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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망명자 (5)

2014-12-0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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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01.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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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아래 연재물은 딴지일보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온 한 필자와 

오랜 시간 상담 끝에 본지 마빡에 올리기로 결정한 기고문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북한에서 스파이로 길러졌다 활동 도중 

숙청된 남자로 

필자는 그 남자와의 만남을 

본지를 통해 풀어낼 예정입니다. 

 

편집부 확인 결과, 

필자는 오랜 시간 취재를 직업으로 삼아왔고

그의 본명으로 된 다양한 기사 및 취재물을 

여러 통로를 거쳐 직접 확인하였기에 

아래 글을 마빡에 올립니다. 


연재물 도중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이 있을 수 있기에

필자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올린 점, 

독자제위의 양해바랍니다. 


 





 


지난 기사


망명자 (1)

망명자 (2)

망명자 (3)

망명자 (4)
















 

파리 13구역의 젊은 중국여자 혹은 아시아계 여자들 중 일부는 컨베이어 벨트의 일부처럼 특정지역을 오간다.

만약 젊은 여자가 특정 장소에서 서 있는 다면, 이들은 '영업행위' , 매춘을 하는 것으로 간주돼 경찰들에게 체포당한다. 그러나 서 있지 않고 움직인다면, 정당한 '보행'이 된다.

 

가난하고 젊은 여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생존수단은 몸이다이때 처음으로 '생존'이란 단어의 의미가 국가와 지역에 따라 다르단 사실을 실감했다프랑스에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생존,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생존같은 '생존'이지만, 그게 의미하는 바는 천양지차였다.

 

<나의 값비싼 수업료>란 책이 있다. MBC의 시사프로그램 W(지금은 폐지됐지만)에 소개돼 화제가 됐던 책이다. 프랑스의 여대생이었던 로라 D (응용언어를 전공했다는데 글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인정하고픈 생각은 없다. 번역의 문제일까도 생각해 봤지만 과히 추천해주고픈 생각은 없는 책이다)가 자신의 '굴절된 삶'을 서술했다.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원조교제가 그들에게는 인생의 굴절이라 말할 만큼의 중대한 문제라고 말한다. 18살부터 시작한 매춘행위. 그리고 이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분노.

 

프랑스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여학생을 만났다한국 국적의 그녀가 장황하게 말한 프랑스의 현실(?)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의미과잉'

 

이었다. 10여년이 넘는 프랑스 생활로 그녀 역시 화려한 미사여구에 중독돼 있지만, 그녀 말의 요지는 의미과잉과 개개인의 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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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기준치는 높았다. 개인의 자아와 주체성에 대한 강렬한 의지한국사회에서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일들이 그들에게는 일생일대의 사건이며, 인생의 굴절을 말할 정도의 중대한 도전이었다그들에게 가출 팸과 원조교제에 대해 말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북한이란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은 지옥도의 그것과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상원 소위원회 중 한 곳에서 남북한 통일에 대한 연구를 하는 연구위원회를 설치했다고 한다한국에서 비행기로 11시간이 걸리는 그곳에서 남북한의 통일을 생각한다니... 고맙다는 생각 이전에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 포럼에서는 남북한의 모든 사람들을 초청했다그들은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나라가 신기한가 보다그들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보편적인 권리인 '인권'이 다르게 해석되거나 부정되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는지 남북한을 연구했다.

 

(이 연구위원회 혹은 위원회의 정치적 목적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위원회'란 해석 자체가 맞는지에 대해서 자신할 수 없다. 프랑스어가 짧은 덕분에 한국어에서 범용하게 사용되는 '위원회'로 퉁쳤다. 그러나 그 모임에서 남북한의 통일과 인권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는 건 사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들은 우리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배에 기름이 낀 사람들이 '인권'에 대한 해석을 말할 때 그 해석의 대상들은 '생존'의 절박함으로 내몰렸다그 생존은 지구상에서 몇 안 되는 가장 냉혹하고 처절한 해석으로 통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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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김씨 아저씨는 좌절하지 않았다아니, 절망하지 않았다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지만 '절망'이란 단어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힘들지 않았어요? 저라면 몇 번이고 자살을 생각했을텐데...”

