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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8. 목요일

메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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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 년의 짝사랑 - 당신을 사랑합니다. 1982년 삼성그룹 <2,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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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 년의 짝사랑 - 세계는 넓지! 할 일은 없고 1982년 대우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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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다.


천박하다.


천한 사업이라 불리던 운수업에서 재벌로 성장한 그를 두고 나온 말. 스스로 직업의 귀천을 알아서였는지,


"운전은 해봤지만 운전기사를 한 적은 없다"


라는 말을 남겼지. '술은 먹었지만 취중은 아니'라거나, '때렸는데 폭행은 아닌' 유체이탈화법의 시조 되시는 거야.


이 글은, 한동안 쓰지 않았던 대기업 이야기의 부활판이자, 이미 터진 대한항공 사건 때문에 굳이 그 선대의 회장때부터의 기업특성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호기심에서 쓰여진 글이니, 당연히 대한항공에 비판적일 수 밖엔 없어.


세상은 좁아서 다 친구 하나쯤 그 동네에 있고, 와인 선물해준 스튜나 나이트에서 부비 꽤나 한 녀석들은 지금쯤 관리자급 스튜겠고. 리허설하며 삽질한 홍보라인쪽과 법무쪽에 아는 얼굴 하나쯤 당연히 있는 좁아터진 대한민국에선 마구 씹어대기엔 사실 뒷감당쪽에선 찔끔하기도 해. 아마도 다음 번 대학동기모임에서 대한항공 녹을 먹는 노비A에게 욕 좀 먹겠지 내 정체가 밝혀진다면.


일단 책에 나온대로 까자면, 한진의 리즈시절이 완성된 건 월남전을 통해서야. 목숨 걸고 돈을 번 거지. 그 목숨이 지꺼일리는 만무하고. 남의 목숨을 판돈에 올리고 돈을 갈쿠리로 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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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 창업자 故 조중훈


재벌의 시작은 전설 같은 스토리로 시작되고 


운전은 하였으나 기사는 아니던 시절. 인천-서울 간 국도에서 미군장교의 와이프가 탄 차가 퍼져있는 걸 당시 운전수라면 정비쪽을 다 마스터해야만 했던 시절이니, 간단히 고쳐준 게 인연이 되었다고 해. 운전만 하고 기사는 아닌 그 분.


나랑 이름 두 글자가 같고 심지어 같은 성씨야. 다만 파가 아주 오래 전 갈린 주요 파벌 중 하나의 후손으로 고려시대 이후론 별 관계는 없는 돌림자 다른 파벌의 후손이지. 내가 대학 때 대한항공과 연관지어져 루머가 살짝 있었는데 대한항공쪽 집안 특성인 거대한 체구, 이름도 비슷하고 뭐 그래서 그랬어. 구라쳐서 개그소재로 사용하곤 했는데 개그가 개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보단 진짜로 받아들이는 진지증후군 애들이 종종 있더라고. 아마도 그 애들 중에 날 고소했더라면 '재벌 사칭 00군' 뭐 이런 기사가 났을 수도.


이런 잡설은 마감하고, 자. 제대로 한진그룹을 들여다 보자고.



1. 전설의 사나이


운전은 했으나 운전기사는 하지 않은 이 사람은 매우 어린 나이에 트럭을 하나 사서 운수업을 시작해. 해방 직후인 1945년. 뭔가 세상을 보는 감각적 선제감이 있었겠지. 드물게 인천 출신이고, 휘문고보 중퇴의 학력. 8월에 해방되고 11월에 사업을 시작한 걸 보면 꽤 성격은 다혈질이라고 봐야겠지.


눈에 보이는 노다지의 기회를 잡기 위해 급하게 시작한 운수업은 서울로 들어오는 멀쩡한 길로선 유일한 경인국도를 따라 발전할 수 밖에 없었겠지. 차도 귀하고 물자도 귀한 시절에 어쨋건 가장 필요한 건 유통망이니깐. 한진상사라는 회사도 차리고 남들과는 다른, '운전 그 이상'을 바라본 것 만은 분명해. 어쩌다 운좋아서 성공했다는 후일의 평가보다는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 없어. 1세대 재벌들이 그러했듯이.


