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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망명자 <2>

2014-11-2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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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0.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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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아래 연재물은 딴지일보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온 한 필자와 

오랜 시간 상담 끝에 본지 마빡에 올리기로 결정한 기고문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북한에서 스파이로 길러졌다 활동 도중 

숙청된 남자로 

필자는 그 남자와의 만남을 

본지를 통해 풀어낼 예정입니다. 

 

편집부 확인 결과, 

필자는 오랜 시간 취재를 직업으로 삼아왔고

그의 본명으로 된 다양한 기사 및 취재물을 

여러 통로를 거쳐 직접 확인하였기에 

아래 글을 마빡에 올립니다. 


연재물 도중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이 있을 수 있기에

필자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올린 점, 

독자제위의 양해바랍니다. 


 





 


지난 기사


망명자 <1>















 


 

내가 본 탈북자들은 거의가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던 부류로 주로 음악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이들이었다. 다른 부류의 탈북자들은 보지 못했다. 북한에서는 국가공무원들처럼 작가들도 5급 작가, 6급 작가, 7급 작가 등등 직위와 직급이 있었고, 승진을 위해서는 시험을 봤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뇌리에 강렬히 박혀 있다. (또한 그 승진을 위해 뇌물을 썼다고 자랑스레 말하던 탈북 작가의 말도 같이 기억난다.)

 

10여 년 전 일인데도 지금도 인상 깊은 건 저녁식사를 하는 와중에 한쪽 벽에 다소곳이 '서' 있었던 그의 아내였다.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던 가을의 어느날 밤, 감독과 여자 PD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초대받았다. 보통의 경우라면 같이 밥을 먹는 게 정상일 것인데, 탈북작가의 아내는 음식을 내온 다음 한쪽 벽에 다소곳이 서 있었다. 마치 웨이트리스처럼그리고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내왔다. 여자 PD가 못내 불편한 지 몇 번이나 합석을 권했지만, 그녀는 사양했다. 탈북작가는 당연하단 듯 그런 여자 PD를 말렸다. 북한식이었다식사가 다 끝나자, 작가의 아내는 다소곳이 앉아서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았다. 북한은 상당히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동네란 사실을. (지금은 북한도 여권이 강해졌다고 한다)

 

탈북작가와의 만남은 그날 저녁 만찬이 마지막이었다. 그와의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능력을 무시한 것도 아니며, 작품의 방향성이 마음에 차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저, 둘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좁은 예술판 속에서 난 언제고 그를 마주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는 더 이상 영화쪽에는 발을 내밀지 않은 거 같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그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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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아저씨는 고아였다.


아동보육에 있어서만은 나름 시스템을 갖췄다고 자랑하는 북한인데, 그 혜택을 본 것일까김씨 아저씨가 띄엄띄엄 말하는 단어들을 종합해 보자면, 김씨 아저씨는 '혁명 유가족' 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 당 간부의 딸과 같은 학교에 다닐 정도였다면 상당한 출신성분을 가졌다 할 수 있겠다.

 

(뒤에 말하겠지만, 김씨 아저씨는 고문에 의한 후유증으로 기억이 토막토막 끊겨 있었다)

 

여동생 한 명과 함께 있었다고 하는데, 보육원에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공부를 했다고 한다.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공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소학교(우리의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12살 무렵이었는데, 자기 반에 당 간부의 딸이 있었는데, 나리옷 (원피스)을 입고 다니는 폼새부터가 달랐다. 그러나 당시 김씨 아저씨와 같은 반 아이들이 인상을 찌푸렸던 것은 그녀가 싸온 밥곽(도시락) 때문이었다고 한다. 밥곽에 닭알(달걀)까지 들어가 있는 걸 보니 은근히 부아가 올랐다고 한다.

 

곱다. 고운 애였다

 

란 말로 추정해 본다면,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에 보아왔던 '부잣집 새침데기 아가씨'였던 걸로 생각된다.

 

그렇게 얼마간 기회를 노리던 김씨 아저씨는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녀의 밥곽을 훔쳐와 밥을 다 먹었다.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과 함께) 빈 밥곽을 내려다보던 그와 친구들은 즉흥적으로 주변에 있던 개똥을 그 안에 채워넣었다. 그런 다음에 이걸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점심시간.

 

그녀는 도시락을 열었다. 도시락을 열자 나온 건 개똥이었다얼마간의 정적. 김씨 아저씨와 친구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가 울음을 터트리면, 다 같이 놀리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도시락 뚜껑을 닫더니 그대로 일어나 학교를 나가버렸다고 한다. 황당했다고 한다.

