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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25. 화요일

펜더











"전쟁 날 거 같은데 모임해도 되려나? 분위기 묘한데... 뭐 전쟁나면 같이 오순도순 뭉쳐 있다가 전쟁 끝나길 기다려야지. 근데 군인 애들 정말 고생한다."


지난 금요일 날 내가 속해 있는 모임 '밴드'에 올린 글이다. 20대 시절부터 함께 해온 글쟁이들의 모임인데, 마침 이 날이 모이는 날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쓴 글인데, 바로 댓글이 올라왔다. 


"니가 그런 소리 하니까 겁난다. 진심은 아니겠지? 울조카 그제 군대 갔다."


40대 중반의 누님 한 분이 댓글을 올렸고, 그 얼마 뒤 다른 누님이 전화가 왔다.


"야! 전쟁 나는 거야? 빨리 말해! 전쟁 나는 거라면, 난 가족들이랑 같이 있을 거야!"


"야! 전쟁 안 나는 건 알겠는데, 네가 말하니까 불안하잖아! 전쟁 나? 안 나?"


장난 삼아(?) 올린 글 하나 때문에 모임 직전에 몇 통의 전화를 연달아 받아야 했다. 그걸 해명하기 위해 진땀 꽤나 흘려야 했다. 물론, 모임은 정상적으로 열렸다. 근 8년 만에 전원 참석이라는 쾌거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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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성섭


나는 TV 조선의 엄성섭 앵커를 좋아한다. 특유의 하이톤과 두 눈을 부라리며, '우리 박근혜 대통령'을 말하고 나서는 뺨에 살짝 홍조를 띄고는, 


"우리나라 대통령이니까..."


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그 모습이 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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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TV조선>


선명하지 않은가? 별 거 아닌 사안이라도 그가 말하면 지구 멸망 직전의 대위기 상황이 되는 그 프로세스가 너무 좋다. 자본주의 마케팅의 핵심이 '공포'라면, 그 공포의 최첨단에서 시청률을 파는 이가 바로 엄상섭이다. 난 그의 호들갑(그게 의도한 게 아니라면 그는 타고난 '언론 장사꾼'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이 좋다. 


(윤창중 사태 때 그의 '장탄식'은 지금도 눈에 선명하다. 그는 내가 손에 꼽는 몇 안 되는 '명앵커'다. 진심이다)


그의 입에서 '전쟁'이 올라왔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출연해 너나할 거 없이 현 상황을 분석했고, 시청자들을 어르고 뺨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아, 북한이 그럼 전면전은 못 일으키는군요?"


"대북심리전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군요?"


"B-2 폭격기가 그렇게 무서운 것이군요?"


처음엔 '전쟁'이라는 '공포'를, 그 뒤로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이 건네주는 '안도'를 건네주는 방송포맷. 긴장과 이완. 이런 사이클의 끝은 '나른함'이었다. 


'그래,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러나 30대 초반의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 '김정은'에 대한 일말의 불안함과 상식 밖의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북한이라는 '특수성'을 은근하게 흘리면서 공포는 끊길 듯 끊어지지 않으며, 120시간 이상 이어졌다. 


"전쟁은 나지 않지만, 북한은 '이상한 놈들'이라 미친 척하고 도발을 할 수 있다."


모름지기 장사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공포를 팔고, 그 공포의 처방을 내린다. 여기서 끝나면 한 번 파는 걸로 끝이기에 '단서'를 붙인다. 공포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꼬리'를 질질 끌며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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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TV조선>



상식


내 얄팍한 상식으로 전쟁이 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 순간이 있었다. 북한이 준전시상황을 선포했을 때였다. 


'전쟁은 안 나겠구나.'


