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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2. 금요일

고민불패 왜 그래자꾸우









편집부 주


이 글은 고민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왜 그래자꾸우님의 글은 2번 더 납치될 시, 

삼진 아웃의 원칙에 따라 

딴지 필진으로 임명되어 강제 노역에 동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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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50원]









 










초등학교 때였지.(어라, 국민학교라고 썼는데 저절로 초등학교로 바뀌는군.) 그때는 너나없이 다 가난했던 시절이었어. 그래도 우리 집은 때꺼리(끼닛거리의 방언_편집자 주)는 있었던 모양이야. 굶지는 않고 살았거든. 우리 집 바로 옆에는 큰 공터가 있었고 그 공터 한쪽 귀퉁이에 다 쓰러져 가는 판자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집에는 같은 반 여자애가 살고 있었어. 순이라고.


순이네는 찢어지게 가난했지. 정말 가난 했던 것 같애. 그 당시 보편적인 가난의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극빈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해.

  

순이 아부지는 시골에서 농사짓다가 애들 공부 때문인지 어쩐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대식구를 거느리고 올라와서 과일을 떼다가 시장에서 팔기도 하고, 지게도 지고, 리어카도 끌고 별의 별거를 다 했는데 그래도 옆에서 보면 하루 세끼를 잘 먹는 것 같지는 않았어.


아침을 일찍 먹고, 점심은 각자 알아서 먹은 후 저녁을 해지기 전에 일찍 해먹는 것 같더라구. 공터에서 놀다 보면 아직 해가 질려면 멀었는데도 순이네 집에서는 공터 한쪽 귀퉁이에 내걸어 논 솥에다가 솔가지며 땔감을 주워서 저녁밥을 짓는 것을 더러 본적이 있었어.


순이 큰 언니가 주로 저녁을 했는데 (순이 엄마는 순이 아부지와 함께 시장에서 장사 하느라 늘 늦게 들어 왔지.)

시장에서 팔다가 남은건지 주어 온 건지 썩은 사과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푹 끓이면서 불린 쌀 한 줌 정도 넣고, 된장 넣고, 시장에서 주워 온 배추 겉 시레기를 많이 넣고 또 삶아서 소쿠리에 넣어 처마에 메달아 둔 보리밥 두어 줌 넣고 그렇게 죽을 쑤어서 할머니까지 8식구가 먹었어.

  

공터에서 놀다가 그네들 밥 짓는 것을 재미삼아 보는 나를 보고서는 내가 먹고 싶어서 보는 것으로 오해를 했는지 아니면 그냥 정으로 그랬는지 순이 큰 언니가 내게 한 그릇 먹어보라고 주더군. 그 때는 먹는 거라면 뭐라도 사양 할 때가 아니니까 먹어는 봤는데 그 시큼하고 털털한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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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엄마는 그런 순이네가 안됐던지 우리도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가끔 쌀 됫박이라도 퍼다 주곤 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순이와 난 요즘 말로 소꿉 친구였던 셈인데 동네에서 애들끼리 놀 때면 순이는 지 오빠도 있는데도 늘 내 옆을 쫄래쫄래 따라 다니며 같이 붙어 다녔어. 난 6남매 중 막내였고, 걘 5남매 중 막내.


순이 얼굴은 지금도 희미하지만 어렴풋이 기억 나. 지금도 그 얼굴 그대로라면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야. 자세히 뜯어보면 귀여운 곳이 한 군데쯤은 있었던 것 같아. 못 먹고 잘 씻지도 않아서 겨우 거지꼴을 면한 형용이었지만

그래도 난 순이가 그렇게 거부감이 없었어. 그 때의 유일한 내 여자 친구였기도 하지만. 순이는 한 살 터울인 지 오빠보다도 날 더 챙겼어. 나도 그런 순이가 싫지 않았지. 

