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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3. 목요일

문화불패 cocoa






편집부 주


이 글은 화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cocoa 님의 글은 2번 더 납치될 시, 

삼진 아웃의 원칙에 따라 

딴지 필진으로 임명되어 강제 노역에 동원됩니다.

  








1. 내 어린 날의 기억


얼마 전 하릴없이 인터넷을 떠돌다 이런 글을 봤다. 삼국지 10 모든 능력치가 1인 장수로 전국통일하기. 아 한 번이라도 삼국지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무모한 짓거리인지 잘 알고 있을 거시다. 필시 예사 놈이 아닐 것이다 싶은 생각에 조금 더 읽어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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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하다


 


마치 플레이어를 그대로 옮겨 가방만 메어놓은 듯한 외모에, 리얼한 연령, 안습 능력치, 열전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는 것이, 마치 내 주변 놈들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니고 내 주변 놈들. 특기라고는 '주호'밖에 없는 그런 넘들. 짠하다. 짠하다 못해 이거시 내 이야기인가? 싶은 착각마저 들고 감정이입이 될 뻔 하였다. 진정하고 다시 글을 읽어나가던 찰나에, 나으 예리한 직감이 살아났다.

 

"혹 이거슨 대선후보까지 올라서지 못한 유시민을 디스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아닐까?!"

 

실로 경천동지할 예리함이 아닌가. 소시민에서 유시민을 생각하다니. 스스로 감탄을 하며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글을 천천히, 꼼꼼히 읽어 보았다. 그러나 어떤 계략에 빠졌는지 유시민은커녕 소시민의 처량한 삶에 감정이입이 되어 짠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한참을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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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금을 몰수당한 소시민



그렇게 소시민의 플레이를 한참을 보다 문득 이 사람이 참 부러워졌다. (소시민 말고, 이거 플레이했던 그 플레이어. 나 그 정도는 아니다.) 이렇게 재밌게 게임을 할 수 있구나. 재밌겠다.

 

"아...그러고 보니 나도 이렇게 재밌게 게임을 즐기던 때가 있었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시다. 그렇다. 나도 밤을 새워가며 진정으로 게임을 즐기면서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올라오기 시작하여 유시민 디스를 찾는 나의 원대한 계획은 잠시 미뤄두고, 내가 참 좋아했던 게임 소식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그때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오래 묵은 기억을 풀어보겠다.

 


2. 아스트로엔


내가 했던 게임은 아스트로엔이다. "국내 최초 슈팅 MMO RPG AST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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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게 촌스런 로고

 

혹 이 게임을 들어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내가 알기로는 전성기 때는 동시 접속자가 1만 명에 육박했으니까. 딴지 독자가 2천만 명쯤 되니까 대략 계산기를 두들겨보믄...몰르것다. 스스로들 알아보라. 아무튼,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게임은 아니었다. 이때가 2003년 2004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벌써 10년 전이다.

 

아, 본격적인 게임 이야기를 하기 전에 꼭 밝혀야 할 것이 있다. 이 글을 절대 광고가 아니다. 광고일 수가 없다. 왜냐면 게임이 망해서 없어졌기 때문에. 것도 두 번 없어졌다. 한국 서버 한 번, 외국으로 옮겨서 한 더. 게임이 두 번이나 망한 판국에 회사라고 멀쩡하겠는가. 회사도 없어졌다. 그러니 광고라고 손꾸락질 하려 했던 사람들은 그 손꾸락으로 눈물 닦고, 스크롤을 내리라.

 

당시 나는 학교에 다니던 꼬꼬마로서, 아무 게임이나 잡스럽게 해대던 때였다. 바람의 나라도 했다가 크레이지 아케이드도 했다가 메이플도 했다가 테트리스나 퀴즈 맞히는 것도 했다가 거상 같은 겜도 했던 것 같다. 암튼 겜 하나에 정착하지 못하고 겉핥기식으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꼬꼬마였다. 아스트로엔이란 게임은 우연히 막 게임사이트를 돌아다니다 깔게 되었는데, 처음 아이디를 만들고 접속한 느낌을 잊지 못한다. 글로 표현하기 힘드니 어떤 게임인지 영상 하나를 간단히 보고 계속 하겠다.