그 뒤로 이어진 에스컬레이션. 북한 병력이 전방으로 이동했고, 포들이 움직였고, 결정적으로 잠수함이 사라졌다(그 사이 한국군의 자주포와 견인포들은 방렬을 마친 상태에서 대기중이었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우발적인 충돌과 뒤이은 확전으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계획된(?) 도발이 전쟁으로 이어질 확률은 낮다. 설사 우발적인 충돌이 났다 하더라도 국지적인 충돌로 진화될 것이란 게 내 판단이었다. 둘 다 잃을 것이 너무 많기에 전면전으로 나갈 상황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그 시기가 문제였다. UFG(Ulchi-Freedom Guardian, 을지프리덤가디언 -편집부 주)훈련을 하는 와중이라(비록 시뮬레이션 훈련이라지만) 미군이 와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 상대해도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인데, 미군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같이 하는 상황이다. 기습이 가져다주는 승수효과를 포기한 상태에서 전면전이라? 그것도 전력면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는 북한이? 전면전에 대해선 애초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련의 긴장조성의 목적은 전쟁이 아니라 '협상'을 위한 블러핑이라는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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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북한에서 내놓은 논평, '우리민족끼리'가 내놓은 남북 간 군사위기에 대한 거짓 기사를 보면서 실소를 터트렸다. 


영상 속에서 '사재기'를 하는 남성은 사재기가 아니라 '된장찌개'를 끓이는 모습이었고, 자해를 해 도망가는 예비군들의 모습은... 정말 마지못해 훈련장으로 끌려가는 '평범한' 예비군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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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걸까? 북한판 개그콘서트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아니라면,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대외용이 아니라 대내용인 걸까? 아니, 대내용이라면 우리민족끼리가 내놓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북한이 정말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김정은이 측근들이 전해주는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북한을 통치하는 걸까?'


'자학개그?'


이미 남북한의 군사, 경제적 격차를 극복할 만한 희망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1인당 GDP만 보더라도 남한 27,000달러에 북한 621달러다. 경제규모만 보더라도 남한 1조 3,500억 달러에 북한 147억 달러이다. 북한 전체 예산이 인구 3만이 안 되는 전라남도 구례군의 예산보다 적다(2006년 기준). 


군사비를 보면 더 황당하다. 100만 명이 넘는 병력을 자랑하는 북한군의 군사비 예산은 3조 원 수준이다(공산권은 다른 예산에 군사비를 숨기는 특징이 있는데, 전체 예산을 전부다 북한군에게 돌린다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60만 수준의 병력에 37조 정도의 군사비를 쏟아 붓는다. 


이 모든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알고 있다. 군사적인 상식이 없더라도, 


'북한은 가난한 애들'


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북한 도발에 대한 인식이 '공포'가 아니라 '짜증'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붙으면 우리가 확실히 이긴다. 그런데, 붙으면 우리도 손해 볼 수 있으니까 참는 거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란 감정인 것이다. 맞다.

 

북한의 도발이 무서운 게 아니라 짜증이 났고, 그 짜증은 어느새 우리를 피로하게 만들었다.



왕조국가


우리의 상식으로 북한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하는 '이상한 나라'이다. 형식적으로 완성된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사는 대한민국의 상식으로 북한은 '막장국가'의 표본이다. 숙청이 일상화 되었고, 인권이란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사어(死語)이다. 


도무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나라이다. 그러나 이건 우리가 북한을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바라보기 때문에 겪게 되는 '문화차이'일 뿐이다. 북한을 '한국'이라고 보지 말고, '조선'으로 보기 바란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앞의 두 글자 '조선'만 떼어내 생각해 보라. 그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북한은 근대국가 체계가 아닌 전근대의 '왕조국가' 체제의 그것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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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문서 상에 나온 '백두혈통'이라는 말에서 모든 게 정리 됐다. 개정된 헌법에서 '핵'을 명문화 하고, 핵의 사용을 '수령'에게 일임한 걸 보면 이 나라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라 '왕조체제'란 걸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을 보면서 난 조선시대의 연산군이나 세조를 떠올렸다. 혈통이 우선시 되고, 생사여탈권에 대한 자의적 판단, '수령'이나 '지도자'에 대한 모욕에 대한 과민한 반응, 국가 자체를 자신의 사유물인 것처럼 생각하는 행동들을 보면, 이들의 사상적 주체가 '주체사상'이 아니라 한나라 시절 동중서의 그것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아닌 '조선'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왕'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연산군에 대한 우리의 역사상식을 보자면, '폭군'이라는 단어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수많은 창작물에서 나온 연산군은 광기의 화신이다. 과연 그럴까? 그의 치세 13년을 보면, 재위 10년 때까지의 연산군에게서는 노회한 정치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 성종의 실수(?)로 인해 비대해진 신권(특히나 언론)을 견제하기 위해 훈구대신들에게 힘을 실어줬고, 신하들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을 잡아 나가는 모습은 10대에 즉위한 왕 답지 않은 노련함을 보여줬다. 특히나 자신보다 몇 배나 나이가 많은 나이든 대신들을 '격동'하거나 은근히 돌려서 '면박'을 주는 모습을 보면 10대에 즉위한 왕인가를 의심할 정도가 된다. 노련한 정치적 균형감각, 적절한 상황판단 능력, 게다가 한 번 총대를 메고 자신을 위해 싸운 신하에 대한 확실한 보상은 조직 장악능력의 표본이라 할 정도이다. 