 

하루는 지 오빠가 동네 형 하고 싸움이 붙었어. 지 오빠가 좀 더 맞았어. 코피까지 터지고. 그런데 그 넘이 뜬금없이 휙 돌아보더니 나보고 이러는 거야


"야, 니도 덤벼. 새끼야! 니들 '가부'자나"


가부가 뭐냐면 나도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는데 '같은편' '동맹' 뭐 이런 뜻으로 알아 들었었지. 그 땐 친구끼리 친하게 지내면서 우리 '가부맺자' 이랬거든. 맞나?


어쨋든 나도 싸움이라면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아 할 때니까. 애들 싸움이긴 해도 나도 싸움에선 거의 안 졌거든. 나보다 한 살 위였지만 가만히 있는데 싸움을 거니까 참을 수 있나. 붙었지. 그런데 느닷없이 지 오빠가 맞을 때도 가만히 있던 순이가 갑자기 그 놈 다리를 꽉 깨물어 버렸어. 가시나, 내가 이기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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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는 공부도 거의 밑바닥인데다가 뭐 준비물이라도 가져 와야 되는 날은 맨날 불려가서 혼나고 벌청소 하고 그랬지. 준비물 가지고 올 여건이 못 됐어. 내가 두 개 있으면 하나 나누어 주고 그럴 때도 많았지. 공책도 필통도 없고 갱지에 몽당연필 두어개가 전부였어. 지우개가 없어서 맨날 침으로 쓱쓱 문대니까 지워지지도 않고 더러워져서 보다 못한 내가 아끼는 지우개를 칼로 반을 잘라 줬는데 그나마 다른 애들한테 뺏기고 그랬어.

 

난 사실 우리 반 부반장 애를 살짝 좋아했는데 이 년은 집이 부자인데다가 공부도 잘했고 또 순이보다 훨씬 이쁘고 키도 컸어. 그런데 나중에 몇 번 겪어 보니까 영 애가 아니더라구. 


한 달에 한 번씩 시험을 쳐서 짝꿍을 바꾸는데 반에서 1등한 남자애와 1등한 여자애가 짝을 해. 교실에 책상이 다섯줄이야. 앞자리가 열 명이지. 제일 가운데 줄 제일 앞이 남자 1등과 여자 1등이 짝이 되고, 그 뒤에 남자2등과 여자 2등이 앉아. 무슨 말인지 알겠지?

 

 

                            

                                           칠                   판

 

 

담임책상

 

 

   

남7등

여4등

남1등

여1등

남4등

여7등

남8등

여5등

남2등

여2등

남5등

여8등

남9등

여6등

남3등

여3등

남6등

여9등

남11

여11

남10

여10

남12

여12

남13

여13

                  돼지 

순이




 


그렇게 내가 부반장과 짝을 두 번인가 했는데 그럴 때 마다 이 년이 은근히 날 싫어라 하는 거야. 내가 좀 개구진데다가 공부는 좀 했어도 말썽도 많이 피우고, 사실 잘 씻지를 않아서 냄새가 좀 났던 것 같애. (으~ 쪽팔려!) X바, 그때 잘 씻고 다닌 넘 누가 있나?


사실은 이런 일도 있었어. 이거 진짜 비밀인데... 에효~ 니미~ 에라~ 저떠~

  

첫 시험 때인 4월인가? 부반장과 같이 짝이 되었는데 괜히 며칠 동안 서로 얼굴도 안 쳐다보고, 책상 중간에 줄을 긋고 넘어 오면 지랄 지랄 하고 그랬지. 그때는 4월인데도 추웠어. 내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연중행사인 목욕은 지난 설 때 하고 아직 못 하고 있었지. 겨우내말야. 


어느날, 손목 쪽이 가려운거야. 그래서 긁적긁적 긁었는데 개미보다 훨씬 큰 '이'가 (니미, 아 쪽 팔려...) 툭 튀어 나와서 그년 책상으로 기어가는 거야. 그걸 이년이 봤어. X바.


내 몸에서 이가 툭 튀어 나오니까 이 년이 비명을 지르는거야. 생각을 해 봐. 좋아 하던 여자 앞에서 그 꼴을 당했으니...