 

울퉁불퉁한 손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김씨 아저씨는 몇 번인가 눈을 껌뻑였다.

 

나도 속이 시커멓게 타 버렸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술로 버틴 세월이 몇 년이다

그런데 살아야 하지 않겠니?”

 

'살아야 하지 않겠니?'란 말이 그렇게도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대충 셈 해봐도 김씨 아저씨가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만 십 수차례였다그가 가졌던 것들이 모두 사라진 것만 세 번이었다희망이 꺾인 건 부지기수였다그런데 그는 살아남았다.

 

지금 이곳에서(지상에서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지옥일지도 모른다아니, 지옥이다. 지옥의 맨 밑바닥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지난 세월이 다 거짓이라도, 프랑스에서의 삶 그리고 그 삶에 대한 주변의 증언만 모아 봐도 그의 삶이 지옥이란 건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지간한 한국인의 삶보다 훨씬 더 각박하고, 치열했으며, 처절했다.

 

그의 모든 지위와 재산이 날아갔고, 그가 마지막까지 의지했던 가족이 사라졌다그의 생명이 위협받은 건 부지기수였으며그의 신념이라 말할 수 있는 공화국노동당은 그를 버렸다그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것들은 인어공주의 그것처럼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그럼에도 그는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금강(金剛)


금강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쇠를 두들겨야 한다한 번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불꽃이 튄다. 잡쇠다내 안에 있는 모든 잡쇠는 불꽃으로 튀어 나간다수백 수 천만번의 담금질 후에 나오는 순수한 쇠. 그 쇠의 이름은 '삶에의 의지'였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는 없었다그는 삶의 의미를 뒤돌아 볼 겨를이 없었다의미를 찾기 전에 생존의 위협이 다가왔던 삶그 반복이 그의 인생이었다.

 

아메바였다본능이었다삶에 대한 순결한 의지생존에 대한 순수한 열망인간사의 온갖 잡스러운 생각과 이기, 의미부여를 뺀 순수한 생에 대한 집착그 남자의 삶이 기록이다.

 

몇 번이나 무릎이 꺾이고 무너져 내리던 그때,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살을 생각했어도 골백번은 더했을 그 상황에서 그는 꿋꿋이 삶의 의지를 지켜냈다.


의문이었다그에게 삶이란 무엇일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기계적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니?'만을 되내이고 있었다.

 

모진 말일지도 모르지만그에게는 삶이 곧 지옥이고 고통일지도 모른다그런 고통 속에서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죽음이 곧 해방이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그럼에도 그는 삶을 말했다.

 

니체의 말이 생각났다한 번 지나간 강물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그러나 강물은 계속 흐르고 있다.

 

그의 삶도 그런 것 같다단 한 번의 실수가 초래한 그의 간난신고, 삶의 붕괴, 아니 파괴 앞에서 그는 사는 것 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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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을 건널 때 국경경비대 병사들을 매수하지 않았다매수할 의지도 없었을뿐더러 매수할 방법(수단)도 없었다.

 

이미 국경은 무너졌다약간의 용기와 평균적인 체력, 북한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살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손쉽게 월경(越境)을 할 수 있었다.

 

별다른 용기와 기술이 필요치 않다생존 앞에서 인간은 강인한 용기와 의지가 튀어나온다배고픔 그리고 그 배고픔이 죽음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공포그 공포는 인간사를 얽어매는 수많은 질서와 관계를 무력화시킨다.

 

처절함이란 단어는 이럴 때를 위해 예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얕은 여울을 통해 밤중에 중국으로 넘어가는 이들이 넘쳐났다담배나 달러 몇 푼으로 경비대를 매수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식량을 구하러 갑니다.”

 

그 한마디의 절절함, 그리고 거래아무것도 가지지 못할지라도 거래할 '꺼리'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나갈 때 못 한다면, 들어올 때 챙길 수도 있다남자라면 노동력이 있고, 여자라면 몸이 있다.

 

삶에 의미를 찾는 건 사치였다우선 살아야 그 다음이 있다이런 의지 앞에서 국경선은 무의미했다한 번 열린 문을 닫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질서와 통념, 관계에 대한 고민은 사치였다지키는 자도, 도망치려는 자도 모두 과거의 낡은 구습을 포기하게 됐다


생존 앞에서 그때까지의 질서와 가치는 무용지물이었다.