그가 몇 번의 사화로 신하들을 때려죽인 것은 훗날 '폭군'의 이미지로 덧칠 됐는데, 사실 그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이복동생(중종)이 죽인 신하들이 더 많았다. 


게다가 갑자사화 이전에 있었던 몇 번의 사화들은 권력 확보와 적절한 견제를 위한 필요악적인 성격의 사화였다. 부왕인 성종시절 언론 3사의 힘이 너무 강해졌었다는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무난한 '견제'였다. 


10년 간 연산군이 통치한 조선이란 나라는 나름 '태평성대'라 평가할 구석이 있었고, 그 사이 별 잡음 없이 야금야금 권력을 확보한 모습은 '왕'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문제는 그 뒤 2~3년의 시간이었다. 힘겹게(?) 얻은 권력을 연산군은 유흥을 위해 소모했던 것이다. 


나는 김정은을 '왕'으로 본다. 그의 행보는 10대에 왕위에 오른 몇몇 '똑똑한' 왕들(연산군, 숙종 등등)이 보여준 행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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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잡기 위한 투쟁'


'혈통' 하나에 의지해 얻은 권력. 이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공고히 하려면 역설적으로 '권력'을 잡아야 한다. 연산군의 경우는 집권 초반기에 부왕이 키웠던 언론세력들을 견제하면서, 훈구대신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포섭했었다. 그렇게 적절히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했다. 그러기 위해 사화를 일으키며 조직을 쇄신(?)했다. 숙종의 경우도 집권 초반에는 외삼촌인 김석주를 통해 '감시정치'를 펼치며, '환국'을 일으켰다. 말 그대로 판을 뒤엎어 버리며 신하들을 물갈이 하고 처단했다(김석주도 만약 병으로 죽지 않았다면, 분명 처단 당했을 것이다)


나는 김정은을 10대에 즉위한 왕으로 보고 있다. 이런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다 쓰러져 가는 '조선'이란 나라와 핵, 100만의 군대, 그리고 '남한'만이 쥐어졌을 뿐이다. 어쩌면, 조선시대 즉위한 소년왕들보다 더 불안한 상태가 김정은이다. 소년왕들에게는 권력의 정당성이 있었지만, 보수적인 북한 사회에서 김정은은 권력의 정당성에 상당한 의구심을 상대해야 한다. 게다가 그에게는 형용모순의 '과제'가 주어졌다.


'지금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북한이 쿠바처럼 개혁개방을 할 수 있을까? 불가능 할 것이다. 


"김정은으로 대표되는 '백두혈통'이 제거된 상황에서의 개혁개방"

"김정은으로 대표되는 '백두혈통'이 유지된 상황에서의 독재국가"


이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인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별로 없다. '고난의 행군'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세대들이 북한군에 입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북한군의 초모(징집) 대상자들의 신체등위 기준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북한군은 146cm 이하도 군대에 들어가게 됐다(145cm로 기준이 바뀐 걸로 알고 있다). 그들의 기준으로 허약체질(영양실조)은 소총을 들고 100m를 30분(30초가 아니라)에 완주하지 못하는 이들로 한정됐다. 소총을 들고 30분 안에 100미터를 걸어들어오면, 이들은 군대생활을 할 수 있는 존재로 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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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데리고 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김정은의 당면한 과제이다.


