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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면접

2014-11-2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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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딴지 추천10 비추천0

2014. 11. 28. 금요일

이즈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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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잘하고 올게요.


아침에 일어나 평소 입어보지 않던 점잖은 옷을 주름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입고, 머리를 한 번 더 만져보고, 잘 손질된 깨끗한 구두를 신고, 휴, 얕은 한 숨 한 번 쉬며 집 나서기 전에 엄마한테, 아빠에게, 가족을 향해서, 혹은 빈 방을 바라보면서라도


나 잘하고 올게.


다들 이러고 나오지 않았을까. 약 90명의 명단을 천천히 훑어 보며 기대했던, 새로운 사람에 대한 흥미보다는 왠지 슬픈 마음만 더 커져갔다.


몇 주 전, 기획팀에 있는 동기로부터 전화가 한 통 왔다. 전화를 들며 '어느 부서 누굽니다,' 라는 말을 다 내뱉기도 전에, 나보다 두 살 많은 동기 형만이 낼 수 있는 그의 천연덕스럽고 끈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의 통화였다. 같은 건물안에 있으면서 얼굴 못 본지도 꽤 오래다. 뭐가 그리 유난스럽고 바쁜지 사람 얼굴도 잘 못보고 산다.


“어, 형. 오랜만이네~ 무슨일이야?”


“어. 딴 건 아니구, 이번에 신입사원 면접있는데, 니가 영어면접관으로 정해졌네. 그거 알려주려고.”


“어. 알았어. 어. 어? 뭐라고?! 어!?! 왜?!?”


크레센도, 점점빠르게, 마지막은 스!타!카!티!시!모!


아니, 이건 무슨 귀신도 헉 할 소린가 말인가, 아니 우선 이게 말이긴 한 건가. 내가!! 영어면접이라니???


하아…………


긴 한숨만 전화기에 대고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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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정한 것은 아닐테니 더이상의 분노는 의미없었고, 어찌 내가 들어가게 되었냐고 따지려다보니 이 역시 아이고, 의미없고, 


“아... 나 영어 못하는데, 잘하는 모모 과장이랑 모모모 과장있잖아. 그 사람들 들어가면 되지, 왜 나를...”


“아, 그 사람들도 들어가. 너까지 세 명이야. 요즘 바쁜데, 너 요즘 많이 바쁘지? 어떡하냐, 이틀은 종일 해야할 것 같은데.”


내가 어느 하루라도 열정적으로 일하고, 보람을 느끼며 퇴근을 하고, 아 먼저 출근을 해야지, 난 퇴근만 먼저 떠오른다니까, 활기차게 출근해서 계획적으로 업무를 시작한 적은 있겠냐만은, 하! 물론 요즘도 역시 그러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내가 지금 이순간에 여기서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는데, 누가 누굴 면접 하고, 점수를 준단 말인가. 내 자질을 떠나서 나 그럴 여유없는데! 아! 씨! 이 회사에 애착이 있고, 아 뭐 그건 있으면 좋은 거고 없다하더라도, 능력있고, 활기찬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하지 않을까......


어쨌든 이 또한 다른 업무 지시처럼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세 사람의 언어 면접관이 필요했고, 그 중 하나가 나였나보다. 그런 거지.


전화를 받고 며칠 지난 후에 영어면접관으로 선정(?)된 사람들과 만나 짧은 회의를 두세 번 했다. 진행방식과 채점기준을 정하고, 면접용 질문지를 준비하고, 각자 리뷰하고 수정하고, 최종 결정하고, 최대한 깔끔하게 편집해서 프린트하고, 하나하나 클리어 파일에 넣는 것으로 모든 준비는 마무리 되었다. 그런 것 같았다.


면접 하루 전날 저녁, 면접을 볼 인원의 이름과 태어난 해, 최종 학력과 전공, 100분위 환산 학점과 각종 언어 점수, 기타 특이사항이 적힌 꽤 두툼한 서류를 받았다. 의도치 않게 내 면접준비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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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무려 2년 전 이야기. (출처 - 잡코리아)


짧게 훑어보고 그만두려 했는데, 칸 안에 써 있는 것들을 천천히 읽게 되었다. 그걸 천천히 읽는데,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다.


면접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링크 참조) 내가 떨어졌던 수많은 면접 중 기억에 남는 것에 대한 글이었는데, 심지어 이 회사에서도 난 떨어졌었다. '헤헤 또 떨어졌네, 아 조때따, 나 이제 어떡하지, 헤헤', 거리며 법률 사무소 계약직으로 정신 안 차리고 열라게 복사하던 도중 추가 합격 전화를 받았었다. 기합격자가 입사를 포기한 덕분에. 아니 그 때문에! 고로 나는 한 번도 면접에 통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내가 면접관이라니!!! 이런 젠장!!!