  

난 이미 그때 엄마와 목욕탕 가는 것을 졸업했어. 맨날 밖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이병'이니 '진지놀이'니 하면서 놀다가 저녁에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러야 그 놀이가 끝났고, 그러고 집에 들어가 저녁밥을 게 눈 감추듯 해치우고나면 또 놀러나가서 밤늦게야 쓰러지듯 잠이 들었지.


엄마가 6남매 뒷바라지에 바쁜 와중에도 물을 데워서 씻겨 줄라치면 그게 왜 그렇게 싫었던지 분위기가 심상찮다 싶으면 어느새 밖으로 도망 다녔지. 지금 후회 해봐야 늦었지만. X바.

 


IMG_4592.jpg  



난 못 본 채 그 이를 확 책상 밖으로 쓸어버렸는데 이년은 발을 동동 구르며 지랄을 떠는 거야. 담임선생이 복도에 있다가 뛰어 오자 이년이 느닷없이 짝을 바꿔 달라는 거야. 그건 지 맘대로 안 돼. 자리를 저렇게 배치하는 것은 학교장 방침이었으니까. 그래야 애들이 자극을 받아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 했고 또 사실 자극 받을 애들은 받았을거야. 대부분 예쁘고 얼굴 하얀 애들은 공부도 잘해서 걔들 짝이 될려면 한달에 한번씩 보는 시험을 잘 봐야 했어. 물론 앉는 자리 위치로 인해 공부 못한다는 게 드러나니까. 아예 창피해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오히려 공부를 더 안 하는 애들도 있었겠지.

 

남자 1등 자리가 치열했어. 내가 두 번 또 다른 애가 두 번. 나머진 한 번씩 밖에 못 했어. 난 사실 두 번 연달아 1등 하다가 그 부반장년 꼴 보기 싫어서 (걔는 무조건 1등이었어) 1등 일부러 안했다...고 얘기 하면 안 믿겠지? 니미, 70%는 사실이다. 믿기 싫음 말고.

 

이 년은 날 안 좋아한 게 확실해. 아마도 반장 새퀴를 좋아 했겠지. 그 반장 새퀴는 반에서 남자 4~5등 정도 하는, 머리는 졸라 나쁘지만 열심히만 하는 넘이었는데 무슨 회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장 아들이었어. 맨날 차로 데려오고 데려가고 개인 과외 선생도 있었다고 소문이 났지. 머리도 하이칼라로 해서 빗고, 옷도 더블 단추가 달린 자켓, 반바지에 흰 스타킹을 신은 한마디로 괜히 욕 나오는 새퀴였지. 

 

그 날 이후로 난 그 부반장년을 완전히 접어 버렸어. 시험도 잘 칠 이유가 없어져 버렸지 뭐. 담임이 여자였는데 그래도 나나 우리 집을 무시하지는 못했지만 그 년 편을 드는 것 같아서 졸라 섭섭했어.

  

"으이그... 저기 우리 반 1등이야?

너 목욕 언제 했니?

아이구 목에 때봐라.

내일은 꼭 씻고 와라. 알았지?

우리 반 1등이 몸에 이가 있으면 되겠니? 챙피하지도 않니?

몸에 이 쉰내... 에휴.

야 거기 창문 좀 열어.”

  

한마디도 가감 없이 그래도 옮겼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해. X바.

  

5학년이면 여자 앞에서 부끄러움도 있고 그랬을 나이인데 말야. 에효~ 나도 나지만 그 담임도 정말 X같은 년이었어. 1등은 이가 있으면 안 되나? 나는 그 때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 이후로도 나는 담임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서 그 어릴 때 생각하기에도 내 나름대로의 판단에 뭔가 불합리하다 싶은 것이 있으면 차곡차곡 그년에 대한 원한으로 쌓아 놓기 시작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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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가정 방문을 하게 되었어. 그 여자 담임은 우리 집에도 왔지. 그 때의 가정 방문은 코스를 정하고 한 코스의 10여명의 아이들과 선생이 같이 따라 다니며 실시했던 것으로 기억이 나. 우리 집에는 중간 쯤 왔는데 그 담임선생에게 평소에 정말 먹고 싶었던 알록달록한 양과자와 카스테라, 코코아, 과일을 잔뜩 내놓고도 그 젊은 여선생에게 굽신굽신하는 어머니가 너무 싫었어. X바, 안 남기고 다 먹기만 해봐... 