어떤 외국인 플레이어가 각 스테이지 보스를 잡는 영상을 올린 것인데 몬스터 잡는 영상이 이것밖에 없어서 불가피하게 이걸 올리게 되었다. 오토로 잡는 걸 찍었나 싶을 정도로 정적인 졸라 못한다 영상 되시겠다. 암튼 영상에서 본 것처럼 내가 비행기를 조종하면서 무기를 뿅-뿅- 쏴서 몬스터를 잡고, 유저들과 전쟁을 하는 게임이다. 조금만 더 설명하자면 슈르도, 벨리코, 애크론 3개의 종족이 있고, 종족마다 특성이 다르다. 속도가 빠른 슈르도, 에너지(mp)가 많은 애크론, 체력(hp)가 많은 벨리코. 내 종족은 그나마 제일 사람같은 슈르도였다.(제일 유저가 많았던 것 같다. 그나마 정상처럼 보여서) 머 있지도 않은 게임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불필요한 것 같고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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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슈르도, 애크론, 벨리코의 기체



나는 아스트로엔과 정말 결이 맞았다. 어떤 게임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게임 그 자체에서 재미를 알게 된 것이다. 사냥도 재밌고 전쟁도 재밌고 친목도 재밌고. 그때 내 일과는 학교 끝나자마자 집으로 뛰어와서 가방을 벗기도 전에 컴터를 키고 아스트로엔을 했다. (엄마가 퇴근하기 전까지) 차곡차곡 레벨을 올려 내가 레벨 11쯤이 되었을 때, 우리 종족 최고레벨이 26쯤이었던 것 같다. 하루에 1 업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 나도 꽤 초창기에 시작한 편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 내 레벨이 30쯤 되었나? 나름대로 높은 레벨에 속하고 있었고 이래저래 알게 된 사람들도 많았다. 아저씨 유저들이 참 많았었는데, 내가 나이가 어린 걸 알고 한번 만나서 고기도 묵고 하자고 했던 적도 있었다. (그땐 고기 맛을 모를 꼬꼬마이기도 했지만 좀 무서웠다.)


으레 그 또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꽤 힘이 세지고 유명하고 하니까 우리 반 친구들을 꾀어서 같이 하기 시작했다. 아이템(썩은템)도 좀 쥐여주고 왕도 잡아주고 그러면서 꼬꼬마답게 게임을 즐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지만, 그때는 같이 게임을 하는 아저씨들 보면서, 어른 돼서도 계속 이 게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백수로 살겠다고 맘 먹은 거슨 아니고 그만큼 재밌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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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로엔의 인터페이스

 



3. 그를 만나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사냥하러 미션4에 갔었다. 명당 사냥터는 경쟁이 꽤 심했기 때문에 자리를 차지하기 힘들었고, 역시나 누군가가 그 자리에서 사냥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색다른 방법으로 사냥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맵을 유유히 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넘이 나타났다. 내 평온한 게임을 완전히 뒤틀어 버린 그놈을. 그 평화로운 날 만나게 되었다. 아주 우연히.


평범한 날이었다. 미션4에 들어가기 전 출격트랩에 앉아서 잠깐 고민했던 것도 같다. (던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을에 있는 출격트랩을 거쳐야 한다) 다가올 인생의 거대한 파도를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개뻥. 그냥 빨리 사냥해서 레벨을 올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미션4에 도착해보니 명당은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고, 나는 색다른 사냥방법을 고안해내기 위해 맵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른 게임도 모두 그렇겠지만, 깊은 곳으로 갈수록 더욱 강한 몬스터들이 나오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다 어느 으슥한 곳에 도착했는데, 사냥은커녕 살아남기도 힘든 곳이었다. 죽지 않으려고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겨우겨우 쏘아 죽이고 있었다. 도망가면서 맨 앞에 오는 용감한 넘들을 뿅- 쏘고, 또 도망가다가 한 마리가 튀어나오면 또 뿅- 쏘고 이게 생존인지 사냥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점점 쌓이는 경험치를 보며 이런 자각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내가 색다른 사냥법(셀프고문)을 개발한 것 같군. 후후."