북한군의 100만에 달하는 군사력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이들은 군사력이기 이전에 '노동력'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임금'이란 개념이 희박하다. 결국 이들이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노동력이란 바로 '군대'이다. 이들의 10년이 넘는 복무기간은 간단히 말해서 사회 노동력이 필요할 때 동원할 수 있는 '손쉬운 노동력'과 다름 없다. 이들은 군사력이기 이전에 '노동력'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할 때 임금노동자를 모집하는 것과 같은 사회시스템이 북한에는 없다. 결국 북한군은 이런 노동력으로 동원되는 것이다. 이 노동력의 질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역사상 '최악'으로 떨어진 것이다. (100만이 넘어가는 병력수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김일성)가 말한, '이밥의 고깃국'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요원한 상태에서 이런 최악의 노동력이자 정권의 원동력인 군대를 가지고, 나라의 틀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바로 김정은이다.  


이 '소년왕'에게 남겨진 유산은 별로 없다. 조만간 경제성장을 이뤄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않는 한 정권의 안정성은 최악으로 떨어질 것이다. 90년대 중반 즉, 아버지 세대에서 이미 사회주의 국가의 정체성인 '배급경제'가 무너진 상황이었기에 더 이상 사회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 뾰족이 없는 상황. 평양의 경계선을 줄인 이유도 형식상의 '배급'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북한의 경제상황은 심각하다. 


이 상황에서 '소년왕'이 기대할 수 있는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김정은으로 대표되는 '백두혈통'이 유지된 상황에서 '경제개발'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핵과 장사정포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대한민국을 압박해 경제개발을 해야 하는 것이 김정은에게 남은 '유일한 대안'이다. 



중국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남긴 유언 중 하나가 '중국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유언일 것이다. 김정은은 중국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식량과 기름을 의존하면서도, 중국이 자신들의 '정치체제'를 압박하는 것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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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같은 집단지도체제로 바꿔야 한다.'


중국이 생각하는 '상식적인 지도체제'의 범주에서 북한은 벗어나 있다. 중국도 태자당을 중심으로 한 몇몇 고위관료들에 의한 돌려막기 식 인사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최소한 '형식적으론' 납득할 만한 지도체제이다. 그러나 북한은 빼도 박도 못하는 '왕조국가'이다. 그리고 이 왕조국가는 상식적으로(현대의 국가체계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국민의 여론, 입법, 사법, 행정의 견제와 균형, 지도자를 견제하는 수많은 제도적 안전장치가 있기에 '상식'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지만, 왕조국가는 '왕'의 기분에 따라 국가정책이 좌지우지된다. 


문제는 그 왕이 '핵'을 들고, 냉전시절부터 유명한 '화약고' 한 가운데서 불장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서 쌀밥에 고깃국을 70년간 외쳐온 행정부와 현대국가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아사(餓死)라는 사망원인을 목도해야 하는 경제현실이 눈앞에 놓여있다. 사회의 내구도가 무너졌다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사회주의 체제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배급경제는 무너졌다. 이걸 수습해야 하는 것이 김정은이다. 


첫 번째 우방이라 할 수 있는 중국과의 '거래'가 필요하지만, 이미 아버지 때부터 북한의 '경제개발'을 압박하고, 방해한 것이 중국이다. 


중국은 북한이 죽지 않을 만큼만 살려두고 있다. 


'살아날 거 같으면 물에 집어넣고, 죽을 거 같으면 다시 건져 올린다.'


중국의 행태가 그렇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의 한일관계처럼, 중국과 북한도 냉랭한 기운 속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도발'밖에 없다. (얼마 전 중국 유람선이 가라앉았을 때 김정은은 북한 외교가에 엄명을 내렸다. 공식적인 조의를 표하지 말라고. '빈정'이 상한 것이다)


거기에. '전승절' 행사가 끼어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초대와 참석이 의미하는 정치학적 의미가 무엇일까? 역으로 생각해 보기 바란다.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 행사 때 오바마가 우리나라 대통령을 버리고 김정은을 초대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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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목함지뢰 사건과 뒤이은 긴장상태에서 보여준 중국의 행보(국경의 병력배치,'책임 있는 자' 언급)는 우방의 모습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음'이 전제돼 있는 지원이지, 자발적인 지원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만약 중국 측이 북한 측에 향하는 송유관을 닫아버리면, 북한은 어찌될까?)



