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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01. 금요일

메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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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기무부대 - 보안대라 불러다오







저번에 써놓은 대로 난 군 대이야기를 써봐야 욕먹을 게 뻔한 방위로서 4주 훈련을 받았지. 


그마저도 아침구보 때마다 우량한 가슴을 흔들며 조깅하는 미군 여군들 덕에 힘들기는커녕 후끈 달아오르며 재미있게 훈련받을 수 있었어. 굳이 힘든 점을 꼽자면 1월이고 영하 15도인데 걸프전 개전 이후라며 기름보일러를 꺼버린 훈육관의 만행 덕에 좀 추웠다는 정도?




1. 보직이 깡패, 따귀의 대가는 치욕이 된다


그렇게 훈련을 끝내고 기무사로 파견이 정해져 인수인계를 위해 인사행정과에서 대기하던 날, 출근할 때 헌병 녀석이 지보다 더 큰 내 키와 미려한 외모에 질투를 했던지 내 따귀를 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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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그날 오후 보안대 내 바로 윗고참이 되는 영내 행정병과 퇴근 무렵, 같이 분견대 시내 사무실로 나가게 되었는데, 아침에 일방적인 따귀 한 대와 욕을 먹은 내게 영내 행정병이던 고참이,


- 헌병 검문시 일어나거나 경례하지 말 것


- 반말로 상대할 것


- 아이디를 보이라는 요구에 응하지 말 것


등등을 지시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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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검문을 위해 다시 마주한 헌병 녀석은, 당연히 아침에 만만하게 따귀 맞고 간 녀석이 어떤 요구에도 반말로 일관하니 멘붕이었겠지. 


내 고참은 버스 뒷줄에 숨어서 한 3분 정도 내가 헌병을 그렇게 가지고 노는 걸 보고 있다가 앞자리로 와서 한 마디 던질 뿐이었어. 


"우리 애야."


기묘한 울상으로 변하던 헌병의 표정을 두고두고 기억하게 만든 날이었어. 


그렇게 찌질한 복수를 마무리하고 끝날 내가 아니라서 이후 종종 영내갈 일이 있을 때 헌병대에 전화해서 스케줄 보고 그 녀석이 정문 잡을 때만 골라서 들어가 갈궜지. (그러다 친해져서 나중에 피자도 사다 주곤 했지만.) 하여튼 당시 보안대(기무사)는 5공화국 시절의 막강 감찰권을 뺏겨서 힘이 상당히 약화되던 중이긴 했어도 헌병대를 대등한 상대로 여기진 않았고 실제로 헌병대 간부들은 몽땅 약점 잡혀있어서 말 잘 들을 수밖에 없는 개들의 집단쯤으로 생각했던 시절이야.


정말 잡다한 비리들의 백화점인 게 군대라서 그 약점을 파악하고 기록해둔 곳이 보안대라는 점은 위계질서 이상의 힘을 가지는 거지.




2. 보안대의 위상 및 업무 - 그들이 건방진 이유


보안대는 군종이 없어. 국방부 직할 각 군 통합 부대야.


해병도 공수부대도 해군이나 공군 육군 등등의 병역자원을 모아 만드는 조직이야. 장교부터 부사관에 병사들까지. 그래서 군복 입고 모이는 날 가보면 완전 당나라 부대야. 군복이 다 다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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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보안대는 규정상 부대 마크도 없고 계급과 이름표 달랑, 그나마 일 때문에 작업복 입는 때는 계급 이름표도 없었어. 민짜라 부르던 무명복을 입었지. 이런 옷은 보통 누굴 털러 갈 때 입는 거였어. 체포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여하튼 탈탈 털어버리러 나갈 땐 그런 옷을 입는 거야.


우린 그럴 일이 적었던 파라다이스 분견대라서 1년 반쯤 동안 단 두 번 정도 그런 경험이 있을 뿐이었어. 뭐 전설적인 5공 땐 거의 매달 그런 행사가 있었다던데 그건 뭐 내가 경험한 게 아니고 전해 들은 거라서 실제로는 어땠는지 모르겠어. 


보안대는 6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1과가 기무, 2과 정보, 3과 대공, 4과 수사, 5과 기억 안 남, 6과 통신보안... 대충 이랬던 거 같은데 3과까진 1등 상사 이상급에서 준위까지 포진, 4~6과는 중사급이 포진해 있었어. 계급정년이 발생하기 전 시절이라서일지 중사라도 제법 나이가 많은, 액면은 상사로 보이던 사람들이었지.