 

다음 날 담임은 어제 사건의 주동자를 색출하기 위해 나섰고, 이때 멋들어진 세단 한 대가 미끄러지듯이 들어왔다. 나리옷의 아빠가 찾아온 것이다. 이미 담임에게 끌려가 신나게 두들겨 맞았던 김씨 아저씨와 친구들. 학교로 찾아온 그녀의 아버지는 주동자와 만나고 싶다는 말을 선생에게 전했고, 교무실 한켠에서 자신과 선생, 나리옷 그녀와 그녀 아버지가 4자 대면을 했다. 당시 그 당원이 말하길,

 

배가 고파서 밥곽을 훔쳐먹은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안에 똥을 넣는 건 무슨 짓이냐? 왜 그런거냐?”

 

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때 김씨 아저씨에게 향한 3명의 시선. 김씨 아저씨는 이 시선에 반항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니, 화가 났다고 한다.

 

조선은 사회주의 국가인데

누군 꽁보리밥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데, 누군 이밥(쌀밥)에 닭알을 먹는 게 싫었다

누군 당간부 딸이라고 그런 대접받고, 누군 고아라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게 싫었다

그래서 그랬다.”

 

대충 이런 의미의 말을 내 질렀다고 한다. 그리고 번쩍 두 눈에 불이 켜졌다고 한다. 같이 있던 선생이 뺨을 후려갈긴 것이다. 그 뒤로 구타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이걸 제지한 게 당 간부라 한다. 천천히 자기를 바라보던 그 당 간부가 이름을 물었고, 김씨 아저씨는

 

OO입니다.”

 

라고 또박또박 말했다고 한다. 유심히 그를 바라보던 당 간부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건이 끝나고 나서 달라진 건 그도 이밥에 닭알이 들어간 밥곽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리옷을 입은 그녀가 도시락을 두 개 싸왔던 것이다. 훗날 그의 장인이 되는 이와의 첫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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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그 당 간부는 김씨 아저씨의 후원자가 돼 주었다. 원래라면, 소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군대를 가는게 맞는데, 김씨 아저씨는 대학을 갈 수 있게 됐다. (이 부분에서 김씨 아저씨는 말끝을 흐렸다)

 

유추해 보건대, 김씨 아저씨의 출신성분으로 본다면 북한에서도 핵심계층으로 분류됐을 것이다. 그리고 훗날 김씨 아저씨의 장인이 되는 당 간부의 출신성분까지 더한다면, 김씨 아저씨는 북한에서 나름 인정받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 중간과정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것.


김씨 아저씨는 김책대학 출신이다. 아저씨 스스로도 김책 대학 출신이란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은근슬쩍 전공을 물었는데,

 

? 전기과 나왔드랬지. 당에서 그걸 배우라 했지.”

 

씁쓸한 웃음. 그는 김책공대 전기과에 들어갔다. 이미 그때부터 아니, 그 이전에 김씨 아저씨는 선발이 됐고, 대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듯 했다. 그때부터 그는 '스파이'로 길러진 것이다. 70년대 전기과라 하면, 지금의 기준에서 많이 벗어난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모스부호가 나오고, 기판에 납땜하던 시절이 아닌가?

 

많이 배웠지. 이런 세상이 있는지 모를 정도였어. 너래 진공관 아네?”


, 진공관 잘 알죠. 요즘 진공관 앰프가 얼마나 비싼데요.”


“(웃음) 진공관이 트랜지스터로 바뀌면서 어마어마했지

 

그는 전기과에서 이공계통에 관한 착실한 배경지식을 쌓아갔다. 아마 그대로 계속 나아갔다면, 그는 대포동 미사일을 만드는 기술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은근슬쩍 질문을 던져본다.

 

혹시 35호실 소속이셨어요?”

 

김씨 아저씨는 피식 웃었다. 할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떠는 손주를 보는 느낌이랄까김씨 아저씨의 나이를 역산해 보니, 문득 떠오른 게 35호실이었다.

 

35호실. 정식명칭은 '조선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로 조선노동당 중앙청사 35호실을 사용한다고 35호실이라 불린다. 주로 해외 공작 활동을 하고, 우리에게는 신상옥&최은희 부부 납치 사건,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으로 유명한 곳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다만 그가 말한 것들을 종합해 보면,

 


1. 그는 소학교 시절의 인연으로 당 간부의 딸과 결혼했다. 당 간부는 그의 눈빛과 지지않는 기세를 높이 샀다고 한다.

