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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30. 목요일

trexx







편집부 주



인류 역사는 정보의 텀과 털림의 반복이라 할 수 있겠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까톡' 상황은 유구한 반복의 한 챕터라 할 수 있는 바,


본 연재를 통해 우리의 정보가, 니덜의 정보가 털려왔던 장엄한 연대기를 통해 온고지신적 관점을 장착하여 바로 오늘의 '털림'의 고찰해 보도록 하자. 







지난 기사



[1편  - 암호의 탄생]







1. 보이지 않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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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unes Radio에서 Radio의 원래 의미는 빛의 속도로 나아가는 전파다. 

현재, 라디오 용어는 무선 전파(무선통신)라는 뜻 보다는 음성 방송에 한정하여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15세기 이후 깨지지 않았던 비즈네르 암호가 19세기 말에 이르러 베비지와 카시스키의 능력으로 해독이 가능하게 되자 암호 제작자들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암호 제작 기술이 담보 상태인 것과는 별도로 통신 기술은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모스 부호를 이용한 전신과 원거리에서 대화가 가능한 전화기술이 개발 되고 1894년 이탈리아 물리학자 ‘굴리엘모 마르코니’에 의해 무선전파를 이용한 원거리 정보통신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무선통신’은 안테나를 이용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통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기술로 이를 라디오*라 한다. 라디오 이전의 '전신과 전화'는 전선을 연결하여 유선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기술이었다.



라디오 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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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통신, 라디오 기술의 기원은 1861년 스코틀랜드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제임스 클럭 맥스웰에서 시작된다. 맥스웰은 자연에 존재한는 ’전자기장’(지구가 큰 자석이다)의 기본 현상과 움직임에 대해 예측하였는데 지구 상에 존재하는 전기, 자기, 빛 등 은 파동의 형태로 일정한 속력으로 앞으로 나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예상했다. 독일의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는 1887년 새로운 종류의 전자기파인 전파를 발견하여 맥스웰의 이론을 증명하였다. 그는 두 금속구 사이에 고전압 스파크가 일어나게 함으로써 전기적인 파동을 만들어 헤르츠 파라 명명했다. (현재 미터법에서 아용하는 1초에 1번 진동함을 뜻하는 Hz(헤르츠)단위가 이 사람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정보, 즉 종이 같은 문서도 전신 전달을 위한 전선도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통해 전달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무선전파를 통해 쉽고 빠르게 정보전달이 가능하게 되자 각 국가마다 암호화 기술이 더 절실해지게 되었다.





2. 1차 세계대전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각 국가마다 무선통신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동시에 보안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 1917년 1월 16일 1차 세계대전에 미국을 참여하게 하여 연합국의 승리를 결정한 치머만 전보*는 독일군의 암호가 영국 암호해독반 40호실의 활약으로 해독되었기 때문이다.



치머만 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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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머만 전보와 해독문


독일 제국의 외무장관인 아루투르 치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 대사에게 유선으로 보낸 암호로 된 전보문이다. 미국이 1차 대전 참가하지 못하도록 멕시코에게 재정적 도움과 미국에 빼았겼던 영토 회복을 위한 동맹을 제안하였다. 영국은 독일의 대륙간 전선을 통제하여 전보문을 확보하였고 암호해독을 하게 되었다. 전쟁 참여에 비관적이었던 윌슨 대통령은 뒤늦게(4월 2일) 치머만 전보를 확인한 후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독일은 1차 대전 유선을 통한 통신이 제한 받자 무선통신에 집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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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단순 암호 기계 장치 사이퍼 디스크

 

 

 

1차대전은 암호 해독자의 완전한 승리였다. 강력해 보였던 비즈네르 암호가 깨지게 되자 종이와 펜으로 만들어진 사이퍼 암호는 더이상 효력이 없었다. 1차대전 패전에 쓴 맛을 본 독일은 기존의 방식과 다른 더 정교한 기계로 자동 생성하는 암호화에 매달리게 된다. 크립토그래피에 최초로 사용된 사이퍼 기계는 15세기 이탈리아 건축가 레온 알베르티가 개발한 사이퍼 디스크이다. 사이퍼 디스크는 두개의 원판을 회전하여 카이사르 사이퍼 암호를 간편히 사용한 단순한 기계였다.