5번째 유감 표명


목함 지뢰와 서부전선 비무장지대 포격전에 대한 북한 측의 사상 5번째 '유감' 표명이 발표됐다. 판문점에서 며칠 간 밀고 당기는 협상과정을 보면서 예상했던 결과이다(43시간 마라톤협상이라니)


(북한이 국지적인 도발은 가능하겠지만, 전면전은 어렵다. 어떤 '기습적인 공격'으로 시작되는 전면전이 아닌 이상. 이런 식의 '보여주기식 도발'에 당할 군대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너 때릴거야!' 이러면서 주먹을 눈앞에 흔드는 상황에서 '기습'의 가능성은 상당히 떨어질 것이다. 하물며 군대라면 어떨까? 한국과 미국의 감시자산이 육해공에서 잔뜩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상외의 '기습도발'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전면전은 어렵다. 당장 병력의 질적, 양적이 차이는 뒤로 하고, 전쟁의 '지속능력'이 문제다. 전쟁에 필요한 3가지가 있다. 


'돈, 돈, 더 많은 돈'


이다. 돈은 전쟁의 지속능력을 담보한다. 아무리 종심이 짧고, 서울과 수도권이 북한의 타격권 안이라도, 모든 걸 걸고 '전쟁'을 한다면 남한이 북한을 이긴다. 과정에서 겪게 될 '타격'의 크기는 논외로 친다면, 결과론 적으로 보면 남한이 북한을 이긴다. 우리는 그 '타격'이 무서워서 전쟁을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북한은 역사상 5번째 유감 표명을 했다. 우리 장병 2명의 다리를 대가로 얻은 '유감표명'이다. 언제나 그렇듯 군사도발과 뒤이은 긴장조성, 경색국면에서의 벼랑 끝 전술과 뒤이은 협상과 원조요구의 수순을 그대로 밟아가는 것 같은데, 이 사이에 '유감표명'이 끼어들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김정은의 오판(?!)이라 할 수 있는 '준전시상태' 선언이다. 2013년 개성공단을 빌미로 해서 우리 정부를 압박했을 때 보여준 '살라미 전술'을 우리는 다시금 확인 할 수 있었다. 현안을 살라미 소시지처럼 단계별로 잘라서 압박하는 모습. 문제는 그 '현안'이 별로 없었다. 북한은 가진 게 없었고, 나올 수 있는 방법이란 '전쟁'을 여러 형태로 쪼개 압박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보여준 '유치한 방법'들이 이번에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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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카드가 '별로' 없다. 결국 나온 방법이 '짖는 것' 밖에 없었다. (그들의 실질적인 위협을 차치하고, 그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봤을 때)


준전시상황, 전쟁광, 100만 명의 재입대 행렬 등등. 만약 이게 우리 측에 '협박'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했다면, 심각한 오판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미 남한은 북한의 이런 대응에 대해 '짜증'을 넘어 '허탈함'과 '애처로움'으로 응대하고 있다. 우리민족끼리의 tv방송을 보면서 실소를 했던 게 우리가 아닌가? 


시쳇말로 '남남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화전양면 전술이란 말이 나왔지만, 우리나라는 평온했다. sns상에서 '허세'쩌는 예비군들의 군복 퍼레이드가 이어졌고(이를 두고 '신 안보세대'라 말하는 언론들을 보면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지만), 남편의 예비군복을 곱게 다려놓고(?) 등 떠미는 아내의 사진 앞에서는 실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체제경쟁의 승리를 일반인들이 '확인'하고 '선포'한 것이 2015년 8월 24일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제 일반인들에게 북한은 '똘이장군'에서 나오는 뿔 달린 돼지가 아니라 그냥 '뚱뚱한 돼지' 김정은과 뼈만 남은 북한군일 뿐이다)


'sns의 허세가 작동된다는 것 자체가 북한이 이제 놀림거리 그 이상으로 생각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맞다. 북한의 위협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그러나 국민정서 속에서 북한은 이미 '짜증나는 그 무엇'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평가 되는 것이다. 이미 체제경쟁의 승패는 결정 났고, 탈북자는 더 이상 '귀순용사'가 아닌지 오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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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왕'의 허세 가득한 중2병이 발병을 한 것인지, 아니면 상황파악을 제대로 못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는 똑같다. 


'북한은 남한에 내놓을 카드가 없다.'