 

어쨌거나 인사치레라도 내 기억에는 담임이 어머니에게 나를 칭찬을 하는 것 같긴 했어.


"머리는 똑똑한데 공부시간에 열심히 안 하는 것 같은데 혹시 과외 보내시나요?"


어머니는 사양 하시면서도 기분 좋은 얼굴로


"아이고 아입니더... 과외는예...

쟈가 어릴 때부터 똑똑하긴 했는데 공부는 죽어라 안 합니더. 

지 큰 형이 숙제 안 하마 혼내니까 숙제는 하는 갑싶디더. 

진짜 이제 과외도 시켜야 될낀데..."


"6학년 올라가면 입시도 있고 하니까 열심히 해야 됩니다."


"...네..."


"..."


뭐, 우리 집에서는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담임이 뭔가 자꾸 미적 미적 거리는 게 봉투를 바랐던 게 아닌가 싶었어. 그러나 그런 건 우리 집에서는 국물도 없거든. 그나마 공부라도 좀 했으니 망정이지.

  

하여튼 그렇게 우리 집에서 나온 담임이 다음으로 가야 할 곳은 우리 집 대문을 나오면서 바로 보이는 공터 한쪽 귀퉁이에 다 허물어져가는 판자 집에 살고 있던 순이 집이었지. 그날은 순이 집에서도 막내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온다고 하니 장사도 하루 쉬고 두 내외가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팔던 과일을 깎아 접시에 담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어. 순이는 부끄러워하며 판자 집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고.

  

그런데 X발, 이 담임년이 순이 집을 멀리서 바라보더니 같이 따라온 다음 순서 애들 손을 잡아 당기며


"그냥 가자" 


이러는거야. 이것도 모르고 순이 아부지는 방에서 딱 얼굴만한 크기의 깨진 벽거울을 계속 보면서 머리만 만지작거리고 있더라구. 내가 멀리서 보니까 순이는 그만 울상이 돼서


"아부지예 선쌤이 그냥 갔어예..."


그제서야 순이 아부지는 허겁지겁 뛰어 나오면서 나를 보더니


"야야, 선상님 어디 가싰노? 순이 집 여라 카지 좀... 안캤나?"

(서울말 번역: 얘야, 선생님 어디 가셨니? 순이 집 여기라고 하지 좀... 말안했니?)


이러면서 헐레벌떡 그 담임년이 사라진 쪽으로 뛰어 나갔어. 내가 괜히 미안하더라구..

  

저쪽 신작로 앞에서 그 담임년에게 순이 아부지가 뭐라 뭐라 그러면서 굽신 굽신 거리는데 그 담임년은 꼿꼿이 서서 몇 마디하고는 휑 돌아 서는 게 보였고, 순이 아부지는 그 담임년 뒤에서 구십도로 절을 몇 번이나 하고는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유난히 구부정한 모습으로 돌아서 오는데 순이는 그새 울음을 터뜨리고.,..

 

X발...


그 어린 나이에도 이건 뭐가 잘못 된 것 같은데,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우는 순이를 보니까 저 담임년이 울린 것 같아서 쫓아가서 이단 옆차기로 담임년을 확 까 버리고 싶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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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 여자 담임선생에게 대한 미운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는 즈음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터지고야 말았어.


순이가 큰소리로 우는거야. 순이는 공부를 잘 하지는 못 했지만 꼴찌는 아니었거든. 그 당시에 한글도 못 뗀 애들도 더러 있었어. 걔들 덕분에 꼴찌는 면했지만 순이가 공부를 잘 하는 게 오히려 이상했지. 저 쪽 왼쪽 뒤쪽에 순이 자리가 있었어. 그 자리는 반에서 거의 끝에서 남녀 통털어 10등 안에라야 앉는 자리였어.