1918년 독일의 발명가 아르투르 슈르비우스와 그의 친구 리하르트 리터는 알베르티의 사이퍼 디스크를 응용하여 전기로 작동하는 복잡한 사이퍼 기계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에니그마(Enigma)다.





7. 2차대전과 에니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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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당시 사용된 에니그마



에니그마의 기계적인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기본 구성은 원문 텍스트의 글자를 입력하는 ‘자판’, 글자판에 입력한 문자를 암호문자로 대체하는 ‘스크램블러(Scrambler)’ 암호문에 들어갈 문자를 나타내는 불빛으로 알려주는 ‘램프보드’이다. 아래 그림은 에니그마 구조를 단순화시켜 보여준 그림을 참조하였다. (이 글에 사용된 에니그마 구조도, 암호해독 표는 사이먼 싱의 저서 ‘암호의 과학'에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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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그마를 단순화한 그림(‘사이먼 싱 암호의 과학’ 참조)



위 그림은 에니그마의 기본 원리를 단순하게 하여 보여준다. 자판에 있는 6글자(원래는 26자) 중 b를 치게 되면 전선으로 된 스크램블러를 걸쳐 램프보드 A에 불이 들어온다. (보기 편하기 위해 스크램블러 선의 색을 다르게 하였다. b에 해당하는 선은 ‘노란색'이다.)


스크램블러는 자판을 1번 칠때마다 1번 이동을 하는데 위 그림에서는 1/6바퀴를 돈다. 아래 사진은 회전하는 스크램블러를 이해하기 편하도록 스크램블러를 평면으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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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을 한번 칠때마다 스크램블러는 1칸식 이동한다.



스크램블러가 1칸씩 이동하게 되면 b를 연달아치게 되면 결과 값은 A→C→E 순으로 바뀐다. 6문자와 스크램블러 6칸을 회전시켜 대체하면 총 경우의 수는 36개가 나온다. 실제 에니그마에서는 26문자 스크램블러 3개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스크램블러가 한바퀴를 다 돌게 되면 두번째 스크램블러가 1칸 이동한다. 작동방식이 자동차 미터표시등과 비슷 하다. 그러면 26x26x26=17,576 가짓 수가 나온다. 여기에 반사판을 설치한다. 반사판을 설치하게 되면 암호문 제작과 해독을 서로 대칭하게 하여 암호 해독이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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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그마, 세 개의 스크램블러와 반사판(이해하기 쉽도록 색으로 구분)



또한 3개의 스크램블러 디스크를 번갈아 가면서 삽입하면 6가지 배열 방법이 나오고6x456,976=105,456 개의 암호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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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그마에서 배전반 역할



에니그마에서 암호키의 가짓수를 늘리는 최고의 방법은 자판과 첫번째 스크램블러 사이에 배전반을 넣는 것이다. 배전반에는 알파벳 각 문자마다 플러그를 꽂을 수 있게 소켓이 설치되어 있다. 위 그림에서는 두개를 교차해서 두쌍의 글자를 교차하여 전선을 꼽을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에니그마 에서는 여섯개의 전선으로 여섯쌍의 글자를 교차시켰다.(30년 대 후반 10쌍의 글자를 교차) 배전반 26개의 글자 중 여섯개의 글자가 서로 교차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엄청나게 많다. (100,391,791,500)


스크램블러 X 스크램블러 X 스크램블러 X 디스크 교환 수 X 배전반

= 26 X 26 X 26 X 6 X 100,391,791,500 = 약 10,000,000,000,000,000


약속된 키가 없을 경우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에니그마에 스크램블러라는 디스크를 도입함으로써 비즈네르 암호를 해독하는 빈도분석법으로도 풀 수 없는 강력한 암호체계가 드디어 완성 되었다. 슈르비우스는 독일군에게 비즈네르 암호 해독으로 풀 수 없는 자신의 발명품, 에니그마를 도입하길 권유하였고 1925년 이후 독일군에 도입하게 되었다. 이후 20년 동안 독일 군대에서 사들인 에니그마는 3만대 였다고 한다. 슈르비우스는 자신이 만든 기계의 암호가 풀려 독일이 패망하기 한참 전인 1929년에 마차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4. 강력한 암호와 해독의 단서, 메시지 키