이 조중훈이라는 사람도 명확한 비전과 자기확신을 가지고 세상에 출사한 거로 보여져. 6.25를 어찌 보낸 건지는 몰라도 50년대 중반까지 착실히 트럭 숫자를 늘려가며 운수업에 집중했고 이윽고 전설의 이야기인 미군부대와의 인연으로 미군의 막대한 수송일꺼리를 독식했다고 하는데. 미군 장교부인의 차를 수리해줬다는 나름 로맨틱(?)한 이야기와 자가용 지프를 팔아 로비에 써서 가능했다는 현실적인 스토리 두 가지가 있고, 이에 대해서는 '알아서 둘 중 하나 골라잡아 믿으세요'라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 


아무래도 미군의 비교적 당시 시점에서의 청렴성을 감안할 때 장교부인 인연으로 이어지는 게 합당할듯 한데, 내가 자라면서 본 미군들은 뭐 적당히 썩은 짓도 잘하더라는 경험으로 볼 땐 차 팔아 로비했다는 후자의 이야기도 그리 어색하지 않아.


여튼 그런 6.25 이후, 탄탄한 수송물량이 넘쳐나던 1956년부터 급성장을 하는 한진상사. 당연히 어음결제 따윈 모르던 미군이 현찰을 팍팍~ 그러니 원조물자 빼먹으며 잔돈이나 만지던 여타 기업에 비해 짭짤한대다 수송시 이리저리 해먹을 수 있던 밀수라인까지 끼고 다녔을 거란 추측이 가능하니.


뭐 노다지였겠지.


7만 달러로 스타트. 2년 만에 13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해. 당시 달러의 가치로 볼 땐, 현재의 가치로는 수천 억 정도의 느낌. 팔아먹었다던 지프 스용차 대신 벤츠가 들어오고, 인천의 찌그러진 사무실은 반도호텔로 입성. '부암장'(당시 한다하는 사람들 집을 부를땐  ~OO장을 붙이는 게 대세이던 시절, 예)이화장)이라 부르는 부암동의 대저택도 이 시기에 샀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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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상사


미군의 사랑을 한몸에 듬뿍 받은 것은, 철저히 시간약속을 잘 지켰던 것과 물건 분실에 대한 처리가 깔끔했기에 그랬다고 해. 내가 보안대에서 경험했던 군복 빼돌린 거 채워넣기 신공을 이 양반은 40년 전에 먼저 했었군. 운전기사가 3만 달러어치 군복을 빼서 팔고 그걸 웃돈 주고 다시 사서 채워넣는 과정을 통해 신뢰가 무척 상승했다는군.


여기까진 경인간 운송을 다잡아 성공한 기업인이 된 이야기.



2. 재벌로의 도약 - 니 목숨을 걸어라


1965년 정부관리들과 방문한 월남에서 이 전설의 사나이는 제대로 전설이 될 찬스를 발견했어. 이미 교분이 충분히 쌓인 미군장교들에게 월남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확보하고 언젠가 지낭으로 써먹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에 대학을 보내놓은 동생도 소환해서 월남진출을 하지. 위험하다고 현지 월남기업조차 손을 대지 못한 육상운송을. 맹호부대보다 보름 일찍 진출, 진정한 전쟁통 상인의 전투적인 진출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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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 달러 보증금으로 넣고 780만 달러어치를 수주하는, 300만 달러를 땡기느라 모든 물건을 잡혀야할 정도로 무리해서까지 감을 믿고 올인한거야. 게다가 남들이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적진돌파형 육상운송까지 도맡아서 말이지. 대부분 직원들이 위험했을 거라고, 그래서 회장은 안전했을 거라는 내 선입견과는 다르게 직접 위험한 일을 꽤 했던 모양이야. 배에서 짐지키며 자다가 베트콩의 습격으로 실족해서 다리도 부러져보고 총알도 이리저리 스친 모양이더군. 그리고 이미 점령된 지역 정보를 모르고 갔다가 죽은 듯 숨어지낸 일도 있다고 하고.


