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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망명자 (7)

2014-12-1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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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0.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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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아래 연재물은 딴지일보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온 한 필자와 

오랜 시간 상담 끝에 본지 마빡에 올리기로 결정한 기고문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북한에서 스파이로 길러졌다 활동 도중 

숙청된 남자로 

필자는 그 남자와의 만남을 

본지를 통해 풀어낼 예정입니다. 

 

편집부 확인 결과, 

필자는 오랜 시간 취재를 직업으로 삼아왔고

그의 본명으로 된 다양한 기사 및 취재물을 

여러 통로를 거쳐 직접 확인하였기에 

아래 글을 마빡에 올립니다. 


연재물 도중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이 있을 수 있기에

필자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올린 점, 

독자제위의 양해바랍니다. 


 





 


지난 기사


망명자 (1)

망명자 (2)

망명자 (3)

망명자 (4)

망명자 (5)

망명자 (6)



















 

"남과 북이 힘을 합쳐야 해."

 

우리가 평화통일을 말하며 늘 입에 올리는 말이다. 관용구와 같은 말이랄까? 그러나 김씨 아저씨는 다른 의미로 남북한의 통일을 말했다. 아니, 그는 '통일'이란 말을 입에 올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랄까? 통일을 한다면 남한 주도의 통일을 할 터이고, 그렇다는 건 그가 지금도 생각하는 '조선'이란 말은 어딘가로 사라진다는 뜻이다. 남한에게는 미수복 지역의 회복이겠지만, 북의 입장에서는 흡수되는 것이다.

 

그런 그가 말하는 '힘을 합쳐야 한'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북한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미제국주의자'란 말을 그는 단 한 번도 내뱉지 않았다. 그저,

 

"미국을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하면 되지."

 

그런 그가 끝끝내 겁내거나 혹은 증오하는 대상은 중국이었다. 그의 개인적인 경험 때문일까? 그는 중국인 아내와 처형이 보는 앞에서 조선말로 태연하게, 중국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TV마저도 중국채널로 나오는 그의 집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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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춘 시에서 무기를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중국군은 각 관구별로 보급체계가 달랐고, 각 관구별로 경제사정에 따라 무기를 교체한다. 군대는 넘쳐났고, 그 수장들은 거의 다 썩었다. 중국 조폭들을 털어보면 중국군 무기로 무장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63식 보총이 있는 걸 보면서 야떼놈들이 썩었구나란 생각을 했지."

 

김씨 아저씨가 말한 63식 보총은 중국제 56식 소총(기병총)을 말하는 것 같았다. SKS를 말하냐는 말에는 씩 웃었다. 총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68식 권총(북한제 68식은 토가레프를 뜻한다)은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을 거 같았지."

 

68식이 흘러흘러 중국까지 건너간 게 아니라면(그럴 확률은 그때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출처는 하나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사용했던 54식 권총(토가레프)이다. 하긴 삼합회쪽 조직원들이 전쟁을 할 때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권총 중 하나가 54식이고, 일본으로 건너간 중국 조폭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도 이 54식이다. 지금까지 발사가 되는지는 둘째 문제이고, 그 조악한 성능을 생각한다면 발사 할 때 두렵지 않은가를 되묻고 싶을 정도다.

 

총을 구매했는지를 물었다. 피식-

 

"총을 왜 사는데?"

 

? 지금 도망자인 김씨 아저씨에게 총은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첩보원에게 있어서 총이란 최후의 최후에 필요한 것이다. 첩보원이 총을 쏜다는 건, 그것도 현장에서 직접 정보를 취득하는 첩보원이 총을 쏜다는 건 볼짱 다 본 상황이라는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떼레비에 나오는 애들처럼 빵빵 쏘고 달리까

총을 들고 있다는 자체가 내 신분이 들통 난 거 아니가
정찰조 애들처럼 적국(그 적국이 누굴까?)에 들어가는 애들이 아니라면, 총을 와 들고 가는데

설사 총이 필요하다 해도 그건 일이 틀어졌거나 격한 상황일 때지."


일이 틀어진다는 건 발각되거나 발각에 준하는 위기상황을 의미한다.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조원이 아닌 다음에야 일반 정보원이 총을 만질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총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간 오갔다. 자살용 권총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을 때도 비웃음이 이어졌다. 자살을 왜 권총으로 하냐는 것이다. 앰플 등 많은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총은 그 자체로 자신의 신분을 웅변하는 아이템이다.

 

정보원, 간첩들은 현지에 동화해 정보를 취득하고 보고하는 존재들이다. 총을 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액션'을 보여주는 이들은 공작원들이다.

 

하다못해 64식 권총이라도 챙긴 줄 알았지만, 아저씨는 총과는 인연을 아예 끊었다고 한다. 총을 챙기면 꼭 총 쏠 일이 생긴다는 게 아저씨의 지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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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국방일보



지린성에서 아저씨는 다음 행보를 위한 준비를 했다. 당장의 육체적 괴로움(배고픔)에서 벗어나자 아저씨는 북에 둔 가족들이 생각이 났다. 여동생과 아내, 아들, 그리고 장인까지직접 선()을 연결해 북한쪽과 접촉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다.