1차대전에서 승리한 영국은 암호해독에 자만하고 있었다. 독일군의 암호문을 계속하여 도청하다가 1926년 전혀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가 들어오게 되었다. 바로 에니그마의 출현이었다. 영국 뿐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또한 도청된 암호를 전혀 풀 수 없었다. 드디어 독일이 완벽한 군사 보안을 구현한 것이다.


승전국이었던 영국은 1차 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았다. 완전히 바닥으로 가라앉은 독일이 재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바다 건너 영국과 달리 독일 접견에 있는 1차 대전 후 갓 독립한 폴란드는 여유로울 수 없었다. 서쪽은 독일, 동쪽은 공산주의 러시아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암호국 뷰로 시프로프를 설치하고 막시밀리안 체츠키 책임 하에 주변국을 주시하고 있었다. 체츠키는 기업용 에니그마를 손에 넣어 기본 원리를 알았지만 군에서 사용한 에니그마의 스크램블러 회로와 완전히 달랐다.


에니그마 해독의 실마리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다. 독일정부에 불만을 가진 한스 틸로 슈미트가 프랑스에 접근해 왔다. 슈미트는 독일군 장교로 1차대전을 참전하다가 패전 후 군대 축소로 군대에서 쫓겨났었다. 이후 독일군 에니그마 도입에 일등공신이었던 능력있는 그의 형 루돌프의 도움으로 독일군 암호통신 관련 사무직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군인으로 성공한 형에 대한 질투심과 1차대전 후 자신을 군대에서 쫓아낸 조국에 불만으로 한스는 독일 조국을 배신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가 에니그마 정보를 타국에 빼돌린 건 스노든 같은 ’정의감'이 아닌 가난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형에 대한 열등감 폭발로 인해 에니그마 정보를 돈을 받고 팔기에 이른다.


1931년 11월 8일 한스는 프랑스 비밀요원과 접속한다. 그는 1만 마르크(현 3천만원 정도)로 ‘에니그마 지침서’와 ‘암호기계 에니그마 암호해독법’ 책을 넘겨준다. 그 책 안에는 군대에서 쓰고 있는 에니그마 회로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에니그마 기계는 완벽히 복제하였지만 열쇠와 배전반의 구성을 모르고는 암호를 풀 수 없었다. 프랑스는 에니그마에 대한 좋은 정보를 확보 하였지만 영국과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안하고 방치하였다. 프랑스와 군사협력 관계였던 폴란드는 프랑스로부터 에니그마에 대한 자료를 얻게 되었다. 한스가 넘겨준 코드북에는 에니그마 열쇠의 단서가 들어 있었다.


독일 군은 에니그마 암호의 제작과 해독을 위하여 날마다 사용되는 한 달치 열쇠(데이 키)가 실린 코드북을 매달 전달 하였다.



[코드북에 들어있는 첫날 데이 키 예시]


(1) 배전만 전선 : A-L, P-R, T-D, B-W, K-F, O-Y (A와 L을 연결…)

 

(2) 스크램블러 순서 : 2-3-1 (원래 순서에서 변경)

 

(3) 스크램블러의 글자 위치 Q-C-W (외부에서 보이는 ‘로터’에서 알파벳 조정, 숫자 자물쇠 처럼 변경)



여기에 독일은 보다 안전을 가하기 위해 코드북에 없는 ‘메시지 키’를 만들었다. 메시지 키는 스크램블러 글자 위치를 문서 첫 머리에 넣어 다시 알려주는 것이다.