  

11월의 어느날, 그는 두만강을 넘었다그 이전에 수없이 건넌 곳이었다다른 탈북자들의 그것과는 다른 마음이었다.

 

자포자기의 마음. 


아직 열어보지 못한 희망. 


지옥의 밑바닥에서 여기보다는 낫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


이 모든 건 아직 증명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


, 불안을 떠안은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중국으로의 월경은 그에게 있어서는 일상이었다실패 이후에 찾아왔던 고난과 역경이 비일상이었고, 이곳이 일상이었다.

 

'사회의 내구도'란 말을 그는 실감하게 된다.

 

살기 위해 나라를 버린다


그때까지 김씨 아저씨는 자신만의 특수한 상황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생존을 위한 선택은 그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북한 전체의 보편적인 상황이었다.

 

두만강을 건넜을 때 그는 평균 체중 이하의 몸무게였다무의미한 말이다. 그가 탄광에 들어갔을 때부터 이미 그의 몸은 그의 정신을 감내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에게 남은 건 생존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었다맹목에 가까운 본능.

 

생존은 유기체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제일선이다그는 살아남았다. 두만강은 그에게 생존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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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변의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북한 주민과 조선족의 우정과 갈등을 그린 

장률 감독의 영화 <두만강>




그의 특수훈련에 대해 짐작케 할 수 있는 몇 가지가 있는데, 기본적인 체력이나 정신력도 정신력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상황판단능력'이었다. 김씨 아저씨는 첩보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상황판단능력이라고 했다. 우선 이 보여야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사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우리가 느끼는 공포의 9할이 어디서 오는지 아네

바로 머리야. 머리."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톡톡 치며 말하는 김씨 아저씨. 인간은 어려운 상황, 불리한 상황, 몰리는 상황이 벌어지면 자동적으로 좋지 않은 방향으로 머리를 회전한다. 이는 인류 진화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그 피해를 최소화 시켜야 하는 인간이기에 두려움에 대한 자동반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사의 대부분의 문제들은 인간이 머릿속에서 상상해서 만든 두려움에 의해 더 꼬이게 된다는 것이다. 두려움이란 건 똑바로 눈을 부릅뜨고 바라본다면, 2/3는 날아간다고 한다. 상황판단능력이란 것도 대단한 스킬이 아니라고 한다.

 

"두 눈 돌리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렇게 찬찬히 살펴 본 걸 분석해서 가장 확률 높은 길을 찾아가는 것."

 

그렇게만 해도 어지간한 일의 8할은 극복가능 하다고 한다. 첩보원의 체력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체력이란 본 시리즈의 맷 데이먼과 같은 액션을 위한 체력일 수도 있겠지만, 첩보원의 체력은 곧 정신력에서 나온다는 의견이었다. 강한 체력이 곧 강한 정신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몸이 무너지면 정신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건 그의 경험치에서는 '개소리'였다.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살아남기 위해서, 언제 어느때고 자신의 정신이 가장 명민하게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서 육체를 단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이 명민하게 돌아간다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는 공포와 두려움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배짱을 일으켜 세울 수 있고, 그런 배짱이 올라온다면 문제의 8할은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2할은?

 

"(피식) 내빼야지"

 

지지 않는다는 건 무적이란 의미가 아니다. 질 싸움을 피한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바라본다는 건 상대와 나. 내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다. 중과부적이라면 우선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생존 앞에서 그 나머지는 거추장스러운 장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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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을 넘어 간 이후 그의 삶은 또 다른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 김씨 아저씨의 말, 언론에 나와 있는 중국 동포들에 대한 생각들김씨 아저씨의 조선족에 대한 증오는 이해가 가는 대목이 있었다.

 

조선족? 조선족이 뭐이가?

조선말 할 줄 아는 떼놈들이지!”

 

그의 순전한 분노가 느껴지는 말이었다그는 중국을 믿지 않았고, 조선족은 더더욱 믿지 못했다인간을 믿어선 안 된다는 방증이 바로 조선족이란 것이다.


