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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7. 목요일

파토








<파토의 쿡찍어 푸욱>은 


시급한 현안에서부터 해묵은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사회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코너임다.


과학 잡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와 교대하면서 격주로 연재되니


 많은 사랑 주시던가.




지난 기사


<파토의 쿡찍어 푸욱> 1. 공포의 마스터플랜

<파토의 쿡찍어 푸욱> 2. 그들은 왜 변절했을까

<파토의 쿡찍어 푸욱> 3. 지금 우리에게 놓인 투쟁의 현실

<파토의 쿡찍어 푸욱> 4. 시대와 진보에 대한 단상

<파토의 쿡찍어 푸욱> 5. 사회의 품격(1)

<파토의 쿡찍어 푸욱> 6. 박정희, 이승만, 일제 그리고 개드립

<파토의 쿡찍어 푸욱> 7. 사회의 품격(2)

<파토의 쿡찍어 푸욱> 8. 하는 김에 하는 교통 이야기

<파토의 쿡찍어 푸욱> 9. 우리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인가

<파토의 쿡찍어 푸욱> 10. 비극으로 모자라서 이렇듯 철저하게 패배할 겁니까

<파토의 쿡찍어 푸욱> 11. 내가 수퍼맨이라면

<파토의 쿡찍어 푸욱> 12. 위선이라도 떨어라

<파토의 쿡찍어 푸욱> 13. 혁명의 상상

<파토의 쿡찍어 푸욱> 14. 줏대이야기

<파토의 쿡찍어 푸욱> 15.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바뜨

<파토의 쿡찍어 푸욱> 16. 양식냉장고

<파토의 쿡찍어 푸욱> 17. 길, 그리고 사람

<파토의 쿡찍어 푸욱> 18. 권력이라는 손바닥

<파토의 쿡찍어 푸욱> 19. 신삼국 시대의 빵빠레

<파토의 쿡찍어 푸욱> 20. 소유냐 존재냐

<파토의 쿡찍어 푸욱> 21. 철이의 마운드

<파토의 쿡찍어 푸욱> 22. 반기문의 환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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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선이라는 사람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한 후 미국 UCLA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풀러 신학대학교에서 선교문화 석사를 받았다(고 얼마 전까지 주장했다). 저서로는 <나의 천국과 지옥의 여정> 1,2편과 <빨간 신호등>, <까불지마 사탄아> 등이 있다.


그런데 그녀는 지난 여름 포항 모 교회의 부흥회에 참석, 천국과 지옥을 여러 번 봤고 하나님과의 직통 계시를 한다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꺼내 놓았다.


홍씨에 따르면, 


- 2014년 12월에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


- 한국에 땅굴이 15개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종로, 다른 하나는 일산에 있다.


- ET형상의 외계인이 존재한다. (뜬금없이 웬...) 


- 신사도운동가 밥 존스는 천국에 있다.


일단 마지막의 밥 존스라는 사람은 기독교 관련 인물이라는 것 외에는 잘 모르고 사후의 안위도 별로 걱정되지 않으니 넘어가자. ET 형상의 외계인 존재 여부는 우원의 직접적인 관심사이긴 하나 오늘의 주제와는 너무 동떨어져 유보한다. 또 우원이 거주하는 일산에 땅굴이 있다면 그것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지만 다음 기회에 따져 보자.


그럼 이제 남은 건, 바로 며칠 남지도 않은 다음 달에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주장이다. 뭐, 이 말이 옳고 그르고를 우원이 나서 따질 이유도 방법도 없다. 교계 일각에서처럼 성경적 근거를 내놓으라고 할 일도 아니고 –신자가 아닌 내게는 성경하고 일치하고 아니고는 아무 의미도 없으니- 이런저런 국제 정세를 근거로 굳이 가능성을 논하기도 우습다. 


우원이 말 할 수 있는 건 걍 이런 정도다.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60년 동안 한반도에 전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안 일어났다. 그래서 다음 달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안 일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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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선의 최신작 <까불지마 사탄아!>의 위용.

e북 only


그런데 이 대단한 분이 실은 학력 위조자임이 밝혀져 또 한번 논란이 일었다. 석사학위를 받았다던 풀러 신학교에 그런 졸업생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페이스북 학력 난은 풀러신학교 졸업 -> 중퇴로 바꼈다가 이제는 그나마 아예 삭제됐다.


천국과 지옥을 다녀오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전한다는 분이 시시하게 학력 갖고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났다는 사실이 의아하지만,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도사라는 명칭을 써서도 안되지만, 소위 영능력이나 직위는 심성 및 인격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점도 나름 다양한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는 바 그냥 그런가보다 하자. 


그런데 우원은 오늘 굳이 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2.


어릴 때 교회를 다니다보니 그 언저리에서 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자랐다. 별의 별 재미있는, 재미없는, 그럴 듯한, 이상한 이야기들이 난무했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 넘으로 유태인들의 뛰어난 자질을 증거하는 한 일화가 있었다.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서 10번은 들은 것 같고 아마 아직도 회자되지 싶다. 


내용인 즉슨,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 중동전이 발발하자 미국에 유학 가 있는 유태인 학생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귀국했지만 아랍 학생들은 징병 통지서를 피해 꽁꽁 숨어 버렸다는 거다. 그런 애국애족의 정신이 있었기에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크고 힘센 아랍을 전쟁에서 제압할 수 있었고, 이어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유지하며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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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폭격을 감상하기 위한 이스라엘 ‘스데롯 극장’의 관람석.

이교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은 신이 선택한 민족만의 특권이다.


저 일화가 사실인지 아닌지 우원은 모른다. 다만 유태인이라고 다 저랬겠으며 아랍인이라고 다 그랬을까 싶은 의심은 있다. 아랍인도 유태인 만큼이나 자부심과 민족주의가 강하다고 알고 있으니.