라는 것이다. 남은 건 체제 유지를 위한 '자존심'과 군사력뿐이다. 그나마 그 '군사력'이란 게 상대방을 압살할 만한 무력이 아니라 '깽판'을 치는 수준이란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TV 화면 가득 앙상한 뼈만 남은 북한군의 실상을 확인한 것이 우리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북한을 조롱했다.


5번째 유감표명에 대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양쪽 다 내놓을 수 있는 차선의 결과책을 들고 나왔다.'


'주체가 분명한 사과'를 요구한 남측과 '뭔가'를 얻고 싶은 북한. 둘 다 전면전은 하기 싫다. 문제는 이전까지의 북한이라면, 벼랑 끝 전술로 갈 수 있는 '카드'가 몇 개 있었다. 그러나 그 카드가 더 이상 먹히지 않고, 외부 지렛대로 활용할 '꺼리'도 거의 없어졌다. 예전에는 '깽판'을 치고 떼를 쓰면 주변에서 어르고 달랬지만, 이게 통한 건 90년대까지였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 이후 북한은 완벽한 '불량국가'가 됐다)


북한을 지원할 국가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체제 경쟁은 실패로 끝났다. 게다가 북한은 전 세계에서 완벽하게 고립된 나라가 됐다. 사회주의 맹방을 자처하던 중국은 이미 자본주의 국가로 변모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가 됐다(땅을 못 산다 뿐이지). 북한이 할 수 있는 건 '깽판'을 치는 것 뿐인데, 이 역시도 약발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결국 방법이란 게 핵을 계속 개발하고, 미사일을 쏘고, 도발을 계속 하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야지만 북한을 돌아봐 준다. 


예전에는 '깽판'을 치며, 돌아봐 주고, 먹을 걸 줬지만, 이제는 겨우겨우 '관심'만 받는 수준이 된 것이다. 이제 그들의 카드는 그 효용이 다 돼 간다는 걸 그들도 알고, 우리도 알고 있다. 


여기에 하나의 악재가 더 끼어들었으니, 북한의 지도자가 '소년왕'으로 교체가 된 것이다. 


2대 세습까지만 하더라도 간신히 '설득'이 가능했고, 그에 상응할 만한 '세자기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3대 세습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고, 더군다나 '수습기간'도 짧았다. 이 상황에서 김정은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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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번의 5번째 유감은 소년왕 김정은의 '수업료' 였을지도 모른다(그리고 자신을 둘러썬 대외관계의 '한계'를 확인한 수업이었을지도)만약 북한 측에 어떤 '물밑제안'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된 <남북공동보도문>만을 보자면, 이건 서로간의 '차선'들의 합의일 뿐이다. 



남북 공동보도문


1.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며 앞으로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2.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


3.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25일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하였다.


4.북측은 준전시 상태를 해제하기로 하였다.


5.남과 북은 올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고 이를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9월초에 갖기로 했다.


6.남과 북은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2항을 보자면,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


에서 '유감'을 사과로 해석하고, '북측'이라는 주최를 결합해 '주체가 분명한 사과'를 받아낸 모양새지만, 애초에 우리가 원했던 '재발방지' 문안은 없다. 하긴 '재발방지'를 받아낼 수 없다는 건 회담 전부터 우리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카드가 그것이지 않은가? 


여기에 더해 4항의 '북측은 준전시 상태를 해제하기로 하였다'를 통해 우리는 겨우 2015년 8월 4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즉, 20일 전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선언일 뿐이다(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5항의 경우는 '립서비스'일 뿐이다. 언제나 그렇듯 인도적 측면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회담의 단골 양념일 뿐이다. 이게 대국적 측면에서 어떤 '효용'을 발휘한 적은 없다. 


북한이 얻어간 것은 3항의 '확성기 방송' 중단과 6항의 '민간교류 활성화'이다. 3항 역시 2015년 8월 4일로 시간을 되돌린 것뿐이지만, 6항이 변수가 되는 것이다. '민간교류'의 성격과 규모가 어디까지 이어진다는 것일까? 


