량이 몰려 차량이 부족하고 어떤 때는 대부분의 화차를 놀려야 하는 식이었지이때 로커펠러는 철도회사에 물량을 일정하게 몰아주는 조건으로 운임을 대폭 할인 받아철도회사로서도 수입은 똔똔에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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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인자 석유를 다 말아먹을랑게~!

로커펠러의 클리블랜드 1호 정유공장이랴.



이렇게 해서 클리블랜드의 정유회사들을 하나둘 먹고 난 로커펠러는 스탠더드 오일을 세워 전국 통일에 나서게 돼우선 이름부터가 뽄때나잖아, ‘표준 석유’. 초기에 등유의 품질은 제멋대로였거든중유가 많은 놈은 그을음이 너무 많이 나고휘발유가 많은 놈은 불 붙이다가 펑 터지기도 하고 말야근데 로커펠러는 '우리 껀 균질혀우리 등유가 그야 말로 표준!'이라고 대놓고 뻥을 친 거야.

 

그리곤 트러스트 증권을 발행해서 다른 정유회사들은 하나둘 끌어들여


본래 트러스트(trust)라는 말은 신뢰라는 뜻이잖아그니까 다른 석유회사들한테 너네 주식 51% 우리한테 맡겨우리가 경영권을 갖는 대신 트러스트 증권을 줄게.’ 하면서 독점 체제를 넓혀간 거지반항하는 넘들은 은행을 통해 압박을 가해로커펠러는 금융자본가들한테도 스탠더드 오일 증권을 나눠주고 말 안듣는 애들한테는 자금줄을 죄게 한 거야. 1890년대가 되면 미국 석유산업의 90% 이상을 스탠더드 오일이 차지하고 로커펠러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세계 최고 갑부가 돼어떻게석유가격을 통제하고 공급량을 조절해서.

 

혀서 요즘은 트러스트라는 말이 주식신탁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기업합동독점기업 등의 뜻을 갖게 된 거래미국을 장악한 스탠더드 오일은 유럽에도 자회사를 세워 등유와 윤활유 시장을 잠식해나가최초의 다국적 대기업이 된 거야.

 


유럽, 러시아의 석유로 뒤따르다

 

당시 유럽애들한텐 어메리카는 근본 없는 양아 졸부였어근데 아 이넘들이 새로운 상품으로 지들 시장을 치고 들어오네석유가 석탄에 비해 월등한 이유는 에너지 밀도가 높다는 거즉 같은 양으로 훨씬 많은 열량을 낼 수 있는 거지그리고 액체라는 장점어떤 용기에도 담기 좋죠나르기 편쵸때고 끄기 쉽죠.. 뭐 그래서 화석연료 3형제 중에서도 석유가 대표선수인건데아 이 양아졸부가 이걸 들고 나타났으니 원조 부르주아 스퇄이 완전 구겨진 거지.

 

다이너마이트 대마왕 알프레드 노벨의 형인 루트비히 노벨은 1871년 러시아제국 카스피 해 연안의 바쿠 지역 석유 생산에 뛰어들어. 1885년 경이 되면 러시아의 원유 생산은 미국 생산 수준의 약 1/3정도에 이르게 되지노벨은 유럽의 저명한 은행가 가문인 로트실트(로스차일드)가의 프랑스 분가로부터 도움을 받아 철도를 깔고 이 석유를 유럽으로 가져와.

 

로트실트네는 3초간 고민해. ‘이건 검은 황금이야돈만 댈 게 아닌데..’ 그리고 얼마 후 로트실트가는 독자적으로 바쿠에서 유정과 정유소를 매입하여 노벨과 경쟁해로트실트가는 바쿠의 석유를 아시아로 보내기 위해 국제무역업자인 마터스 새뮤얼과 손을 잡아새뮤얼은 수에즈운하 통행권을 획득하고 아시아 곳곳에 저장 탱크를 건설하였는데새뮤얼의 이 석유무역회사가 바로 셸의 전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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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히 들어선 바쿠의 유정탑. 

노벨과 로스차일드 집안이 석유사업을 시작한 곳이래.



한편 로커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국내에서 큰 반발에 부딪혀석유화학산업전기가 추동하는 2차 산업혁명이 세상을 바꾸고 그 와중에 돈으로 신분상승하는 이들이 비온 뒤 죽순처럼 솟아나는 마당에 검은 황금을 독점하다닛어메리칸 드림을 좇는 어메리칸들이 들고 일어나 로커펠러와 40인의 도적들 (스탠더드 오일에 주식을 넘긴 석유회사가 40개쯤 되나봐)을 비난하고 나선 거야마침내 1890년에 미국 반독점법의 첫 장을 연 ‘Sherman Antitrust Act’가 제정돼경제학에서 반트러스트가 반독점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연유래.