여튼 사업적 성공에 목숨을 걸고 도박질하는 건 1세대 재벌 외엔 볼 수 없는 성향이기도 하지. 6.25 동란을 겪은 이들의 특징이기도 하고, 피와 목숨을 놓고 배팅을 할 수 있는 처절한 담대함이랄까.


여튼 그렇게 재벌로 향한 발걸음은 거칠 게 없었어. 해운, 동양화재, 한국공항, 한일개발, 인하대학, 대한항공, 제동흥산 등등의 주요 계열사가 이 때 벌어들인 현찰로 불하 받은 공기업 및 부실기업들이야. 남산 3호터널 입구에 있는 KAL빌딩도 이때 지은 것이고. 정말 제대로 월남전이 한진그룹의 알파요 오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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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월남


다만 당연히도 남에 목숨 또한 도박판에 올려 쌓은 부로 이룬 기업이라서였는지 후유증도 있어서 KAL빌딩에 불을 지른 사건. 파월 근로자들의 노임을 체불한 것을 이유로 벌어진 일이라는데... 뭐 아다시피 법적으로 한진은 죄가 없음을 증명해주는 정권이란 건 지금이나 그때나 뭐. 복잡한 계약서를 동원해서 어리숙한 노동자를 등쳐먹은 사건이라누만. 참 나쁜 사람들.


여러 추문도 있고 기업 인수과정에서 동원된 편법과 사채시장까지 기웃거려 돈을 벌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후일 조 회장은 다른 재벌들이 견제하느라 와전된 이야기로 치부하고 털었다고 해. 그런데 뭐 집안상태 보면 그다지 루머일리 없단 생각이 요즘은 들겠지. 사람들 마음 속에.


자신이 묵는 호텔에 태극기가 걸리는 국적기 회장으로서의 명예와 지위를 매우 사랑하기 시작했던 그 시절 이후로 재벌에 등극한 후 현장 위주의 강력한 지배력, 사사껀껀 개입하는 부지런함으로 현장의 발바리라는 애칭.(이게 애칭이면 참 발바리들 다...ㅋ)



3. 가족 중심의 영감경영


성질이 매우 급해서 21층 회장실까지 비상계단으로 질주하기도 했을 정도라는데, 부지런함이라고 생각했다는군. 여튼 경영방법이 독선, 독주형이라서 경영진의 질이 좋아질 수가 없는 폐단이 시작된 거고 아마도 그런 이유로 지금도 대한항공이 이따위로 문제가 터진 것인지도 모르겠어.


기업의 크기와 볼륨에 비해 이번 사태의 허접한 대응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능한 모습이니깐 말이야. 이런 경영을 이렇게 정리해서 불렀다고 하네. 


'가족 중심'


지랄이 풍년인 소린 거 같은데 하하. 전문 경영인이 성장할 수 없는 기업문화를 이 설립자 시절부터 인정하는 부분이 나오는거보니 요즘의 허접한 상태가 한결 이해하기 쉽군. 가족중심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듯 직원에게도 인간적인 경계가 따스했던 것인지 창업자 세대답게 요즘 경영자에게 없는 미담들이 좀 보여.


직원 가족이 아파서 미국까지 보내 치료시키고, 회사 실적이 개판이어도 아무도 문책하지 않고 힘든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고 하며, 조금 특이하게. 피가 보이는 운동이라고 권투경기를 시청하지 못한 부드러운 남자였다네. 직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에 대해 누군가 질문을 하자 


"책임을 물을 줄 몰라서 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도 가정이 있는 사람인데 쫒아낸다면 생계를 끊는 것이 아닌가"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해. 1세대 경영자들은 이런 점에서 조금 매력이 있긴 하지.