[암호 작성자(송신인) ‘메시지 키’ 설정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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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드북에 있는 데이 키로 Q-C-W로 지정

 

(2) 암호문 작성자 본인이 메시지 키 PGH로 설정

 

(3) 데이 키 Q-C-W에 따라 PGHPGH 입력

 

(4) 결과 값 KIVBJE (스크램블러가 계속 움직이므로 다른 글자 출력)

 

(5) 스크램블러 글자 위치를 PGH로 바꾸고 암호문을 만든다.



수신인은 첫 문장의 처음 6글자 KIVBJE를 코드북에 있는 Q-C-W 데이 키 셋팅에 따라 메시지 키가 PGH라는 것을 먼저 해독한다. 그런 다음 스크램블러 글자 위치를 PGH로 바꾸고 암호문의 해독을 시작한다. 메시지 키 도입으로 에니그마는 코드북을 적에게 빼았겨도 암호문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5. 에니그마 1차 해독, 폴란드 레예프스키


독일군은 메시지키를 항상 두번씩 입력하게 하였다. 당시 통신기술이 불안하여 메시지 오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이는 암호해독의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암호문 앞 6 문자는 메시지 키로 1과 4, 2와 5, 3과 6이 같은 문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령 LOKRGM 이라는 메시지 키가 있다고 하면 L과 R, O와 G, K와 M이 같은 글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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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그마 암호 메시지 첫 6글자



암호문이 많아지면 모든 알파벳 값을 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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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문을 많이 확보하게 되면 아래의 표를 완성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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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번 글자와 4번글자는 같은 문자이다.



폴란드의 암호국에 참여한 수학자 레예프스키는 ‘데이 키’를 사용하여 ‘메시지 키’를 암호화한 결과가 위 표로 나타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일종의 패턴으로 암호해독의 단서를 찾아 내었다. (여기서는 에니그마 해독을 가능하게 하였던 메시지 키 분석을 통한 해독 방법은 생략하겠다. 한마디로 하면 1억개의 암호를 일일히 대조하여 얻은 해독 결과로 엄청난 노가다의 산물임을 인정하자. 암호 해독이란 것이 한큐 열쇠를 찾아내어 바로 해독 되는 것이 아닌 경우의 수를 최대한 줄이는 작업이다.)


이런 단서를 따라가면서 위협에 처인 폴란드의 레예프스키는 엄청난 노가다를 거쳐 배전반과 스크램블러를 결국 해독 할 수 있었다. 독일의 배신자 한스가 프랑스에 건네준 에니그마에 대한 소중한 자료 없었다면 폴란드는 에니그마 암호를 절대 해독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폴란드의 레예프스키는 에니그마를 한번 해독 하게 되자 에니그마가 조금씩 업그레이드 될 때마다 어렵지 않게 해독 할 수 있었다. 폴란드는 에니그마 해독 기계를 고안 폭탄이라는 뜻 봄브(bombe)를 가동하였다.


그러나 1938년 12월 독일은 보안을 우려하여 에니그마를 다시 만들어 보급하기 시작했다. 두 개의 스크램블러를 더 보급하여 5개 중 3개를 골라 입력하게 끔 바꿨다. 단 두개의 스크램블러가 추가 되었지만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배전반의 수도 6개에서 10개로 늘어났다. 가능한 열쇠의 수는 159,000,000,000,000,000,000가 되었다.


 

30년대 후반 업그레이드 된 에니그마



이는 폴란드 암호국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독일은 폴란드와 맺은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침공을 기정 사실화 하였다. 결국 폴란드는 1939년 6월 30일 프랑스와 영국에 폴란드가 발명한 봄브의 존재를 알렸다.





6. 블레츨리 파크, 그리고 천재 앨런 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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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튜링과 블레츨리 파크 봄브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한달에 200만 단어를 전송했지만 무선통신의 발달로 2차 대전 중에는 하루에 200만 단어가 오갈 수 있었다. 1차대전을 암호해독으로 승리한 영국은 자신들이 폴란드의 암호해독 기술에 못 미침을 뼈저리게 느꼈고 폴란드가 에니그마에 접근했던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수학자들을 기용하였다. 1차 대전 당시 활약했던 '40호실' 대신 보다 넓은 공간인 블레츨리 파크에 정보암호국을 설치하였다. 독일 에니그마 기계는 더욱 진보하여 암호해독이 갈수록 어려워졌기에 암호해독을 위한 인원을 대폭 늘려 200명 남짓한 직원이 7천명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2차대전이 독일에 우세하게 되자 영국은 암호해독에 사활을 걸게 되었다.