 

"이제 겨우 내 한 몸 건사할 정도가 됐는데, 그때까진 무리였지."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한 가지는 이었다. 돈이 있어야 북한 쪽 선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북한의 국경선은 헐거워진 상태. 돈만 있다면 북쪽에 남겨 둔 가족들을 연결할 수 있고, 그 다음 수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김씨 아저씨에게는 돈이 없었다입에 뭔가를 우겨 넣기 바빴고, 겨우겨우 자전거 배달 일을 하던 집의 창고 한 켠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 탈북자들을 찾아서 가족들 소식을 알음알음 물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이 경우에는 가족들에게 더 큰 화로 돌아갈 것 같아 이 마저도 참았다.

 

극한 상황임에도 김씨 아저씨의 판단은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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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춘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얻던(돈을 벌 수 있는 정보) 김씨 아저씨의 눈에 들어 온 아이템이 있었다. 바로 '김치'였다.

 

IMF 이후에 중국에는 너나할 거 없이 김치공장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인건비와 원재료비가 상승해서 도저히 채산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원가 부담 때문에 중국산 김치들이 국내 시장에 유입됐고, 이제 중국산 김치가 없으면 장사를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남조선이 IMF 맞았을 때

여기서 머리 좀 돌아가는 애들, 사업 좀 해 본 애들은 

김치사업이 된다고 생각했지

떼놈 정부놈들도 이게 돈이 된다 싶으니까 

금감면하고, 무상임차하면서 부채질하기 시작했지."

 

김씨 아저씨가 말한 건 2000년과 2001년의 상황이었다. 한국 경제가 휘청이던 97년부터 IMF 직격탄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던 99년까지 중국에는 김치공장의 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이 한가운데 뛰어든 것이 김씨 아저씨였다.

 

돈이 된다고 하니 중국 정부가 김치 사업을 지원하려고 폼을 잡던 시기. 김씨 아저씨는 김치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조선 사람 밥상에 김치 빠지는 거 봤나?"

 

간단했다. 조선인이라면 김치 빼놓고는 밥을 못 먹는다. 북한도 김장을 할 수 없으면, 염장을 해 김치 흉내를 내서라도 먹는다고 한다. 당시 남한은 인건비 때문에 김치공장을 돌릴 상황이 못됐고, 그렇다면 중국밖에 없었다.

 

"내가 어디를 가야 할지 결정이 났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곳'은 김치를 납품하는 곳이 몇 군데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초창기 김치공장은 전부 가내수공업 형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김치공장이랍시고 만든 곳도 김치만 생산하기 위해 따로 시설을 한 곳이 아니라 다른 식료품(주로 절임이나 가공등을 하는 공장을 김치공장으로 용도변경한 곳이라고 한다)을 생산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김씨 아저씨가 정착지로 결정한 곳이다. 이후 대한민국 김치 보급의 선봉장이 되는 곳이다. 중국 김치공장의 7할이 이곳에 모여 있다고 한다.

 

"산둥성에 지진 한 번 나면, 남한은 밥숟가락 놔야한다."

 

산둥성. 중국 전체 농업생산량의 35%를 책임지는 곳이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만, 한국의 경우도 수입 농산품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가져간다.

 

중국 농산물 혹은 가공식품이 사람 먹을 게 아닌 '저가형'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 식품의 품질은 꽤 우수하다. 문제는 수입업자가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단가를 후려치기 때문이란다. 일본의 경우는 적정가격에 적정품질을 요구하면, 그에 걸맞는 제품을 내놓는다. 2005년 기생충 파동 이전까지 한국 업자들은 무조건 단가를 후려치기 바빴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별로 나아진 건 없다고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중국은 일본은 물론, 한국 식탁까지 점령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수입김치가 한국산 김치에 비해 품질이나 맛에서 뒤쳐졌지만, 이제는 중국산도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 배추 품종을 가져다가 심었고, 그걸 가지고 김치를 담근다고 한다. 배추 뿐만 아니라 다른 품종들도 차곡차곡 가져와 심는다고 한다. 쌀시장 개방을 앞두고 쌀까지 종자를 가져와 시험생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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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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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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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울경제




김치사업의 가능성을 예감한 김씨 아저씨는 청도로 달려갔다. 거기서 뭘 했을까?

 

"제일 필요한 게 뭐 같아 보이니?"


"사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여자"


"...."


전혀 생뚱맞은 대답이었다. 여자라니그러나 그건 사실이었다. 김치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여자 필요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 현지인이 필요했다. 외국인에게는 허가를 내 주지 않는다. 하물며 탈북자에게 허가를 내줄까? 중국 공민증이 필요했다. 게다가 김씨 아저씨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중국 내의 인맥과 바람막이가 필요했다.

