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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1. 목요일 

raksumi











나는 아이 둘을 키우는 부모다. 그런데 전래 동화를 읽어주다 보면 그 속의 비과학적 요소들이 너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대해 심히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바, 오늘은 전래동화 속의 구라에 대해서 디벼보고자 한다.




1. 개미와 베짱이


우리가 개미에 대해 '부지런함의 대명사', '근면의 화신'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아마 이솝 우화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탓에 그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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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벌어지기는 하였으나 그 디테일은...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얘기를 할 때 항상 인용되는, 이솝 명작 만화 중 베스트 1위, 개미와 베짱이. 그러나 이 이야기는 구라로 점철되어 있다. 그냥 구라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연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수준이다. 


일단 개미에 대한 디테일을 보자. 이야기에서 겨울을 난다고 했으니 아마 온대 지방의 개미가 맞을 것이다. 개미가 여름에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는 맞다. 그러나 이야기에서 묘사된 것처럼 식량을 따로 보관하는 것은 틀렸다. 섭취를 해서 몸안에 저장을 하는 것이 팩트인 것이다. 흔히 개미들이 커다란 죽은 곤충을 힘들게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들 모두가 자기네들 끼리 먹을려고 가져가는 것이지 창고에 보관하려고 가져가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또 한가지 사실은, 개미는 겨울이 되기 전 겨울 잠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짱이가 겨울에 와도 도와달라고 해도 자느라고 -가지고 있는 먹이도 없지만- 먹이를 나눠 주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이 동화는 개미가 겨울잠을 안 자는 것으로 알게 하여 우리 어린이들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내 어찌 우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베짱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 우화는 악의적으로 왜곡된 정황이 보이기에 몹시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베짱이가 여름에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것은 짝에게 '나 여기 있소' 외치는 것이다. 재미로 하는 노래가 아닌 종족 보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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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이렇게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그냥 단순히 논다고 폄하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 하다. 무엇보다 당 이야기는 노래하는 것을 마치 열심히 일하는 개미를 놀린 것인양 묘사하기까지 하니 진실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부당함을 넘어 악의적 왜곡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렇게 노래를 하여 겨우 짝을 만난 베짱이는 자신의 유전자가 있는 알을 낳고 죽는다. 그 알이 봄이 되어야 부화하니 베짱이는 겨울에는 알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때문에 개미에게 식량을 구걸하러 가는 모습 역시 자연적으로 관찰될 수 없는 현상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 동화는 베짱이가 1년 살이가 아닌 여러해 살이 곤충이라 잘못 알게 하여 우리 어린이들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내 어찌 우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높은 비율로 처음 접하게 되는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필자 역시 남다른 지성을 타고 난 덕에 말도 배우기 전에 이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특히 여기 나오는 호랑이의 바로 그 명대사,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 역시 구라다. 동화에서 호랑이는 오누이의 어머니에게 집요하게 떡을 요구한다. 하지만 호랑이는 육식 동물이다. 아래 영상처럼 육류 외의 음식을 먹을 수 있기는 하겠지만,


치킨 케잌이라고 해도 어찌됐든 육류 외의 재료가 섞여있는 것으로 보이는 음식을 먹고 있다. 

떡은 영어로 korean cake 혹은 rice cake이다. 케잌은 케잌인 거다!


위 호랑이는 야생이 아닌,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호랑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육류 외의 식재료를 케잌으로 가공해 먹였다는 점은 오히려 위 영상이 호랑이가 육류 이외의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함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근거이기도 하다는 점 또한 지적해야 겠다. (그 외, 떡과 호랑이의 연관성에 대한 부수적 이야기에 대해 전문가이신 견인차 님의 언급을 기대하는 바이다.) 


결과적으로, 잘 소화되지도 않을 음식을 12고개 넘는 내내 강렬히 열망할 정도의 변태적 성향의 개체가 출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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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호랑이도 결국, 떡을 먹고는 오누이의 어머니를 잡아먹는다. 

그것도 모자라 죽은 어머니 옷을 입고 아이들까지 잡아먹으러 온다.

이런 고기 덕후!


여기에 프로이드식 정신 분석학을 끌어와 어머니가 호랑이가 되는 과정을 은유한 것이라 보는 사람도 있다. 다시 말해 무서운 엄마를 엄마가 아닌 호랑이가 엄마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 그런 과정말이다. 


그러나 동화는 어린이들을 그 대상으로 하는 게 보통이다. 이야기를 열심히 읽었던, 어린 시절의 내 체험만 떠올려 봐도 동물원만 가면 정말 호랑이가 떡을 좋아하는 줄 알고 떡을 던지려고 하였고 그러다 30년 전, 과천의 서울 대공원이 개장되는 시점에서 호랑이에게 떡을 투척하겠다는 계획을 행동에 옮기고 말았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것은 개인 경험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호랑이가 떡을 먹지 않아서 수 많은 어린이들이 실망을 하고 그 후 책을 믿지 않게 되고 공부도 게을리 하게 되었다는 주위 사례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냐고 토달지 마시라. 내가 엠뷔씨 라듸오에서 지금은 돌아가신 김정만 박사님이 하신 말씀 분명히 들었던 것 같다.)