 

2. 출신성분을 인정받아 김책대학에 들어갔고, 이후 (혹은 동시에, 혹은 위탁으로) 모처에 소속 돼 스파이로 길러졌다.

 

3. 무지막지한 훈련을 받았다. (상당한 훈련을 받았다는 건 이후에 다시 나온다)

 

4. 남한에 2번 투입 됐지만, 주요 활동 무대는 중국이었다. 대 중국 첩보원으로 활약했다.

    (남한은 그냥 마실 갔다 오는 식으로 2번 휘휘 돌아왔다고 한다)



  

김씨 아저씨의 유창한 중국어의 비밀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중국을 들락거리며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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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김씨 아저씨는 중국에 들어가 정보 활동을 했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었다. 북한의 최우방국이 중국이 아닌가?

 

“(웃음) 외교란 게 그런 거 아니가? 떼놈들 믿을 거 하나 없어 야.”

 

떼놈들 믿을 거 하나 없어 야.’ 이 한마디가 외교의 본질일 것이다. 당시 북한은 (지금은 더 심해졌지만) 중국과 소련이 없다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 나라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촉을 바짝 세운 채로 소련과 중국의 정보를 캐냈다고 한다. 김씨 아저씨는 과연 뭘 캐냈던 걸까?

 

군사정보.”

 

군사정보? 김책대학 전기과에 집어넣어 전공교육을 시켰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국정원 요원을 카이스트에 보내 위탁교육을 시킨 후 실리콘밸리로 투입한다면, 비슷한 걸까?

 

김씨 아저씨의 말로는 당시 북한은 중국의 군사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고 한다. 당시 김씨 아저씨는 중국에 들어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정보수집에 나섰다. 바로 '여자'였다.

 

중국의 군사정보를 북한 사람이 다이렉트로 접근 할 수는 없었다. 해서 생각한 게 바로 '미남계'라고 해야 할까? 정보를 가지고 있는 중국 여자를 꼬셨다고 한다. (아놔... 김씨 아저씨의 얼굴을 보면 인 거 같기도 하지만 나보다 어린 중국 부인을 데리고 사는 거 보면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예쁘다!! 김씨 아저씨에게는 남자가 모르는 어떤 매력이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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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아저씨에게 있어서 인생의 의미는 단 하나, 가족이었다여동생과 장인, 아내와 하나뿐인 아들이들이 그의 전부였다특히나 아내와 아들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그가 말하는 '조국'은 바로 '가족'이었다.

 

밥곽으로 이어진 인연은 두 사람을 부부로 만들었다. 이후 등장한 수 많은(?) 여자들이 있지만, 김씨 아저씨는 자신의 '조선인 아내'만을 사랑했다. (김씨 아저씨는 결혼만 3번 했다)

 

중국에서 몇 번의 임무를 수행하고, 짧은 귀휴를 명령 받아서 북한으로 돌아오면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임무가 중대할수록 가족들에 대한 당의 배려도 깊어졌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얼마 안됐다는 게 아쉬웠지만, 불만은 없었다고 한다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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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중국과 북한 사이는 미묘했다고 한다당시 북한은 베트남이 패망한 걸 보고, 남한에 대한 '혁명'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김일성이 직접 북경으로 달려가 모택동에게 혁명과 통일을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은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원한다.’라고 말이다.

 

중국과 소련의 팽팽한 긴장감도 고려해 봐야 했다국경문제로 촉발된 중국과 소련의 긴장은 모든 분야에서 사사건건 충돌하게 만들었다북한으로서는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격이라고 해야 할까? 그 사이에서 북한은 소련과 중국에게 얻을 수 있는 모든 걸 얻었다고 한다.

 

이 와중에 김씨 아저씨는 중국의 군사기밀을 빼돌려야 했다뭘 빼돌렸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진 않았지만, 앞 뒤 정황을 확인해 보면, 전투기와 관련된 것 같다. (그가 맡은 임무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


그런 와중에 결정적인 한 방을 맞게 된다그가 잘못된 정보를 북한에 보낸 것이다. 지금도 김씨 아저씨는 이걸 한스러워했다.

 

그때 였었는데...”

 

술 취한 상태에서도 몇 번이나 F 란 말을 했다. 중국 여성에게 넘겨받은 코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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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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