배우지 못해서? 아니다사람은 어떤 순간에서든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최우선한다상대방에 대한 연민이나 애정은 사치다나와 특별한 접점이 없다면 그 나머지 관계에서는 이익을 통해서만 굴러간다정글의 법칙. 약육강식의 세계. 그 살벌한 세계에 탈북자들은 발가벗겨진 채 내던져졌다그리고 '그들은' 본능대로 이들을 사냥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선 이건 당연한 법칙이다거기에 서푼어치 양심이나 인정, 도리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두만강 아래에선 본능 앞에 무너진 나라가 있었고두만강 너머에는 본능에 충실한 약탈이 있었다.

 

차라리 떼놈들이 낫지...”


차라리 중국인이 낫다는 것이다. 재미난 사실은 조선족과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화교들 이들에 대한 탈북자들의 반응은 거개가 비슷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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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데일리한국




다행이다그가 두만강을 건너고 얼마 동안은 그에게 안돈(安頓)의 시기가 찾아왔다.

 

훗날 당시를 정리해 봤는데, 김씨 아저씨의 생각과 행동은 두만강을 넘기 이전과 이후로 나눠지게 된다. 최초 중국 정보원의 정보가 가짜로 판명났을 당시 김씨 아저씨는 '분명 문책이 떨어질 것이다.' 란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잘하면 노동교화소 정도일 것이라는 어느정도의 기대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당신이 해 온 업적 생각했고, 장인의 뒷배를 고려했다그러나 상황은 심각해졌다. 보위부인지, 보위부가 아닌지로 끌려갔을 때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 챘다. 여기서 그가 생각했던 게 '중국에서의 행적'이었다. 스파이, 외교관, 그리고 공군 전투기 조종사의 경우는 사상적 검증과 함께 출신 성분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도 이중삼중의 안전장치 , 목줄을 다는 것이 기본이라고 한다


고문이 시작되기 전 찰나와 고문 와중에 김씨 아저씨는 찬찬히 '중국에서의 행적'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 된 고문과 이어지는 '자백제 투여'로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차도 몰랐다고 한다. 이 당시, 그러니까 중국에서의 탈출과 조선으로의 복귀, 이어지는 고문의 시간들까지 김씨 아저씨는 오로지 생존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고 한다. 생존의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역시나 돌아온 대답은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니?"

 

였다. 나중에 김씨 아저씨가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서 정리해 보니, 어린 시절부터 고아로서 끈질기게 버텨왔던 생존의지에 첩보원 교육을 받으면서 배운 생존훈련, 그리고 가족에 대한 애착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나 첩보원 교육을 받으면서 배운 생존훈련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겠다. 정신이 조각조각 분절된 상황에서도 자신이 현재 어디에 있고, 어떤 상태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그게 고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제일수칙이라고 한다. 그때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없었냐는 질문에,

 

"장인도 장인이지만, 내 상황을 보아하니 최소한 가족이 죽지는 않았다는 확신이 있었어."

 

라고 대답했다. 장인의 지위를 어느 정도 믿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자기가 아직 살아있고, 고문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용도폐기 당했다면 가족들은 완전히 끌려나갈 것이고, 자신에게 더 끌어낼 뭔가가 있다는 판단이라면 고문 현장에 자기 가족들을 데려온다거나 자기 앞에서 가족들을 고문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최소한 자기 앞에 가족들을 데려오지 않는다는 건 가족들이 최소한 '공민권'은 유지하고 있을 것이란 판단준거였다고 한다. 이런 판단의 기초는 장인의 지위와 그동안의 자신의 성취, 현재 자신이 당하는 고문의 수위를 보고 판단내린 것이다. 혹독한 고문이라지만 그건 일반인들 기준에서의 혹독한 고문이다. , 일반인들이라면 벌써 몇 번이나 요단강을 경험했을 고문이지만 자신의 경우에는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붙잡을 수 있는 수위였다. 그 수위를 결정한 건 보위부로 추정되는 이들이었다. 그렇다는 건 아직까지 자신의 생명은 유보된 상황이라는 결론이었다. 김씨 아저씨는 탄광 안에서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의 일생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를 그때 누렸던 것 같다그의 남은 일생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초로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중국에서의 얼마간이 그의 인생의 황금기일 것이다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복구하기로 결심했고복구 직전까지 삶을 이끌고 나갔다.

 

그리고 모든 걸 다 잃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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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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