그렇게 하드코어한 플레이에 빠지고 있던 차에, 그넘이 나타났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던전의 깊고도 으슥한 곳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그넘이 나타난 것이다. 아마 그넘이 나를 알아차린 것보다, 내가 먼저 그놈을 봤던 것 같다. 내가 그를 본 첫 장면을 회상하자믄 이렇다. 저드 인가 저그인가 하는 몬스터가 있었는데, 대략 내가 6대쯤 때려야 죽는 넘이다. 그런데 그가 미사일을 쏘자 그 저그인가 저드인가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의 미사일이 닫기도 전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내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 빠른 속도로 반대방향으로 날아갔다. 처음 보는 아이디였는데 심지어는 나보다 레벨이 낮았다. 직감적으루다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나는 그를 열심히 쫓았다. (내 기체가 더 속도가 빠른 거였음) 30초쯤 그를 추격하면서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맵이 너무 깨끗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깊고 으슥한 던전인데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다니.


"그 많은 몹을 혼자 다 잡았다고?"


내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고, 그를 따라 잡아서 말을 걸어보았다.


"안녕하세요~ **님~~"

후후. 대답해라

"안녕하세요 ###님" 

드라이하다.

"몹이 하나도 없네요ㅠㅠ 렉인가 봐요" 

일단 안심을 시켜보자. 안녕 난 호구야

"그러게요" 

안심한 듯 했다

 

그게 끝이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첫 대화를 나누고, 그는 마을로 가버렸다. 더 몰아세울까 했지만, 대기만성이라 했던가? 아니 그건 다른 뜻인것 같은데 암튼 나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차차 그를 추궁할 계획을 341개쯤 세우고 있었는데, 엄마가 회사에서 돌아오셨다. 그래서 컴퓨터를 껐다. 첫날은 그렇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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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무셩



다음날, 그에게 귓속말을 해보았다. 접속해 있었다. 이때부터 나으 진가가 들어나는 기막힌 하이 고퀄리티 구라 폭격을 날리고 썰을 풀며 대화를 했는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읍따. 하나도 기억 안난다.(10년 전이니까 이해좀ㅠㅠ) 아무튼 여차저차하여 그와 친해지게 되었다. 친해지게 된 김에 이제부터 그를 H 라 하겠다.


그 이후는 뭐 뻔하지 않은가. 역시 나는 이번에도 전설의 구라로 H 가 모든 사실을 실토하게 만들었다. H 의 설명은 이렇다. H 는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데미지, 속도, 공격범위 등등 모든 수치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믿지 않자, H 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서 직접 사범을 보여줬다. H 가 미사일을 허공에 쏘자, 그 주변에 있는 모든 몬스터가 죽었다. 처음에 내가 봤던 그 모습 그대로 녹아내렸다. 엏. 그리고 H가 이 프로그램을 나에게도 보내준다고 하였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와 전설의 버디버디에서 만나기로 하고, 접선을 시작했다. 그가 보내준 프로그램은 놀랍게도 티서치(TSearch)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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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게임의 도우미 티서치

 

대략 위와 같이 생겨먹은 프로그램인데, 고전게임을 조금만 즐겨본 횽아들 이라면 '구라치지 말거라', '지나가던 야옹이가 멍멍하고 악어의 콧물이 흐르는 개소리구나'라고 나를 다그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게 사실인걸. 고작 고전게임 돈치트에서나 쓰는 이 프로그램으로 온라인 게임의 수치를 마음대로 주물렀던 거시다. 아직도 좀 신기하기도 한데,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스트로엔이 클라이언트로 게임에 접속하는 방식이어서 가능했지 않나 싶다.

 

(모두의 진도를 맞추기 위하여 티서치에 대해 더 간단히 말하자면 치트오매틱보다 조금 더 복잡한 에디터다. 들어봤을 거시다. 치트오매틱. 왜 황금 쌓아놓은 거 같은 아이콘 있잖냐. 다들 프린세스 메이커 할 때 딸아이 예쁜 옷(주로 여름) 사주기 위해 한번 씩 써봤지 않냐? 응?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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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렇게 변태처럼 이렇게 쓰는 경우도 있다.. 여튼 고전게임 돈치트



