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4. 11. 10. 월요일 

퍼그맨 










비교적 성에 개방적인 사람들이 많은 직장(딴지그룹)을 다녀서일까? 나의 성생활은 명랑한 편이다. 내가 절륜하다는 의미는 아니고, 문제가 있으면 혼자 끙끙 앓기보단 상대에게 솔직하게 말해 함께 해결책을 도모한다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가감없이 얘기해 조언을 구하고 있다는 거다. 그 결과, 이 방면에 고민이 생기면 비교적 쉽게 쉽게 해결하기에 길게 끈 고민도 거의 없고 만족도도 높다. 


물론 이런 삶이 100% 명랑하기만 한 건 아니다. 우선, 내가 비밀로 하고픈 부분이 다른 이의 귀에 들어가는 걸 통제할 수 없어진다. 공인들의 경우처럼 불특정다수가 내 사생활을 알게 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랑 친하지 않은 누군가가 내가 밤에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빤히 알고 있는 상황이란 부끄럽기 이전에 불쾌하다. 조언을 구하는 과정에서 여자친구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문제겠다. 여자친구 또한 감추고 싶은 부분과 드러내도 좋은 부분의 경계가 있을 것인데, 나는 그 선이 어떻게 그어져있는지 다 알지 못한다. 


요컨데 성에 개방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무조건 성적으로 명랑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얘길 왜 하냐고? 최근 곽정은이라는 개인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일어난 사실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졸라 주관적인 분석을 함 해보려고 떡밥을 던지는 거다.


천천히 설명해드릴 테니, 일단은 문제의 발단이 된 발언을 보자. 


IE001770918_STD.jpg


성인이라면 술자리에서 어렵지 않게 할 법한 당 발언은, 그러나 SBS라는 공중파 방송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곽정은이 비난 받는 이유가 그 발언의 수위가 공중파에 걸맞지 않게 높았기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아래 예들을 보면 뭐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저 정도 수위는 우스운 수준이라서...


trouble.JPG


1_f.jpg


그럼 곽정은에 대한 비난은 '남자가 여자에게 했으면 문제가 됐을 발언'을 이에 대한 인지 없이 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하실 분들에게 본 기레기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① 어떤 권리를 다 함께 누리지 못한다면 이미 누리고 있는 이들의 권리까지 제한해야 옳은 것인가?


② 그럼 남자들도 저런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곽정은의 저런 발언은 괜찮은 것인가?


권리를 누리는 정도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세금 환급 받는 것만 봐도 열심히 환급 신청하는 사람은 받고 안 신청하는 사람은 못 받지 않는가? 그렇다고 세금 환급 받는 넘들을 못 받게 하자 주장할 수 있는가? (이런 논리로 만들어진 법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이름이 단통법이라지, 아마...) 부당하게 누리는 권리가 아니라면, 그것이 제한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 곽정은이 누렸던, 자신의 성적인 발언을 당당하게 표현할 권리는 부당히 누려진 것이었나? 다시 말해 저 발언을 자기 마음대로 하기 위해 권력 같은 걸 행사하는 등의 구린 행동이 있었던가? 아니다. (방송에서 해당 발언을 접하고 불쾌감을 느꼈던 분들도 계시다는 걸 알지만 그 감정은 해당 방송에서 미디어의 권력을 느꼈기 때문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 온 것이라는 게 이 글의 요지다. 뒷부분에 설명하겠다.)


답이 갈리는 것은 2번 문제다. 가치관 차이에 따라 괜찮다고 할 분들도 있고 아니라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차이'에 따라서다.) 즉, 저런 발언이 용인되는 사회를 바라는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이것은 답이 없는 문제다. 따라서 '남자가 여자에게 했으면 문제가 될 발언을 여자가 했다고 허용되었다'라는 비판이 이끌어낼 수 있는 두 가지 개선책, '그럼 남자들도 섹드립 맘껏 날리는 걸 용인하자'든, '여자들도 조심하자'든, 진정 명랑한 결말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역으로, 그녀가 방송에서 여러 성적인 발언을 했는데 다 짤리고 그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생각해보자. 한 쪽에서는 '아직도 저런 말 자유롭게 못 하는 세상'이라는 비판이 당연하다는 듯 나오지 않았을까?


물론, 곽정은의 저 발언을 통해 '여자라서 용인'되는 '사회의 역차별 분위기'를 비판하는 것은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위 두 질문을 거치면 그 사실이 비판의 대상을 곽정은으로 한정할 때에도 유효하진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비판의 대상이 '사회의 역차별 분위기'가 아닌 '곽정은이라는 개인'이 되어버린 것을 보고 있다. 


대체 왜? 


사건에 대해 곽정은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해명글을 보자.


kwakblog.JPG 

아직 못 본 분들을 위한 해명글 링크


요지는 이렇다. 해당 발언은 피해자가 없으므로 성희롱이 아니며 나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성적 욕망을 방송에서 표현했을 뿐이란 것. 이러한 해명은 일면 '나꼼수 비키니 사건'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2ae2ab4acd96784dab8fef5eae6fd721_1.jpg


그 때 김어준 총수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성적 대상화, 솔직히 했잖아, 이 새끼들아!" 


