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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시선]내 개 복돌

2014-12-0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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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 추천6 비추천0

2014. 12. 01. 월요일

범우









어설픈 휴머니즘인가 싶어도 개와 나의 목숨의 무게를 한동안 화두로 삼았다. 어린 시절 키웠던 개가 생각나서였다.


열 살 즈음에 할머니 개가 새끼를 낳았다. 할머니 개는 족보가 없는 쌍놈 개였지만 쥐구멍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다가 쥐를 잡고, 꿩을 잡아오기도 했다. 갈색 복슬복슬한 털 뭉치가 아장거리는 듯한 그 개의 새끼가 탐이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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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라면박스에 담아 숨구멍을 내어주고 시외버스 화물칸에 실어 집으로 데려왔다. 이름은 복돌이라고 지었다.


그런데 이 복돌이가 들어오고부터 집에 망조가 들었다. 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했고 ,아버지도 미덥지 않았다. 강아지 시절을 금방 지나버린 내 개에게 밥을 먹이는 건 내 몫의 일이었다. 개 사료를 따로 먹이던 집이 흔하지 않아서 개밥은 사람 먹고 남은걸 비벼 주든가 말아주든가 해야 했었다.


아는 사람 없는 산마을로 이사를 해놓고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 전기는 들어왔지만 수도가 없었고 아궁이로 불을 떼야 했다. 우물에서 물을 반통씩 길어 오는 것도 산지기 몰래 나뭇잎을 긁어모으고 적당한 굵기의 나무를 해오는 일도 익숙해졌다. 단단하지 않은 오리나무를 베는 게 밑둥을 잡고 끌고 가기가 편했다. 애하고 개는 적응이 빠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으러 다녔다. 나는 어린 동생들에게 좋은 형은 아니었다. 개에게 먹일 밥을 남기기 위해 더 먹기 원하는 동생들의 밥을 한 수저씩 빼앗았다. 맹물에 말아주거나 간장을 타주거나 했던 것 같다. 찐 고구마를 개밥으로 줄때도 있었지만 개밥을 줄 수 없는 날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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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광 한쪽에 묶여 있던 목줄을 풀어주었다. 나가서 얻어먹든지 주어먹든지 아니면 어미 개처럼 쥐라도 잡아서 먹으라는 마음이었다. 붉은 기가 살짝 도는 멋진 갈색 털을 가졌지만 안아보면 갈비뼈가 도드라졌고 허리는 잘록했다.


목줄이 풀린 복돌이는 한동안 지역을 탐색하고 다녔다. 아래동내 개들과 싸워서 상처에 피 흘린 자국을 달고 오는 날도 많았다. 밥을 빼앗아먹으려면 밥그릇 주인과 거쳐야하는 절차 같은 게 개들에게도 있었다.


어느 날 부턴가 학교 가는 길을 따라오기 시작했다. 작은 산을 넘어 철길 옆을 걸어 학교 운동장 까지 따라와서는 교실로 들어가는 날 지켜보다가 돌아서서 나가 버렸다. 삼십분 걸어온 길을 잘 돌아갔으려나 걱정을 했는데, 집에서 튀어나와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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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적이지 않게 짖으며 저를 바라보게 하고는 꼬리를 흔들었다. 이름을 부르자 달려 들어오는 목을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개는 내 볼을 핥았다. 비오는 날은 비에 젖은 개 냄세가 썩 좋은 건 아니었지만 하루의 의식이었다. 어린왕자와 여우처럼 서로의 기억을 구속하고 부비적거리는 순간이 좋았다.


