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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04. 목요일

메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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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기무부대 - 보안대라 불러다오

국군 기무부대 - 안하무인의 세계






보통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괴리감을 느끼고 충격받는 게 우리 삶이야. 


요즘 등록금이 비싸서 어린 나이에 알바를 시작하는 덕에 세상의 더러운 맛도 빨리 느끼는 시대가 되었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엔 등록금이 비싸진 않았고, 알바도 노가다 류로 방학 때 화끈하게 힘쓰고 두 학기 등록금쯤 만들 수 있던 시대였거든.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일본가서 고속도로 노가다하는 게 가장 짭짤했었어. 물론 국내 아파트 단지의 노가다라도 두 달 쯤하면 아무리 비싼 등록금이라도 -사립대 의대쯤이라도- 충분히 내고 남을 돈을 받았어. 그래서 위의 얘기는 최소 내 세대라면 모두가 공감할 거야. 


그런데 나는 운 좋게도 사회진출 이후 알게되거나 혹은 사회생활을 꽤 해야 알게되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학습을 그 작고 별거아닌 기무사의 분견대 사무실에서 영재교육 해주듯이 초 조기교육을 해주는 걸 경험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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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모대의 콘트롤


내가 근무한 1년 4개월의 시간동안 피크 시즌이라 불리는 4-5월이 두 번 있었어. 해서 상근 중에는 유일하게 피크시즌 상황병이 되어야하는, 나름 저주받은 1월군번이었어.


그 두 번의 시간동안 배운 게 있어. 순수하게 분노해서 데모하는 수 많은 닭대가리들을 빼고 정작 앞장서서 기획하고 지휘하는 녀석들의 본 모습과 돌아가는 방식이랄까, 뭐, 그런 지저분한 이야기들이었지. 


1990년대 초반의 운동권은 이미 쎈 건 1980년대에 다 해봤기에 남은 찌꺼기로 폼잡는 수준의 레벨이었어. 물론 서울 쪽의 분위기야 사뭇 달랐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 시기의 운동권에는 분명 자기들끼리 분열하고 대립도하며 이권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던 것만은 부정할 수 없던 막판 딴따라 분위기가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어.


순수하게 힘으로 충돌해서 으쌰으쌰 전선의 전진과 후진을 한다고 생각했던 얼뜨기 데모대들의 생각과 달리 전진할 수 있던 최고 지점은 이미 정해졌고 해산시간과 그 날 날아다니기로 약속한 꽃병의 숫자와 집중투척 시점, 어떤 구호대목에서 클라이막스가 터져 폭력상황에 근접할 것인지가 이미 설계된, 일종의 연극판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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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과의 주도로 장학금(?)을 받아가는 녀석들이 데모대 주동세력에 몇이 있었고 해당지역 대학 총학생회 선거가 있을 때면 비교적 말이 통하는 녀석들 리스트업하고 당선 가능성을 봐서 미팅을 했어. 그러다 얘기가 잘 되면 돈 좀 대주기도 하고 해서 당선이 되면 동반자 관계가 되는 거였지.


4-5월 시즌이 짜증나는 건 그들만을 통제해서 될 규모가 아니게 된다는 점과 애초 설계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 욱하는 사태가 많아진다는 점 때문이었어. 

 

학군단(ROTC)은 뭐 거의 알려진 쁘락치야. 학내 대자보나 시위상황 중 계획 외적인 요소가 발생하면 학군단 사무실을 통해 보안대에 리포트가 되고 전화선 통제상황이면 학군단 방위가 직접 와서 육성으로 리포트를 하게 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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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정도 상황까진 기억나는 게 없던 걸로 봐서 1990년대 초반의 널널하고 여유로운 운동권의 한량기를 실감케 하는 요소기도 하지. 그 이전 세대에선 연락망 끊기는 일이 많았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역시나 잘 짜여진 각본을 벗어나면 코미디가 발생하기도 하는 법이라서, 기억나는 돌발상황이 하나 있어. 꽃병이 날아야 할 시점이 아닌 시점에 날아간 꽃병으로 산불이 촉발된 일이었지. 다행이 초반 상황, 불 질러먹은 학생들도 당황한데다가 경찰들도 일단 산불이 커지면 근처 아파트들에 피해가 가고 거기다 그 아파트가 당시 돈 좀 있거나 힘 좀 쓰는 양반들이 많이 살던 곳이라서 모두가 불을 끄느라 정신 없게 되었어. 데모 하나가 학생과 경찰의 합동 산불진화 작전이 되어버린 거였지. 