 

1899년 로커펠러는 트러스트를 해체하고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을 지주회사로 하여 지배권을 유지해아마 병석에 누워계신 거늬대제의 롤 모델이 아닐까 싶어하지만 1911년 오랜 소송 끝에 패배한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은 결국 33개의 소유 회사를 분리하고 사실상 해체돼이들은 이후 인수합병과 이름바꾸기를 계속하여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은 엑손뉴욕 스탠더드 오일은 모빌캘리포니아 사는 셰브론인디아나 사는 아모코 등으로 이어져.

 


세계를 장악한 세븐 시스터즈

 

한편 1910년대가 되면본토가 유전인 어메리카 석유 재벌과 러시아 카스피해흑해 주변에서 부를 쌓아 올린 유럽 석유 재벌들이 새로운 먹잇감 중동으로 눈을 돌리게 돼먼저 찜한 건 영국프랑스독일이었어.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엔 승전국 영국과 프랑스가 패전국 독일꺼도 낼름했지미국은 끼어들고 싶어 몸살이 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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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거 땅도 내땅이고 너거 석유도 내꺼데이~!



중동 석유를 놓고 경쟁하던 열강의 다국적 석유기업 7개 회사는 1928년 나눠먹기 협약을 맺어. 그리고 미국계의 엑손모빌셰브론텍사코걸프 사와 영국의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영국과 네덜란드의 합작사인 로열더치셸 등 이 7개 석유회사를 사람들은 세븐 시스터즈 혹은 메이저 세븐이라고 부르게 돼.

 

7공주파는 협조적인 부족장과 손을 잡고 말 안듣는 부족들은 때려 잡으며 사막에서 석유를 끌어올리고 본격적인 석유시대를 열어나가이 과정에서 땅따먹기 결과에 따라 선을 그어 왕정국가들로 독립 시켰고


유럽은 지중해 너머라 여차하면 득달같이 달려올 수 있는데 대서양을 건너야 하는 미국으로선 찜찜했어그래서 서방세계의 짱으로 올라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알박기를 해. 바로 이스라엘의 건국이미 미국 정계의 큰손으로 성장한 유태계 자본력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거야.


슈르나 횽이 재미지게 설명해준 이슬람 내부 동력만으로 중동의 평화가 올 수 없는 까닭이야이스라엘 문제의 해결 없이는 중동은 앞으로도 쭈~욱 분쟁 중!

 

1949년 미국 연방통상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7공주파가 미국과 공산권을 제외한 세계 석유 자원의 82%, 생산의 80%, 시설의 76%를 장악했다고 해1차 석유파동 전인 1972년 세계 100대 기업 자산 랭킹에서 1위 엑손, 2위 로열더치셸, 7위 걸프, 8위 모빌, 11위 비피, 12위 소칼(셰브론등 여섯 자매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어.

 


오페크(OPEC) 세계 경제의 중심에 들어서다

 

1950~60년대는 중동의 산유국들을 중심으로 자원민족주의가 대두한 시기야1951년 팔레비 왕정아래 모사데그 총리는 영국이란석유회사를 국유화해그러자 영국은 불매운동으로 이란의 경제를 마비시키고미국은 CIA를 보내 팔레비의 친위쿠데타를 도왔지.


1950년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대유전이 발견되고 공급 과잉이 되면서 7공주파는 원유 공시가격을 인하해그러자 수입이 줄어든 산유국들은 독자적인 세력화의 필요성을 절감해마침내 1960 9월 이라크는 이란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베네수엘라 등 5대 석유 생산 수출국 대표를 바그다드로 초청해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결성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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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1960년 OPEC 창립 모임.



가격카르텔의 성격을 가지고 출발한 OPEC은 1973 1차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지속적인 가격 상승을 유지하기 위해 산유량을 조절하는 생산카르텔로 변모해점차 자신감을 회복한 산유국들은 7공주파로부터 유전의 소유권을 거둬들이기 시작해장기 공채를 발행하여 보상하는 방식으로 유전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아나간 거지.

 

1979 2차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이제 OPEC은 변방의 북소리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중심부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돼전 세계는 OPEC의 공시 가격과 생산 쿼터 결정에 일희일비하고 막대한 오일머니는 세계 금융의 큰손이 되었어만수르를 넘어 억수르가 된 거야.