여담으로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서울 대공원 측은, 차마 동화를 믿는 어린이들의 꿈을 짓 밟을 수 없어 호랑이 울타리에 '호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간판을 달아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는 얘기도 있다. 생각해 보라. '호랑이는 실제로 떡을 먹지 않으니 떡을 던지지 마시오'라고 솔직하게 적어 놓았다면 어리디 어린 나이의 어린이들이 소설과 현실의 괴리에서 받게 될 심리적 상처가 어땠을지 짐작하기 조차 어렵다. 그러나 이런 호구지책, 아전인수, 좀 쉽게 이야기해서 땜질처방으로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현실 감각을 키워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이 동화는 호랑이를 떡에 환장한 짐승으로 잘못 알게 하여 우리 어린이들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내 어찌 우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한가지. 호랑이가 하늘로 올라가다가 썩은 동아줄이 끊어지며 수수밭에 떨어지고 거기에 피가 나서 그 후 수수가 붉게 되었다는데 이것 역시 구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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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는 정말 주변과 안 어울리게 빨갛다.

무슨 슬픈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색깔이긴 하다. 


이렇게 얻어진 획득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내가 몸이 약해 보디빌딩을 해 아놀드 슈바어쩌구제네거처럼 멋진 몸매를 만들었다고 그 멋진 몸매가 우리 딸에게 유전 되지는 않는다. 수수밭이 비록 지금은 호랑이 피가 묻어 붉게 변해도 다음 대에는 원래 색깔대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동화는 획득 형질이 유전되는 것으로 잘못 알게 하여 우리 어린이들을 혼란에 빠뜨릴 위험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내 어찌 이것 역시 우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3. 신데렐라


혹시 신데렐라가 무슨 뜻인 줄 아는가? 


'재투성이 아가씨'라고?


나도 30년 간 신데렐라가 재투성이 아가씨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신데렐라는 그런 뜻이 아니라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나 물건'이랜다. 동화의 힘이 이렇게 무섭다. 30년 동안 자신의 무지를 인지조차 못 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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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왕자를 만나 한 눈에 반해 정말 열심히 스텝을 밟았다.


이 무서운 동화의 절정은, 12시가 넘자 신데렐라가 계단을 초 스피드로 뛰어 내려가는 대목이다. 그런데 유리로 만든 구두가 안 깨진다. 구라인 것이다. 


전제부터가 잘못 되었다. 유리로는 구두를 만들 수 없으니까. 우선 깨지기 쉽고 구부러지지 않으므로 착용감도 별로다. (신데렐라는 춤을 춰야 되므로 신발이 어느 정도는 탄력이 있어야 한다.) 신데렐라가 살았던 중세 시대에는 더더군다나 강화 유리나 특수 유리를 제조하는 기술이 없었을 것이다. 기술이 발달한 요즘도 유리로 만든 구두는 나오지 않고 있다. 신데렐라 유리 구두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공주병에 걸린 수 많은 사람은 물론, 구두 매니아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 가능하다면 월트 디즈니 사에서 만들어서 신나게 팔아제꼈을 거다.


이에 대해 신데렐라의 구두가 실제로는 유리구두가 아니라 털가죽 구두였으며 불어로 털가죽을 'vair'라고 하고 유리를 'verre'라고 하기 때문에 오역이 된 것이라는 설을 제시할 분들도 있겠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유리구두가 더 어울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털 가죽은 늘어나지만 유리는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말 부분에 나오는, 언니들의 발이 커서 신발을 신을 수가 없는 장면에는 유리구두가 털가죽 구두보다 내용에 더 부합되므로. (참고로 원문에서 계모는 언니들의 발을 신발에 맞추기 위해 각각 엄지 발가락과 뒤꿈치를 칼로 자른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이 동화는 유리 구두를 만들려 하다가 좌절하는 사람을 양산함으로써 우리 어린이들을 혼란에 빠뜨릴 위험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4. 콩쥐 팥쥐


콩쥐 팥쥐에도 중요한 구라가 있다. 계모가 팥쥐와 잔치집에 갈 때 밑 빠진 독을 주며 콩쥐에게 물을 채워 놓으라 하는 대목에서 등장하는 구라다. 


'밑 빠진 독에 물 붇기'라는 속담의 유래가 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이 장면. 그러나 그 때 나타난 우리의 두꺼비, 독안에 들어가서 깨진 부분을 온 몸으로 막아 콩쥐의 물 붓기 신공을 성공시키는 비과학적 장면을 연출한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두꺼비는 허파가 있는 양서류라 물고기처럼 숨을 쉬지 않고 3~4시간씩 물 속에 오래 있을 수 없는 것이 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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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류라 지송하구만유. 

허파와 피부로 숨을 쉬어서 물독을 막고 있으면

지 목숨이 위험하구만유.


동화에서 묘사된 팥쥐 어머니의 평소 성격과 엉덩이 무게를 고려할 때 최소 5시간은 집을 비울 것이라 계산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 시간을 두꺼비는 버틸 수가 없다.