음튼 H를 만난 지 한 달 쯤 지나 문제의 프로그램을 나도 갖게 되었다. 큰 그림을 그려온 나의 디테일이 빛나던 순간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건 아무나 못하는 거다. 아무튼 직접 실험해보니 오, 잘되더라. 범위, 공격속도, 공격력, hp, mp, 속도 등 경험치 빼고 웬만한 수치는 다 바꿀 수 있었다. 그래서 치트 쓰면서 짱짱맨으로 게임 했느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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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H로부터 에디트를 받고서 진짜로 되는 건지 확인해보고선, 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내 컴퓨터 깊숙한 곳, 소중한 폴더에 숨겨놓았다. 심지어 누가 볼까 싶어 폴더 이름도 티서치가 아닌 다른 걸로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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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힘들겠지만 정말로 그렇다. 뭐 열분들 같은 범인들이야 킹왕짱 짱짱맨이 되어서 다 녹이고 다니고 싶겠지만, 잇츠미, 나니까. 10년 전의 이야기이니 그때의 나를 기린아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못믿으면 어쩔 수 없다. 정말 나는 에디트를 사용하지 않았다. 한동안은 밤하늘에서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처럼 내 마음 속 깊은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양심의 소리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요즘 밤하늘에는 별이 없다. 그분 마음 속에도 없는 것 같다.)

 



4. 그것의 사용


그렇게 에디트의 존재만 알고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스트로엔(이하 아엔)의 초반 상승세는 한풀 꺾이고, 유저가 상당히 줄게 되었다. 당시 동시 접속자가 600~800명 사이였던 것 같다. 나는 고레벨 축에 속하게 되었고, 클랜도 가입해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당시 아엔 홈페이지를 통해 유저들의 전쟁 기여도나 명성 등을 공개하고 있었는데, 우리 종족에서 30등 안에는 꾸준히 들었던 것 같다. 여기 글을 올리면서도 혹시 내 아이디를 공개해버리면 나를 아는 사람이 나타날까 겁나기도 한다. 아엔 이미지들 쭉 찾다보니 내가 찍은 스샷을 어느 뉴스에서 쓰고 있더라. 뭐 암튼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또 잘 한건 없으니까.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레벨 39에서 40 올릴 때 너무~~~~~ 힘들어서 에디터를 한번 썼다. 그때 딱 한 번. 사냥터 자리는 없고 경험치는 어마어마하고 그래서 ㅠㅠ 잘못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에피소드. 어떤 고레벨 유저가 나를 핵유저로 지목한 적이 있었다. 슈르도 풍림X산 클랜의 신XX. (소심하게 X 처리함) 그가 나에게 귓말로,


“OO님 핵 쓰시죠?”


이렇게 물어봤었다. 그때 그 심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떻게 알았을까, H가 다 불은 것일까 부터 내가 딱 하루 쓴 그날 봤나? 운영자가 알아내서 알려줬나? 등 온갖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었다. 뜨끔한 마음도 있었지만 나로서는 꽤 억울한 마음도 들어서, 열심히 변명을 했다. 직접 내가 사냥하는 방법도 보여주고, 아이템도 다 보여주고 머 다 내가 사냥을 잘해서 의심을 사게 된 거시지. 기린아가 어딜 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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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 맛나군


 

이제 슬슬 막바지로 가고 있다. 그렇게 몇 개월이 더 지나, 겜에 유저가 정말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망조 그때 동시접속자가 300명 정도. 온라인게임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완전 초창기 때 시작한 유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유저들이 떠나게 되었다. 신규 유저도 거의 없었다. 어쩌다 한명 만나게 되면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아이템 썩은템도 주고, 친절하게 인사하고, 알려주고 그랬다. 이렇게 된 이유야 따지고 들면 끝도 없이 많으니.. 생략. 상황이 이러니 나도 슬슬 아엔에 대한 애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초고레벨 축에 속해있는데 얼마나 더 키워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전쟁도 슬슬 질려가기 시작하고. 게다가 이쯤 아엔의 거의 모든 업데이트가 중단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패치 소식이 올라와서 기쁜 마음으로 공지 글을 확인해보면 [서버 안정화]. 아이템도, 벨런스 조정도, 사냥터 추가도 없이 1년 내내 서버 안정화 패치만 이어졌다. 때는 정말이지 단통법이든 뭐든 바꿔 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때 유저들 사이에서는 게임 개발자가 월급을 못받아 도망가 버렸고, 그래서 게임 패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전에 우연히 어느 사이트에서 아스트로엔 개발자들이 나오는 10분 정도 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운영진이 3명이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 게다가 영상내용은 맘 아푸게시리 맨날 야근해서 떡볶이와 컵라면으로 밥을 대신한다는 짠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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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ㅡㅡㅡㅡㅡ앙