허나 중요한 건 저 이야기의 객관적 사실 여부가 아니라, 적어도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오래 전부터 저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삶의 태도와 관련해서 일종의 지표로 삼았다는 점이다. 사실 저 모습은 예수교 장로회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 기독교 주류 일각의 보수적 애국주의와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유태인들이 보여준 모습과 그 교훈처럼, 울나라의 기독교인들도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전쟁을 대비하며 더욱 용맹정진으로 기도하고 또 공산당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한 전의를 가다듬고 있을 것이다.


이제 12월 까지는 채 1주일도 남지 않았으니, 미국과 유럽 등지에 나가 있는 우리 신학생들도 유태인들이 그랬듯 비행기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의 귀국 러시를 이미 시작했으리라. 이제 신앙과 애국심으로 무장한 그들이 떼지어 돌아와주기만 한다면 중동전 때의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초전박살의 기운으로 북괴의 야욕을 단숨에 분쇄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멋지다. 


그런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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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노아의 방주가 준비된단다. 


먼 소린가 했더니 이 방주는 거대한 배가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주택이었다. 한국에서 곧 일어날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가는 기독교인 수십 명이 이 곳에서 3개월간 체류하고 이후 다른 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할 계획이고 그래서 노아의 방주 플랜이란다. 


이 방주는 바로 문제의 홍혜선씨 페북을 통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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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주에 머물다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에서 난민 자격이 부여되니 영주권을 얻을 수 있을 거고, 이후 전쟁이 끝나면 돌아와서 국가 재건 사업에 참여하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게 이들의 마스터 플랜이다. 그래서 얼마전 모 교회에 지원자들이 모여 최종 '탑승자'를 선정했는데, 그 교회 목사가 한 명씩 불러내어 '신의 뜻'을 직접 물어 탑승 여부를 결정 통보했다고 한다. 지금쯤이면 이 선택받은 이들은 대략 방주에 도착했지 싶다.


홍혜선의 예언에 따라 전쟁을 피해 해외로 도피하려는 기독교인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수십 명의 교인과 함께 이미 캄보디아로 떠난 목사도 있고, 12월이 다가오자 출국에 대한 고민과 문의는 점점 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갑자기 생업을 팽개치고 가족들까지 데리고 외국으로 가는 건 쉽지 않고, 비행기값 체류비 등등 돈도 많이 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만약 예언과 달리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일부 사람들의 질문이 당연히 제기된다. 여기에 이 방주의 설계자들은 '만약 우리의 기도로 전쟁을 막을 수만 있다면 이단이라는 비난도 감수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는 거다. 


이 경지에 이르면 예전에 읽었던 어떤 이야기가 생각난다. 미국의 한 종교단체가 매일 아침 기도를 통해 3차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있으며, 3차대전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사실을 자신들의 기도가 통하는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는 거다. 




4.


방주는 원래 거기 탄 사람들만 살겠다는 의지의 표상이다. 못 탄 사람은 다 죽고 원래 살던 터전도 모두 잃는 걸 전제로 하는 게 방주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날 지도 모르기 때문에, 신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짝퉁 전도사가 하나님에게서 직접 들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렇게 가겠단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죽든 말든 그들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런데 그 멋진 유태인의 정신은 대체 저 방주 어디에 숨은 걸까. 보수파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강조해 온 애국심, 그리고 북괴와 종북 세력에 대한 분노는 어느 구석에 처박힌 걸까. 이승만과 박정희의 정신, 반공과 호국, 멸공의 신념은 다 어디로 도망간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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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시위를 벌이는 홍씨.

ㅂㄱㄴ를 사랑하고 종북좌파를 척결해야 한다며

자유민주주의 애국시민을 자처하는 그녀는

지금 외국으로 도망갈 궁리 중이다.


하지만 저들 애국 세력이 망상에 빠져 세상을 어지럽히는 소리를 퍼트리고 나아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는 와중에도, 우리 시민들은 하루하루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정말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라 소중한 줄 모르는 불만 혼란 세력이라며, 종북이라며 욕먹던 그 사람들이 바로 이 땅에 남아 버틸 거다.


저들은 자신들이 문제의 아랍인들보다 한술 더 뜨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얼이 빠져 있다. 결국 저들이 말하는 애국이라는 것의 대상은 역사도 흙도 공동체도 사람도 아닌, 자신들의 천박한 생존본능과 초라한 존재양식을 의탁할 기득권 권력과 그 이데올로기 뿐이라는 점을 이 순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거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을 전파시키며, 한편으로는 비겁하게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가짜 보수들. 북한과 대화라도 한 마디 할라치면 도매금으로 종북으로 몰아가는 아메바적 두뇌 용량의 소유자들. 한 쪽이 처절하게 괴멸되지 않으면 평화도 통일도 올 수 없다는 저들의 무지와 착각이 결국은 저런 정신병적 망상으로 되돌아 온다. 누가 전체주의 북한 정권이 좋아서, 그곳의 왕 김정은이 예뻐서 대화하려는 거냐.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훨씬 위험하기 때문에 하려는 거다.


홍혜선씨는 나아가 전쟁 불감증에 걸린 한국시민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단다. 마,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우리는 괜찮다. 당신들처럼 툭하면 거창하게 애국을 이야기하고 건국 대통령이라는 이 모씨나 이순신보다 위대한 경제발전의 영웅 박 모씨를 추앙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당신들처럼 두려움에 떨 생각이 전혀 없다. 유태인들에게 지혜를 배워서도 아니요, ㅂㄱㄴ와 그 정권을 사랑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정신 제대로 박힌 인간으로 살려는 것 뿐이다. 









파토

트위터 : @patoworld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