 

점심시간이 한 시간 가량 남아 있었는데 순이 짝이(졸라 살이 쪄서 돼지새끼라고 불렀지) 벤또(도시락)가 없어졌는데 그걸 순이가 훔쳐 먹었다면서 순이를 괴롭힌 거야. 순이는 착하기도 하고 또 남에게 해꼬지를 할 애가 아니란 걸 난 잘 알고 있었거든. 내가 평소에도 순이 편을 들어 주면서 애들이 못 괴롭히도록 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어. 그래서 애들이 순이는 별로 잘 안 괴롭혔어. 내가 그래도 여자한테는 인기가 별로였지만 남자 친구들은 늘 내 주위에 버글 버글 거렸어. 

 

그런데 이 짝꿍 돼지새끼가 순이를 한번씩 괴롭혀. 집이 고물상을 하는 새낀데 그 때 벌써 담배도 피워 봤다고 애들 앞에서 가오를 잡던 넘이었지. 내가 벌떡 일어서서 그 쪽으로 가는데 담임년도 마침 화장실 갔다가 그 때 들어 왔어. 그리고는 분위기가 심상찮고 내가 일어서서 움직이고 있으니까 내게


"무슨 일이야?"


이러는 거야. 나는


"저 돼지 새끼가 순이 보고 지 벤또 먹었다고 그랬심더. 

순이는 그런 짓 할 애가 아이라예."


이랬거든. 그런데 이 담임년이 이러는거야.


"니가 봤니?"


돼지새끼에게 묻는 줄 알았어. 그런데 돼지새끼가 말을 안하고 날 쳐다 보는거야. 순간 나는 당황했어. 담임년을 쳐다봤더니 나를 보고 있더라고. 그리고는 또 묻는거야


"니가 봤냐고"


나는 가까스로 대답했어.


"...으..은지예"

(서울말 번역: 아니요)

 

아니 이런 니미...  이건 아닌 것 같았어 진짜. 담임년은 순이와 돼지새끼를 지 책상으로 불렀어. 담탱이가 다짜고짜 순이에게 다그치는거야.


"순이! 왜 그랬어?"


순이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돼지 새끼는 당당했어. 

 

담임년은 돼지새끼에게는 별로 물어 보지도 않고 순이에게만 자꾸 왜 그랬냐며 캐묻는거야. 순이는 아예 입을 앙다물고 아무 말 없이 울고만 있고 돼지새끼는 순이가 지 벤또를 훔쳐가서 변소 뒤에서 먹는 걸 봤다고 그랬다가, 옆 반 애가 본걸 지한테 일러 줬다 했다가 씩씩 거리며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고 있었지. 이쯤 되니까 나도 순이가 혹시 배가 고파 진짜로 그랬나 싶어서 좀 쫄았어.

 

그런데 이 때, 진짜 드라마처럼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며 웬 시커먼 아저씨가 


“선쌤예. 조~기 앞에 고물상에서 왔는데 돼지 점심 벤또 가져 왔심더.

우리 사장님이 갔다 주라캐서 왔심더.

이건 선쌤낀데예 함 드시 보라카네예 사모님이예.”

(서울말 번역 : 선생님, 저기 앞에 고물상에서 왔는데 돼지 점심 도시락 가져왔습니다.

우리 사장님이 갔다 드리라고 해서 왔습니다.

이건 선생님 것인데 사모님께서 한번 드셔 보시라고 하네요.)


“....”

 

그 돼지새끼는 지가 벤또를 안 가져온 줄 모르고 벤또 없어졌다고 난리를 친 거였지. 옆 반 애가 봤다는 것도 순 구라고. 땟국물에 눈물까지 범벅이 된 얼굴로 담임 책상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순이는 조용히 얼굴을 들고 제 자리로 돌아가더니 주섬주섬 가방을 싸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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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지만 그날도 순이는 도시락이 없었어. 순이는 늘 점심을 굶는 것 같더라구. 어느날 나는 엄마를 졸라 도시락을 하나 더 사달라고 했더니 엄마는 가만히 내 얼굴을 쳐다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두 개를 사준 적이 있어. 점심시간때 나는 순이를 밖으로 불렀지. 형 도시락을 내가 모르고 다 가져 와 버렸다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순이 니 먹어라고 아무리 꼬셔도 형이 그 도시락 가지러 올 거라며 한사코 안 먹더라고. 나중엔 화를 내며 일부러 두 개 싸왔으니까 먹자고 해도 순이는 절대로 안 먹었어. 배가 부르다고. 니미... X발...