이런 코미디 케이스를 빼고 예정된 시나리오를 이탈한 행사가 있던 날이면 행사 후 밤에 2과 계장님이 짜증을 내며 다 소환해. 새벽에. 그래서 재발방지를 다짐시키고 그래서 큰일하겠냐며, 미래의 지역 정치인으로 성장할 그들을 얼르고 다독이지.


그 결과, 당시 학생회장도 하고 데모대 진두지휘를 하고 그러던 사람들이 지금은 시의원에 도의원을 하고 시민단체장도 있는 거지. 간만에 돌아온 고향에선 그런 이름들이 꽤 보이더라. 2과 계장을 하던 양반을 이른 나이에 저 세상을 가셔서 이런 먹이주던 인간들의 이름이 뒤덮힌 세상을 보지 못하셨으니 좀 서운하시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해. 


물론 그 당시의 운동권 수뇌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어. 적절한 대의명분을 갖고 일을 수행하고 희생자나 피해자도 없도록 했으며 지역경제 시설에 타격을 준 일도 없지. 같은 골목에서 매일 데모를하면 그 지역만 피해가 커지니 적절히 옮겨다니며 시위를 하기도 했고.


기무사가 바라보기엔 균형 잡힌(?) 지휘를 통해 상생의 길을 걸어간 거니깐 좋은 쪽만을 굳이 캐보자면 이런 점이 나름... 에휴...


그런 광경을 바라본 내 나이는 스무살. 모든 시위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순수하지만은 않구나, 라는 것과 돈과 합당한 수준의 설득 논거만 있다면 오히려 순수한 쪽이 다루기 쉽구나 라는 생각, 그 때부터 배우고 하게 됐지. 2과 계장님이 나서면 난 병풍치기만 하는 과묵한 일반사병일 뿐이라서 말을 섞을 일은 없었고 그저 눈과 귀를 열어 그 상황을 바라본 것 뿐이었지만 그러면서 만나는 여러 상황을 통한 증명들은 학습 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지.




2. 방위산업


지방의 파라다이스 분견대라 수백억짜린 몰라도 자잘한, 당시기준 1-3억정도의 건축용역일들이 참 많았어. 담당지역에 미군부대가 있으니 미군부대 하청일의 대부분은 부안검사를 통과한 방산업체 등록을 마쳐야만 수행 가능하거든.


그래서 지역 건달들이 주로 가지고 있던 건설 용역회사는 불가근은 모르겠고 불가원은 했어. 당연히 건달아저씨들과 자주 보는 사이가 되고 그러니 시내에 나가 술먹으면 계산서가 저렴해지기도 하고 쌈나서 종업원을 북어 패듯 해도 절대 고소를 당하거나 시비에 걸리는 일 없었지. 이게 간댕이가 불게 만들어주는 이유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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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참 중엔 건달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가는 양반이 한둘 있기도 했고 해서 술 마시러가면 시비에 걸리는 일도 많았지.


20대 초중반. 돈은 넘치게 많고 경찰조직과 친목상태에 있고 스스로 특권을 누릴 수도 있는 조직의 일원일 때 사람이 얼마나 건방져지는지는, 참, 끝을 말할 수 없어. 게다가 혈기왕성하니 어지간한 시비는 끝장을 보려 하는 것도 있었지. 더구나 같이 줘패도 잡혀가는 게 상대편 뿐이면 소문이 빠른 작은 도시에선 이게 금새 퍼지는 거야. 누가 시비걸려고 하다가도 이쪽 면면을 안다면 시비가 길어질 일이 적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건방져지는 거고.


건달아저씨들 보안대에 오면 차가 아무리 방금 코팅을 끝내 번쩍인다 해도 오자마자 차에 물을 뿌려 닦아주지. 그럼 일단 짧은 미팅이라도 하고 나올라 치면 차를 닦고 있는 애들이 딱 보이는 거야. 거기서 그냥 가면 건달님이 아니시지. 배추 몇장은 털고 간다고. 그런식으로 매일 모이는 돈은 운 좋은 날은 20만 원 가까이 되고 운 나쁜 날은 5만 원 안 쪽이야.


돈에 따라 하나 달랑 있는 현역 녀석의 저녁 밥상이 짜장면에서 아구찜까지 왔다갔다 한다고. 주말이면 문화비디오에 비디오데크까지 렌탈해서 넣어주기도 했고. 


그런데 미군부대의 용역이나 건설 일은 시방서를 매우 깐깐하게 바라보는 일들이라 실질적인 이익은 없어. 단 인건비와 추가근무에 대한 수당을 명확히 미국식으로 지불했기 때문에 그런 쪽의 이익은 제법 좋았던 게 기억나. 결제도 현찰이고 말이야. 


