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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24. 월요일

범우






올해 양파농사를 마치고 장인이 백만 원을 보냈다. 나름 치료비며 생활비가 신경 쓰이셨나 보다. 누군가에게 조건 없이 돈을 받는 건 처음 있는 경험이다. 걱정을 끼쳐서 난감하기도 하고, 인정받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하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노인들에게 적지 않은 돈이라는 걸 알기에 고마움이 크게 느껴진다. 김현진님의 말대로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입금이다.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임시공휴일을 만들어 주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준비를 해서 네 시간 거리의 처갓집을 가기로 했다. 덕분에 장인과 김연아 합창단이 나오는 티비를 봤다. 합창단 말미에 박근혜 대통령이 나왔다. 누가 행사에 대통령이 나와서 애국가 4절까지 독창으로 완창을 한다는 헛소리를 해서 나오는 줄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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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후반에 든 집사람 피부보다 윤기가 흐르고 탱탱해 보였다. 아내에게 조금 미안해지기도 한데, 그래도 대통령이 피부가 탱탱한 것이 쭈글쭈글한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한참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나오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의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 데 파마머리에 물광 나는 웃는 얼굴이 남았다. 오래전 이발소에서 본 전두환 꿈을 꾸었다는 주택복권 일등 당첨자의 신문기사가 생각이 났다. 로또 한 장을 샀다. 꽝이다. 내 복에 그럼 그렇지, 개꿈을 꾸었다.


이제 길 위에 몇 남지 않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며 분신을 하신 분이 결국 목숨을 잃었다. 박근령씨는 일본에 가서 아직까지 한국이 사과를 요구하는 게 잘못된 것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언니의 뜻을 대신한다는 말도 했다. 이후 대통령은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자는 말은 했어도 동생의 말이 언니의 뜻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일본의 아베총리는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하고 총리부인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광복절 행사에서 아이돌 가수 한 명이 일본어가 프린팅된 옷을 입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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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題なし(문제없어)


일본은 미국과 연합군에게 항복을 했지, 대한민국에 패전한 것이 아니다. 항복문서에 사인한 전승기념일을 챙기는 중국과 입장이 다르게 우리는 일본 왕이 항복을 선언한 날을 기념일로 삼는다. 조선에 재산을 두고 맨몸으로 귀국한 일본인들에게 일본정부는 보상을 했다. 일본인들이 맡기고 간 재산을 차지한 친일파들에게 따로 보상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재산을 차지하고 권력을 차지한 친일파들도 과거가 거론되는 것을 불편해한다. 배상과 보상을 요구할 처지도 되지 못한다. 배상과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불편할 뿐이다. 다만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리는 자위대 창립 기념식에 얼굴을 내밀어 과거의 인연이 현재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누군가는 암흑기를 연상시키는 광복이라는 단어보다 무에서 창조한 어감의 건국을 주장한다. 건국 이전의 것은 건국을 위한 발판이 된다.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민족보다 그저 피로 이어지는 가문과 혈족의 안위만 중요하다.


지뢰로 발목을 다친 군인들의 복수를 위해 음파공격을 하겠다는 뉴스를 본다. 두 발목을 잘린 하사가 부대로 복귀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땐 김진숙님 강연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대기업 생산직에 실습을 나온 실업고의 학생이 손가락이 잘렸다. 회사에서는 실습생인 학생을 치료하고 정직원으로 채용했다. 저만 정직원 되려고 손가락을 잘랐다고 친구들이 욕을 하고 멀어졌다. 실습이 끝나고 채용되는 숫자는 정해져 있다. 울던 아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두 발목이 잘린 하사에게도 부대 말고는 돌아갈 곳이 없어 보인다.


2010년 임진강의 목함지뢰는 1명 사망과 1명 중상의 위력이었지만 민간인의 정신력과 군인의 정신력은 다르다. 정신력이 부족하면 목함지뢰 한 발에도 죽을 수 있지만 정신력에서 승리하면 두발이 터져도 살아남을 수 있다. 자본과 노동의 싸움에서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노무현 정권에서 총리를 했던 한명숙님이 감방에 간다. 돈을 줬다는 사람도 없고 받았다는 사람도 없지만 대법원의 권위는 준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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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일보>


새삼 야당에서 무너진 사법정의를 한탄한다. 사법정의가 무너진 건 반민특위의 법정이 무너질 때 무너졌다. 혼인 시장에서 돈 받고 팔려가는 판검사와 돈 주는 의뢰인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는 변호사들에게 사법정의를 기대했다니 노동운동에 첫발을 담그는 노동자만큼 순진하다.


성완종씨가 목숨을 끊으면서 이름을 적어놓은 분들은 조용히 넘어가고, 돈 준이도 없다는 사람은 감옥살이를 시키는 것이 입장을 바꿔보면 억울할만하다. 경찰 앞에 용역 깡패들이 밀고 들어온 증거가 있어도 아버지 죽인 죄로 옥살이를 하고 나온 용산 철거민도 있다. 맘에는 안 들지만 장난감 총을 개조해서 내란을 일으킨다는 병신 같은 죄목으로 잡혀가고 당이 해산되는 시점에 예견된 일이다. 세상에 원인 없이 일어나는 불행한 일들은 없다.


쌀 한 가마 가격에 북한 처녀가 중국내륙으로 팔려가서 소처럼 일하고 마을 노총각들의 욕구를 풀어준다. 해외로 나갈 재력이 없는 남한의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잡아먹는 경쟁을 하다 외국인 노동자의 저렴한 인건비경쟁에 무너진다. 서로의 자존심을 걸고 물러날 곳 없는 치킨게임을 벌인다.


그저 하루하루 사는데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






범우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