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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18.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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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인도네시아 흑마술사, 두꾼(Dukun)

한 맺힌 여인, 꾼띨아낙(Kuntilanak)

뽀쫑(Pocong)

순델볼롱(Sundel Bolong)






한국에 아이들과 관련된 설화나 괴담들이 많은 것처럼 인도네시아에서도 아이들, 특히 갓난아기들과 관련된 무서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유산을 하거나 출산 중에 태아가 사망하는 일 혹은 유아가 사망하는 일이 턱없이 높던 시절, 그 참담하고 슬픈 상황을 귀신의 못된 수작으로 돌리려 했던 선조들의 의지가 녹아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갓난아기를 노리는 많은 귀신들 중 빨라식(Palasik) 부류와 꾼띨아낙(Kuntilanak) 부류는 그 목적 자체가 분명히 다릅니다. <순델볼롱>편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빨라식은 쁠레싯(Pelesit)이라고도 불리며 수마트라 미낭까바우지역의 전설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깔리만탄의 꾸양(Kuyang)이라 불리는 요물과 같은 계통이라 여겨지는 빨라식은 기본적으로 특별한 흑마술을 시전하는 두꾼이 그 본체입니다. 그는 평소엔 인간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섞여 지내지만 밤이면 몸에서 머리가 떨어져 나옵니다. 내장들을 줄줄이 매달고서 공중을 날아다니며 사람 피를 빨아먹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빨라식의 흑마술은 자녀들에게 물려지며 다른 빨라식 가문의 자녀와 혼인하여 그들이 요물 빨라식이라는 비밀을 지킵니다.


빨라식의 주식은 갓난아기입니다. 그래서 빨라식이 아기들을 노리는 것입니다. 종류에 따라 산모의 뱃속 태아를 뽑아서 먹어버리기도 하고 출산 중에 사망한 아기의 무덤을 파고들어가는 놈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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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띨아낙도 갓난아기를 산모에게서 빼앗아 오곤 하지만 아기를 해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출산 중 사망해서 아기의 얼굴을 직접 보지도 못하고 아기를 단 한 번도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채 원귀가 됐기 때문이죠. 남의 아기를 납치하는 것은 매우 죄질이 나쁜 범죄행위이고 귀신이 사람의 아기를 키울 수도 없지만, 꾼띨아낙은 직접 아기를 키우려고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꾼띨아낙이 빨라식의 난행을 가만 둘리 없습니다.


꾼띨아낙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벤져스>처럼 별개의 시리즈에서 가져온 주인공을 서로 대결하게 만드는 영화들이 유행함에 따라 인도네시아에서도 <뽀쫑 vs 꾼띨아낙>이라는 심히 실망스러운 스토리의 영화를 내놓은 바 있었습니다. 그런데 뽀쫑과 꾼띨아낙은 서로 대결한 만한 현안이 없었어요.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이 <빨라식 vs 꾼띨아낙>의 구도로 가는 것이 보다 합당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세상이 그렇듯 귀신들의 세계에서도 인지도가 문제가 됩니다. 꾼띨아낙이 인도네시아 전국구 귀신이었음에 비해 빨라식은 고작 지역구 귀신이었으므로 그 레벨의 차가 너무 컸다는 것이 캐스팅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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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띨아낙과 빨라식과는 반대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귀신도 있습니다. 바로 네네곰벨(Nenek Gombel–곰벨출신 할머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웨웨곰벨(Wewe Gombel)’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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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다족의 전승에 따르면, 웨웨곰벨은 거대한 젖가슴을 늘어뜨린 할머니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아렝가삐나타 야자나무 꼭대기에 살며 납치해온 아이들을 키웁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고 아이들 역시 그녀의 품안에서 아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웨웨곰벨은 가정에서 학대받거나 관심 밖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주로 납치해, 마치 할머니가 손주를 대하듯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호해 주다가 아이들의 부모가 그간의 잘못을 후회하면 부모에게 돌려보낸다고 합니다.