"왜 배부른데 가시나야, 니가 배부를일이 뭐가 있노.
빙시 거튼 가시나..."

 

가방을 싼 순이는 내가 말릴 틈도 없이 그 길로 교실을 나가 버렸어. 그 담임년은 난감한 얼굴로 돼지새끼 대가리를 쥐어박고 있다가 밖으로 나가는 순이를 부르며 쫓아갔지. 난 그 돼지새끼 멱살을 잡았어. 그리고는 대가리로 그 돼지새끼 면상을 박아 버렸어.


"야 이 똥 돼지 새끼야. 니는 그 벤또 니 주디로 까무마 니는 내가 지기뿐다이?

(서울말 번역: 네가 그 도시락(아저시가 가져다 준 도시락)을 먹으면 나는 너를 죽인다) 


니 순이가 니벤또 까묵고 변소에 내삐리뿌따캤제?

(서울말 번역: 너는 순이가 네 도시락을 먹고 화장실에 버렸다고 했지?)


자, 이 벤또 이거 빨리 변소에 떤지너라 빨리!! 자!! 빨리!!!"

(서울말 번역 : 자, 이 도시락 이거 빨리 화장실에 던저라 빨리)”


그 돼지새끼는 내 서슬에 놀랬는지 코피를 흘리면서 울먹거리더라구. 난 그 벤또를 바닥에다 내팽개치고는 발로 콱콱 밟아 버렸어. 계란 후라이와 반찬이 어지럽게 교실 바닥에 널브러졌지만 아무도 날 말릴 수는 없었지.

  

난 순이가 급했어. 얼른 창 밖을 내다봤더니 담임년은 순이를 달래는지 순이의 손을 잡았지만 순이는 조용히 저항하며 그 자리에서 그 담임년을 외면한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

 

왜 바로 쫓아가서 순이를 붙잡지 못했는지 지금도 안타깝고 내가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순이는 그날부터 말도 더 없어지고 시름시름 앓는 것 같았어. 학교에도 잘 나오지 않고, 결석도 길어지고, 집에서 잘 나오지도 않고, 어쩌다 동네서 마주쳐도 눈을 내리 깔고 내 옆을 돌아서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어.

  

그로부터 얼마 있지 않아서 순이네는 시골로 다시 돌아갔고 이사 가는 날에도 난 순이를 볼 수가 없었어. 학교 갔다 오니까 이미 이사를 가고 없었거든.

  

그 때 이게 무슨 감정이었는지 아직도 정확한 규명을 할 수 없지만 가슴이 찌릿찌릿한게 슬프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었어. 나는 위로 우락부락한 형님들 넷에 선 머슴아 같은 둘째 누이가 있는 집의 막내야. 난 정말 동생이 너무 갖고 싶었지, 특히 여동생을. 아마 난 순이를 여동생으로 여겼는지 몰라.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누가 볼세라 소매로 쓱 훔치며 난 이를 깨물고 다짐을 했어


'씨발년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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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에 있는 화장실에 갈 때는 진짜 조심해야 돼. 그 때는 죄다 푸세식이었지. 특히나 똥을 눌 때는 잘못 하면 똥 덩어리에 바운스 되는 똥물이 똥구멍까지 튀어 올라 올 때도 있어. 그 때 화장실은 이상하게 늘 질펀하게 똥물이 차 있었어. 대변보는 다섯 개 칸 앞쪽으로 벽을 보고 소변을 보도록 해놓았는데 30cm 정도의 높이로 시멘트로 돋우어 그 곳에 올라서서 소변을 보면 오줌 줄기가 벽을 누렇게 만들어 냄새도 지독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서던 고추가 벽을 직각으로 향하고 있으면 오줌이 벽을 향하여 발사 됐다가 바지에 도로 튀는 바람에 고추를 밑으로 내리고 갈겨야 돼. 어쨋든 그 오줌 줄기가 경사를 따라 흘러가서 똥통으로 빠지도록 해 놓은 구조야. 그래서 그런지 항상 똥물이 넘실대고 있었지.