일은 육해공 군별 담당 지역의 훈련, 자원 이동, 보안사항 등을 체크하고 해당 지역의 방산업체 사업 현황 및 감사를 담당하는 거였어. 


5공때까진 감찰기능까지 있어서 압수수색 및 긴급체포, 심문 및 구속 기능까지 있었으나, 뭐, 그래버리면 너무 쎈 거니깐 감찰기능은 분리돼. 덕분에 안하무인 기무사조차도 감찰단이라는 상전이 하나 생기게 되었지.


감찰단은 3년에 한번 기무사 예하 조직을 다 탈탈 털어 감찰하게 되는데 그거 준비하는 게 괴롭지. 딱 회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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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민간사찰도 하던 시절이니 시내에 사무실을 두고 업무 또한 일반 회사처럼 구성해서 운영해. 분견대 대장인 소령은 실장이라 불렀고 각 과의 담당은 계장이라 불렀지. 거기다 도별로 00공사라 부르던 이름들도 있었어. 각 직할시, 도마다 이름이 달라.


서울은 남산공사라 불렀고 (그 이후 이사 다니며 몇 번 바뀐 것 같은데, 내가 있던 때는 남산공사였어. 그리고 지금은 그런 이름들이 의미 없을 테니...) 내가 있던 동네는 오일공사였지. 그래서,



일반전화 2개의 전화응대는 "오일공사 입니다."로 통일. 


육해공 전화는 "어이~"거나 "전화받는 거 누구?"등으로 통일. 받을 땐 "말해~", 


경찰에 전화할 땐 "보안대인데요~"로 하고 받을 땐 "말씀하세요~"정도. 


안기부 쪽은 "안녕하세요~ 보안대 000입니다"로 하고 받을 땐 "안녕하세요, 누구 연결해 드려요?" 정도



전화가 종류도 많아서 혼동되지 않게 깔맞춤해서 줄잡아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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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이 충성 전화라 불리던 본부 직할 전화인데, 그건 일단 울리면 긴장 2초 타고 시작해서 "충성, 000분견대 일병 000입니다" 라고 정확히 또박또박. 보안 회선 전화선 상태가 구려서 그렇게 안 하면 욕 바가지로 얻어먹곤 했지. 월에 한 번쯤 본부에서 나오는 선임병에게 잔소리를 듣거든. 다행인 건 보안대 내 구타는, 뭐, 신고식 때 빼곤 아예 없어. 정신적으로 갈궜지. 문서작업을 되빠꾸 날려 날밤 새게 만든다거나 하는 식으로. 



1과는 군대를 감시하고


2과는 일반인 세상을 감시하고


3과는 간첩과 간첩 이력자를 감시하고


4과는 군 내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헌병을 통제하지.


5과는... 이상하게 기억이 안 나네.


6과는 우체국을 지배하지.



각 지역별 육군 헌병대가 대부분 권역을 순찰하고 해공군 헌병이야, 뭐, 지들 영내 순찰대에 불과한 거고 미군 지역이어서 미군들 사고 치는 일이 많으니 미군 헌병대와 핫라인이 영내 쪽에 있었어. 외부 쪽 수사는 미군도 OSI 담당이니 그쪽과도 영내에서 영어가 매우 모국어스럽던 유학생 출신의 행정병이 단독으로 담당했지.


보안대는 그래서 군대 내에선 서울에서나 3년에 한번 날아오는 감찰단 빼고는 무소불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부대야. 계급으로 따지면 다른 부대보다 작대기 두 개 정도 더 먹고 가는 셈이지. 소령이 대장이던 우리 분견대가 중령까진 목례 꺽고 다닌 건 이유가 있었어. 거기다 보안대로 온 장교들은 필연적으로 진급은 늦거든. 동기들보다 상당히. 힘은 있으되, 진급은 별로인 세계에 있으니 꼬장만 늘어가는 거지. 어디나 그렇듯 진정한 힘은 영관급과 하사관급에서 나오기 마련이라 보안대 내에서도 위관급은 애매해. 대위 이전까진 호구 핫바지 취급당하기 쉬웠어.


