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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04. 화요일

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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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자마자 대뜸 말해보자면 이 사건은 2014년 현대 한국 사회, 특히 연예계와 인터넷/모바일 문화를 드러내는 상징성에 있어서, 후대에 긴 시간동안 연구 소재가 될 사건이 되리라 확신해본다.



사건 자체를 모르는 분덜을 위해 초압축 한문장으로 표현하자면, 'MC몽이 5년만에 컴백해서 음원차트를 싹쓸이 하는 걸 보고 분개한 다수 네티즌들이 합심하여, 군가인 ‘멸공의 횃불'을 음원차트에 올리면서 MC몽의 컴백을 보이콧하고 있다'다. 왜 하필 ‘멸공의 횃불'인지, 이러한 형태의 보이콧을 누가 어디에서 처음 제안했는지는, 필자가 졸라게 찾아봤지만 명확하게 결론을 낼 수 있을만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졸라 미안하다만, 기사를 빨리 쓰지 않으면 짜장면을 안사줄 것 같은 너클볼러님의 포스에 밀려, 일단 이부분은 아는 분덜의 제보를 부탁드리겄다. 일단은 아주 확실치는 않지만, 필자가 조사한 내용을 전제로 기사를 쓴다.)



암튼 이러한 형태의 보이콧은 2009년도 영국에서, 가수 오디션프로그램인 X팩터 참가자들의 크리스마스차트 1위 독주가 2005년부터 계속되자 느닷없이 RATM(Rage Against The Machine)의 ‘Killing in the name’을 크리스마스차트에 올리자는 운동이 일어났던 것을 그 기원으로 한다. 뭐 그 전에 또 비슷한게 있었겠지만, 암튼 수 백년 후의 역사학자들은 분명히 이 사건을 기원으로 생각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씨엔블루의 와이낫 표절 의혹을 기반으로하여, 와이낫의 ‘파랑새'를 차트 1위에 올리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운동에는 국내유일 민족정론지답게 딴지가 큰 축을 담당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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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X팩터 보이콧이 2009년 12월이고, 씨엔블루 보이콧이 2010년 2월. 중간에 몇 가지 유사 사건이 있었으나, 이들은 대부분 명분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잉여력은 상대적으로 컸던 사건들이라 하겠다. 거의 5년 만에 등장한 ‘다른 음원 1위 만들어, 타겟 밀어내리기'형태의 보이콧. 5년 전에 비해 스마트폰 보급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게 이뤄졌고, 결국 그 어느때보다 빠른 속도로 그 보이콧을 성공시켜낸다.



이 과정 자체를 네티즌들이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 사이에서의 반응은 매우 복잡하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매우 복잡한 지형구조를 보인다.



MC몽이 복귀와 동시에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석권하는 기사가 오전에 퍼져나가면서, 다수 네티즌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빡친 네티즌들은 MC몽의 앨범 리뷰를 비판적이거나 조롱하는 내용으로 작성하기도 하고(내용보기 링크), MC몽의 컴백을 축하하고 환영하는 코멘트를 남긴 동료 연예인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내용보기 링크)



이 모든 일이 11월3일 오전 1~2시간만에 벌어지는 과정에서, 몇몇 네티즌들이 'X팩터 보이콧' 및 '파랑새 사건'을 떠올리며, 군대에 안가려고 생이빨 뽑은 MC몽을 보이콧하는 의미로 군가를 1위로 만들자는 의견이 산발적으로 소수 드러나다가, 일베에 “멸공의 횃불 듣는 중이다(내용보기 링크)”라는 글이 올라가면서 조직력이 갖춰지기 시작한다. 잠깐동안 ‘나는 진짜 사나이가 더 좋다'거나 ‘전선을 간다로 하자'거나 하는 의견들이 대립을 이루는 듯 하다가, 금세 특정 앨범의 특정 음원에 집중하자는 제안이 다수의 동의를 얻으면서 실제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필자 주. 실제로 일베에 올라간 저 글이 최초라고 할 순 없다. 혹시 디씨나 기타 다른 커뮤니티의 게시물이 더 원조에 가깝다면 댓글이나 트위터 @miiruu로 제보 바란다.)

 

 

이 과정에서 음원 차트보다 더 빠르게 반영되는 실시간 검색어에 ‘멸공의 횃불’이 1위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생뚱맞기 그지없는 이 실검1위는 순식간에 화제가 되고, 이 소식은 오유와 같은 중도-진보 진영 커뮤니티나 뽐뿌, 클리앙 등 일베에 호의적이지 않은 커뮤니티들에도 알려진다. 이 과정에서 일부 네티즌들은 ‘일베가 한 짓이네.. ㅉㅉㅉ'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반면, 다른 일부는 ‘베가 한 짓이지만 나도 화력지원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화력지원이란, '멸공의 횃불'을 검색하거나 음원을 구매해서 순위 올리기에 힘을 보태겠다는 의미다. 결국 이렇게 동참자가 많아지는 과정에서 실제로 음원차트에도 '멸공의 횃불'이 100위권 이내에 진입하고, 이어서 일부 음원 사이트의 ‘급상승 음원' 1위에 까지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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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오늘의 유머 링크 