결국, 나는 이대로 가다간 겜이 망한다는 판단이 섰다. 기린아다운 판단이다. 게다가 H 말고 핵을 쓰는 유저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놓고 한 것은 아니고 암암리에) 커뮤니티에서도 심심찮게 핵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여전히 업데이트는 없고 서버안정화 패치만 이어졌다. 나는 사나이다운 계획을 세우고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기로 했다. 새로 아이디를 만들었다. 그리고 제일 구진 아이템을 에디트로 조작하여 무한에 가까운 파워를 만들고, 전 맵을 쓸고 다녔다. 누가 보건 말건 초고속으로 날아다니며 계속 맵을 휩쓸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없어질 것 같은 멘트도 덧붙였다.


"운영자는 패치를 하라! 버그를 막아라! 패치할 때까지 버그를 쓰겠다!"


부끄럽다. 암튼 내 나름대로는 데모랍시고 몇 시간을 그러고 다녔다. 생각보다는 반응이 없었지만(대부분 핵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니) 커뮤니티에서 스크린샷에 찍혀서 등장하기도 하고 게시판에도 올라가고 그랬다.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아마 나빠졌다면 더 나빠졌겠지. 기름 투척 


정녕 아무런 희망이 없나 하던 찰나에 나에게 마지막 기회가 왔다. 본래 내 아이디로 접속해서 마을에서 놀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운영자가 접속한 것이다. 운영자는 그전에도 가끔 test_001이라는 누가봐도 운영자다운 아이디로 마을에 오곤 했다. 나는 큰 결심을 하고, 운영자에게 모든 것을 말하기로 했다. 귓말로 운영자에게 핵이 있다는 것과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을 알려줬고 30분 정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운영자는 얼마 전 있었던 '시위사건'을 알고 있었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다 부질없는 일들이었다. 온라인 게임을 만든 사람들이 티서치로 수치 조작하는 것쯤을 몰랐을 리가 없지 않은가. 지극히 꼬꼬마다운 유치한 발상이었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꼬꼬마 특유의 중2병 기질도 좀 작동했던 것 같고. 그래도 그때는 이게 최선의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운영자 측에서도 알고도 막을 수 없었던 기술적인 한계가 있었으리라.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서버에서 서비스를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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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외국 서버를 다시 열고, 몇 년 서비스했지만 다시 핵 때문에 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아주 잠깐 했었다. 브라질, 미쿡, 프랑스 등등 외쿡 친구들도 사귀고. 망할 군대 가면서 그만둠!)

 

자, 이렇게 끝이 났다. 영양가도 없는 소리를 길게도 늘어놓았다. 뜬금없이 아스트로엔 이야기를 지금 하는 이유는, 암 것두 없다. 그냥 생각이 났고, 그때가 그리워서. 정말 좋아했던 게임이기 때문이다. 핵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게임이 망가질까 싶어 쓰지 않았던, 처음 핵을 받았던 그때 운영자에게 신고했으면 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내 꼬꼬마 시절의 어리숙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립다.

 

끄읕.



뱀발) 이거 꼭 빼먹지 말고 넣어야지 생각했는데, 꼭 이런 건 빼먹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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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들 찾아보면서 클라이언트를 다시 다운받았다. 한국에서 서비스했던 건 찾을 수 없고, 외국에서 서비스했던 시절 클라이언트를 받아서 설치까지 해놓았다. 전에 유저들끼리 아스트로엔 폴더 안에 있는 저 dat.pcl 파일을 뜯으면 모든 데이터를 손댈 수 있다고 했었는데, 저 파일로 프리 서버 같은 걸 만들 수 있을까? 어떤 프로그램을 쓰면 되는 걸까?








문화불패 cocoa


편집: 나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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