말레이 민속에 등장하는 꼬뻭귀신(Hantu Kopek)과 외관상으로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 성격과 추구하는 목적은 천양지차(天壤之差)입니다. 꼬빽귀신의 전설이 바다 건너 인도네시아로 넘어오면서 웨웨곰벨의 전설과 뒤섞여 변형된 흔적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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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빽귀신은 웨웨곰벨처럼 크고 긴 젖가슴을 가진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수유하는 엄마의 젖을 빼앗아 완전히 말려버린 후 배를 곯는 아기를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주로 거대한 젖으로 휘감아 질식시켜 죽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면에서 바장귀신(hantu Bajang)과 비슷한데 임신선이나 배가 불러오면서 살이 트고 갈라지는 것은 바장귀신이 할퀴고 간 흔적이라고 합니다. 꼬빽귀신으로부터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기 가까이에 뭔가 날카로운 물건을 두어야 하는데, 꾼띨아낙으로부터 태아를 지키기 위해 산모가 날카로운 못이나 바늘, 은장도 같은 것을 지니고 다니는 것과 맥락이 닿습니다.


웨웨곰벨과 꼬빽귀신 모두 저녁 마그립 기도시간 즈음부터 나타나는데, 그래서 땅거미가 드리우기 시작하면 부모들은 ‘웨웨곰벨한테 잡혀가기 전에 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아이들에게 소리치곤 합니다.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땡깡 부리면 나중에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간다’라고 하거나 보채며 우는 아이들에게 ‘호랑이가 우는 애기들을 물어간단다’라며 어르며 달래던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밤에 돌아다니는 귀신들의 이야기들은 산짐승들이나 도적들이 활개를 치던 시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놀기에 정신이 팔린 어린 아이들 등을 떠밀어 안전한 집으로 빨리 돌아가도록 하는 좋은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모질게 대하는 부모들에게 경종을 울리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넘쳐흐르는 상상력을 가진 어린아이들은 머릿속으로 무시무시한 웨웨곰벨을 떠올리며 무서워 진저리를 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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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웨곰벨에 대해 기술한 자료 하나를 들춰봅시다.


전승에 다르면 웨웨곰벨은 긴 젖가슴을 늘어뜨린 여인으로 묘사되며 높은 나무 위에 처소를 만들어 잡아온 아이를 둔다고 합니다. 아이에게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쓰레기 같은 음식을 주는데, 처음엔 아이들의 입 속에 억지로 처넣지만 나중엔 아이의 눈에 그 쓰레기들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보여 허겁지겁 먹어 치웁니다. 그렇게 웨웨곰벨이 주는 음식을 먹은 아이는 어느새 차분해지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 없어집니다. 아이가 제 정신을 차린다 한들 오금이 저릴 정도의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누가 도와주지 않는 한 밑으로 내려갈 방법도 없습니다.


납치된 아이를 찾기 위해 어른들은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선 동네사람들을 동원해 마을 인근과 귀신이 살만한 아름드리나무들을 뒤지며 수색합니다. 이 때 코코넛과육을 가는 강판이나 땀빠(Tampah)라 불리는 소쿠리 같은 전통 주방용품들을 리듬에 맞춰 벅벅 긁어대거나 땡땡 두드립니다. 이렇게 숲속을 헤쳐 나가다 보면 웨웨곰벨이 이 소리에 맞춰 나무 위에서 춤을 추고, 그 와중에 젖가슴 밑에 감춰둔 아이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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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내는 데에 더 이상의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리듬이 더해져 웨웨곰벨의 춤이 격해지면 아이가 나무 밑으로 추락할 위험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납치대응 프로토콜이 참 꼼꼼합니다.


어른들 눈에 띈 것을 안 웨웨곰벨은 곧바로 자취를 감춥니다. 대적하려 하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물리적 위해를 끼치려 하지 않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아이를 되찾았다는 거죠. 납치의 여파로 아이는 혼란을 겪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웨웨곰벨에 대한 공포도 점점 잊을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시골주민들에게 웨웨곰벨은 익숙한 존재입니다. 자바의 전승에 따르면 웨웨곰벨은 사람과 닮았지만, 무시무시한 어금니와 긴 손톱을 가졌고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칼에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아마 ‘곰벨(gombel)’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의미의 ’gembel’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웨웨곰벨은 주로 아이의 친구나 형제, 부모의 모습으로 나타나 산책을 청하는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이 납치당한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런 식으로 웨웨곰벨은 아이들을 자신이 사는 곳까지 데려가는데 그곳은 수로나 강둑일 수도 있고 무덤이나 수목이 빽빽하게 들어찬 한적한 곳일 수도 있습니다.