문제는 불쾌한 농담을 권력 관계를 악용하여 하였는가 이지, 성적 대상화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건 누구나 하고 있는 거니까! 곽정은의 해명과 같은 차원의 발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에 공감하기 보다 비난한다. 이쯤 되면 그녀의 표현대로 사람들이 '먹잇감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려나 싶다. 


과연 그럴까? 나는 위 해명글의 다른 부분에서 그녀가 까이는 이유를 발견했다. '까일 만 했다' 따위의 결론을 내려는 건 아니다. 그녀의 해명글에서 내가 발견한, '이 생각'은 그녀 혼자 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쿨한 것이 좋다'는 강박이다.


이런 노래가 공감을 얻는 걸 보면

'쿨한 것이 좋다'는 관념은 이미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정리해드리자면, '쿨한 것이 좋다'는 전제에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고 있었고 곽정은의 해당 발언이 이것을 건드렸다는 분석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겠지만 '건강한 욕구의 분출을 경험하지 못한 사회'에서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할 뿐'이라던 곽정은의 해명글이, 성토하는 분위기에 더 불을 붙이게 된 현상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해볼 수 있었다. 누구나가 하고 있는데 내가 당신보다 솔직할 수 있었을 뿐이라는 설명은 이렇게 우리의 불편함을 증폭시킨다. 


우리는 쿨하지 못하다. 그것은 나도 당신도 곽정은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나는 쿨하지롱'한다면? 그리고 너도 나처럼 되는 것이 당연한데 왜 그러지 못 하냐고 얘기한다면? 


나의 지인 중에 여자 친구가 처녀가 아니었음을 알고 괴로워하던 녀석이 있다. 그 정도로 뭘 괴로워하냐고? 그냥 처녀가 아닌 정도로 그친 게 아니다. 낙태 경험만 3번이었다. 이 녀석은 자신의 여자친구가 연상인 만큼 당연히 성경험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에 당연히 괴로워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괴로워하는 건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속 좁음'에 대한 것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무하고나 잔 것도 아니고 전부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였는데 그걸 이해 못 하는 자신이 너무 찌질하게 느껴지더라."


생각해보면 '경험 있음'으로 인해 자신의 입장을 뒤바꾸는 것이 잘못이지 '경험 있음'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는데, 그 때는 그걸 말해주지 못 했다. 지금 혹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다른 이와 벗고 누워있는 걸 상상해보라. 불쾌하지 않을 자신 있는가? (극소수, 연인이 다른 사람과 하는 걸 보며 즐기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예외라 쳐도 될 것이다.)


when_bride_not_virgin_0.jpg


내 지인은 마치 자기 검열처럼 자신의 쿨하지 못함을 탓하고 있었으나 쿨하지 못한 사람들과 쿨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 우열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비키니 입고 정치적 표현을 하는 여자가 못 된다고 해서 열등하지 않은 반면, 남자들의 성적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칠 수 있는 여자가 된다고 우월해지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도 우열관계가 성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은연 중 여기에 우열이 존재하는 듯 행동하게 된 이는 곽정은 만이 아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성에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다는 것은 명랑하지만은 않으며 심지어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불특정다수에게 내 욕망이 노출되며 가깝지도 않는 사람이 내 성적 취향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며 웃고 떠들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출'을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사람까지 겪게 된다. 이 어찌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 일일까?


곽정은이 저런 발언을 여러 사람 앞에서 당당히 얘기할 수 있게 되기까지 많은 내적 단련이 필요했을 거다. 딴에는 용기를 내서 한 말인데 사람들 반응이 저러니 자신이 마녀 사냥 당하고 있는 거란 느낌을 받은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는 마녀 사냥이라기보단 권력에 대한 저항의 측면이 컸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저항은 미디어 권력에 대한 것이나 여권이 신장되는 와중에 발생한 역차별에 대한 것도 아니다. 미디어 쪽이라면 시청자에게도 채널 선택권과 시청자 항의 등 충분한 시스템이 있고, 역차별이 문제였다면 그녀에 대한 성토는 남자들만의 행동이었어야 했지만 일부 여자들도 불편했던 게 사실이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권력은 '쿨한 것'이 우리 사회에서 갖고 있는 후광이 아닐까? 곽정은 또한 이 후광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뿐이기에 이토록 많은 비난이 그녀에게 향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곽정은은 잘못 없다'는 결론을 원한다. '방송에서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표출한 것'과 '엄숙주의 사회'라 자신이 먹잇감이 되었다는 '해명글', 비난의 초점이 어느 쪽이든, 그것은 '쿨한 것'이 우월한 것인 양 당연스레 선망하던 우리 모습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섹스 문제에 쿨하지 않은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체온은 36.5도 아닌가. 쿨하다고 하기엔 너무 높은 온도인 거다.


혹시 쿨하지 못해 미안해하고 있거나 자신의 쿨함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 땅에 명랑 사회가 도래하려면 쿨한 몇몇만 즐거운 것이 아닌, 쿨하지 못한 다수 또한 즐겁고, 나아가 찌질이에 찐따라 해도 주눅들 필요 없어야 할 테니까. 









퍼그맨

트위터 : @ddanzipugman

Profile
딴지그룹 마켓팀원. 편집부 일도 하고 왔다갔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