내가 했던, 행정병의 하루 일과는 오전에 각 군 보고사항을 리포트 받아서 문서 정리 후 암어 자동 변환되는 코드를 매일 정해진 스케줄대로 바꾸고 팩스로 그 문서를 보고해. 그리고 점심을 먹고 보안점검사항 대상자의 뒷조사를 하기 위해 외근을 나가지. 차가 있는 고참 한 명과 2인 1조가 되어 경찰서 신원보회실에 들러 전과를 뽑고 각 면사무소 등지 해당 사무소에 가서 원적, 본적을 떼다가 스크린을 하지. 그런 다음 지역별 학연, 지연 등 정리된 특수 인사와의 관계도에 병합되거나 연루되는 부분이 있는지를 체크해. 인척이거나 동창이거나 같은 골목이거나 하면 연관도가 생기는 거니깐. 그런 거 정리해서 각 과별 계장님들에게 리포트를 하고 데모대가 발생하는 날이면 리포트를 4시 정도 해두고 5시엔 경찰서 회의에 가. 경무과, 안기부, 그리고 내가 앉아서 그날의 데모대에 대한 기록 정리를 하는거지.


"꽃병(화염병)이 200개쯤 날랐대요... 문서보니 이슈는 이거고... 주장하는 문장은 이거네요. "


라고 자료를 주워온 내가 말하면 안기부 아저씨가 한마디를 하지.


"50개 하자."


그럼 3종의 문서에 그날의 꽃병(화염병)은 50개가 날아다녔노라고 적히는 거야. 그게 도 통합에선 더 줄어들고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대면보고하는 각 정보조직의 수장이 갖고 간 문서엔 아마 없거나 5~6개쯤이 날아다닌 평화로운 날로 리포트가 되는 그런 프로세스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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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0여만의 도시에서 5천 명쯤이 데모를 하고 화염병은 수백 개가 날아다닌 시위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시위가 되는 거야. 청와대 미팅룸에선 한 스무 명이 화염병 댓 개 던지고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보고가 되니까. 그마저도 도 단위로 뭉뚱그려져서 말이야.


그리고 상황이 좀 길어지면 난 야근을 해야 하는 게 되어서 종종 데모 쪽 기록 본부에 올리고 나면 새벽이 되거나 운나쁜 날들, 당시엔 5.18, 4.19 등을 그런 날로 불렀는데, 그땐 홀딱 밤을 새우고 그랬지. 그럼 그런 상황 터진 날 이후에는 하루쯤 쉬게 해주곤 했어. 주 3일 근무 비슷하게 되는 거지. 풀데이 철야근무 3일하고 4일 휴식... 이거 어리니깐 했지. 지금이라면 하루도 못 버티고 기절했을 거 같아. 


어쨌든, 그런 게 당시 보안대 행정병이 하는 일들이었어. 


연간 2회의 진급심사를 위한 장교동행 평가도 있고 바람났다는 첩보가 올라온 해당 지역 대대장을 러브호텔까지 미행한 적도 있었지. 사진 찍고 리포트해서 남기고 그 리포트는 본부 보고가 아닌 내부 저장용으로 남겨, 약점 잡기를 통한 창조적인 경제 활동에 쓰이기도 했지. 여러 첩보들을 수집하는 사람들 또한 그런 일을 통해 약점을 잡힌 각 조직의 정보원들이었는데, 각 군 헌병대에 많이 있었지. 


이런 정보와 약점이 부안대의 안하무인 자세를 만드는 기초가 되곤 했지. 물론 보직상 우월함을 부여한 권한 설정에서 출발했겠지만, 뭐, 단지 그것만으로 아무나에게 반말 찍찍하며 계급 무시하는 정도가 납득되기엔 부족한 거니깐. 


'정보를 지배하는 자, 권력을 지배한다'라는 어디선가 들어본 명제는 현실 세계에서 매우 훌륭하게 효과를 갖더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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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런 보안대에서 일 년 좀 넘게 있는 동안 지나고 보니 좋았더라고. 회사생활의 연습이 완벽하 게 된 거니깐. 철야에 야근까지 미리 배운 건 좀 웃기지만. 그런 걸 하고 확 티 내며 엄살떠는 건 제대로 배운 게 맞거든.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은 좀 더 디테일한 사건사고 사례들을 기억나는 대로 풀며 써보는 걸로 하지.









메이비


편집: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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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비.


유쾌하게, 즐겁게, 흐뭇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