해서 지방 치곤 그 이권이 좋았던 거 같아. 명절이면 간부들이 지갑을 수표용, 현찰용, 두 개 차고 다닐 정도였으니. 짭짤한 추석과 설날엔 일반 사병들까지 돈봉투를 줬지. 일렬도 딱 세워 놓고, 새해나 추석인사를 받고, 봉투에 5만원쯤 넣어서 쫙~ 곳간에서 인심이 나긴 하더군.




3.부동산 투자


보안대 내의 가장 큰 이슈는 재테크였어. 


1990년대 초반의 기무사에서 주목받을 정치적 이슈는 적었고 그저 돈을 왕창 벌고 싶은 계장들은 늘 지도를 끼고 살았어. 군부대 이전계획과 대형 토목공사의 계획들을 당연히 정보가 빠른 기무사에서 모를 리가 없고 그런 정보를 이용해서 처남과 친척의 명의를 빌려 헐값일 때 목잡아서 사두곤 했지. 


아마 당시 중사급이던 S계장은 그 땅을 중간에 팔아먹지 않았다면 가볍게 100억쯤은 넘겨 갖고 있지 싶어. 땅보러 같이 다녀서 어느 동네 땅 산지 내가 다 알거든. 나 같이 허우대 좋은 방위들은 간부들이 '사장님'신분으로 다닐 때 '가방모찌'라 불리는 비서질의 역할로 잘 불려다녀. 혼자 털래털래 땅 보러 가면 폼도 안날 뿐더러 보안대에 신고된 자신의 승용차인 프레스토를 끌고 가면 답안나오니깐 아내 친척명의로 사둔 로얄시리즈나 소나타 쯤은 끌고 가야 하는 거겠고 그런 식의 이중살림을 하는 간부들이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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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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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타줘야 됨


관사 13평 아파트에서 빈궁하게 사는 세팅을 해두고 정작 이슈가 있을땐 소나타 급에 부티 좔좔 흐르는 코디된 차림새로 바뀌더라고.


지금은 "땅은 정직하다"라며 강조했던 그 계장님 말을 새겨 듣고 '아, 당시 술값으로 살 수 있던 그 땅을 3천 평 쯤만이라도 사둘 걸'하고 후회를 하지. 다들 은퇴해서 발로 돈세고 있을 테니. (키 큰 S계장님, 혹시 이거 본다면 내가 이런 글로 조금 사연을 팔아먹는다고 화내지 않기.)


이렇게. 보안대를 통해 배운 것은 아무리 철천지 원수라도 타협 가능성과 소재는 있다는 것과 세상 일들이 보여지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었어. 수 많은 재야인사라 불리던 이들의 어두운 모습들과 정의로운 척 하던 이들의 지저분한 그늘. 역시 돈과 권력을 양손에 쥔 자들은 쿨하고 멋지다는 것과 그것을 손에 놓기가 무섭게 추해진다는 것. 정보의 활용법과 그 정보들이 창출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들. 사고가 터졌을 때의 해결 프로세스. 상상 이상의 폭력은 모든 문제를 제압한다는 것. 등등.


그리고 일반 회사에 가서 실제 써먹었던, 공부만 하고 곱게 자란 엘리트 그룹에게 잘 통하던, 과격한 원시적 폭력성향을 드러내며 겁박하는 방법도 있어. 두 번쯤 써먹었는데 효과는 최고였지. 약점을 잡아 압박하는 방법을 써먹은 것도 한 번 있는데, 그건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가 먼저 치고 나온 탓에 결국 반격자료로 써서 효과는 반감됐었어. (뭐든 선빵일 때가 좋더라고. 정보든 폭력이든.)


생각보다 '망'이라 불리던 정보계 쪽의 일반 세상 감시체계는 조밀했고 소도시에서 행동 한 번, 말 한 번 실수했을 때의 파장을 생각해보면 '맘껏 떠들고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당시엔 많이 하며 지냈어. 세상이 어느정도 복잡해지고 이제 이쯤이면 그러지 않아도 되겠단 생각을 하며 지낸 게 내 30대 중반 시절부터라면 이제 다시 조심하며 지내야하는 시대를 알아가는 40대 중반인 거 같아. 내 성향과 특성을 맘껏 외치며 살아갈 수 없는 사회가 내가 태어난 나라인 것은 분명하니까. 스스로 드러내서 손해볼 일이 많다면 조심하며 지내야 되는 거겠지. 


