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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투불패]쥐약

2014-11-0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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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투아웃 추천6 비추천0

2014. 11. 07. 금요일

식신불패 아직은투아웃 










편집부 주


이 글은 식신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아직은투아웃님의 글은 1번 더 납치될 시, 

삼진 아웃의 원칙에 따라 

딴지 필진으로 임명되어 강제 노역에 동원됩니다.

  




 



 








기왕이면 음악 하나 들으면서 읽자.

 

 

 

 

  

예전에는 쥐가 많았다. 


시골의 농사 짓는 초가집에도, 서울의 벽돌과 시멘트로 새로 지은 단독주택에도 쥐는 어김 없이 살고 있었다. 그 시절 쥐는 이 나라의 공적이었다. 쥐는 잡아 죽여야 할 대상이었다. 쥐는 우리의 삶을 갉아 먹고 훔쳐 먹는 동물이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다니며 병을 옮기는 더러운 동물이었다. 그 사실은 아직 유효하다. 쥐새끼는 사악하고 더럽다. 

   

나보다 더 나이든 이들이 얘기하는 '쥐 꼬리 잘라 학교 가져가기'를 경험한 적은 없다. 단지 그 시대를 겪은 이들의 이야기과 드라마를 통해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차이에 있어 조금 다를 뿐 나의 어린 시절에도 쥐는 박멸의 대상이었고 잡아 없애야 할 해악 자체인 동물이었다. 쥐새끼는 야비하고 탐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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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밤 사이 온 집안을 헤집으며 온갖 것들을 쏠아대는 통에 구멍이 뻥 뚫린 가마니에서 흘러나온 쌀이 툭하면 온 마룻바닥을 뒹굴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기 위해 수돗가에 엎드려 비누를 집어들면 끌에 깍인 것만 같은 쥐새끼의 이빨자국이 손가락에 자주 만져지곤 했다.

 

집의 구석진 곳마다  까맣게 굴러 다니는 쥐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창고든 지하실이든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았던 공간의 문들을 열어제낄 때면 느닷없고 갑작스런 쥐새끼들의 호들갑스런 발소리가 어지럽게 들리곤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오랫동안 신지 않던 오래 된 신발을 신발장에서 꺼내 본 어느 날 나는 깜짝 놀라 신발을 던지며 뒤로 주저앉고 말았다. 뿌옇게 먼지 앉은 신발 안에는 갓 태어난 쥐의 새끼들이 눈도 아직 못 뜬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무서운 광경이었다. 그렇게 쥐는 늘 우리 주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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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자주 싸웠다. 어린 내가 그 싸움의 원인에 대해 깊이 알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원인이 어머니에게 있는 경우는 드물어 보였다. 어머니는 조용하고 순한 여자였다. 어쩌다 한 번씩 내쉬는 어머니의 한숨이 길어지고 그 길어진 한숨의 빈도가 확연히 잦아질 즈음 싸움은 벌어졌다.

 

때로는 사소한 다툼으로 나타났다. 또한 때로는 큰 소리가 들리는, 조금은 긴장되는 말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와장창 소리가 들리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요란한 큰싸움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드물게는, 요란한 소리는 오히려 적지만 어머니의 얼굴에 퍼런 멍을 만드는 심각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전쟁 같은 싸움의 끝에서 아버지의 주먹에 대항해 내미는 어머니의 무기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쥐약이었다. 어머니는, 쥐를 잡기 위해 집 구석구석에 쳐놓고 남은 쥐약을 찾아, 부엌쪽으로 달음질치곤 했다. 쥐약을 먹고 죽어버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자살하면 곧 쥐약을 떠올리던 시절이었다.


그럴 때면 기겁을 한 아버지는 서둘러 어머니를 막고 붙잡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진땀을 빼가며 어머니를 막던 아버지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하곤 했다. 물론 자식들이 보는 앞은 아니었다. 쥐약은 어머니의 마지막 무기였다.

  

집에 쥐약이 없는 경우에 어머니는 비장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약국으로 가 쥐약을 사 올 것을 명령하곤 했다. 손바닥에 꼬깃한 천 원짜리를 쥐여주면서 어머니는 세차게 등을 떠밀곤 했다.

 


 "어서." 

 


그것이 어머니에게 가장 큰 무기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쥐약을 찾느라 시끄러울 때면 방안에 있던 자식들조차 지난 봄에 쥐약을 잘못 먹고 죽어버린 누렁이를 떠올리며 엉엉 울어대곤 했었다.

 

쥐약은 곧 죽음을 뜻했다. 그리고 쥐약은 어머니에게 최후의 보루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부부싸움의 마무리를 의미했다. 나는 부모님 사이에 싸움만 벌어지면 어서 어머니가 쥐약을 찾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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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이었을까, 6학년이었을까. 어정쩡한 나이였다. 이미 꼬마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청소년의 위치에 놓기에도 아직은 애매한 시기였다. 1월로 기억한다.

 

그날 벌어진 부모님의 싸움은 어린시절 몇 번 겪어보지 못했을 만큼 큰 것이었다. 한바탕의 난리가 지나간 뒤 얼굴이 많이 부은 어머니는 참으로 서럽게 울었다. 좀체 자식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시던 분이었다. 어린 나의 눈과 귀에도 어머니의 울음은 몹시 슬프고 가슴 아파 보였다.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나는 커서 아버지에게 꼭 복수하리라 마음먹었다.