1980년대에 중부 자바 뿌르워레조(Purworejo) 지역에서 아이들이 웨웨곰벨에게 많이 납치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역주민들은 아직까지도 당시의 공포를 기억하고 있어 조금만 날이 어두워져도 아이들을 집안으로 불러들이곤 합니다. 필자(이야기 속 필자)도 주민들에게 당시의 일을 묻다가 함께 물야니(Mulyani)라는 여자 아이를 찾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물야니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안 건 밤 9시경이었고, 그 마을의 한 두꾼으로부터 ‘물야니가 악마에게 잡혀 갔으며 그 악마는 필시 웨웨곰벨일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두꾼의 지시에 따라 주민들은 프라이팬, 버켓, 접시, 유리잔, 밥그릇 같은 주방용품들을 가지고 나갔고 아이를 찾는 내내 그것들을 두드리거나 긁어서 소리를 냈습니다. 웨웨곰벨이 그런 소리를 무서워해 도망간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웨웨곰벨이 도망갈 때 아무쪼록 납치한 아이만은 놔두고 가기를 기대했습니다.


한참을 찾았을 때 우리는 물야니가 숲 속의 높은 나무 위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말을 못했습니다. 입고 있던 옷은 누더기로 갈아입혀져 있었고 몸 전체에 마른 풀이 엉겨 붙어 있었습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연 물야니는 자신이 개천에서 멱을 감을 때 엄마가 나타나 산책하자고 말을 했고 엄마를 따라나섰다고 했습니다. 물야니는 어딘가 매우 번잡한 곳을 지난 것까지는 기억했지만 그 이후의 기억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주민들은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웨웨곰벨은 늘 그런 방법으로 아이들을 납치하곤 했으니까요. 웨웨곰벨은 형제자매로 변신해 아이를 안심시켜 데려간 후 혼을 빼놓았습니다. 그래서 땅거미가 내리기 전에 아이들이 집밖에서 놀지 않도록 하고 해변이나 하천 등 한적한 곳에서 혼자 물놀이를 하거나 쓰레기처리장 같은 곳도 혼자 다니지 않도록 조심시켜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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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주작의 냄새가 조금 나지만, 어쨌든 이 두 개의 기사가 묘사하는 웨웨곰벨은 차이점을 보입니다. 지역에 따라 웨웨곰벨에 대한 관념이 틀리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웨웨곰벨들이 서로 다른 성격과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순델볼롱의 얘기를 해주었던 까라왕 출신 할머니도 웨웨곰벨을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6~7살 때의 일이니 1950년대 말이나 1960년대 초의 일일 겁니다.


아이들은 모를 심기 위해 물은 대어 놓은 논에서 소리를 질러대며 즐거운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논에서 개구리며 가재를 잡고 있었는데 낮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미꾸라지들이 저녁이 가까워짐에 따라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나중엔 논에 있던 미꾸라지들이 몽땅 다 몰려들었는지 가져온 소쿠리들이 가득 찼고 잔뜩 재미가 들린 아이들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미꾸라지를 잡는데 빠져 있었습니다.


“어, 저기 누구야?”


그 중 한 아이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아이들도 아이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지는 해가 남긴 강렬한 진홍색 노을을 등지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논 한가운데에서 허리를 숙인 한 여자가 아이들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면서 미꾸라지들을 몰아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여자의 키가 성인 남자보다 더 커 보였거든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논의 진흙바닥을 헤집고 있는 그 여자의 팔은 두 개가 아니라 네 개처럼 보였습니다.


“아줌마 누구세요?”


까라왕 촌구석 작은 마을에 사는 아이들에게 모르는 어른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얼굴을 들어 아이들에게 웃어 보일 뿐이었습니다. 윤곽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자글자글 주름이 진 할머니인 것만은 틀림없었습니다.


“저, 누구시냐구요?”