 

여자를 꼬셔야 했다. 그는 법적으로 결혼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김씨 아저씨는 엄연한 범법자이고, 자식을 낳는다면 이 아이는 북한 공민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북한 내 화교가 중국으로 넘어온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3년간 중국에 거주해야지만 공민증이 나온다고 했다. 그나마도 경제적 능력을 증명해야지만 중국인이 될 수 있다. 하물며 김씨 아저씨와 같은 탈북자의 경우는 강제소환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믿을 수 있는 여자와의 결혼. 그리고 그 여자가 가진 경제적 토대를 활용한 사업. 얼핏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딱 그 정도 이야기였다. 그러나 김씨 아저씨는 담담하게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중국 여자 한 명이 내게 매달리더군그래서 말했지

너한테 거짓말 하고 싶지는 않다

나한테는 북한에 아내가 한 명 있고, 자식도 한 명 있다

난 이들을 지원할 생각이다. (데려오겠다는 말은 못했다고 한다

여건이 된다면 내 가족들을 다 데려오려고 한다

그래도 괜찮다면, 나와 같이 살자."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김씨 아저씨에게 특별난 매력은 없어보였다. 그 모습 그대로 탑골 공원으로 옮겨 놓으면, 길 한 켠에 쪼그리고 앉아 장기를 두면 어울릴 모습이다. 10여년 전이라고 하더라도 기본 체형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가 아무리 중국어를 잘한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북한 사람이다그에게 남자로서 내가 느끼지 못하는 매력이 있을까? 그는 덤덤하게 한 여자가 자신에게 매달렸다고 한다. 청도시에 도착한 후 반 년만에 만난 여자라고 말한다. 그 여자의 외모가 평균보다 떨어지는 것일까? 김씨 아저씨는 슬쩍 중국인 아내를 바라봤다.

 

"저 아이보다는 봐줄만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중국인 아내. 나보다 3살이 어리니 37살이다. 김씨 아저씨보다 23년이나 어리다. 피부는 탱글탱글 했고, 어디가도 평균 이상의 외모라 할 수 있었다. 진청색 원피스에 중국인 특유의 번쩍번쩍 하는 악세사리에 반테 안경. 자기관리 잘하는 미시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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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괴감? 미묘한 질투? 흐릿한 분노?


도대체 김씨 아저씨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충격적인 건 이 예쁜(귀여운 쪽이 더 어울리는) 중국인 아내를 김씨 아저씨는 구박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 (불임이라고 한다)

둘째, 프랑스어를 배울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김씨 아저씨는 세 번째 아내를 구박하며 살고 있다. 구박이란 폭력이나 폭언이 아닌 답답함의 토로이다. 개인 가정교사까지 붙여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려 했지만, 13구역 안에 살고 있기에 딱히 프랑스어를 배울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한다. 물론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상의 한계가 있지만, 13구역 안에는 중국인 아내의 일가친척이 많이 있었다. 사촌언니는 수시로 찾아와 한 가족처럼 살고있다.

 

손님상을 봐주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면, 남편에 대한 애정 아니, 복종에 가까운 배려(?)가 느껴졌다. 조선시대에도 이렇게는 못 살았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비슷한 게 그녀의 가슴 깊숙한 곳에 있다는 느낌? 어떤 외압이나 물리적인 압박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김씨 아저씨를 사랑하는 거 같았다. 이유가 뭘까? 23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을 정도의 매력이란 게? 김씨 아저씨에게 사회적인 성취나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적인 매력? 물론, 매력이 있지만 그 매력이 남성성을 기반으로 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궁금했다.

 

아저씨의 매력. 그 매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아저씨는 어떻게 여자를 유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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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필요하다."

 

란 결론을 내리면, 여자를 찾고, 적당한 여자를 찾으면 그 여자가 달려와 매달리는 남자.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김씨 아저씨의 외모적인 상태는 평범한 50대 초반의 아저씨의 모습 그대로이다. 직업군으로 보자면, 막노동판에서 미장이나 목공을 하는 십장 아저씨의 행색 그대로이다. 반장까지는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저씨의 마력(魔力이다. 매력이 아니라 마력이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스파이로 길러졌고, 스파이로서 남을 포섭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걸 활용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것. 그게 이익이 될 수도 있고, 협박이나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스파이들이 사용하는 가장 고전적인 수법 중 하나가 '유혹'이다.

 

문제는 그 유혹의 경우 전통적으로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남자에게는 성욕이라는 약점이 있다. 전통적으로 미인계는 먹힌다. 비근한 예로 국내에서 검거 된 여간첩 원정화가 있다.


그런데 김씨 아저씨는 아니다. 남자가 여자를 유혹한다. 그것도 뛰어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어떤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이도 늙었다. 그럼에도 김씨 아저씨는 여자들을 유혹했고(아니, 여자들이 그를 유혹했다. 그녀들이 그를 쫓아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는 필요에 따라 여자를 구했다. '여자가 필요하다.' 그런 판단 하나면 언제든 여자를 구할 수 있는 남자. 그게 김씨 아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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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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