오전 9시. 면접은 9시 30분 부터다. 언어 면접실로 들어가니 아직 다른 면접관들은 오지 않은 텅 빈 방이었다. 면접관들이 앉을 넓고 긴 테이블 위에 생수 세 병이 각각 종이컵을 뒤집어 쓰고 일정한 간격으로 서있었다. 그마저 권위적으로 보였다. 면접자들을 위한 좁고 짧은 테이블은 그 앞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면접자들을 위한 자리에 앉아 보였다. 햐. 저 건너에 내가 앉아 있을 생각을 하, 권위권위 열매가 내 어깨에 부풀어 열리는 것 같다. 부우웅.


“왜 거기 앉아있어요?”


면접관1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와, 여기 앉으니까 정말 저 자리, 권위적으로 보이네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네. 아직 시간있죠? 저, 담배 하나 피고 올게요.”


뭔 맛인지도 모르게 담배 하나를 급하게 태웠다. 화장실에 들러 가글을 충분히 하고 손을 깨끗하게 씻고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면접관 1,2 모두 와 앉아 있었다. 저 넓고 긴 테이블 건너편 의자에. 면접 시작 13분 전. 나도 착석. 생수 뚜껑을 열고, 종이컵에 물을 또르르 따라 마시려는데, 면접관2가


“휴, 왜 내가 떨리는거죠?”


동감. 나도 긴장된다. 훑어본 면접자들의 소위 스펙을 보자면 정말 대단했다. 토익점수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말하기 관련 시험 점수도 다들 상위권, 백분위 환산 학점 역시 얼마나 치열하게 대학생활 했을지 눈에 훤했고, 만약 입사한다면 당장 인정 받고 쓸 수 있는 자격증을 보유했거나, 관련 자격을 위한 과정을 수료한 이들도 꽤 있었다. 면접 시작 7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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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업인 나보다 오히려 업무에 준비가 더 잘된 이들 같았다. 한마디로 훌륭했다. 내가 여기 앉아 있는 이유는 뭘까. 이 친구들 보다 내가 좀 더 일찍 입사해서? 어찌되었든지간에 나는 이들을 평가 해야한다.


나는 내 직업, 직장에 만족하는가. 아니. 아니. 아니다. 절대로. 요즘들어 특히 더,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우울한고 불안하다. 물론 이는 내가 일단 생계에 대한 불안을 떨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긴 하다. 이런 고민이 가능할 만큼 월급을 받으며 백수십 개월을 다닌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러면서 또 뭐하며 사는 건지 모르겠고. 작은 부조리.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면접 시작 3분 전.


내가 계획하지 않은 내 인생이라. 그렇다고 닥친 현실을 또 열심히 살아냈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고. 참 우울하고 우울한 내 인생 아니겠나. 더군다나 이제 내 나이 38과 11/12이다. 결혼 안했고, 여자친구도 없다. 하. 참 우울하고 우울한 인생아닌가 말이다. 면접 시작 시간이다.


'난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지' 하며 머리 속에서 한참 방황하고 있는데, 따라 놓은 물도 한 컵 다 마시지도 못했는데, 면접 바로 시작하겠다는 알림이 왔다. 계단을 내려오는 여러 구두소리가 겹쳐서 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숨을 고르는 듯, 구두 소리가 멈추고 노크 소리가 바로 들리진 않았다. 두근두근. 어휴 떨려. 똑똑!


앗!


이거 뭐라고 하지? 우리말로, 들어오세요? 여.. 영어로, 컴 인?!?


아무튼, 뭐 대충 그렇게 면접은 1조부터 시작되었다. 각자 순서대로 자기 소개를 하고, 나름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어? 전혀 떨지 않는다. 와 강하다. 너무 잘하는데? 역시 요즘은 다르구나! 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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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과 문장 사이의 숨소리가 가늘게 한 번 떨리더니, 유창하게 말하던 그 면접자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안 그래도 하얗고 이쁜 얼굴인데 더 하얘지는 것 같더니 눈을 꽉 감아 버린다. 아. 긴장. 실수. 정적. 휴우. 나마저 흔들리면 안된다. 나는 차분해야지. 마음 속으로 세어봤다. 하나아, 두우울, 세엣.


무척 긴 시간이다. 삼초. 시계도 없는 면접실이다. 너무 인공적이고 어색한 적막. 며칠동안 몇 번을 주르륵 외웠을 그 문장을 갑자기 까먹다니. 꽉 감은 그녀의 눈에 무슨 장면을 떠 올랐을까. 보는 내가 다 손을 꽉지게 되더라.


“잇스 오케이. 니드 모어 타임? ... 테이크 유어 타임... 잇스 오케이”


겨우 그녀의 눈이 떠지고 입술이 살짝 떨리더니, 겨우겨우 마무리를 해냈다. 그 이후로 자신감을 잃은 그녀는 면접 내내 꼬이고 꼬였다. 하지만 그녀의 영어 실력은 좋았다. 그래도 그 실수 때문에 잘 될리가 없겠지. 면접을 모두 마치고 세 명이 일어나 인사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고생했어요. 잘했어요. 정말. 잘했어요.”