그러자 할머니는 살짝 돌아 등 뒤의 노을이 점점 어두워져 가는 것을 보더니 더욱 큰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몸을 세웠습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하니?”


몸을 곧추 세운 할머니는 거대하다고 할 만한 키가 컸고, 몸 앞엔 두 개의 커다란 젖가슴이 논바닥에 닿을 듯 늘어져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모습을 본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논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어떤 아이들은 논둑길을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논바닥에 넘어졌던 아이들도 허겁지겁 논두렁을 기어올라 마을로 달려가며 웨웨곰벨이 나타났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논에서 놀던 아이들 중 한 남자아이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그날 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숲을 뒤져야 했습니다. 남자아이는 웨웨곰벨에게 잡혀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소쿠리인 땀빠(tampah)를 각각 들고 북북 긁어대며 밀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땀빠를 긁는 소리가 웨웨곰벨에게는 귀가 울리는 무시무시한 굉음으로 들릴 거라고 사람들을 믿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 자정쯤이 되어서야 잃어버렸던 남자아이를 나무 위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그 일이 있고 몇 주, 몇 해가 지나도록 늘 멍하니 먼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몸을 되찾아 왔지만 웨웨곰벨에게 홀린 아이의 넋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웨웨곰벨이 주는 음식을 처음 받아먹던 순간 그 아이의 혼은 마물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고, 웨웨곰벨은 자기가 키우려고 작정했던 아이의 혼만을 안고서 달아났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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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에 따르면, ‘웨웨곰벨’이라는 이름은 오래 전 스마랑의 곰벨언덕에서 벌어진 한 사건 때문에 붙여졌다고 합니다. 이 지역은 네덜란드 강점기 당시 대량학살이 벌어졌던 곳으로, 자띠갈레(Jatigaleh)에서 반유마닉(Banyumanik) 지역으로 넘어가는 길에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귀신과 요물들이 심심찮게 출몰하는 음산한 곳으로 알려져 있고, 어쩌다가 호기롭게 그곳에 문을 열었던 한 호텔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더군요.


그곳에 한 쌍의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남편은 아내가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임을 알면서부터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점점 더 아내를 소홀하게 대했고 아내는 여러 해 동안 비통한 마음으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남편의 뒤를 밟은 여인은 남편이 다른 여인을 품는 모습을 마주합니다. 배신감에 격분한 여인은 남편을 살해했고, 그녀의 행동에 분개하여 떼로 들고 일어난 마을사람들을 피해 그녀는 마을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여인은 그 후에도 계속되는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복수심을 안은 채 숨을 거둔 그녀의 원혼이 웨웨곰벨의 모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바섬 전체에서 목격된다는 웨웨곰벨은 그때 자살한 그 여인의 원혼일까요? 아니면 곰벨언덕에서 학살당해 파묻힌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남기고 간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정령들일까요? 일부 상충되는 애기들이 있긴 하지만 웨웨곰벨의 이야기에서는 별다른 악의가 느껴지지 않고 되레 아이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그 거대한 젖가슴 밑에 품어 키운다고 묘사했던 것이고, 웨웨곰벨의 전승을 이야기하던 옛 인도네시아인들이 웨웨곰벨이 소외되고 학대받는 아이들만 골라 데려간다거나 부모가 정신을 차린 후 돌려준다는 식으로 웨웨곰벨의 행동을 변호하고 감싸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보고된 사례들은 전승의 내용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말입니다.


웨웨곰벨의 전설을 따라가면서 헐리웃 영화 ‘마마’(Mama)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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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귀신이야기들은 그들의 사무친 원한과 섬뜩한 악의가 공포를 일으키는 것이 보통이지만, 웨웨곰벨의 죽음조차도 끊지 못한 본능적 모성은 마음 한 구석을 조금 무겁게 합니다.


딸 같아서, 또는 아들 같아서라는 이유로 남의 집 귀한 아들딸을 직장에서, 군대에서, 사회에서 오히려 괴롭히고 농락하고 짓밟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즘, 웨웨곰벨은 국내도입이 시급한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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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ekoprastowo> - Hantu Indonesia: Wewe Gombel

<indospiritual> - Kisah Wewe Gombel Culik A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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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