 

현재 OPEC은 창립멤버 5개국에 알제리앙골라나이지리아리비아에콰도르카타르아랍에미리트 해서 모두 12개국. (가봉과 인도네시아가 중간에 들어왔다 나갔음)

 

1973년의 1차 석유파동, 1979년의 2차 석유파동은 수급요인즉 공급이 수요를 따라주지 못해서 일어난 게 아니라 정치적지정학적 요인이 컸어. OPEC 이 세계 경제의 중심에 들어서는 과정이라고 보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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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석유파동


1973 10 6일 오후 13차례 전쟁에서 진 아랍의 명예를 쬐꼼이라도 회복해보자고 이집트와 시리아 연합군이 각각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에서 이스라엘군을 기습 공격해. 이스라엘군은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지만 미국과 유럽의 지원을 받기 위해 선제 공격을 포기하고 반격으로 맞서.

 

그로부터 열흘 뒤인 10 16이란과 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아부다비카타르 등 중동의 6개 산유국은 유가를 17% 인상하여 배럴 당 3.65달러로 발표해이튿날인 10 17일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 10개국은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할 때까지 9월부터 소급하여 매달 5%씩 생산량을 감축하겠다고 선언했어지난 100년 동안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석유가 값싼 원자재에서 벗어나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등장하는 순간이었지.

 

12월 하순 산유국들은 감산 정책을 철회했지만 유가의 인상은 계속돼. 12 23 OAPEC의 6개 페르시아만 산유국들은 아라비안라이트 원유공시가를 1974 1 1일부터 128% 인상한 배럴당 11.651달러로 인상해. OPEC 13개국 중 다른 7개국은 이들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이미 발표한 뒤였고세계 석유수출량의 85%가 인상에 포함된 거야.

     

                        

2차 석유파동


1978 12 17일 아랍에미리트연방의 아부다비에 모인 OPEC 13개국은 1979년도 원유가를 당시 배럴당 12.70달러에서 분기별로 나누어 총 14.5% 올려 14.542달러까지 인상하기로 합의해이때까지만 해도 세계는 이것이 제2차 석유파동의 전주곡이 될 줄은 몰랐어.

 

그러나 팔레비 왕정에 반대하는 이란의 시위가 격화되어 이듬해 2 11일 이슬람 지도자 호메이니가 이란의 전권을 장악하자 세계 석유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해이란은 2 16일 왕정 때보다 15분의 1로 석유수출량을 줄이겠다고 발표했어그러자 중동 산유국들이 2월초 유가를 7% 인상한 데 이어, 2 27일 쿠웨이트가 9.35%, 베네수엘라가 15% 인상해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유가 인상 랠리는 1980 1월까지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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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인자 친미국가가 아녀! 

오리지날 중동 이슬람 국가여!

 


1년 이상을 달려온 유가 인상 랠리는 2 22 OPEC 비밀회의에서 유가를 연 4회 인상하되선진국의 인플레율과 경제성장률그리고 달러화 가치변동에 연동하겠다는 장기 유가 계획에 합의하면서 가까스로 진정 국면에 들어서이렇게 1, 2 석유 파동은 수급 요인이 아니라 지정학적 요인과 OPEC 자원민족주의에 기인한 것이었기에 OPEC이 세계 경제의 중심에 자리잡으면서 유가도 하향 안정세를 유지하게 .

 

 

석유 전쟁의 패배자 소련

 

그런데 1 석유파동 이후 계속된 유가 상승은 새로운 국면을 초래해 OPEC 산유국의 생산량이 늘어난 거야유가가 오르니까 심해 유전의 경제성이 생겼고 유럽에서 북해 유전이 개발되어 영국덴마크노르웨이 등이 새로운 산유국 대열에 들어섰지그리고 시장경제와 싸움에서 뒤처진 소련 경제가 원유 수출에 의존하며 생산량을 늘리게 .

 

1986 오르기만 하던 유가가 20달러선으로 급락해이때 예전같으면 감산으로 가격 유지에 나섰을 사우디가 가격 인하를 감수하기로 선언해오홀이건   때까지 가보자는 거지치킨 게임이야왕정국가 (영국도 여왕이 있긴 하지만 사우디는 국왕이 짱이잖아) 석유수입으로 경제쫌 돌려서 인민들 달래왔는데감산에도 한계가 있는 거지.

 

게다가 여기에는 절친 미국과 야합이 있었다는 풍문이 있어뉴라이트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이참에 주적 소련을 밀어부쳐보기로  거야개혁 없이는 수명 연장이 어려워진 소련의  수입원인 석유 돈줄을 죄는 거지결과는  년을 못버티고 소련이 붕괴하고1990년대말까지 유가는 하향 안정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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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바~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오늘은 여기꺼정.


에고~ 삭신이야... 홀홀...










에너지전환


편집 : 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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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이토록 거침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 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