 

한참을 서럽게 울던 어머니는 역시 쥐약을 찾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류하지 않고 있었다. 이번 싸움은 지난날의 그것들보다 더 커질 모양이었다. 나의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저러다, 어머니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아버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행히 집에 남아 있는 쥐약은 없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찾았다. 어머니의 손에는 예의 꾸깃한 천 원짜리가 두 장이나 들려 있었다. 다른 때와는 달랐다. 어머니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xx야, 가서 쥐약 사 오너라. 이 돈만큼 모두 달라고 해라. 십 원도 남겨 오지 말아라."


 

나는 몹시 난처했다. 어머니는 나의 등을 재차 떠밀며 재촉했다. 나는 거북한 시선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계속 나와 어머니를 외면하고 있었다.


 

"어서!"


 

화난 듯 날카로워진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거칠게 나를 문 밖으로 밀어내며 낮고 무서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명령했다.    

 


"얼른 가서 쥐약 사 와."


   

집을 나선 나는 동네를 한참 헤맸다. 닥쳐 온 이 상황에 대해 아무리 고민을 해 보아도 내 힘으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 시간이 넘게 동네 놀이터에 앉아 고민을 했지만 어린 내게  떠오르는 해결책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얇은 옷차림으로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 나온 나에게 한겨울 밤의 동네 놀이터는 너무 추웠다. 이런 저런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약국으로 갔다.

  

희멀건 얼굴에 안경을 쓴 약사가 나를 맞았다.

 


"그래 뭘 줄까?"


"쥐약 주세요."


"쥐약?... 엄마가 사 오래?"


"네."


"그래? 쥐 잡는 데 쓰려고 하는 거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그걸 드시려 한다는, (혹은 겁을 주려 한다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나를 그러나 약사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이걸로 가져가거라."


"..........."


"새로 나온 건데 아줌마들이 이게 좋다더라. 자."


"............"

   


별 수 없이 약사가 내미는 쥐약 두 봉지를 들고 약국 문을 나서야 했다. 다시 동네를 한 바퀴 돈 나는 결국 추위를 이기지 못한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집은 뜻밖에 조용했다. 내가 쥐약을 사오느라 지체했던 긴 시간이 어쩌면 부부싸움을 소강상태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는 혼자만의 생각도 잠시, 갑자기 거칠게 안방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뛰듯이 나에게 다가왔다. 어머니는 순식간에 내 손에 들린 봉투를 빼앗았다. 뒤따라 나오던 아버지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서 약봉투를 빼앗으려 했지만 어머니는 순식간에 자식들의 방으로 들어와 방문의 잠금장치를 눌러버렸다. 단호한 모습이었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모습에 아버지는 몹시 당황한 듯했다. 큰 소리를 질러대며 방문을 두드리던 아버지는 곧이어 주먹으로 문짝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고함과 문을 부수는 소리와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보며 언제부턴가 동생들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약봉지에서 쥐약을 꺼내는 어머니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해 보였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나는 뭔가 일이 크게 잘못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에게 큰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나는 겁먹은 눈으로 어머니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문이 부숴지는 험악한 소리와 그보다 더 큰 아버지의 고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는 약봉지에서 꺼낸 쥐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돌린 어머니의 눈길은 나를 향했다. 지금껏 보지 못한 무서운 눈길이었다. 나는 차마 어머니의 눈을 마주볼 수 없었다. 나는 눈을 돌려 어머니의 손에 놓인 쥐약만을 천천히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예라, 이 자식아."


 

갑자기 세차게 내 등짝을 내리치는 어머니의 매운 손길과 고함에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아픈 손길은 나를 쳐다보는 눈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어머니의 삶이 나 때문에 망가져버리기라도 한 걸까? 할 수 없이 무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어머니는 다시 내 등짝을 때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언제부터일까?  어머니의 곁에는 이미 쥐약을 앗아 손에 든 아버지가 묵묵히 그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럴 때는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는 듯 묘한 표정을 한 채 쥐약과 나와 울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차례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울음은 좀체 그치지 않았다.

 

웃음을 참기가 힘든 듯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혀를 깨물어가며 어머니를 달래기 시작했다. 이제 어머니의 울음은 묘한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서방 복 없는 년이 자식 복이라고 있을까. 그걸 믿은 내가 미친 년이지. 엉엉."  

 

  

미안해 하는 표정으로 어머니의 등을 토닥이고 있는 아버지의 손에 들린 것은 쥐약이었다. 그것은 내가 사온 쥐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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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등짝을 때리는 어머니의 손길과 기특하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아버지의 손길을 동시에 받으며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약국에서 들었던 약사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요즘은 새로 나온 이게 잘 나간다. 

예전처럼 먹여서 죽이는 게 아니고 본드로 붙여서 잡는 거라 안전하거든. 

이걸로 가져가거라."

 

 

끝.

 


 

 



 PS. 쥐는 계속 잡아야 한다. 박멸을 시켜야 한다. 끝까지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 쥐새끼는. 안 그런가?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졸라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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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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