그러다 천재 한명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블레츨리 파크 암호해독팀으로 파견오게 된다. 바로 앨런 튜링이다. 폴란드의 레예프스키는 메시지 키를 두번 입력하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에니그마 암호 해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헛점을 이용해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할 수 있음을 독일이 알게된다면 메시지 키를 반복없이 변경하여 전달하게 될 것이다. 튜링에게 떨어진 일은 메시지 키가 반복이 안되더라도 풀 수 있는 암호해독이었다.


그는 이미 해독된 메시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마다 일정한 단어가 반복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전 6시에 도청된 메시지 안에는 날씨(독일어 wetter)라는 단어가 반드시 들어가 있다. 또한 군대 문서는 엄격한 양식을 따르기에 메시지들이 거의 유사했다. 많은 암호문들이 일정한 패턴으로 첫 단어가 거의 반복되었다. 튜링은 이 첫 단어를 키(이를 ‘크립’이라한다.)로 하여 전체 암호문을 풀 수 있는 데이 키를 금방 찾아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튜링은 에니그마 암호문서에 ‘크립’으로 데이 키를 찾는 기계 장비를 고안했다.(이 기계 장치를 컴퓨터의 원조라고들 한다.) 폴란드의 봄브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앨런이 설계한 블레츨리 파크 ‘봄브’였다. 이 기계 덕분에 수십시간이 걸려 해독되었던 에니그마 암호가 단 한시간 만에 완전히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튜링의 위대함은 세상에 알려질 수 없었다. 기밀 정보는 권력이라 생각한 영국은 에니그마를 완벽히 해독하였지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제 3국에 에니그마를 판매함 으로써 제 3국의 비밀 통신 내용을 모두 알 수 있었다. 튜링 뿐 아니라 블레츨리 파크에 몸 담았던 수천명의 사람들은 2차 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에 도움을 주었지만 철저히 비밀에 부치게 되었다.


블레츨리 파크 암호정보국에 대한 사실은 에니그마가 사용을 멈춘 1970년대에 이르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에니그마 사이퍼를 깬 사실에 대해 정보공개를 주장한 원터보덤 대위에게 블레츨리 파크에 대한 책을 편찬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 책이 ‘울트라 시크릿 The Ultra Secret’ 이다.


그러나 에니그마 암호 해독의 1등 공로자인 앨런 튜링은 공로를 인정받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앨런 튜링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났지만 인정을 받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국가에서 앨런 튜링을 죽게끔 몰아 부쳤다.


2차 대전 후 1952년 자신의 집에 도둑이 든 사실을 경찰에 신고 하면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경찰은 절도 피해자를 형법 개정안 1885조 11항을 위반한 음란죄로 기소하고 유죄 판결을 받게 하였다. 그 와중에 재판과 유죄 판결 내용이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튜링은 공공연하게 비난 받게 된다.


튜링이 쓸모가 없어졌다고 판단해서 인지 영국 정부는 그를 변호하기는 커녕 비밀정보 열람권을 박탈하고 컴퓨터 개발과 관계된 프로젝트에서 배제 시켰다. 튜링은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어 호르몬 투여로 인한 화학적 거세를 당하게 되었다. 화학적 거세로 인하여 비만에 시달리자 이후 2년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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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1977~1996년 애플로고) 동성애를 상징하는 Rainbow와 튜링을 상징하는 Apple



튜링은 청산가리를 주사에 넣고 사과와 함께 그의 침실로 향했다. 사과에 청산가리 주사액을 주입한 후 사과를 베어 물었다.


1954년 6월 7일, 그의 나이 42살 이었다.




다음 시간에는 디지털 시대와 공개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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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