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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02. 화요일

마사오









내 칭구, 중규에게.


중규야, 잘 살고 있냐. 너랑 꼬추 덜렁거리며 노고산에서 비둘기를 잡아먹고 호탕하게 계집아이들 치마를 걷어 올리며 성추행을 일삼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 어느덧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신입 여직원에게 실없이 던진 농담 하나마저 성희롱이라 지탄받는, 아저씨가 되어 있구나. 세 살 성폭력,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듯 하네.


내가 근 20여년 만에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어저께부터 너의 이름이 온갖 매체, 특히 SNS에 도배되다시피 해서 무척 반가웠기 때문이다. 너도 들어봤을 게다. 요약하면 이렇다. 


"1일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정규직보다 해고 요건은 쉽지만 처우는 비정규직보다 높은 형태의 소위 '중규직' 도입 방안을 내년 경제정책방향에 담을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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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머니투데이


아, 그리운 내 칭구, 중규야! 수년 전에 네 소식을 건너 듣기론, 서울 근교 티켓다방에서 언니들 실어 나르는 운짱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설마 성매매업소 직원이 정규직일 리는 없으니 너도 아마 십중 팔,구는 비정규직일 테지. 이제 네게도 네 이름마냥 중규직의 길이 열리겠구나. 축하한다. 


응? 중규직이 뭐냐고?   


나도 잘은 모르지만 많은 언론에서 이르길 중규직은, 정규직 수준의 대우를 해주는 대신 고용기간을 해당 기업과 근로자가 협의-약정하는 방식의 일자리를 말한다는 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 단계를 의미하는 게지. 이를테면 계약기간을 2년으로 정한 비정규직(기간제 근로)과 계약 형태가 다른 방식으로 4대 보험 등 각종 처우가 정규직과 동일하지만 고용기간이 정해졌다는 점에서 정규직과도 구분되는 제3의 근로형태라더라. 좋은 걸 거야.


헌데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기획재정부가 "기간제면 기간제고 정규직이면 정규직이지 '기간제 정규직'이라는 것이 말이 안 된다"라며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는 바람에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 이걸 또 욕하는 사람들이 있더구나. '간보기'라면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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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느 정책을 언론에 먼저 슬쩍 흘리고 여론의 반응을 떠보는 <애드벌룬 기법>은 세계 수많은 나라의 거의 모든 정부들이 하는 짓거리지. 여론 수렴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나쁜 기법이 아니란다. 문제는 이 정부가 띄운 수많은 애드벌룬의 내용이 하나같이 '삽질'이라는 데에 있는 것이겠지.


또한 중규직 자체는 그리 나쁜 아이디어가 아니란다. 노사정 합의 같은 이른바 '사회대타협'을 이룬 나라들이 세계적인 경기불황을 이겨내고 있는 데에서 보듯이 사회 구성원들이 일정부분을 양보하고 서로 타협해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좋은 일이면 좋은 일이지 결코 욕할 일이 아니란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고용시장 일부에서 이미 내용상 중규직적인 형태로 일하는 직군도 존재한단다. 그러니 우리 너무 '중규직' 자체를 가지고 지랄을 할 필욘 없다고 봐. 


문제는 따로 있지. 타협이란 건 쌍방이 서로가 반 발짝씩이라도 양보하면서 이뤄지는 것일진대 우리는 너무 일방에게만 덤터기를 씌우고 그걸 타협이라 부르는 못된 버릇이 있다. 우리나라 전체 급여근로자 1천9백만 중 절반 가까이가 월 급여 2백 만 원이 채 안된단다. 그리고 근로자의 3분지 1이상이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려. 저축은커녕 안정적인 생활 자체가 어렵지. 원래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제 1순위가 '고용'이야. 그리고 '고용'이란 말에는 '교육' 또한 내포되어 있지. 졸라 어리버리해서 그저 하나의 밥버리지에 지나지 않는 인간을 고용해 열심히 조교시켜, 아니, 조련시켜 어엿한 '산업력군'으로 환골탈태 시키는 것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무 중 하나란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 교육에 드는 비용을 전부 사회, 아니 개인에게 떠넘겨 버린 지 오래잖아. 그러니 기업에서 돈 들여 시켜야 할 교육을 '스펙'이란 이름으로 개개인이 시간과 돈을 들여 쌓고 자빠진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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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우는 소리를 해. 얼마 전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고 일갈하면서 "기업이 월급 무서워 인력을 못 뽑는다"는 흰소리를 해댔지. 차를 만드는 회사가 땅투기를 하고 자빠졌으니 직원이 필요할 리 없잖냐. 차 한대를 만드는 데에 몇 명의 노동자가 필요한 진 모르겠지만 땅 사는 데엔 한두명이면 족하지 않을까. 그런 나라에서 인건비 걱정을 하고 자빠졌다. 직전에 낮술을 자셨는지 안 자셨는지는 모르겠다. 정규직의 평균 근속 연수가 8.28년이다. 월급 주느라 돈이 없어서 투자 못한다는 소린 그냥 개소리에 지나지 않아. 