따라서 이 동화는 두꺼비가 어류인 줄 잘못 알게 하여 우리 어린이들을 혼란에 빠뜨릴 위험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어찌 우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5. 은혜 갚은 까치


강원도 원주의 치악산(雉岳山)의 이름이 기원이 된 이 이야기. (참고로 雉 자는 까치'치' 자다.) 뭐 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혹시 너무 오래되서 잊어 버렸거나 혹은 외국에서 오셔서 잘 모르실 수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내용을 요약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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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보러가던 서울로 가던 선비가 치악산-그 때는 그 이름이 아니었겠지 뭐 아무튼- 우연히 나무에 있던 까치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비암을 정의감을 참지 못하고 활로 쏴 죽인다. 그리고는 날이 저물어 산 속의 어느 집에 묵게 된다. 


잠을 자다 깬 선비,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졸라 큰 이무기를 보고 놀라게 된다. "니가 낮에 죽인 비암이 내 서방이야 씨방새야"라던 이무기는 갑자기 선심 쓰듯 선비에게 또 일케 말한다. "집 뒤 언덕에 있는 절에 종이 있는데 오늘 밤 자정에 3번 울리면 니를 살려주지롱"이라고. 


한 밤에 절에서 종이 3번 울릴 리는 만무하기에, 체념하고 죽음을 기둘리는 선비. 근데 자정이 되는 순간 절간의 종이 정확히 종이 3번 울리는 것이 아닌가? 졸라 황당해진 이무기는 꼬리를 감추며 사라지게 된다. 


궁금한 우리의 선비가 다음 날 아침 절간의 종에 가보니 낮에 구해준 까치의 부모로 보이는 넘들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죽어있었다. 



머 대략 이렇게 은혜를 갚았다는 얘기다. 근데 마지막 장면, 물리적으로 졸라 구라다.


실제로는 까치 머리로 타종했다고 해서 제대로 된 종소리가 나지 않는다. 유리컵을 나무젓가락으로 치는 소리와 금속 젓가락으로 치는 소리가 같지 않듯이 까치 머리로 종을 쳐봤자 우리가 기대하는 종소리가 아닌 거의 들릴 듯 말듯 한 소리이거나 나무 젓가락을 손으로 잡고 유리컵을 튕기는 듯한 둔탁한 소리 그 정도가 날까말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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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원사 동종. 이걸 까치 머리로 쳤다고 멀리까지 들리는 종소리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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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서울 보신각 종 타종 모습. 

사람이 여럿이 쳐도 열라 힘들다.


경주 석굴암 매표소 앞에 가면 이런 종이 있는데 돈 천원을 내면 종을 직접 칠 수 있다. 실제로 해 보면 졸라 힘들다. 근데 이걸 까치가 했다고? 누가 머리로 종을 두드렸는데 100m 밖에 있는 내가 들리면 인정해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얼빵한 이무기는 종이 울렸나보다, 하고 가버린다. 여기서 또 한가지 중요한 뽀인트. 근데 이무기가 귀가 있었나? 소리를 듣게?


와이(Why?, 예림당) 파충, 양서류편 75-76 페이지를 보면 뱀은 시력이 아주 나쁘지만 양 옆에 있는 눈으로 넓게 볼 수가 있으나 귀는 퇴화 되어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대신 진동으로 주변의 움직임을 느껴 땅의 아주 작은 울림까지 느낄 수 있다고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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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보고 


그니까 뱀이 종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구라다. 종소리도 크지 않은데 이것을 진동으로 뱀이 느낄 가능성은 제로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뱀은 이미 선비를 칭칭 감아 100% 감각 발휘도 어려운 상태였다. 


뭐 코브라는 소리를 듣고 춤을 추지 않냐고? 


코브라 처럼 그 뱀도 소리를 듣을 수 있지 않았겠냐고?


역시 지식의 보고  'Why?'의 독 있는 동식물 편 22-23 페이지를 보면 코브라는 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도 피리 소리를 듣지 못한다. 다만 코브라는 어두운 바구니 안에 있다가 갑자기 햇빛을 보게 되면 놀라게 되고, 사람이 피리를 움직일 때마다 따라 움직여 마치 춤추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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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속임수 라는 거

그러니 이런 말에 현혹되지 말자


따라서 이 동화는 까치 머리로 종이 울린다는 물리적인 오류와 뱀에게도 청력이 있다는 생물학적 오류를 당연한 지식으로 여기게 하여 우리 어린이들을 혼란에 빠뜨릴 위험을 졸라 내포하고 있으므로 내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으로 삼을 만한 점이 있다면, 위 동화가 '한낱 미물인 까치도 은혜와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더더욱 그러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는 거, 되겠다. (심지어 이무기도 선비를 살려주겠다는 약속에 충실한다. 남편의 원수인데도 말이다.) 


다행이다. 그러니까,


ㅆㅂ 약속 좀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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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은혜 갚는 까치 



(일부 내용은 과거 딴지일보를 참조했습니다.)







raksumi


졸라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