독실한 불교신자. 불국사의 범종, 월정사의 대웅전을 기증 및 중건해줬다는군. 여튼 이런 창업자를 둔 한진그룹은 이후 후계승계로 넘어가서 오늘 날의 개판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창업자로서 이 전설의 사나이는 저 세상에서 열불 좀 터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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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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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회장 "교육을 잘 못 시켜서 죄송합니다"


이 시점에서, 이 책이 나왔던 1982년 시점에선 이후 희망은 세계적인 해운왕이 되는 것이었다고 하고, 풍양 조 씨 한 거파는 이끌고 있고 한진이 감당해서 그쪽 파벌의 등록금은 한진에서 다 대주는 걸로 알고 있어. 10만 명 조금 넘는 풍양 조 씨 중 그쪽 계파의 인구가 제법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역시 재벌의 힘은 뭐 대단하니깐.


우리쪽 파벌은 물려 받은 재산이 많아서 그걸로 감당이 되고, 풍양 조 씨라고 다 학비 대주진 않아. 몇 개 파벌만 가능하다고.  (편집부 주 - 확인 결과 한진 그룹 일가는 풍양 조 씨가 아닌 양주 조 씨인 것으로 수정합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여자들이 보통 기가 센 집안이긴 한데, 이번 대한항공의 일은 무능한 재벌의 전형적인 일처리 모습을 보게된 것 같아 꽤 실망이야. 난 보다 치밀하고 교활하며 뒤처리가 깔끔하다면야 국정원이든 사이버사령부든 한진그룹이든 어떤 대기업이든. 비난하지 않는 타입이거든. 근데 다들 너무 기대 이하로 무능해서 실망이라 욕하는 거지.


가족중심의 경영이 종착역에 다다른 사건인 거고, 한진그룹이 결국 경영진에 인재를 키우지 못한 탓에 구시대적인 의전이나 챙기다가 청와대의 장깃말로 전락한 일이니깐. 그저 처절히 깨지고 부서지고 돈 날리는 아수라장을 건널 밖엔 도리가 없는 일. 광고비 정도. 의전에 쓸 돈과 기자들에게 납득할 만한 촌지를 날린 만큼을 최초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주며 평생고용보장 증서쯤 내줬다면 아무런 일도 아니었을 것을. 어리석게 일해서 수십 배 수백 배로 떼우지 못할 구멍을 낸 거니깐 말이야. 진정한 '호미가래사건'이라고 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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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점에서 확장하지 않고 보수적인 경영을 하고 있는 한진그룹은 어쩌면 스스로의 무능과 한계를 알아서 차근차근 이어나가려고 웅크린 것인지도 몰라. 다만 참고 참으며 웅크리다가 그 커다란 덩치에 울분도 쌓이고 재벌답게 모두가 우스워보이는 세상에서 아랫 것들 조금 밟아대다가 화들짝 놀랐겠지. 수습도 제대로 못하는 청지기들 덕에 쪽은 팔릴대로 더 팔리고. 위기대응팀도 없던 모양이고 원래 재벌 그룹엔 오너 리스크 관리팀이 있을텐데 이상하다 생각할 수밖에 없는 수준으로 대응이 아마추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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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성씨를 쓰는 사람으로서, 이름이 비슷한 창업자에게 느꼈던 친근함의 기억으로 바라본. 근래들어 보기드문 한심한 대 홍보라인의 무능을 구경한 내겐. 점점 단단하게 완성되어가는 재벌 세상에 대한 아주 작은 붕괴 가능성을 바라본 것 같아서 즐겁기는 했어.


한진. 시대가 준 기회를 잘 잡아 커온 전설적인 성장의 이름. 이젠 한계극복을 하지 못하면 3세대에서 소멸가능성이 높은 기업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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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메이비


편집 :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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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비.


유쾌하게, 즐겁게, 흐뭇하게.