 

심지어는 똥물에 우리가 앉아 있는 모습이 빛에 반사 되어 훤히 들여 다 보일 정도였어. 설계를 잘못 한 건지, 나 원...


어떨 때는 똥 눈다고 앉아 있다 보면 옆 화장실에 누가 들어 와서 옷 벗고 앉는 것까지 똥물에 빛이 반사 되어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잘 보여. 완전히 쪼그려 앉아 버리면 잘 안보이지만 서서 바지나 치마를 내리는 모습과 앉기 직전 앉을 때의 모습은 빛의 각도에 의해서 적나라하게 보여. 완전히 앉아 버리면 그냥 어두컴컴한 모습만 보이는데 아마 몸이 빛을 가려서 그렇겠지. 그래서 그랬는지 여자들은 이 화장실에 잘 안와. 특히나 여선생님들은 절대로 안와.

  

그 화장실은 화장실 뒤쪽에 똥을 풀 수 있도록 설계를 해 놨는데 한번씩 똥을 푸는 차가 학교로 오면 그 화장실 뒤쪽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똥을 펐어. 그럴 때면 학교 전체가 창문을 닫고 공부해야 돼. 지금도 그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그 곳은 평소에는 큰 널빤지로 막아 뒀는데 그 널빤지를 치우면 바로 화장실 중간의 세 칸의 똥물 바닥이 적나라하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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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을 마치고 애들과 축구도 하고 놀다가 애들도 다들 가고 나도 이젠 집에 가야겠다고 슬슬 옷도 털고 던져두었던 가방도 주워들고 있는데 저 쪽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 하나가 급히 나 있는 쪽으로 뛰어 오는거야. 오늘 교실에서 하루 종일 본 그 여자 같았어. 난 그 화장실에서 오줌 누고 나오는 길이었거든. 담임년이였어.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퍼뜩 내 머리를 스쳤어.

 

선생님들은 교무실 근처에 따로 전용 화장실이 있었지. 그곳은 학생들은 출입을 못하게 했어. 여자 선생님들은 가끔씩 선생님 전용 화장실이 만원이면 애들 화장실로 뛰어 오곤 했지만 운동장 쪽에 있는 이 화장실에는 오는 일이 거의 없어. 아마 그날은 선생님 전용 화장실을 늦게 마치는 6학년이 청소 담당이라서 애들이 청소 한다고 들락거리니까 설사가 나서 급하게 된 담임년이 운동장에 있는 화장실까지 뛰어 왔던 것 같애. 

 

당시 나는 화장실과는 10m 정도 거리. 담임년은 100m정도를 더 와야 했지. 난 재빨리 화장실 뒤로 가서 그 널빤지를 치웠어. 억수로 무겁더라고. 그리고는 서둘러 화장실 뒤를 돌아 저쪽 다섯째 칸에서부터 넷째, 가운데 셋째, 그리고 둘째 칸을 지나쳐 첫째 칸에 들어갔어.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그 담임년은 뭐라고 중얼 중얼 거리면서 내가 들어가 있던 첫째 칸을 노크 하는 거야. 나는 가만히 '똑똑' 응답을 했지. 담임년은 두 번째 칸은 그냥 건너 띄고 세 번째 칸을 노크 하더니 그곳으로 들어갔어. 그리고는 잠시 후 맹렬한 소리와 함께 몸 밖으로 하루 종일 처먹은 걸 힘껏 밀어 내더라구. 나는 조용히 첫째 칸에서 나와서 화장실 뒤로 갔어.


아까 막아 놓았던 널빤지를 치우면서 미리 주워놓은 그 돼지새끼 벤또 두 배 정도 크기의 넓직한 돌을 머리 위 끝까지 들고는 화장실 똥물에 비쳐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 여자 실루엣을 향해 힘껏 던져 버릴려다가 정말 간신히 참았어...