어쩌면 북한은 한 번의 '깽판'을 통해 남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 낸 것으로 만족할 지도 모른다. 결국 북한은 다시 한 번 그들이 가진 카드가 없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대화'를 위해 애꿎은 두 젊은이의 다리만 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마라톤회담이 남긴 교훈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것. 그들이 극단으로 가고 난 뒤의 선택지가 없다는 것(전쟁이라는 최후 상황을 그들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마라톤회담으로 우리는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예전 같았으면, 몇 번이나 박차고 나왔을 상황임에도 북한은 회담을 강행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이상 내놓을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도 전쟁을 피하고 싶어 한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상당히 많은 걸 얻어낼 수 있다. 덤으로 그들이 내놓은 카드라는 게 잠수함, 장사정포, 공기부양정(태풍 덕분에 제대로 기동이나 할 수 있을까?) 정도가 고작이란 것도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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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전시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우리군의 대응태세를 정비할 수 있는 '계기'가 돼 주었다는 점에서 북한이 우리군 전체에 KCTC 훈련을 제공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적어도 전방 부대의 포병들이 모두 방렬하고 북한을 노려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군의 훈련태세를 정비할 수 있다는 건 의미 있다고 본다. 서로 준비를 잔뜩 해놓은 상태에서 치고받는다면, 우리가 이긴다. 그걸 우리 국민들도 '감'으로 알고 있다고 본다. 구체적인 수치나 전력상의 차이를 몰라도 말이다) 


이건 커다란 교훈이다. 그들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우리는 확인했다. 우리가 가지는 두려움의 상당 부분은 우리가 '잃을 것'을 기반으로 한 상실의 두려움 이지만, 그들은 '존재'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쩌면 전쟁을 통해 그들은 존재 자체를 상실할 수 있다는 것. 그 위협을 그들은 알고 있다. 


결국 이번 회담은 북한의 양보로 시작됐고, 그들에게 더 이상 카드가 없으며, 전쟁이라는 최종국면을 그들도 피하고 싶다는 걸 확인한 시간들이다. 


이제 남은 건 뭘까? 그들의 약한 곳을 확인했으니 대결국면으로 확장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주도권을 쥐고 그들을 압박할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그들의 본심을 확인했으니, 대화로 풀어나갈 것인가? (그들이라 말했지만, 결국은 '소년왕'의 판단력 하나로 귀결될 것이다)


결국은 소년왕의 본심을 확인하는 선에서 이번 회담의 성과를 정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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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쩌지? 


늘 그래왔든 긴장과 이완의 반복이 이어졌다. 북한을 바라보면서 문득 초등학교 4~5학년 시절의 남자 애들이 생각났다. 관심 있는 여자아이에게 차마 말은 못하겠고, 애꿎은 고무줄이나 끊고 도망가는 유치한 모습들.  


그들은 대화를 하고 싶을 것이다. 대화를 하고, 뭔가를 얻어내야지만 체제가 유지될 것이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을 통해 외화벌이를 계속 하고 싶었지만, 현대가 빠져나간 뒤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한 때 현대가 남겨 놓은 자산들을 활용해 직접 운영을 시도해 보려 했지만,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개성공단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아무리 운영 노하우와 시설을 확보한다손 치더라도 그 원자재 공급은 어떻게 할까? 결정적으로 미국 체계의 세계경제 체제 하에서 '최혜국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북한이 어디에 물건을 수출할 수 있을까? 


북한에 있는 남한의 자산을 동결하고, 이를 사용한다 치더라도 남한에게 이 동결자산은 새발의 피도 되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자산을 가지고 있어도 사용할 수 없는 게 북한이다. 북한으로서는 난망한 상황. 


남한이란 파트너를 배제하고 자산을 몰수 한다고 하면, 더 이상 다른 나라의 투자를 얻어낼 수도 없다. 즉, 경제개발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솔직히 말해서 북한의 정치체제 하에서 섣불리 '투자'를 말할 국가는 없을 것이다. 남한의 경우는 민족적 '특수성'을 기반으로 한 투자이기에 여기까지 개성공단을 끌고 올 수 있었지만, 그 안에서도 수많은 불협화음이 존재한다는 걸 그들도 우리도,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투자를 끌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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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셋 중 하나다. 