문득 집에 먼저 갈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학교 끝나고 나오는 문 앞에서 만나게 되었다. 나를 기다리는 동안 학교앞마을 개들과도 제법 안면을 트고 다녔다. 하루는 학교 끝난 시간에 정문 앞에 개가 있지 않았다. 끝나는 종소리를 듣고 달려 올 텐데 ,걱정스런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반 친구가 인상을 쓰며 어깨를 쳤다. "저거 너네 개지?" 저보다 두 배는 두툼한 개와 엉덩이를 마주대고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조금 창피했지만 우리 개 때리지 말라고 다른 개의 주인인 그 친구에게 부탁을 하고 먼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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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복돌이는 등굣길은 함께 했지만 하굣길을 함께 하지는 않았다. 우리 개가 자기네 개를 건드려서 새끼를 뱃다는 소리를 다른 친구에게 들었을 때는 잘 모르지만 뭔가 뿌듯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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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집으로 새끼나면 한 마리 주는 거라는데 못 키운다고 했다. 복돌이도 집에서 밥을 별루 얻어먹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인지 저녁이 되면 마루 위로 올라와 방문 앞에 몸을 둥글게 말고 자리를 잡는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나뭇잎더미가 있는 광이나 아궁이의 온기가 있는 부엌을 마다하고 마루위에 자리를 잡았다. 방안으로 들이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반대했다. 저녁이 되면 낡은 잠바를 방문 앞에 깔아주었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찾아왔다. 얼굴에 뼈가 앙상한 힘없는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결핵에 걸렸다고 했다. 결핵에 개고기가 좋다는 말이 있었다. 아버지 병을 고치기 위해 개를 잡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분노했다. 개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말로 어머니가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나에겐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보다 내 주위를 맴돌며 지키던 개가 중요했다.


어린아이의 분노는 무시되기 쉽다. 돌이켜보면 따로 개고기를 살 돈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목줄이 메여 묶여있는 복돌이를 풀어주며 멀리 가서 돌아오지 말고 살라고 말했다. 개가 내 말을 알아 듣길 바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날 집을 나간 복돌이를 학교 근처에서 한번 보았다. 돌을 던지면서 따라오지 말라고, 가라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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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일인가 지난 후에 복돌이가 집으로 돌아와서 목줄을 메고 있었다. 더 살이 빠졌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다녀온 저녁에는 복돌이가 없었다. 그날 저녁에 고깃국이 식탁에 나왔다. 어머니는 개장사에게 개를 팔아버렸다고 거짓말을 했고 어린 동생들은 그 말을 믿고 싶어 했다. 고기를 보고 내 눈치를 살펴다가 먹기 시작했다. 집밖으로 나와서 언젠가 힘이 생기면 복수해줄 거라고 다짐하고, 분에 떨고, 슬퍼하며 혼자 몇 시간을 울었던 기억이 났다.


시간이 지나 흩어져 살다 만난 동생들에게 그 이야기를 물어보았었다. 그날 그 고기가 복돌이였던 걸 알고 먹었던 거냐고,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기억을 못하는 척하다가 대답을 했다. 시간이 지나 그때 감정의 기억만 파편으로 남았다. 내 개의 죽음에 복수하겠다던 다짐은 기억하는데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사람은 잡식동물이다. 풀만 먹고 단백질을 만들 재주도 없고 고기만 먹고 살 능력도 없다. 먹이의 폭이 다양하다 보니 배워할 것도 많고 삼가야할 것도 많다. 아플 때 먹어야 하는 것과 독을 빼야 먹을 수 있는 것에서 독을 빼는 방법, 먹을 순 있지만 먹으면 안 되는 것을 배운다. 지식과 문화와 예의를 배운다.


나는 내 개에게 예의를 다하지 못했다. 내 개도 나를 위해서 온전한 목숨을 누리고 가르렁거리는 늙은 숨을 쉬다 죽었어야 했다. 어렸었다는 핑계를 대어도 내 개를 위해 싸워주지 못한 기억이 상혼으로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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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에게 물어보아야겠지만 아마도 그 아쉬움이 책임감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 같다. 사는 동안 짧은 팔로 인연을 맺은 생명들에 대한 예의를 주고받고 싶다.


어쩌면 문화와 예의는 서로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 사람 사이에서 서로 잡아먹지 말자는 평화협정을 위해 복잡하게 발전해온 것일 수도 있다. 싸이코패스가 먹기 위해 죽여야 하는 생명에게 공감하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분화한 사람의 한가지라면 어설픈 휴머니즘 또한 사회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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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


편집: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