대통령도, 경제부총리도, 심지어 고용노동부 장관도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30년 이상 근무자의 인건비가 신입직원 2.8배, OECD 평균의 2배에 이르며 이는 경직된 연공서열형의 임금구조 탓"이란 말이다. 참고로 OECD 평균 초임 인건비와 30년 이상 장기 근무자의 인건비 차는 1.5배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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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 사실을 두고 "우리나라 장기 근속자의 인건비가 너무 비싸다"라고 씨부리는 것들이랑은 일단 겸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자칫 겸상을 했다간 말을 섞게 되고 말을 섞다보면 상대의 띨빵함에 열불이 나서 싸다구를 날리는 폭력사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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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실은 우리에게 '우리나라 초임 인건비, 혹은 최저임금 따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걸 나타내 줄 뿐이다.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낮으니까 한 회사에서 무려 30년 씩이나 일해야 겨우 OECD 최저임금 만큼 받게 된다는 거다. OECD 국가는 최저임금이 우리처럼 바닥이 아니니 (즉 초장에 넉넉히 받으니) 장기 근속을 해도 1.5배 밖에 못받는 것이고. 


최소한 출발점을 바닥, 아니 아예 땅을 파고 들어가서 잡아놓고 할 소린 아니란 얘기다.


실질임금 상승률이 제로다. 비정규직 등 임시직은 오히려 마이너스다. 정부가 씨부리는 저 무수한 대책들 속에 인건비 무섭다고 벌벌 떠는 기업의 목소리는 차고 넘치는데 제 값 받고 일하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절규는 귀를 후비고 찾아봐도 없다. 


칭구야. 묻자. 이 나라는 기업이 과보호되고 있냐,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냐. 저 생퀴들이 정답을 모르는 게 아니야. 내수를 살리려면 소득주도 경제로 가야 하지. 그래서 최경환이 돈 풀고 선거에서 재미봤다고 이죽거린 거 아니겠니. 하지만 소득주도 경제가 '경제민주화'처럼 그저 레토릭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건 저 생퀴들의 징글징글한 재벌바라기 기질 때문일 게다. 타협이라 써놓고 한쪽을 일방적으로 씨를 말리는 것도 모자라 1% 주식부자들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배당소득 증대세제라는 둥 지주회사가 증손회사를 보유할 때 지분 100%를 확보하도록 한 공정거래법 조항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둥 재벌은 아주 보호해 주고 싶어 미치고 환장을 떨고 자빠졌다. 그게 이 나라 이 정권의 진정한 모습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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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응? 공정거래법 조항이 대폭 완화되면 어케 되냐고? 상속과 증여 과정에서 지배 구조를 개편해야 하는 어느 특정 재벌이 존나 좋아하시겠지. 으응? 그 특정 재벌이 누구냐고? 누구긴 누구겠냐. ㅅㅅ이지. (섹스라고 읽은 놈, 너의 음란함에 치가 다 떨린다. 뒤로 나가서 손 들고 서 있어라.) 


중규야, 먹고 살겠다고 성매매업소에 일하는 네가 나는 정말 부러...아니 부끄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의 노동의 가치가 지금처럼 똥값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위에서도 잠깐 얘기했듯이 급여근로자 절반이 월 2백도 안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내수가 돌아갈 수 있겠니. 올 해 1분기 기준 10대 그룹 81개 상장사의 사내 유보금이 515조9천억이다. 30대 대기업 법인세 감면 총액 4조여 원으로, 이는 대놓고 기업프렌들리를 외쳤던 이명박 정부 때 보다도 많은 액수다. 난 네가 "못살겠다. 갈아보자"고 외치지 않고 묵묵히 일하고 자빠진 지금의 현실이 외려 이해되지 않을 지경이다. 


대체 이 편지를 어떻게 마무리해야겠는 지 모르겠는 건 아무래도 다음 대선까지 도무지 앞이 안보이기 때문일 게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차기 대선에 박지만 태자께서 당선 될 확률이 무시 못할 지경에 기인한 절망감이 아닐까 싶다. 


내 칭구, 중규야.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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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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