당시 집안전체에 대한 평가는 우익보수. 우리집안이 세월을 통해 쌓아온 기록은 그랬고아마도 지금도 그럴 거야. 나 또한 희망과 발전가능성을 지키지 못하는 현 체제는 싫더라도 국가기관이 허술하게 비밀스러워야할 부분에서 자꾸 걸리고 헛발질 하는 게 싫은 쪽이거든. 적어도 국정원쯤이면, 내가 아는 국가기관 수준에서는 지난 선거에서처럼 허술하게 걸리고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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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라는 단위에서 정의롭다거나 하는 표현을 쓰거나 관련된 실체를 가지면 웃기는 일인 거고 불투명한 부분은 끝내 존재해야 한다고 봐. 모든 걸 국민이 알 필요는 없으며 적어도 그런 부분에서 적국 정보부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이들의 행위를 파악 당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깐. 그런데 하물며 국내에서 언론과 정치 조직에 걸리다니. 허접한 놈들. 


아마도 은퇴시점까지 간첩을 잡지 못했을 'L계장', 


지금도 여전히 자기 말버릇, "개 좆이나~"를 외치며 한푼이라도 더 탑을 쌓아가고 있을 'P계장', 


스리슬쩍 중간만 가자, 하며 뭐든 눈치껏하며 부동산 투자에만 올인하던 'S계장', 


씀씀이 큰 마누라땜에 연금 연차되면 바로 퇴직해서 사업을 할거라던 또 다른 'S계장', 


가장 보안대스럽고 가장 공포스러웠으며 가장 인자했던, 그래서 야누스 신상 같았던 고 'J계장', 


대장이자 영관급 장교로, 부임할 땐 누구보다 깨끗한 조직을 만들겠다며 와서는 결국 파라다이스 분견대의 마력에 물들어 누구보다 더 두툼한 수표용지갑을 자랑하게 되었던 'L소령' (덕분에 세배돈도 두둑하게 주시고 뭐 내게는 좋은 양반이었지. 아침 회의 때 커피를 배달시켜서 내겐 공짜 야쿠르트와 계란반숙이 리베이트로 떨어졌던 기억도 있고.)


이런 이들에 얽힌 몇몇 에피소드들이 남긴 했는데 길어지면 좀 짜증날 이야기 같아. 내 군대이야기는 고생 한 점 없이 놀고 먹고 마시며 맘껏 권력의 찌꺼기를 털러 다닌 일화가 대부분이라 많은 이들의 짜증을 불러 일으키기 쉬워서. 여기 쯤에서 마무리를 해야할 듯 싶어.


타이핑으로 날밤새며 보고서 좀 썼다고 힘들다고 하긴 뭐하지. 또 내가 이성에 반하는 부조리를 많이 지켜보며 맘이 아팠다거나 혹은 순수를 해쳐 트라우마가 되었다는 둥의 순진한 얘기를 할 사람 또한 아니니.


난 적절히 조기교육을 받아 잘 써먹었고 국가시스템은 적절히 음험하고 더럽기도 해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전혀 상처받은 것은 없어. 일하는 상황에서는 미숙한 게 나쁜 거지. 뭐든 악이라도 유능하게 마무리까지 완결 잘 지으면 그것도 나름 예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야. 


지금 시대의 기무사는 모르겠어. 아마 권력도 한참 희석되었을 테고 사이버사령부란 곳에서 마타도어 쪽 업무는 들고간 모양이니 선거철 마타도어 작업은 기무사에서 손을 뗐겠지? 우편 쪽 담당이던 6과는 확실히 사이버사령부로 이관되었겠네. 대통령 독대도 안 할 테니깐 힘이 현저히 줄었을 테고. 더구나 이젠 나같은 방위가 없으니깐. (기무사의 힘은 방위에서 나왔어. 믿거나 말거나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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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마치고 끓여먹던 라면이 생각나는군. 각종 식자재를 보급대에서 뜯어다가 마구 낭비하던 철없던 그 주방의 오후가 가끔은 생각나. 


더 부패하고 더러운 이야기는 스킵. 1990년대 초반의 이야기 중 굳이 알아 좋을 일은 이 정도까지일 테고 아직 관계자 다 살아있는 마당에 까서 좋을 일은 아닌 거 같아. 지금 이 순간 태어나는 애들까지는 대한민국의 좋은 모습을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


보통 전쟁 후유증은 3세대를 간다고 보고, 전쟁에 준하는 사건도 2세대 쯤 지나야 치유가 된다던데 아직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상처없을 시대를 만나려면 50년쯤은 더 지나야하는 게 아닐지 판단되니깐. 후유증을 가진 기성세대가 남아있는 현재에서 내가 한 이야기들이 언젠가 당연하지 않고 부조리하며 그래선 안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절대 다수인 시대가 찾아올 때까진 모두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살 거야.


그런 핑계라도 대야 현재에 대한 증오가 옅어질 것 같거든.


오후면 갑작스레 추워지는 날,


모두 건강 유의하길.









메이비


편집 :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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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비.


유쾌하게, 즐겁게, 흐뭇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