이렇게 되다보니 일베에서도 반응이 갈린다. 워낙 누가 주축세력이고 누가 참여세력인지가 불분명한 사안이다 보니 일부 일베회원들은 이 보이콧 자체가 오유에서 시작해서 일베가 화력지원을 해주는 그림으로 이해하는가 하면, 어떤 회원들은 일베가 주축이고 오유에서 화력지원을 해주는 그림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같은 사건에 대해 이렇게 이해하는 구조가 다르다보니 어떤 댓글은 이 보이콧을 반대하기도 하고, 또 어떤 댓글은 그 보이콧 반대를 오유측의 심리전으로 보고 다시한번 반대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덜 예상하시다시피 이러한 반대, 반대의 반대, 반대의 반대의 반대 연쇄가 발생하면서 의견들은 점점 더 복잡해져간다. 이러한 복잡화 과정은 일베나 오유나 다른 커뮤니티나 다 마찬가지다.



이 복잡한 의견들을 날카롭게 파고들면, 어쩌면 정리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정리를 바탕으로 글을 쓴다면, 아마도 그 글은 궁극적으로 ‘행동의 주체는 나의 적이지만, 행동의 내용에 공감할 경우 이 행동은 지지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게 될거다. 사실 필자도 이 글을 쓰라는 강요, 아니, 요청을 받은 직후 그렇게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건 그렇게 볼 문제가 아니다. 그런 접근에 매몰되면 보지 못할 지도 모르는,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건, MC몽을 보이콧하려는 네티즌들의 움직임이 음원사이트에서, 검색포털에서, SNS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불과 반나절도 안되는 시간만에, 그 시각 가장 인기있는 음원을 차트에서 위협할 수 있는 힘, MC몽의 컴백을 축하했던 연예인들은 곧이어 사과 글을 올려야만 하게 만든 그 힘이 드러났다는 말이다. 우연인지 뭔지는 몰라도, MC몽의 소속사이자 코스닥 상장사인 ‘웰메이드’는 오늘 오전 상한가를 치다가, 10시30분부터 장마감까지 10%가량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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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대략 요렇게...



필자의 사견으로는, 병역기피자가 연예활동을 해도 되는지 아닌지, 컴백을 한다면 몇년의 자숙기간을 지녀야 하는지 같은 기준은 없다고 본다. 1년 만에 컴백을 하든, MC몽처럼 5년 만에 하든, 유승준처럼 한국을 뜨든, 판단은 연예인 본인과 그 연예인을 ‘소비'할 소비자의 몫이다. 소비자들이 어떤 이유로든 컴백을 반기지 않는다면 그 연예인은 컴백에 성공할 수 없고, 소비자들이 괜찮다면 그걸로 끝이다. 뭐 시발 전과자가 대통령 임기 다 마친 나라에서 무슨 이런 걸로 절대적인 기준을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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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얘기 하는 거냐?



MC몽이 5년만에 낸 컴백 앨범으로 음원차트를 석권한 것이 실제 소비자들의 구매량에 따른 것이라면, 그 자체로 소비자들이 ‘컴백해도 좋다'는 의견을 표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그 의견 자체에 반대하는 다수의 소비자들이 보이콧을 해서 이정도의 영향력을 보인다면, 결국 MC몽은 TV까지 출연하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한가지 확실한게 있다면, 이번 보이콧 사건에 직접 참여해서 '멸공의 횃불' 음원을 구매한 사람이 전 국민의 절반가량 될 정도의 비율일리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거꾸로 보면,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아니어도, 진영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킬 수 있을 정도의 공감대를 강하게 형성한다면, 그 공감대가 통일된 행동으로 성장하기만 한다면, 그 행동은 이 사회가 굴러가는 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고 볼 수 있는 거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찻잔속의 태풍이라고? 그건 말그대로 전국민이 물리적으로 참여하는 선거에 대한 말이다. 투표는 격렬한 지지의 한표와 그냥 대충 던지는 한표가 똑같이 세어지지만, 다른 모든 것에서는 그렇지 않다. 선거에서야 단순한 표의 총량이 더 중요하고, 그래서 국민의 절반이 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문제겠지만, 선거 이외의 대부분은 그렇게 수천만 단위의 사람들을 필요로하지 않은 채 벌어진다. 그 대부분에서 필요로 하는건 수 천만이라는 머릿수가 아니라, 얼마나 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공감대가 한명 한명의 가슴 속을 얼마나 깊게 파고 들어 그 행동을 하나로 합쳐내는지 여부다.



"매체와 공간과 무관하게, 공감의 넓이와 단합의 깊이는, 힘과 비례한다."



이게,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 사건이 지니는 의미다.









춘심애비

트위터: @miiruu


편집: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