라고 했다. 세 사람 모두 웃으며 자리를 떠나 다른 면접 장소로 옮기긴 했지만, 정말 웃고 싶어서 웃었을까. 뭐 이렇게 저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면접은 모두 끝이 났다. 언어 면접관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영어 면접 점수가 합불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이럴지도 모른다. 간부들이 모두 합격자를 정한 후에,


“아 맞다. 영어 면접 점수를 안 더했네? 하하하하”


이럴지도 모른다. 딱 이렇진 않겠지만, 그럴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말이다, 제발 사람 고생좀 그만시켜라 이새끼들아. 지들도 영어 못하면서. 뭘 그리 요구하는거야 도대체. 애들 긴장만, 고생만 죽어라 시키고 말이야. 나도 고생이고!


아무튼, 꽤 잘한 사람도 있었고, 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은 평이했다. 특별한 실수를 한 사람이나, 재치있는 유머를 구사한 사람이나, 자신의 주관을 이야기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기억에 남는 사람 한 명 없이 대부분 평이했다.


내심 작은 기대를 하긴했다. 혹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 하고. 그런 기대를 한 내가 얼마나 잔인하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지를 깨달았다. 취업 전쟁이라는 말이 어울릴만한 상황에서 난 뭘 기대한건가.


생계를 위한 직업을 얻으려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 면접에서 재미있는 일이란? 아빠가 사장님이라면 모를까. 미안하다. 부끄럽다.


내 사정이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흘러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났다. 약 90여 명 중 합격자는 10명. 합격자 이름을 보면서 그들의 얼굴을 떠 올리려 노력했는데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친구들도 내가 누군지 기억 안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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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


음... 언제나 그렇듯이 두서없이 글이 길어졌는데. 오늘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와 면접을 본 모든 이들에게.


모두들 훌륭하게 잘 하셨다. 스스로 실수라고 여긴 부분이 있을텐데, 대부분 거기서 페널티 없었다. 부디 마음에 남겨두지 마시길. 내가 여러분들과 경쟁했다면 꼴찌는 응당 나다. 그런 내가 면접관이어서 정말 미안하고. 죄송하고. 하지만 여러분들의 점수를 볼펜으로 기록하기 전에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점수를 어떻게 구분을 할지. 카테고리 별로 어떤 경우에 점수를 주고 안 줄지. 면접자 전원에게 기본 점수를 주고 더하기 빼기로 할지, 그렇다면 그 점수 간격은 어떻게 할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0점에서 시작하는게 더 공정한지. 너무 잘 하거나, 못하는 이들과 한 조에 섞여 상대적으로 손해 혹은 이익을 받을 여지는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 등등을 두고 한참을 고민하고 토론했다. 면접이 끝나면 다시 꽤 긴 시간 토론을 하며 최대한 공정한 채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까지다. 최종 결과는 모른다. 아무튼,



이곳에 합격한 이들에게


추운 겨울날 겨우 한 숨이라도 쉬며 지낼 만한 장소를 찾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정말 고생 많았고, 여기서 얼은 몸 녹이길 바란다. 여기도 사회다. 만만치 않다. 밖에 있던 것 보다는 한결 나을 꺼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절대 너 자신을 잊지 말기를.



이곳에 합격하지 못한 이들에게 


아침부터 발 불편한 구두를 신고, 몸에 어색한 정장을 입고 힘들게 고생했는데, 원하는 것 얻지 못해 나도 마음 아프다. 여기 그리 좋은 곳 아니다. 겨우 추운 바람 피하는 곳이지 네가 생각하던 바로 그곳은 아니다. 여기에 합격하지 못한 것이 사소한 실수 때문일까. 질문 하나에 답을 잘 못해서일까. 스펙 중 뭔가 모자라서 그런 것일까. 그런 거 아니다. 그런 거 아니다. 그냥 여기서 당신을 뽑지 않은 것 뿐이다. 필요없어서.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실로 가혹한 말이기도 하고.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나. 네가 싫어서, 미워서, 능력이 없어서, 뭐가 모자라서 안 뽑은 게 아니고 필요하지 않아 안 뽑은 거다. 사회는 그렇다. 서로 사랑하는 곳이 아니다. 그저 모든 게 필요에 의한 계약 관계다. 그러니 부디 큰 상처는 받지 마시라. 얼마나 이 추운 겨울이 계속될지 모르겠다. 겨울이 가야 봄이 오지, 봄이 온다고 겨울이 알아서 갈까. 힘들다. 꼭 버텨라. 버티는 동안 절대 너 자신을 잊지 말기를.



그리고 나에게


너 자신을 잃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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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즈딴지

트위터 : @ezzztwit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