"김정은으로 대표되는 '백두혈통'이 제거된 상황에서의 개혁개방"

"김정은으로 대표되는 '백두혈통'이 유지된 상황에서의 독재국가"

"대한민국을 지렛대로 지금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그 '파국'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언제가 됐든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정은이 제거된 상황이라면, 북한 주민들은 어쨌든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두 번째의 경우는 언제가 됐든 '파국'을 전제로 한다. 왜? 이미 사회주의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시장경제'로 이행한 상태이기에 통제가 어렵다는 것이다. 언제가 됐든 내부동요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적 내구도는 계속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의 경우는 그 자체가 '예민'하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체제를 인정받으면서 점진적으로 개방을 하고, 경제적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한 '물주'란 개념으로 남한을 바라보겠지만 그 모든 걸 다 떠나서 남한과의 접촉이 체제의 위협이 된다는 걸 그들 스스로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미 체제경쟁에서 실패했을 때부터 그들의 정당성은 무너졌다. 백 보 양보해 정당성이 확보됐다 치더라도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 못하는 북한과 이미 삶의 질을 말하는 남한의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 지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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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투압 현상이라고 해야 할까? 남한과 북한의 접촉면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남한의 체제가 북한에 전파될 것이고, 이는 그들의 체제 자체를 위협할 것이다(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사상교육을 생각해 보라. 개성공단이 문을 닫게 될 경우 이 근로자들을 재배치하는 것도 문제일 것이다. 이들을 어찌 관리할 것인가?).


그들에게는 난망한 상황의 연속이다. 


(주체교육에 의해 '자존심' 하나만은 세다고 알려진 북한이지만, 요즘 들어 난 '가지지 못한 자가 가진 마지막 자존심'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그들에게 남은 건 오로지 하나 '그들만의 명분' 뿐이다. 이거라도 지켜야 하지 않을까?)


북한의 도발 원인이 '돈'이란 건 그들도 알고 우리도 알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주체'와 '민족의 분노'의 이면에 돈이 깔려있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안타까운 건 김정은의 아버지는 자신들의 욕망을 제법 세련되게 '포장'이라도 했는데, 그 아들은 너무도 서툴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서투름을 수습하기 위해 '분노'라는 원초적 감정을 들이밀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게 너무 안타깝다. 


한국은 이 소년왕을 상대로 어떤 카드를 내놔야 할까? 아니, 그 이전에 소년왕의 치세를 인정해야 할지, 인정하지 말아야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인정하지 않는다면, 8월 4일의 모습 그대로 계속해 무시하면 될 것이고, 인정한다면 소년왕과의 '평화'를 생각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를 이길 순 없지만, 우리를 '개차반'으로 만들 순 있다. 

우리는 북한을 이길 순 있지만, 우리 역시 '개차반'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접점에 있는 것이, 


'서로 싸우고 싶지 않다.'


라는 대전제가 있다. 북한의 '파워엘리트'와 우리 국민들의 접점이다. 싸우는 순간 모든 걸 잃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접점을 점점 넓혀가며 제3의 길을 찾을 것인지, 아니면 어느 한 순간의 '호기'를 기약하며 망하기를 기대하는 것. 둘 중 하나의 선택만이 남은 것이다. 


나조차도 북한에 대해 '짜증'이 난다. 그러나 짜증이 난다고 전쟁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거짓된 평화? 진실된 전쟁? 그런 차원이 아니다. 우리의 삶의 토대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도(평양을 중심으로 사는 몇몇들) 자신의 토대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이 접점을 계속 유지해 나가며,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난 그들이 계속 살아있었으면 한다. 그들이 우리 민족이라서가 아니라, 적어도 그들이 기득권을 움켜쥐려고 발버둥 치는 동안에 우리와의 어설픈 평화가 이어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운이 좋아 그들 체제 자체가 내부에서 붕괴된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니, 이미 작계 5029와 5030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나라가 아닌가? 이미 북한의 사회적 내구도를 낮게 보는 것이 작금의 우리인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북에 있는 '소년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지난 70년이 그렇듯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는 북한이란 우리 상식 밖의 체제를 상대로 상식 밖의 대화를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하겠다는 혹은 돈을 뜯어내겠다는 그들과 전쟁을 교집합으로 한 서로 간의 이익교환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지는 쪽은 먼저 '짜증'을 내는 쪽이다. 그저 그들의 국호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왕조국가라고 생각하라.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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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BS>







펜더


편집 : 딴지일보 홀짝 &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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