 

그 짧은 순간 똥물에 그 담임년이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쳤지만 자세히 보고 싶지도 않았어. 난 조용히 다시 화장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어.


이 화장실 문은 무거운 쇠로 만든 철문이야. 누가 문을 이따위로 달았는지 모르겠지만 이 화장실은 안으로 밀고 들어가게 되어있어. 손잡이가 밖에 있고 안에는 자물쇠로 잠그도록 고리가 있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다른 용도로 지어 졌다가 화장실로 전용해서 사용하게 되었던 것 같아.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있었던 건물이었대.

 

어쨌든 이 철문이 오래 돼서 이가 잘 안 맞아 그래서 문을 살짝 들고 밖으로 당겨서 꽉 닫아 버리면 안에서 어지간한 남자도 잘 못열어. 밖으로 열게 되어 있다면 몸으로 쿵쿵 부딪치면서 열면 여자라도 좀 고생하면 못 열 것도 없겠지만 안으로 열어야 하니까 그 꽉 긴 철문을 겨우 고리 하나에 손가락을 넣어 가지고는 무슨 수로 열겠어? 절대 못 열어 여자는...


여자 애들이 화장실에 들어가면 짓궂은 남자애들이 화장실 문을 밖에서 꽝 닫아 버리는 바람에 안에서는 울고 불고 난리를 피우지. 그런 장난을 치다가 혼난 애들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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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담임이 있는 화장실 문을 살금 살금 지나쳐 두 번째 칸 쪽 옆에서 화장실 철문 고리를 잡고 담임년이 살짝 닫아 둔 철문을 안으로 슬쩍 밀면서 그 반동을 이용해 재빨리 철문을 위로 들어서 있는 힘껏 문을 쾅 닫아 버렸어.


이거 한 동작으로 하기란 정말 쉽지 않아. 몇 번을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자신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하지 않으면 실패해. 난 한 번에 성공해 버렸지.


귀청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그 화장실 철문은 완전히 꽉 물려 닫혀 버렸어. 안에서는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지만 난 태연히 화장실 뒤로 돌아가서 똥통을 향해 던져 버리려고 했던 그 돌을 다시 주워 와서 담임이 들어가 있는 화장실 철문을 향해 힘껏 던져 버렸어.


쾅!!!


엄청난 충격에 그 철문이 어쩌면 열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소리만 요란했지 열리지는 않았어. 또다시 찢어질 듯 한 비명을 뒤로 하고 난 화장실 뒤쪽 담을 넘어 유유히 집으로 와버렸지.

 

이미 허물어 버린, 순이가 살던 판자 집이 있던 곳을 향해 잠시 서 있었어. 그래야 될 것 같았어.

  

다음 날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학교에 갔더니 그 담임년이 안 왔더라구. 교감이 대신 수업을 했어. 니미...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게 하더라고. 그 담날도 담임은 안 왔어. 교감은 또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게 했어.

 

사흘만에 학교에 나온 그 여자는 부쩍 말이 없더라구. 애들이 떠들어도, 숙제를 안 해와도, 준비물을 안 갖고 와도 늘 가지고 다니면서 걸핏하면 손바닥을 때려 대던 그 대나무 자도 안가지고 왔는지 애들을 그냥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더라구.

 

며칠 후 그 화장실 철문은 철거를 하고 나무문으로 바꿔 단다고 하루 종일 뚝딱거리며 씨끄럽더라구. 그리고 그 화장실 뒤쪽 구멍은 널빤지를 치우고 철거한 화장실 철문을 임시로 덮어 놨던데 한 달 쯤 뒤에 보니까 쇠로 새로 만들어서 주먹만한 자물쇠로 채워 놨더라구.

  

그로부터 45년도 더 지났네...

 


순이야... 지금 어디서 뭐 하며 지내냐?

 

살아는 있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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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본문 중 '은지예'를 제외한 나머지 서울말 번역은 

경상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경상도어에 능통한 독구 기자가 직접 번역했음을 알립니다.











고민불패 왜 그래자꾸우



편집 : 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